마왕 얀붕은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용사 얀순에게 손을 내뻗었다.


"크윽! 주, 죽여라! 나를 더 이상 욕보이지 마라!"

"니 팔다리를 자르고 눈을 뽑은 다음에 오크 군락지에 집어던지지 않을 것을 다행으로 알아라. 물론 대륙인권협약에 의해 그런 잔혹한 전쟁범죄는 이 몸조차 저지르지 않으니 안심해도 좋지만. 크크큭."

"안심하지 않았어! 크윽!"


얀붕은 흑요석처럼 반짝이는 눈동자를 번뜩이며 금발의 아름다운 용사에게 주술을 걸었다.


"하압!"


쿠웅~


하늘에서 검은 벼락이 떨어지고, 여신의 은총이 사악한 마왕의 마법에 의해 타락하자 용사의 눈동자가 죽은 눈이 되어 붉은 빛으로 요사스럽게 반짝였다.


"크하하하... 정의롭고 고귀한 용사가 짐의 손에 의해 타락하다니... 어느 인간이나 어둠은 품고 있는 법. 자, 용사여! 너의 어둠이 과연 무엇인지 이 몸에게 보여주거라. 으하하하하!"


족쇄가 풀리고, 용사가 벌떡 일어서며 얀붕을 향해 소리쳤다.


"마왕님의 충성스러운 개인 이 얀순. 마왕폐하의 자O를 입에 물고 개처럼 앙앙 짖어버릴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뭐라고?"

"이 뿐만 아니라, 마왕님을 노리는 더럽고 역겨운 다른 암캐년들을 모조리 토막내어 죽여버리고, 마왕님과 아무도 모르는 외딴 별천지로 달려가 마왕님의 사지를 잘라내어 어떤 마법도 통하지않는 아다만티움 합금사슬로 꽁꽁 칭여매 결박한 뒤, 마왕님의 OO를 무한 발O 사O시켜서 마왕님의 애타는 짐승교미신음을 들으며 암컷자O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그, 그 무슨? 뭐라고? 뭔 말하는거냐, 너 지금?"


마왕 얀붕은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들었는지 머리와 가슴 두 곳 모두 이해하지 못하고 말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얀순은 이내 붉게 빛나는 눈동자에 마왕조차 경악할 음습한 욕망과 집착욕을 번뜩이기 시작하며 말했다.


"저같은 쓰레기수준미달 용사에게 이런 과분한 자비를 내려주셔서 몸 둘바를 모르겠습니다. 마왕님에게 포로로 잡힌 순간, 마왕님에게 저는 인간으로서 품으면 안될 금단의 감정을 품고 말았습니다. 마왕님의 아름다운 용안을 제 혓바닥과 OO에서 나온 음란한 타액으로 잔뜩 더럽혀버리고 싶은 욕망을요  마왕님이 명하신다면, 지금 당장 전라의 상태로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은 OO을 뻐끔거리ㅡ"

"야야야야. 야! 무슨 소리야?!"


얀붕은 심의규정을 아득히 초월한 용사의 미친 소리에 머리를 쥐어뜯으면서도, 찰나의 순간 자신의 마법이 도대체 어떤 오류를 일으켰는지 모든 술식과 마력조합을 체크했다.



결과는 이상 없음.



"설마. 설마... 네가 가장 숨기고 싶었던 무의식의 극치가... 인간을 향한 증오심이 아니라... 나를 향한, 그, 그런... 음침하고 추악한 욕구였다는 말이냐?"

"......"


얀순이는 대답대신 성검을 소환하며 말했다.


"아무래도 마왕님을 향한 저의 마음을 들킨 이상, 마왕님과 편안한 마음으로 대화하기에는 이른 것 같습니다. 불충한 소신을 용서하시옵소서."

"야, 야야야. 야 임마! 뭔 개소리야! 이런 미친 또라이를 봤나?! 야! 나 마왕이야! 내 명에 무조건 복종해야하는 마법이라고. 니가 나를 어떻게 해버릴 수 있을 것 같애?"


얀붕은 당황했지만 이내 여유를 되찾으며 용사에게 건 마법을 더욱 강하게 증폭시켰다

대륙을 어둠으로 몰고가기에 부족함없는 역사상 최고의 재능을 타고난 마왕에게 자신이 독자개발한 술식의 증폭은 어린아이 손목비틀기보다 쉬운 일이었다.


