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하렘 야겜 속 주인공이 결혼을 한다고 말했다. 1 - 얀데레 채널 (arca.live) 

2 -  하렘 야겜 속 주인공이 결혼을 한다고 말했다 - 2 - 얀데레 채널 (arc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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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리아가 사라진 것을 확인한 뒤, 나는 그녀가 향했던 방향과는 정반대 쪽에 있는 출구를 택해서 구교사를 빠져나왔다. 무거운 발을 이끌고 밖으로 나오자 탈진하여 주저앉을 뻔했다. 온몸이 옴짝달싹 못할 정도로 압박을 당한 뒤에 간신히 풀려난 기분이었다.

 

“하아...”

 

탄식이 섞인 한숨을 내뱉으며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난폭하게 땅바닥을 때리는 빗방울들이 보였다.

 

앞으로 어떡해야하지? 확신이 선 것은 아니나, 로리아는 지크의 결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하필 가장 무력이 센 그녀가 지크의 연인이 될 생각이 없다니. 지크가 고난을 겪을 때마다 물리적으로 버팀목이 되어줄 그녀를 잃은 것은 큰 손해다.

 

로리아가 나를 몰아세우던 모습을 떠올렸다. 로리아는 지크에게 마음을 두기는커녕 나에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도대체 그녀는 무슨 의중을 가지고 있는거지? 

 

예전에 로리아와 나 사이에 큰 사건이 하나 있었고, 그 뒤로 나에게 그녀가 접근하기 시작했다. 설마 내가 그때 지크의 플래그를 꺾어버린 게 아닐까?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잠시동안 고민하고 있자, 쓸데없는 생각을 한다는 기분이 들었다. 검성의 딸인 드높은 아가씨가 고작 변방 귀족의 아들에게 마음을 품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그녀가 계속해서 나에게 접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를 장난감으로 여기는 것인가?

 

원작에서 로리아가 흥미를 보인 것은 지크 뿐이었다. 그 외의 누군가가 그녀에게 접근할 경우, 그녀는 차가운 눈빛으로 쫓아내기 일쑤였다. 설마 로리아가 지크 대신 나에게 흥미를 가지게 됐고, 그로 인해 지크에게 관심을 품지 않게 된 것일까? 불현듯 불길한 상상이 떠올랐다.

 

나는 처음부터 잘못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로리아나 그 외 다른 이들이 지크에게 어떤 마음을 품었는지보다 더욱 중요한 게 있었다. 지크와 세실은 결혼을 한다. 아직 둘 다 아카데미 신분이기에 가정을 꾸리지는 못하겠지만, 서로를 더욱 열렬히 사랑하게 될 것은 분명했다. 서로의 사랑에 심취한 나머지 게임 속 주인공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 할 가능성이 있었다. 도저히 지크가 아니면 해결할 수 없는 시련들이 이 세상에는 쌓여있다. 그런 지크가 의욕을 잃게 되면 어떻게 될까? 세상의 존속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로이드!”

 

멍하니 홀로 심각한 고찰에 빠져 있자, 뒤에서 큰 소리로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려 했을 때, 누군가가 내 등 뒤에 몸을 날렸다. 신체 전부를 맡긴 포옹에 나는 처마 바깥으로 밀려나 축축하게 물이 고인 바닥에 엎어졌다.

 

갑작스레 땅바닥에 넘어져 나에게 돌진한 사람이 누군가 싶어 고개를 내려다보자 비에 홀딱 젖은 은색 머리카락이 보였다. 내 위에 눕듯이 쓰러진 소녀는 팔을 내 허리에 두르고 자신의 다리를 내 다리에 휘감았다.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있어서 뒤통수밖에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 싶었는데 그 은색 단발머리를 보고 눈치챘다. 루나였다. 나는 루나의 작은 체구를 떨처내기 위해 이리저리 몸을 비틀었다. 작은 체구에서 어떻게 그런 힘이 나오는지 도저히 빠져나올 엄두를 내지 못하겠다.

 

“갑자기 뭐하는거야!”

 

루나는 대답도 하지 않고 단단히 내 몸을 조이고 있었다. 팔이 저려왔고 루나가 얼굴을 묻은 가슴팍이 묘하게 뜨거웠다. 

 

“로이드... 언제나 곁에 있어달라고 말했었지...?”

