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익-


입가에 흐르는 침을 손등으로 닦는다. 언제부터 잠을 잔 건지도 모를 정도로 깜빡 잠이 든 상황.

조건반사적으로 무릎이 탁하고 펼쳐진 바람에 발밑에서 퉁 소리가 났다.

차의 진열대에 있는 화분 모양 장식대가 균형을 잃고 툭 하고 쓰러졌다.


언제 잠이 들었지?? 


창 밖의 풍경은 회색빛으로 가득한 마천루의 숲이 아니라 초록이 우거진 전원주택 단지로 변해 있었다.

미국 드라마에서 자주 보일법한 그런 2층 혹은 3층짜리 전원주택이 있는 동네로 도착한 아름이와 그녀.


느긋한 표정을 지으며 자기 접 앞마당에 물을 주고 있는 늙은 아주머니의 모습이나 선베드에 누워 느긋하게 일광욕을 즐기는 젊은 남성 외에도 도로를 달릴 때

좌우에서 보이던 사람들의 표정이 꽤 느긋해 보였다.

아무런 근심, 걱정 없는 그런 표정에서 삶에 여유가 있어 보였다.


"꿈이라도 꾼 거니?"


"아, 뭐…. 네…. 깜빡 졸았어요."


그건 그렇고 기묘한 꿈이었다.


뭐라 말로 설명하기 힘든 기괴한 꿈, 보통 아름이는 깊게 잠을 자는 편이라 꿈같은 건 꾸지 않지만, 이번에는 그 경우가 달랐다.


지금까지 세상의 상식을 벗어난 여러 일이 일어난 탓일까?

무슨 김성모 유니버스도 아니고….


다짜고짜 한강에 뛰어들어 다이빙을 하는 게 말이나 되는가? 게다가 꿈속에서의 그는 군대를 다녀온 상태였다.

아마, 저번 회귀에서 본 진짜 아가씨-라는 프로그램에서 본 내용이 무의식적으로 짬뽕 된 게 분명했다.


잠깐 졸았는데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나에게 충분한 휴식을 달라!


이 세계에 전이한 이후로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해본 적이 없는지라, 몸이 천근만근이다.

신체 몸 상태도 같이 회귀했으면 좋으련만, 딱 9월 9일 아침에 있었던 몸 상태를 가지고 다시 회귀하니 아름이로서는 그게 불만이었다.


사실 죽지 않고 이렇게 회귀를 한다는 것 자체에 감사해야 하지만, 뭐 원래 사람이라는 게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 게 인간의 본능 아니겠는가?

게다가, 애초에 칼째만 안 당했어도, 그럭저럭 기쁜 삶을 즐길 수 있었을 텐데.


다른 건 둘째 치고 칼째가 제일 문제였다. 뭐 조금만 싫다가 하면 바로 배에 구멍을 내버리고, 다른 여자와 불륜 행위를 한다고 해서…. 이거는 칼춤 출만하네.

어찌 되었든 간에 이번 회차에서는 성질을 좀 죽였으면 좋겠는데.


배에 구멍이 뚫리는 경험을 아름이는 더는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무슨 통아저씨도 아니고, 칼에 찔리는 건 더는 당하고 싶지 않아.


원래 인간과 짐승의 차이점은 지난번의 실수를 통해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는 다는 점이다.

이번이 세 번째 인생이었다. 지금까지 두 번의 회귀를 통해서 깨달은 사실이 하나 더 있다면.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


옛 조상들이 했던 말 중에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다. 그냥 입을 꾹 닫고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가겠지.

여기서 뭐라 말을 한다? 그러면 대체 어떤 반응이 나올지 아름으로서도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최소 배에 칼 빵 각.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안전핀이 뽑힌 수류탄과도 같은 그녀에게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까.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는다.

애초에 서로 만나서 이야기를 한 시간을 따지고 보면 기껏해야 반나절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지만….


대체 나는 이 여자랑 무슨 사이란 말인가???

회귀, 전회 귀때부터 계속 고민을 해온 문제지만, 아름은 차를 몰고 있는 그녀와 조금의 접점이 없었다.


처음 보는 사람.


목욕 한 사발 하고 나오니 목소리도 얼굴도 모르는 여자가 갑자기 끌어안으면서 울면서 매달리면 당연히 그 사건을 겪는 사람으로서는 거부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아니 애초에 갑자기 연예인급의 여자가 달라붙으면 누구나 당혹스러워서 밀쳐낼 게 분명하니까.


그리고 그 결과 배에 구멍이 뚫렸고….


솔직히 밀쳐내고 좀 싫다고 말 한 걸로 사람 몸에 칼을 쑤셔 박는다는 게 좀 이해가 가지 않지만….


