봊됬다.


나는 봊됬다. 심사숙고한 결과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 인생은 봊됬다.


지금까지 나 박혜정의 인생을 돌아봤을 때, 내 인생은 개 봊 같은 그런 인생이라 할 수 있겠다.

팍- 올라갔다가, 팍-하고 내려가는 성능 좋은 F-15기 같은 인생

이제는 저 위로 당당하게  올라가지 못하고 지옥 끝까지 처박히게 될 일만 남았지만.


치한으로 끌려온 주제에 웃기는 변명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는 내가 지금까지 정말 깨끗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정확하게 말해서는 공부만 하느라 집에 박혀있었던 거지만…….


웃기는 소리지만 나는 검사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어릴 적 꿈을 이루기 위해서 매일매일 좁은 단칸방에 박혀서 공부를 하는 것 말고는 학창 시절에 그렇게 제대로 된 기억이 별로 없었다.


나는 솔직하게 말해서 내가 정말로 검사가 돼서 우리나라의 법을 집행하는 그런 사람이 돼 있었을 줄 알았다.

실제로, 나는 고등학교 당시만 해도 무조건 시험만 보면 전교권에 수능도 정시로 쳐서 당당히 샤샤대에 입학했으니까,


꿈을 이루기까지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했던 때가 나에게도 있었다., 


거듭된 낙방. 쌓여만 가는 나이, 그리고 어려운 수험 공부를 지원하기에는 더는 힘든 가정 형편에 결국 꿈을 접었지만.


웃긴 게 고시는 몇 년 동안 이를 악물고 죽을 듯 공부를 해도 도저히 붙지 않았는데, 공무원 시험은 1년 동안 공부를 그렇게 하니, 한 번에 붙어버렸다.


살짝 예상 못한 결과에 웃음이 나오는 것도 잠시. 하여튼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그 날, 나는 그냥 아무 말 없이 창 밖을 바라보며 한참을 그렇게 있었던 것 같다.


일단 먹고살 만한 그런 것들은 해결된 상황이니까, 앞으로는 뭘 하며 살아갈까?


지금까지 사법 고시든, 공무원 시험이든 일단 시험 합격을 목표로 거침없이 달려온 20대의 청춘이 아까웠다. 


이제는 시험이 아니라, 나를 위해 살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꼭 이제 20살이 된 애들처럼 막 머리 모양도 바꿔보고, 월급을 받으면 옷도 새로 사 입어보고, 무엇보다 남자랑 자보고 싶었다.


하지만


아하하, 저기 일단은 청년부는 맞는데, 아무리 그래도 이게 타겟층이 20대 대학 동호회.. 그런 느낌이건드요.. 아주머니가 끼기에는 좀..


에- 그러니까 여기가 수영을 배우는 곳이기는 한데, 그래도 일단 학생들을 먼저 받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아 지원자! 혹시 남성분이신가요? 아 여자요…? 나중에 연락드리겠습니다.


오랜 수험 생활 동안 다른 사람들과 소통을 맺지 않은 게 나에게 독이 돼버렸다.


연애 전선에 뛰어들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 어떻게 한번 끼어들고 싶어도 도저히 그사이를 비집고 들어갈 수 없는 장벽이 나와 사람들 주위에 처져 있었다.


수험 공부를 할 때도 독수공방으로 밤을 지샜는데, 공무원인 지금도 이렇게 혼자 밤을 지내야 하는 것일까?


왜 여자는 25살 이후로도 처녀면 마법을 쓸 수 있다고 하는데 30을 넘긴 나는? 대마법사? 그렇게 되는 건가?

하여튼 그 날도 평소와 같은 그런 날이었다. 


지루한 일상, 솔직히 9급 말단 공무원의 인생은 너무나도 지루했다.


다람쥐 쳇바퀴 굴러가듯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 내가 뭘 이룬다는 성취감도 없이 그냥 숨만 붙어있는 것 같은 그런 기분


그냥 있는 듯 없는 듯 내게 주어진 일을 처리하고 집에 나가면 언제나 그렇듯 휴대전화에 저장된 컬렉션으로 내 욕구를 달래거나

인터넷 사이트에 혐오 게시물을 올리면서 다른 이들의 반응을 보며 낄낄거리며 웃는 것.


그것 말고는 인생에 낙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런 지루한 인생.


아마 사람의 인생에 색깔이 있다면 내 인생은 우중충한 회색빛일 게 분명했다.


아…. 그런 우중충한 회색빛의 나날도 이젠 안녕….

안녕 내 지루한 일상아….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안 그럴게요. 실수였습니다. 정말 실수였어요. 한 번만 선처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선생님, 두 번 다시 안 그러겠습니다, 제발, 한 번만 이번 한 번만 넘어가 주세요"


연신 머리를 조아린다. 어쩌자고 내가 그런 짓을 한 것인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손은 엉덩이에 가 있었고

그걸 알아차린 후에는 이미 사태는 겉잡을 수 없이 커져 있었다.