 

갑작스레 루나가 고개를 들고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봤다. 비에 젖은 머리카락 사이로 날카로운 금색 동공이 보였다. 기분 탓인가, 그녀의 얼굴에 음영이 드리워져 평소의 앳된 분위기와는 다르게 조금 섬뜩하게 보였다. 루나는 내 눈을 응시했다. 압박하고 힐난하는 듯한 눈초리였다. 그녀의 깊은 눈을 응시하고 있자 갑작스레 소름이 돋았다. 루나는 축축하게 젖은 몸을 더욱 내 신체에 들이밀었다.

 

곁에 있어달라고 했다고? 나는 그런 말을 한 기억이 없었다. 단지 루나에게 힘 없는 나를 지켜달라고 얘기했던 적은 있었다. 심지어 그건 부탁도 아닌 거래 조건이었다. 내가 루나의 일을 돕는 대신, 그녀에게 요구했던 일이다. 단단히 착각을 하고 있는 루나에게 그런 적 없다고 소리를 치고 싶었으나, 왠지 모르게 본능이 안된다고 소리를 쳤다. 

 

루나는 그 물음 이후로 고개를 숙이고 계속해서 어째서 라는 말을 중얼거렸다.

 

“왜 곁에 있어 달라고 했으면서 계속 떠나려고 하는 거야...?”

 

풀리지 않는 구속을 몸부림치며 떨쳐내려 하는 나에게 울분이 가득 찬 어투로 그녀는 물었다.

 

“루나, 일단 이거 좀 풀고 얘기하자. 응? 뭔가 오해가 있는 모양이야. 난 너를 떠나려고 한 적이 없어,”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까 전, 로리아와 대면했을 때 들었던 느낌과 똑같았다. 한 순간의 실수로 내 목에 무언가가 단단히 채워진 느낌이 들었다. 내가 그녀에게 지켜 달라고 얘기했을 때부터 무언가가 뒤틀린 것일까?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하지마!”

 

계속해서 몸부림치는 내가 짜증이 났는지, 루나는 거칠게 내 팔을 두 손으로 붙잡고 바닥으로 밀쳤다. 둔탁한 충격이 등으로부터 올라와 자연스레 인상을 찌푸렸다. 루나는 손으로 내 팔을 붙잡은 채 허리를 일으켰다. 그녀의 얼굴이 내 얼굴 바로 위에 있었다. 마치 잡아먹을 듯한 자세였다. 루나의 손이 내 살을 파고 들 정도로 팔을 압박했다.

 

“왜... 하필... 세실이야...?”

 

루나의 입에서 나온 인물의 이름에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왜 갑자기 세실의 이름이 나오는 거지?

 

“...뭐?”

 

“...처음부터 가까이 가지 못하게 했어야 했는데...”

 

루나는 텅 빈 눈을 한 채로 멍하니 나를 바라봤다. 세실? 세실이 무슨 상관이지?

 

“갑자기 세실 얘기가 왜 나와... 일단 좀 나와봐.”

 

갑작스레 구속이 느슨해진 틈을 타고, 붙잡혀 있던 팔을 빼냈다. 내가 팔을 빼내자, 루나는 멍하니 내 팔을 바라보며 가만히 있었다. 나는 몸을 일으켜 루나의 어깨를 잡았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는데, 나는 너를 떠나려고 한 적이 없어. 내가 너한테 부탁했던 내용도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

 

루나의 눈을 들여다보며 강하게 말했다. 아, 하고 소리를 낸 루나는 입을 벌린 채 말을 삼켰다. 

 

루나의 부탁을 들어줬을 때부터 루나는 나를 잘 따랐다. 처음에는 내가 어디로 가든 따라다니려 했고, 곁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그때 나는 살고 싶은 마음이 절박했고 그래서 나를 쫓아다니는 루나를 말리기는커녕 오히려, 같이 다니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게 실수였다.

결국 쌓였던 폭탄이 터지고 만 것이다. 루나가 나에게 집착하게 된 것은 알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된 원인은 내가 한 짓이라는 것 또한 통감하고 있다. 책임을 져야 했다.

 

“갑자기 왜 그렇게 흥분한 건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진정하자. 응?”

 

마치 어린아이를 달래듯이 그녀의 등을 쓰다듬었다. 루나는 마지못해 눈을 감으며, 조용히 감촉을 즐기는 듯했다. 루나를 달랠 때 그녀의 아버지가 항상 했던 행동이었다.

 

“정말... 정말 로이드는 나를 배신하지 않는 거야...?”

