몹시 흐린 날이었다. 하늘에 구멍이 뚫렸다는 말이 이런 날씨를 말하는 거였구나. 조용한 것은 싫다. 빗소리가 들려온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바람소리가 들려온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창살에서 튀어나온 물방울이 얼굴을 두들긴다. 기분 나쁜 두들김. 괴롭히던 반 녀석들이 오히려 그리워진다. 계속되는 감각의 기만. 너무나 차가운 바닥. 몸이 너무 뜨거워. 숨쉬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부드러운 손이 내 손을 감싼다. 다른 한 손으로 내 얼굴에 땀을 훔쳐 자기 입으로 가져간다.

너무나 아름다운 조형. 당신은 천사인가요? 커다란 눈, 너무 예쁜 빨간 눈동자, 오똑한 코, 그리고 작은 입으로 무언가 계속 오물거리고 있다.

씽긋 웃는 눈꼬리가 길게 찢어져 내 마음을 홀린다.

“이제 괜찮아.”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녀가 내게 입을 포갠다. 그녀의 입의 내용물이 내 입 안으로 들어오고 동시에 아쉬운 듯 그녀의 혀가 내 입천장과 혀를 상냥하게 쓰다듬는다. 그리고 그와 대조적으로 내 입술을 격정적으로 탐한다. 

‘이런 예쁜 애가 나한테……’

‘역겨워……왜?’

시작되는 자의식의 침수. 눈앞이 흐려지고 어지럼증이 심해진다. 기억을 떠올릴수록 구토감이 생긴다.

이 애는 누구야? 아, 난 이애가 누군지 알아. 아니야, 역시 누군지 모르겠어. 아, 이애는 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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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은 아주 평범한 3인가족이다. 다만 어렸을 때 내가 이모차를 타고 가다가 크게 사고가 나서 귀가 잘 안 들리게 된 것이다. 심한 건 아니고 귀 가까이서 말하거나 큰 소리로 말하면 어지간하면 잘 알아듣는 수준이다. 이렇게 장애를 가지고 있는데 체격도 왜소해서 또래 애들에게 괴롭힘을 많이 받았다. 그래도 주변 어른들이나 형, 누나들이 잘 대해줘서 사교성이 없진 않았는데 그냥 내 또래애들 옆에서는 계속 위축되고 말도 더듬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애들이 날 무시하고, 괴롭히고,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그래도 애들이 고등학교 올라와서는 철이 들었는지 괴롭히는 일은 없어졌지만 워낙 내가 주변에서 말을 걸면 긴장하고 어버버거려서 친구를 사귈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걸면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에 말을 걸어도 무시한다고 싸가지없는 애로 소문이 나서 주변에서 조금씩이라도 말 걸던 애들도 이제 나에게 관심을 끄게 되었다.

 

 

조용한 것이 싫다. 조용한 것이 싫은 건지 고독한 것이 싫은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항상 고독했기에 조용했고 조용했기에 혼자였다. 항상 친구들이 주위에서 시끄럽게 떠들어대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는 배부른 상상을 하는 애들은 이런 느낌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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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