그러나.


"...뭐야. 왜 출력이 한계값에 도달했는데 왜 너는 멀쩡한거지?"


얀붕은 예상조차 하지 못했던 최악의 시나리오에 직면하자 여유를 잃어버리고 창백해지고 말았다.

자신의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 마법에 걸린 것은 맞으나, 마법에 걸린 객체, 얀순이가 그 이상으로 말을 듣지 않는다.

저 미친 용사가 성검을 휘두르며 그의 사지를 잘라버리겠다고 날뛰어도 말릴 수 없다는 뜻이었다.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이제 저와 당신을 방해할 장애물은 사라졌다고 이해해도 되겠지요?"

"도대체 무슨ㅡ 서, 설마?!"


얀붕이는 머릿속을 스치는 하나의 가설을 떠올리며 경악하고 말았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한 줄로만 알았던 자신의 마법 논리 술식에 치명적인 결함이 떠오른 것이다.

아마, 용사 얀순이 아니었다면, 영원히 발견되지 못했을 오류.


그것은...


"네, 네 년... 정말... 정말... 정말 제정신이 아니구나..!!!!! 미친! 제정신이 아니야, 미쳤어! 미쳤다고!!!"


촤아아악!!!

쿠웅!!!!


용사 얀순이 휘두른 성검의 참격이 마왕을 아슬아슬하게 빗겨나가 지평선 너머의 거대한 산맥을 말끔히 절단했다.

고막이 멀 정도로 엄청난 굉음과 땅이 갈라질만큼 거대한 흔들림이 마왕성을 뒤흔들었다.


"꺄... 마왕이시여. 부디 저항하지 마세요. 전, 당신 덕분에 억눌려왔던 그 무거운 책임에서 자유로워졌습니다. 당신도 마찬가지에요. 당신도 자유로워지세요. 저와 함께 영원히 함께 하면서요."


끝을 모를 어두운 심연. 용사 얀순은 싱긋 웃으며 성검을 꼭 끌어안고 마왕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며 수줍게 고백했다.

마왕은 어둠의 사천왕을 소환해도 지금의 얀순에게 상대조차 되지 않을 것이라고 직감했다.

도대체 어떻게 일이 이렇게 흘러갈 수 있단말인가?

이것이 여신의 안배인가? 여신의 계략인가?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됐단 말인가!

대륙을 그의 손아귀에 들어오는 대업의 성공이 바로 눈 앞에 있음에도.


"아, 안돼!!! 술식취소! 술식 취소오오오오오오오!"


용사 얀순의 눈에서 흘러나온 안광이 끔찍한 죽음의 빛이 되어 얀붕이의 운명을 강탈하고 말았다.



*



마왕과 용사가 사라진 이후, 어느 바닷가 마을에 묘한 소문이 맴돌기 시작했다.


"과연, 허황된 소문일 확률은..."

"아직은 모르지."


사제 토마스와 견습사제 요한은 식은땀을 흘리며 끝모르게 펼쳐진 바다의 수평선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라지신 용사님의 이름을, 정체불명의 목소리가 고통스럽게 소리치는 괴현상을 겪은 어부들이 한두명이 아니잖나."

"듣는 순간 소름이 끼칠만큼 고통스러워하는 목소리라니... 도대체 이 무슨..."

"아마, 입에 담기도 사악한 마왕이 용사님에게 당한 패배를 인정하기 싫어서 사악한 사념들이 온 대륙에 널리 퍼진게 분명하네..."

"맞습니다... 주민들이 들었다는 말소리도... '살려줘' 라던지, '싸게해줘.' 라던지... 심지어 '제발 하루만 쉬게해줘'라던지... 듣기만 해도 엄청나군요... 용사님의 희생에 감복스러울 따름입니다."


사제 토마스는 수평선을 눈에 담으며 말했다.


"용사시여... 부디 멈추지마시옵소서. 영원한 싸움에서 반드시 승리하시길..."


그 기도가 닿았을까...

두 사제의 귓가에 마왕의 고통스러운 신음이 파도에 섞여 들려오는듯 했다.

그들은 조용히 기도를 올리고 등을 돌려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