궁금한 게 너무 많고, 물어보고 싶은 게 너무 많았다.

머리가 복잡하지만, 어떻게 눈치가 보여서 말을 할 수가 있어야지.


입을 잘못 놀리면 바로 배에 구멍이 뚫릴 것 같은 그런 공포심이 아름의 몸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아직 털끝 하나라도 건드리지 않은 상황이지만, 이 상황이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지는 며느리도 모르고 아름이도 모르는 이 상황!

숨이 막히고, 등골이 싸늘하다. 눈동자를 굴려서 차를 몰고 있는 운전석을 바라본다.

무표정한 얼굴로 전방을 주시하고 있는 그녀, 아름의 시선을 느낀 것일까? 고개를 살짝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왜? 아름아? 뭐라도 물어볼 게 있니?"


"저기 제가 그 카페에 있었는지 어떻게 알았나요?"


"..음"


그녀는 질문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눈살을 살짝 찌푸린다.

대답을 회피하는 그녀의 모습에 불에 구워진 오징어처럼 몸이 돌돌 말리기 시작하는 아름,


괜한 걸 물어봤나?


또 찔리는 건 아니겠지?


몸이 떨린다, 다시 한 번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한다.

살이 떨리고, 숨이 제대로 안 쉬어진다. 시야가 점점 좁아진다. 

금방이라도 다시 한 번 날카로운 칼날이 몸을 뚫고 들어올 것 같은 그런 공포심!!! 


인간은 학습의 동물이었다. 고통을 통해서 인간은 새로운 지식을 배우고 학습하고, 자신의 본능에 고통으로 배운 지식을 때려 박을 수도 있었다.

두 번의 회귀를 통해 느낀 고통, 날카로운 금속이 여린 살집을 헤집고 푹푹 쑤시는 감각은 전혀 유쾌한 감각이 아니었다.

안전핀이 뽑힌 수류탄처럼 언제 어디서 갑자기 터질지 모르는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이 너무나도 신경 쓰이기 시작한다.


문을 열고 바깥으로 뛰쳐나가고 싶다.


오죽하면 조금 전 꿈속에서도 대로를 달리고 있는 자동차의 문을 열고 바깥으로 도망쳤지 않았는가?

뭐…. 꿈속에서는 회귀에 실패하고 병원에 누워있는 것으로 꿈이 끝나버렸지만….

일단 뭐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조금씩 문 손잡이를 향해 손이 향하기 시작한다. 금방이라도 몸을 꿰뚫릴 것 같은 그런 감각, 공포감!!!


그리고 그 순간 골목길로 들어가기 시작하는 그녀.

골목길 사이, 사이를 굽이굽이 들어가기 시작한다. 대로에서 점점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머리에 피가 싹 빠져나가기 시작하는 아름이었다.


너무 무섭다, 너무 두렵다.

도대체 무슨 일을 하려고 이런 외진 곳으로 차를 모는 걸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설마 이번에도 칼로 사람을 찌르려고 하는 건 아닐까?

빈약한 상상력을 쥐어 짜내보아도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

어떻게든 틈을 봐서 한 번에 차 문을 열고 도망치겠다- 그렇게 생각한 아름이 안전띠와 차 손잡이에 손을 가져다 대려는 순간 운전하고 있던 그녀의 입이 열리기 시작했다.


"집에 가기 전에 꽃집에 들렀다 가자"


2층으로 이루어진 조그마한 꽃집 앞에 차를 세우는 그녀, 하얀 대리석으로 마감되어있는 꽃집의 디자인이 아름다웠다.


꽃집?


칼부림이 일어날 것 같은 상황에 잔뜩 털이 곤두선 아름의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차에서 내리는 그녀와 같이 아름 역시 차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일단 뭐 계속 따라가 볼까?


게다가 도망친다고 해서 그녀의 손에서 벗어날 가능성은 없었다.

차도 있는 데다가, 부처님 손바닥 안처럼 자신의 위치를 꿰뚫고 있는 그녀의 손길에서 벗어나는 건 힘들었다.


그리스 산토리니의 대리석 집들처럼 새하얀 벽돌로 이루어진 꽃집은 카페도 같이 운영을 하는지 뻥 뚫린 유리창의 안에 커피를 만드는 기계들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녀의 뒤를 따라 문을 열고 카페를 들어가니, 젊지도 늙지도 않은 딱 적당한 나이의 남성이 나와 그녀를 맞이해주었다.

정조역전, 남녀 간의 성별이 바뀐 이 세계에서는 아무래도 꽃집이나 카페 같은 아기자기한 자영업의 경우에는 여자, 아니 남자 사장의 비중이 높은 법이니까.


"안녕하세요,"


"늘 먹던 거로"


"네 알겠습니다."


