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주는 건가?


손에 쥔 꽃다발의 무게가 느껴졌다. 하얀색 꽃. 이름은 뭔지 모르겠다. 튤립과 장미를 섞은 것 같은 그런 형태.

이게 바로 정조역전 세계의 꽃!! 과연 생긴게 특이하구만!!!


....사실 잘 모르겠다. 원래 세계에서도 이런 꽃이 있는데 내가 몰라본 걸 수도 있고…. 애초에 꽃 같은거에 관심이 있어야지

뭐 하여튼 손에 쥔 꽃을 보니 마음이 이상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뭔가 자신의 내면에 있는 소녀다운 감수성이 깨어나 가는 것 같은 그런 느낌!!!

달리는 마을버스 5-1번에서 뛰어내리고 날아다니는 청둥오리를 두 손으로 때려잡고 떡볶이를 철근처럼 씹어먹는 씹쌍남자인 나에게

이런 소녀 같은 감수성이 있었던 건가!!!


"꽃 좋아하잖아."


"고맙습니다"


꽃을 좋아하느냐, 아니면 싫어하느냐 불호를 따져봤을 때 나의 기호는 회색 지대나 다름없었다.

호와 불호의 딱 중간 경계, 뭐 싫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좋지는 않은 마치 닭의 갈빗대와 같은 게 바로 꽃이라고 생각했건만….

가끔은 이런 것도 나쁘지 않네, 향기가 좋다.


뭐 어떻게 설명은 할 수 없는데 꽃에서 나오는 향기가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꽃다발에 얼굴을 묻고 그 향기를 맡자, 그녀는 양손에 커피를 든체 나를 바라보았다.


"자 그리고 여기 늘 먹던 거"


"잘 먹을게요."


"이제, 집에 가자"


커피를 건네줄 때, 왠지 모르게 그녀의 얼굴이 붉게 변해있었던 것은 단순히 착각이었을까? 

갈색 커피 위에 하얀색 휘핑크림이 덕지덕지 올라가 져 있다.


개인적으로 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좋은데.


잠시 그녀가 건네준 커피를 바라보았다. 솔직하게 말해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건 좋아하기는 하지만 이렇게 달다구리한 건 내 취향이 아니었다.

뭐라고 해야 하지, 너무 달면 커피의 그 순수한 맛이 살지 않는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휘핑크림의 달곰한 맛이 오히려 커피의 맛을 헤친다고 해야 할지….

뭐 얻어먹는 처지에서 이것저것 따질 군번은 아니기는 하다만….


빨대를 물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달달한 커피의 맛이 영 어색하기만 하다.

자고로 커피는 좀 씁쓸해야 맛있는데, 이건 너무 달잖아, 이건 뭐 무슨 여고생도 아니고


커피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먹는 둥 마는 둥 하니, 옆에 있던 그녀가 나를 보며 말을 걸어왔다.


"아직도 화가 덜 풀린 모양이니?`


"아뇨, 아뇨 괜찮아요."


내가 괜찮다고 말을 했건만, 은근한 곁눈질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하는 그녀.

정확한 인과관계는 잘 모르지만, 그녀는 내 눈치를 지금 보고 있었다. 


화라고?? 나는 뭐 그렇게 화난 적이 없는데…. 게다가 여기서 화를 냈다가는 또 한 번의 칼부림이 일어날지 누가 알겠는가?

자고로 미친개도 개장수 앞에서는 얌전해지는 법, 아무리 분노 조절이 안 되는 사람이라도 칼침 두 번이면 분노 조절 잘하는 사람으로 바뀔 것이다.


커피의 달달함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얻어먹는 처지에서 찬밥 더운밥 가리면 안 되기에 그녀가 보는 앞에서 다시 한 번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키기 시작하는 나였다.

대체 이 여자랑 나는 대체 무슨 사이인 것일까?


꽃집을 나가서 다시 차를 탔다. 사이드미러가 풀리고 다시 골목길을 천천히 서행하는 자동차.


창밖 경치를 보니 바로 앞에 있었던 꽃집처럼 건물 외벽이 전부 하얀색으로 도배되어있는 집들이 많았다.

일리오스…. 아니 산토리니 같은 동네였다.


부촌은 확실히 다르네

서울에 이런 동네가 있었다니, 저 멀리 남산의 롯데타워가 붉은색 빛을 내며 반짝거리고 있었다.


서울의 중심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동네라는 건 확실한데….

이런 금싸라기기 같은 땅에 단독주택 같은걸 짓다니, 그렇게 주의 깊게 안 봐서 그렇지 지금 보니까 스쳐 지나가는 주택에 차고가 달린 집도 많고,


꽃집에 들르기 전에 보았듯 주민들 전부 느긋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게 생계에 여유가 있어 보였다.

평일 대낮에 저렇게 일광욕이나 쬐고 있는 걸 보면 뭔가 있는 것 같기는 한데.


도로에 달린 표지판을 보니 강북동이라고 적혀 있었다.


강북동이라. 강북에 있는 동네라 강북동이라고 하는 건가?