 

살짝 흐느낌이 담긴 물음이 들려왔다. 나는 계속해서 루나의 등을 쓰다듬었다.

 

“응. 물론이지. 네가 날 지켜주지 않으면 어떻게 살아. 내가.”

 

내 말이 끝나자마자 루나는 내 목에 팔을 휘감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아까 전까지 그 위협적이던 태도는 어디론가 가버리고 루나는 어린 소녀처럼 오열했다. 나는 내가 아는 루나의 모습을 다시 보게 되어 안심을 했다. 

 

그 뒤로, 루나가 진정할 때까지 그녀가 원하는 말을 해주며 등을 계속해서 쓰다듬어 주었다. 해가 모습을 감추고 빗방울이 약해질 때까지 우리는 축축한 바닥에서 서로 몸을 겹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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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로이드랑 같이 있을래.”

 

겨우 루나를 진정시키고 서로 마음이 차분해졌을 때 즈음, 그녀를 일으키고 기숙사로 보내려고 했다. 루나의 작고 흰 손을 붙잡고 인기척이 드문 길을 걸어갈 때, 그녀가 폭탄을 던졌다.

 

“응? 그게 무슨말이야?”

 

“오늘은 로이드랑 같이 있고 싶어. 로이드 방에서 잘래.”

 

내 방? 나는 당황한 기색을 힘껏 숨겼다. 교칙으로도 이성 간 기숙사 출입이 용납되지 않기는 하지만, 내 방에 루나를 들일 수 없는 이유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더 큰 이유가 있었다. 루나가 보게 된다면 기껏 진정시켜 놓은 그녀의 상태가 다시금 악화될 수 있다. 그런 내 기분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루나는 반짝반짝 빛나는 눈초리로 나를 올려다봤다. 차마 거절의 말을 내뱉을 수 없는 분위기였다.

 

“음... 교칙도 있고 하니깐 조금 어렵지 않을까... 들어갈 때 누가 보면 큰일 날 거 같은데.”

 

걱정이 담긴 눈빛으로 쳐다보자 루나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안들킬 자신이 있어.”

물론 루나의 재빠른 몸놀림이라면 들키지 않고 내 방에 침투하는 것 정도는 쉬운 일이다. 거절을 하고 싶었으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내 손을 붙잡는 루나의 힘이 더욱 세졌다.

 

“알았어... 대신 같이 기숙사에 들어가는 건 조금 그러니까 나중에 루나 네가 내 방으로 찾아와. 도중에 누구한테 들킬 것 같으면 재빨리 튀고.”

 

“진짜?! 오늘 밤에는 로이드랑 같이 있어도 되는거지?!”

 

마치 원하는 것을 선물 받은 아이처럼 루나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눈을 빛냈다. 나는 침을 쓰게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루나에게 지켜달라고 부탁했을 당시에는, 같은 방을 쓰거나, 침대를 쓴 적이 있었다. 그러나, 아카데미에 입학하고 나서, 루나와 지크의 관계를 염려한 나는 내 방에 루나를 들이지 않게 됐다. 지금에와서는 다 소용이 없는 짓이었다.

 

밝아진 표정으로 내 옆을 따라오는 루나를 봤다. 

그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자 아까 전 일이 떠올랐다. 루나를 쓰다듬으며 진정시킨 나는 루나에게 아까 전 세실의 이름을 꺼낸 이유가 뭐냐고 추궁했다.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될 일이라고 내 직감이 말하고 있었다. 그러자 루나는 갑자기 땅으로 고개를 떨구고 중얼거리듯이 나에게 말했었다.

 

“...괜찮아... 난 로이드를 믿을게... 응, 간단한 거였어.”

 

루나가 얼버무리는 것 같아서 더욱 추궁해봤지만, 그럴 때 마다 루나는 괜찮다고 오히려 나를 다독이듯이 말했다. 미심쩍은 기분은 지금 이 순간까지 계속되고 있었다.

 

“루나... 아까 전에 세실 이름 말한 건 진짜 아무 일도 아니었어...?

 

나는 기분이 좋아진 루나가 말해주지 않을까 싶어 다시금 물었다. 지금까지 고민해본 바로는 아마 로리아가 루나에게 나와 나눈 대화로 무언가를 불어넣지 않았나 싶었다. 내가 로리아와 대화를 나눌 때 루나도 구교사에 있었던 모양이니, 둘이 우연히 마주쳤을 수도 있었다. 