단골인 듯 사장에게 바로 말을 하는 그녀와 익숙한 듯 커피를 끓이기 시작하는 사장. 

커피를 내리는 동안, 카페 한구석에 비치된 꽃들을 바라보는 그녀, 노란 꽃, 파란 꽃, 보라 꽃….


코스모스 하나는 알겠네.


시대가 시대인지라 원래 세계에서도 남자 꽃 리스트가 많이 생기고 있지만, 아쉽게도 아름은 그런 부류의 사람이 아니었다.

알록달록 예쁜 꽃들은 조금은 그와 거리가 멀었다. 뭐 솔직하게 말해서 선물로 주고, 받으면 기분이야 좋긴 좋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굳이 내 돈 주고 집에 들고 가고 싶지는 않은 그런 느낌?

그런 의미에서 꽃과 아름이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소보듯 닭보듯 하는 그런 관계, 굉장히 어색한 관계 친해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그런 관계.

그게 바로 아름과 꽃의 관계라 할 수 있겠다. 


그래도 나쁘지는 않네.


생화라서 그런지 꽃 냄새가 여기저기 솔솔 풍기기 시작한다.

바로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커피를 볶고 지지고 있는데도 향을 잃어버리지 않는 꽃들이 조금 신기하게 느껴지는 아름이었다.


이게 바로 자연의 위대함인 건가?? 


킁킁-


꽃봉오리에 코를 가져다 대고 코를 킁킁거리던 그는 화분에 있는 꽃들을 바라보는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이 상황이 조금 어색한 듯, 조금 전까지 향기를 맡던 꽃에서 다시 멀어지기 시작한다.

얼굴이 붉어진다, 초등학교 때 집에서 몰래 세일러문을 보는 것을 또래 친구들에게 들킨 것 같은 부끄러운 상황!!


아니 시발, 솔직히 너희도 봤잖아. 주피터랑 머큐리가 얼마나 예쁜데 게네들을 어떻게 안 보느냐!!!


물론 어린 시절의 아름은 그런 소리도 하지 못하고, 그냥 멍청이같이 애들에게 놀림이나 받았지만,

애초에 그 나잇대의 애들에게는 걸린 사람이 무조건 죄었다. 게다가 몰매에는 아무리 천하장사라고 해도 답이 없는 법!!!

세일러문을 봤다는 죄 하나로 아름은 초등학교 내내 놀림을 받았다!!


뭐, 그건 일단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이 일의 핵심은 아무리 남자라고 해도 남자의 마음 한 부분에는 조그마한 소녀 감성이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솔직히 아ㄶㄹ드 슈월츠제네거나 마동석도 꽃집에 들어가면 꽃향기 한번은 맡지 않을까?

막 아무리 상남자라고 해도 예쁜 꽃을 보면 한번은 돌아보지 않을까? 기관총으로 막 때려 부수지는 않을 거 아냐?

아름의 머릿속에서 온갖 잡생각들이 스쳐 지나가기 시작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손가락으로 아름이 맡았던 꽃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그녀.


"저걸로 하지"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아 그리고 말씀하신 커피 나왔습니다."


화분에 있는 꽃들을 전부 뽑아, 고운 흰 종이에 포장하기 시작하는 사장.

아니, 뭐 이거 대체 몇 송이 할까요? 어떻게 꾸며드릴까요? 그런 소리도 없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꽃 포장을 하는 사장을 보니 아름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용팔이? 아니 꽃 팔이? 신종 꽃 팔이 인가? 보통 이런 거 하나 달라고 하면 꽃은 뭐 어떻게 할까요? 아니면 바구니에 담아 드릴까요? 부케스타일로 만들어드릴까요?

그런 거 물어보지도 않고 그냥 다짜고짜 포장부터 한다고? 이거 뭐라 말해야 하는 건 아닌가???


"계산은 이걸로 하지"


"네 결제 도와드리겠습니다."


"영수증은 필요 없어"


이 세계는 조금 다른가?


아무래도 남녀역전의 세계라서 꽃을 포장하는 구매방식이나 그런 거에 대해서 사소한 섬세함의 차이가 있는 건 아닌 걸까?

한참 아름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예쁘게 꾸며진 꽃다발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남자의 손길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섬세하고, 꼼꼼하게 만들어지기 시작하는 꽃다발.

만들어지는 속도가 매우 빨랐다. 어느새 완성된 꽃다발이 그녀에게 건네졌고, 꽃다발을 받은 그녀는 그 꽃다발을 아름에게 건네주었다.


"자-"


자신에게 내밀어 진 꽃다발을 바라보는 아름, 그녀를 한번 바라보다 다시 꽃다발을 바라보고는 아무 말 없이 그것을 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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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 전개 내가 생각해도 좆 박은것 같아서 이렇게 수정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