차는 어느새 언덕진 길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도중에 과속 방지턱 몇 개를 건너가는 자동차.

얼마나 올라갔을까, 그녀는 2층짜리 단독 주택 앞에 자동차를 주차했다.


오-


내가 잠시 주위를 둘러보니, 창밖으로 조금 전에 우리가 돌아다녔던 강북 동이 한눈에 들어왔다.

출근, 등교 시간이 아니라서 그런지 동네가 좀 한적해 보이기는 했지만, 오히려 그런 점이 마음에 들었다.


왠지 모르게 이곳에 있으면 마음이 탁 뚫리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드는 나였다.

저 멀리 남산 타워(추정) 이 보이고, 방금 차를 타고 지나갔던 한강과 그 너머로는 MH 그룹의 빌딩같이 커다란 마천루가 빽백히 들어찬 번화가가 눈에 들어왔다.


이곳에 있으니 서울 시내가 한눈에 다 들어오는 풍경이 마음에 들었다.

마음이 뻥 뚫린다고 해야 할지, 마치 고향에 온 것 같은 그런 기분이다. 


세상 모든 게 다 조그맣게 보이는 그런 동네, 그녀는 그런 동네에서 살고 있었다. 

서울의 풍경을 바라보던 고개를 살짝 아래로 떨구니 완만하지만 길게 이어진 내리막길이 눈에 들어왔다.


풍경은 좋은데 위치가 좀 흠이네. 뭐 근처에 슈퍼만 있으면 상관은 없다만….


차로 가니 망정이지, 만약에 걸어갔으면 땀 좀 흘렸을 법한 그런 위치에 집은 있었다.

아마 돈 많은 사람의 베드타운 같은 그런 동네가 바로 이곳이지 싶다.


그녀의 집도 안에 차고가 딸려있는지, 문 앞에 가만히 차를 주차하고 있으니 자동으로 철문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할리우드 영화에서나 볼법한 그런 저택.


외 푸른 잔디밭이 지천으로 깔렸고, 분수도 있고 또 주택 말고 그 외에 별채가 하나 더 딸려있는 그런 집에 그녀는 살고 있었다.

...자꾸 그녀라고 말하는 것도 좀 그런데, 당연한 이야기지만 나는 아직도 그녀의 이름을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은 비상사태였다. 회귀 3회차냐 4회차냐를 따질 수 있을 만큼의 비상사태!


아름아…. 내 이름을 부르기 싫을 정도로 싫은 거야…?


쉬이 퍽- 푹 찍 다음 회귀에-


그런 식의 끝은 더는 싫은데스….


"아- 우편함에 뭐가 들어있던데, 제가 가지러 갈게요"


운이 좋군.


정말 운이 좋다고밖에 말 할 수 없는 기회였다.


아무래도 날라온 우편을 보면, 그녀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걸고 말을 걸어본 건데, 나의 그런 대답이 영 시원찮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녀는 나를 바라보았다.


"할 수 있겠니…? 아니 정말 해주는 거야?"


"아니, 뭐 걸어서 얼마나 걸린다고요, 금방 아주 빠르게 다녀올게요."


"같이 가자"


"아니, 굳이 그렇게 하지 않으셔도 되는데요…. 이거 참"


차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오는 그녀,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장발 머리가 언제봐도 인상 깊다.

저런 머리를 관리하려면 대체 얼마나 머리를 길러야 할까?


저번 회귀 때 보니까, 지하철 공익도 여자던데, 군대를 다녀오고 저 정도로 머리를 기를 수는 있을까?

아니 어쩌면, 이렇게 좋은 집에 사는 걸 보면 돈을 주고 군대를 뺏을 가능성도 컸다.


신의 딸인 걸까?


"오늘은 유난히 말이 많네, 기분 좋은 일이라도 생긴 거니? 혹시 뭣 때문에 그렇게 말이 많아졌는지 나는 정말로 궁금하네"


"아뇨 딱히 기분 좋지는 않은데요, 그냥 말을 많이 하고 싶어요."


기분 좋은 일이라…. 난데없이 이 세계에 떨어진 데다가, 웬 이상한 여자에게 두 번이나 칼째를 당한 터라 마음이 심숭생숭하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미친 활화산 같은 존재. 저 무표정한 얼굴 아래에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뜨거운 마그마 같은 것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뭐라 잘못 행동을 하면 다시 한 번 품 안에 들고 있는 칼로 나를 한/아/름으로 바꿀 존재가 바로 내 옆에 있었다.


뭐 그렇다고 해서 오줌을 지릴 만큼 두렵다거나 그런 감정은 들지 않았다.

회귀 자의 여유라고 해야 할지, 어차피 죽으면 다시 MH 건설의 앞에서 회귀한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기 때문일까?


죽음에 대한 공포가 두렵지 않았다. 아 뭐 죽음에 대한 공포가 두렵지 않다고, 마음대로 칼로 배를 쑤셔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아픈 건 싫었다. 아픈 건 싫지만, 그래도 이런 상황 속에서 조금은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해질 수 있는 능력이 나에게 생긴 것 같았다.