쌈밥 집에서 엉덩이만 살짝 스쳤는데 징역 6개월! 

충격! 평범한 사립고등학교의 선생이 학생을 상대로 수차례 성추행시도, 징역 13년형을 구형받아….


지금껏 고려일보에서나 보던 그런 뉴스의 주인공이 내가 될 줄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어쩌자고 그런 일을 한 것인지……. 숨이 빨라지고, 머리가 핑핑 돌기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별 볼 일 없는 내 인생은 끝나는 것일까…?


내 앞의 남자아이는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내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

갤러리라도 들어간 모양인지 표정이 살짝 일그러진 그때…….


"갸아아아아악!"


그야말로 익룡 그 자체!!


소프라노 3의 괴성을 입에서 내뱉으며 내 휴대전화를 집어 던지는 남자!

휴대전화에는 70대의 영감이 침대에서 다리를 벌린체 누워있는 사진이 찍혀있었다!!!


"구웨에에에에에에엑!!!"


평범한 사람에게는 버티기 힘든!! 비인간적인!!! 사진!!!

그 아이는 쓰레기통에 얼굴을 처박고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하기 시작했다!


원래부터 경멸 어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기는 하지만, 지금 나를 바라보는 그 눈빛은 짐승 그 자체!

아, 저 남자는 그냥 염색체가 XY면 뭐가 어떻든 간에 쑤셔 박을 생각밖에 안 하는 그런 짐승으로 나를 보고 있는 건 아닌가!!!


이 무슨!! 끔찍한 오해를 산 것인지!!!


"아, 그런 거 아니야, 그런 거 아니에요~ 제발, 나를 그런 식으로 보지 말아줘"


한 차례 소동이 끝나고 다시 조금 진정된 듯 의자에 앉아서 나를 바라보는 남자.


"남자친구가 없는 것도 다 이해가 가네, 그런 거나 보니까 당연히 남자가 안 생기지, 집구석에서 박혀서 공부나 하니까 사람이 뒤틀려버린 건가?

생긴 건 멀쩡하게 생겼는데, 왜 그런 식으로 사는 거에요, 뭔가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 뭐 그래도 생긴 것도 그렇고, 멀쩡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것도 그렇고, 대체 왜…?"


흠- 잠시 나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바로 앞에 나를 쳐다보았던 그 경멸 어린 눈빛은 어디로 가고 다소 끈적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하는 남자.


뭔가 기분이 이상하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 수상하다고 해야 할지, 보통 지하철 안에서 치한을 당하면 바로 경찰을 부르지 않나?


근데 그냥 이렇게 카페에서 둘이서 이야기 하는 것도 그렇고, 마치 더는 이 일이 커지지 않도록 쉬쉬하는 것 같은 그런 상황.


분위기가 나쁘지 않다.

경찰에 넘기지 않고 그냥 둘이서 대충 합의만 보고 끝낼 생각인 건가?


사실 그게 제일 최고긴 한데. 이게 이런 식으로 일이 풀린다고?

조금 전까지 두근거리던 맥박이 돌아오기 시작하고, 흔들리는 눈동자가 조금씩 진정되기 시작한다.


합의로 끝나려나?


일단 적금을 들고 있는 돈이나 비자금, 그리고 평소에 안 쓰고 모아놓았던 돈 같은 걸 모으면 충분히 합의금 정도는 부담할 수 있는데

..일전에 이런 거랑 비슷한 사례를 법원 기록에서 본 것 같았는데.


물론 그때는 약식재판까지 한 일이지만, 이런 식으로 그냥 피해자와 가해자가 만나서 면대면으로 협의를 통해 합의하는 경우와는 많이 다르겠지?


300? 400? 뭐가 되었건 간에 그 정도 돈은 있었다. 직장에 잘리는 것보다는 낫지, 게다가 나는 검찰 출신 공무원인걸….

출근길에 남자를 성추행하다 걸렸다고 하면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겠냐..?

성추행한 이제 와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도 조금 우습지만….


"저기 누나, 처녀지?"


입에 있던 커피가 다시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장난기가 가득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남자의 시선, 여자를 깔보는 시선에 자연스럽게 얼굴이 붉어진다.


도저히 성추행을 당한 남자에게서 나올법한 소리가 아니라 할 말을 잃은 것도 있지만, 정곡을 찔려 말을 못한 것도 있었다.


그래, 나는 처녀다. 솔직하게 말해서 지금까지 집에 틀어박혀 공부만 하느라 제대로 된 연애를 시작하지 못한 체 이렇게 30살을 넘기고는 했으니까.