 

”응? 응 괜찮아! 이제 마음을 먹었으니까 아무 일도 아니야.“

 

도대체 마음을 먹었다는 게 무슨 뜻일까? 기운좋게 대답한 루나의 모습을 보며 나는 또 물었다.

 

”그러면... 왜 갑자기 세실 얘기가 나온 거야? 혹시 루리아에게 무언가 들은 거야?“

 

루리아의 이름을 듣자, 루나의 안색이 한순간에 어두워졌다.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루리아... 응, 그년이 세실의 결혼 때문에 로이드가 흔들리고 있다고 말했어...“

 

루리아. 역시 그 여자가 범인이었다. 순간 뇌리에 그녀의 차가운 미소가 떠올랐다. 내일부터 내가 하는 아침 연습에 나와. 알았지? 그런 그녀의 말이 떠올랐다. 갑자기 앞날이 막막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로이드의 말을 듣고 나서 알게 됐어. 로이드는 날 버리지 않아... 그렇지?“

 

확인을 구하는 마지막 말에 묘한 압박감을 느낀 나는 그렇지 라고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루나는 나에게 집착하는구나. 죄책감이 느껴졌다. 이건 그녀가 나를 구속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그녀의 목에 목줄을 걸고 말았기 때문이다. 예전 내가 그녀에게 거래를 가장한 계약을 맺었을 때부터, 그녀가 느끼던 공허함을 내가 채우고 말았다. 

 

루나가 지크에게 가지는 마음은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이건 루리아와 다르게 처음부터 확실히 알고 있었다. 루리아의 눈동자가 쫓는 것은 내 모습 말고는 없었다. 내 탓이다. 내 두려움이 만든 기묘한 관계다. 지크가 루나의 마음을 가지게 되지 못한 건 내 잘못이다. 마음의 가책을 느끼며 나는 땅바닥으로 고개를 떨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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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과 몸이 물을 머금어 무거웠지만 내 몸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흥흥, 콧노래를 부르면서 나는 정원의 나뭇가지 사이를 타며 여자 기숙사의 내 방으로 향했다.

 

로이드에게서 밤을 같이 보내도 된다고 허락을 맡았다. 얼른 준비해서 그의 방으로 찾아가야 한다. 흥분과 기대로 뇌가 꽉 차서 찌르는 듯한 행복감이 느껴졌다. 아, 얼른 로이드가 다시 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대로 몸단장을 하고 가야했다. 그를 만나기 전까지, 타인의 시선을 신경도 쓰지 않았지만 이제 제대로 몸을 가꾸고 있다. 축축해진 옷이 기분이 나쁘니 제대로 속옷과 옷을 갈아입고 머리도 말끔히 정리해야 했다. 

 

나는 바빠진 마음을 억누르며 밟고 있던 가지를 박차고 내 방 창문 틀에 매달렸다. 익숙한 동작으로 몸을 끌어올려 창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로이드의 방에서 훔친 옷가지나 물건 그리고 내가 쓰는 예비용 무기말곤 없는 소박한 방이었다. 무심코 로이드가 쓰던 셔츠를 코에 묻을뻔 했으나, 어떻게든 억눌렀다.

 

'일단 몸을 씻어야지.'

 

옷을 벗으며 나는 로이드의 대한 생각으로 나를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기분 나쁜 고릴라년의 계략은 모두 엉터리였다. 나와 로이드 사이를 이간질하기 위한 얄팍한 수. 직접 로이드에게 달려가 확인해 보니 역시 로이드는 세실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로이드는 나에게 알려 준 것이다. 믿지 못하겠으면 네가 없애버려도 된다고. 분명하게 확인을 받았다.

 

'지켜야 한다면... 방해가 되는 건 없애도 되겠지...?'

 

나는 항상 그렇게 로이드의 곁을 지켜왔다. 그와 함께 아버지를 찾으러 갔을 때부터 항상 그래왔다. 그를 유혹하는 간사한 이들 또한 적이 분명했다. 괘씸한 년들. 지금 생각해보니 로이드의 주변에는 없애야 할 것들이 가득했다. 항상 로이드 생각을 떠올리면 이랬다. 행복했으며, 우리 둘을 방해하는 것에 대해 짜증이 나기도 했다.