이거 쿨찐특 아닌가?


쿨찐특: 매사에 태연한 척, 여유로운 척함.


근데 쿨찐은 좆도 없는데 있는 척 하는 거고, 나는 이 세계 특전으로 회귀능력을 받기는 받았잖아.

그러면 쿨찐이 아니고 그냥 쿨이 되는 건가? 모르겠네. 쿨하면 김성수지! 와! 여름 아시구나!!


"사용자, 한아름"


"아름아? 방금 뭐라고 했니?"


"네? 뭐가요?"


"아니, 방금 뭐라 뭐라 작게 중얼거리지 않았어?"


"아뇨, 안 그랬는데요, 잘못 들으신 거 아니에요?"


"그러니…."


이것도 아닌가? 상태 창 같은 게 있으면 편할 것 같은데. 그런 것도 없고

뭐 요즘 웹소 보면 상태창 같은 거 없으면 진행이 안 되는데, 왜 나는 상태창이 없는 걸까…?


뭐 그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집 앞대문까지 걸어가니 빨간 우편 보관함이 눈에 들어왔다.

POST라고 적혀져 있는 우편 보관함 안에는 3개 정도의 편지가 꽂혀 있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도 편지를 쓰는가? 그럼 그렇지! 


우편함에 꽂혀 있는 3개의 편지는 각각 가스, 수도, 그리고 전기 요금을 내라는 청구서들이었다.

생각해보니 15일에 세금을 내야 하니까, 이런 고지서들이 날라오는구먼.


가구주 이예진 귀하-


아항- 이름이 예진이구먼, 그녀의 정체에 대해서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자고로 요즘 같은 세상에서 이름을 알고, 모르는 것은 하늘과 땅의 그 틈만큼이나 커다란 차이니까, 사람 이름만 알면 뭐든지 알 수 있는 시대가 바로 정보화 시대,

바로 유우비이쿼어터어스 시대 아니겠는가!


나중에 시간 나면 SNS에 이예진이라는 사람을 좀 찾아봐야겠네.

내 주위의 사람들이랑 팔로우가 되어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거듭 강조하지만, 이 여자의 정체가 바로 이예진인 것일까?

아니, 아니면 어떡하지…?


혹시 이 집에 그녀 말고 다른 사람이 살고 있으면 어떻게 하지…?


...아름아? 예진이라는 사람은 또 누구야…???


푹-찍- 조금의 여유도 찾아볼 수 없는 비인간적인 결과가 머리 속에 한번 더 그려진다. 이렇게 또 회귀할 수는 없었다.

여기서는 적당히 두루뭉술하게 떠볼까…?


"혹시 뭐 날라온 거 있니?"


"고지서가 날라왔어요."


"음…. 그렇구나…."


고지서를 유심히 들여다보는 그녀였다. 아무래도 각종 숫자가 적혀져 있는 고지서를 눈으로 훑으니 미간이 살짝 찌푸려지기 시작한다.

... 내가 보기에는 맞는 것 같은데.


보통 세대주가 아니면 고지서 같은 건 유심히 보는 편이 아니지 않나…? 사실 잘 모르겠다.


"아이고 부회장님 오셨습니까?"


집 앞에서 고지서를 읽고 있던 그녀의 앞으로 누군가가 허겁지겁 달려오기 시작했다.

고개를 돌려보니 단정한 말총머리가 인상적인 여자였다.


뭐 정원 정리라도 한 것일까? 머리 위에 나뭇잎이 달라붙어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날렵해 보이는 인상, 전형적인 체육계 스타일의 여자였다.


지금 걸치고 있는 옷도 딱 운동하기 편한 기능성 티를 입고 있었고, 목에는 수건을 두르고 있었다.

허겁지겁 달려온 모양인지 얼굴에 땀방울이 흘러내리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조금 매력이 넘쳤다.

건강한 육체, 건강한 정신! 자고로 정신이 올곧은 사람은 가슴이 큰 법이다.

..포부가 웅장하다 이 말이지, 다른 의미는 없다.


"죄송합니다. 제가 우편함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해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본래 우편함은 08시에 확인을 하고 또 12시 그리고 17시에 확인하는 게 설명서지만, 어제 말씀하신 정원 정리를 하느라 미처 우편함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부회장님이 저를 대신해 이렇게 귀한 발걸음으로 친히 우편함을 확인해주신 것에 대해서 저는 매우 깊은…."


"괜찮아, 가서 정원이나 정리하고 있어."


"앞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부회장??


있다가 인터넷으로 부회장 치면 나오려나…?

방금 말총머리 여자가 정말 깍듯하게 머리를 숙인 걸 봐서 어느 정도의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다는 건 알게 되었다.


그냥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나오겠지. 뭐, 정보화 시대니까 좀 똑똑하게 살아야지 않겠어?


너무 틀인가 이거는…? 좀 말투에서 쉰내가 나는것 같긴 해-


"이제 집에 갈까?"


"...아, 가기 전에 일단 들려야 할 곳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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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인칭 말고 1인칭으로 시점을 변경해봤음


이거는 어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