뭐 솔직하게 말해서 얼마든지 뗄 수도 있었겠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이 나이를 먹고 어디 집창촌에 가서 처녀 딱지를 떼는 순간에는….


에…. 아줌마? 그 나이 먹고 아직도 처녀에게요??? 솔직히 좀 극히 혐오스러움 인 데?? 이거 이불 더러워진 거 어떻게 할 거예요??? 첫 손님부터 손해 봤네 재수 없게….


라며 몸 파는 남자에게도 무시당할까 봐 도저히 그런데 가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대체 이런 식의 질문에는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까?


네 맞아요. of course…….


내 허벅지를 쿡쿡 찌른다. 신발을 벗은 뒤 발로 내 허벅지를 쿡쿡 찔러오기 시작하는 남자.


빨대를 입에 물고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뭔가 요염함이 느껴진다.


쿡쿡거리며 웃는듯한 표정, 지금까지 정신이 없어서 잘 몰랐지만 이제 보니까 생긴 것도 잘생겼다.

순박한 강아지 상에 장난기 가득한 눈매, 아이돌을 하면 어울릴 것 같은 그런 외모. 


하지만 착한 얼굴과는 다르게 풍기는 분위기나 행동에서 여자를 유혹하는 것 같은 요염함이 보인다.


"나랑 할래?"


"네? 뭐를요?"


"알면서"


그렇게 말하며 오른손으로 OK 사인을 만들고 왼손 검지로 엄지와 검지로 만든 구멍을 지나가는 사인을 만든다.


"진짜?"


작게 고개를 끄덕거리는 남자.


.... 이 무슨 믿을 수 없는 현실이란 말인가!


히요미에서 나오는 치한 물은 전부 실화 고증이란 말인 것인가!!!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이 좋게좋게 잘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그냥 문제 자체를 박살 내버리는 전개에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침착하게 생각해보자, 이거 뭐 신종 좆 뱀 뭐 그런 거 아닐까? 이런 식으로 사람 하나를 모텔로 끌고 가서 몸또라던지 그런 걸 찍게 해서 이차적인 피해를 준다거나


아니면 인신매매, 장기매매 같은 범죄에 연루된다든지, 아니면 뭐…. 시발 그냥 아무것도 말도 안 되는 이런저런 일들이 전부 일어날 가능성이 내 머릿속에 펼쳐지고 있었지만….


"할 거야, 말 거야? 빨리 정해"


"할게요."


원래 여자는 보지의 숙주인걸.

 

뇌를 거치지 않고 바로 본능적으로 입 밖으로 말이 튀어나왔다.


"그래, 좋아 가자"


..아니 진짜 이렇게 어린 남자아이랑 이런 식으로 할 수 있다고??


진짜 할 수 있는 건가?? 이거?


불광 모텔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지하철역 근처의 모텔 계산대 안이었다.


대실 3만 원 하룻밤 6만 원이라고 적혀진 가격표를 보고 허겁지겁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계산했다.

계산이 끝난 후, 조그마한 목욕 바구니, 그리고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이상한 음료수 두 캔과 함께 모텔 키를 들고 정해진 방으로 찾아간다.


다소 현실성이 없는 전개에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오늘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남자의 엉덩이를 만지다가 걸렸는데, 그 남자가 오히려 나에게 모텔 가서 한판 하자고 말을 하는 이 무슨 비현실적인 상황!


히요미에서도 나오지 않을 법한 이런 막장 같은 상황에 정신이 없다.


그건 그렇고 나 진짜 할 수 있는 건가?


솔직하게 말해서 직장은 적당히 월차로 대충 때우면 되고, 인신매매나 그런 게 잔뜩 신경 쓰여서 아까부터 몰래 뒤를 쳐다보긴 했지만, 딱히 나를 따라오거나 미행하는 움직임도 없었다.


게다가, 이쪽도 별로 위협적으로 보이지도 않고.


"왜? 일단 샤워를 해야 하는데, 먼저 씻을래?"


"아, 네"


주섬주섬 입고 있던 정장을 옷걸이에 걸어놓은 다음 셔츠를 벗고 바지를 내리기 시작했다.


사실 샤워는 출근할 때 한번 하고 왔지만, 그래도 첫 경험인데 상대방에게 깔끔한 인상을 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아까 계산대에서 받은 세면 바구니를 들고, 샤워실로 들어갔다.


30살이 넘는 동안 군대 외박을 제외하고는 처음 모텔을 와본 거라 조금 생소한 부분이 많이 있었다.

예를 들면 화장실이 반투명 유리로 되어 있어서 밖에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거나 그런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문득, 저 남자가 내 휴대전화나 지갑을 챙겨서 달아날까, 아니면 자기 일행을 불러서 나를 두들겨 팰까 같은 불안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그런 불안도 금방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뭔가 가슴속에서 잔뜩 설레는 그런 기분이 든다.



얀데레 빌드업 3화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