 

세실... 로이드가 그녀를 좋아하지 않는 건 분명했지만 그녀가 유혹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크와 결혼 한다는 사실조차 미끼일 수도 있다. 그 순진한 척하는 암캐년은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지켜보는 게 나을 것 같다.

 

'만약... 정말 로이드에게 해를 끼친다면...'

 

살의로 가득 찬 생각을 하자, 입술에서 피 맛이 났다. 놀라 정신을 차리자 그제서야 내 치아가 입술을 파고 든 사실을 깨달았다.

 

이러면 안된다. 지금은 한시라도 빨리 로이드의 방으로 가야했다.

 

'기다려 로이드...'

 

옷을 다 벗고 욕실에 들어갔다. 오랜만에 함께 보내는 밤이다. 몸단장을 소홀히 할 수는 없었다. 만족스럽게 서로를 채워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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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루나의 아버지 시신을 찾는 것을 도와주지 않았다면 그녀가 지크의 것이 될 수 있었을까.

 

죄책감과 자책이 섞인 고뇌를 하며, 나는 내 방문 앞에 도착했다. 이미 채워버린 목줄을 어떻게 하면 풀 수 있을까. 내가 놓친다면 어디로 튈 지 모르는 그 어두운 감정을 어떻게 놓아줄 수 있을까.

 

답이 나오지 않는 고민이었다 예전에 이기심이 불러온 행동 하나하나가 다 나에게 돌아왔다. 지크가 주인공의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도 내 탓임이 분명했다. 내가 그에게서 훔친 것이 너무 많았다. 앞이 보이지 않는 절망감이 들었다.

 

이 방문 안에 내가 저지른 죄가 또 하나 있었다. 오늘 밤 감춰야 하는 사실이었다.

 

익숙한 손잡이를 돌려 방문을 열자, 평범한 구조의 좁은 방안이 보였다. 익숙한 풍경에 내가 눈살을 찌푸리자, 옅은 장미 향기가 코를 향해 풍겨왔다. 그녀가 있구나. 짐작이 갔다.

 

"오늘은 제법 늦지 않았냐? 물장난이라도 했나 보구나."

 

앳된 목소리와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 창문에서 들려왔다. 한 어린 소녀가 창틀에 걸터앉아 다리를 뻗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찰랑이는 아름다운 금발은 바닥에 닿을 정도로 길었다. 새빨간 입술과 핏줄이 보일 정도로 새하얀 피부, 붉은 눈동자가 인상적인 아름다운 외모가 창틀 너머로 들어오는 달빛을 등져 고혹적으로 보였다. 그 아름다운 소녀는 몸에 맞지 않는 헐렁한 내 셔츠를 입고 있었다. 다른 옷을 입지 않아, 벽을 향해 길게 뻗은 새하얗고 가는 다리가 엿보였다. 그녀가 나를 보며 웃었다. 그녀의 송곳니가 달빛을 반사해 반짝였다.

 

"에일리나... 지금까지 기다린 거야?"

 

가련하고 아름다운 흡혈귀를 향해 말했다.

 

"후훗... 그대 걱정이 되더구나. 이 늦은 시각까지 비바람 속에서 무얼 하고 있을지 말이야... 그래서 오면 반겨주려 했지만... 아무래도 내 성미에는 맞지 않는 것 같으니..."

 

폴짝, 하고 그녀가 창틀에서 뛰어내렸다. 작은 몸이 바닥에 서자, 큰 옷이 더욱 흘러내려 그녀의 하얀 쇄골과 어깨가 적나라하게 보였다. 

 

"그대 생각을 하며 기다리 다보니 정말이지 배가 고프더군. 슬슬 흡혈을 한지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지 않은가?"

 

"그렇지 않아도 그것 때문에 너를 부르려고 했는데... 지금 할래?"

 

내가 그렇게 말하지 그녀는 기쁜 미소를 지으며 방 구석에 있는 침대에 털썩 누웠다. 왜 꼭 흡혈을 침대에서 해야 하는 걸까. 처음에는 바닥에 눕거나 앉아서 했으나, 어느 순간 에일리나가 침대에서 하자고 요구했다.

 

거절할 수 없어서 들어줬으나, 침대에서 흡혈을 할 때 마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리로 오거라."

 

에일리나가 침대에 누워 고혹적인 자세로 손가락을 깓딱거리며 나를 유혹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고 겉옷을 벗었다. 루나가 오기전에는 끝내야 할텐데. 힘없는 소망을 속으로 내뱉으며 나는 침대로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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