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삭의 부인이 출산의 고통으로 날카롭고 섬뜩한 비명을 내지르며 아이를 낳던 그 때에


나는 추적추적 소리를 내며 처마를 타고 흘러 마당을 적시던 그 차가운 겨울 비들을 바라보며


그들이 뿜어 내던 냉기에 냉랭히 적셔진 차가운 대청마루를 거닐면서 그 착잡하고 조마조마한 심정만 더 자극받고 있었다.


아내가 자신이 몇 달간 뱃속에 품어 온 아이들을 더 이상 심장이 뛰지 않는 모습으로 사산한지도 벌써 세 번이 되었다.


그동안 그 가엾은 여인은 점점 불러오는 배를 사랑스레 쓰다듬으며 아이에게 따뜻한 말들을 건네고


매일 새벽마다 마당 한 구석에서 사발에 물을 한 그릇 가득 담고는 천지신명께 아이가 부디 건강하게 태어나게 해 달라며 지극정성으로 빌었지만


그 모든 간절한 기도의 끝에는 언제나 우리의 운명을 냉정하게 비웃듯이 죽은 채 어미의 뱃속에서 빠져나온 아이들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것도 아이들의 죽은 모습이라도 보고 싶다며 울며불며 달려들던 불쌍한 그녀에게 차마 보여주지 못할 정도로


그 아이들은 갓난아기라고는 도무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기괴한 형상을 한 채 나왔고 말이다.


더 이상은 이런 일들이 있어서는 아니 되었다.


그녀의 친가와 우리 집안 모두 그 가엾은 여인이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님에도 그녀에게 사산의 죄를 물었고


그 때문에 그녀는 그 날이 서린 폭언들에 정신이 종잇장처럼 전부 베여나가기라도 했는지


네 번째 아이의 출산이 임박했을 때는 그저 밤 새도록 마당에 앉아, 얼이 빠져 초점도 없는 쾡한 눈길을 한 채


손 껍질이 벗겨질 지경으로 손을 비비며 천지신명께 미친듯이 염불을 외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더 이상은 나도 어렸을 때부터 서로를 사랑하고 아껴 결혼까지 하게 된 그녀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지켜줄 수 없었다.


이번에도 그녀가 아이를 무사히 낳는 데 실패한다면 나의 친가는 그녀를 부정 탄 불길한 년이라 매도하며 본가로 내쫓고 새 부인을 들일 것이고


명망 높은 우리 가문과 이어지기 위한 장인의 욕심으로 나와 혼인을 맺게 되었던 그녀는


계획이 실패한 장인에게 폭언과 욕설만을 들으며, 가문의 수치 취급을 당해 평생 동안 과부처럼 우울히 집에 갇혀 살다 죽을 것이다.


그러니 더 이상은, 정말로 더 이상은... 그녀가 과거처럼 그 괴이한 것들을 배 밖으로 내보내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 되었다.






부인의 찢어지는 듯한 출산의 비명을 들으며 대청마루를 착잡한 심정으로 안절부절못하며 거니는 나와 가족들이 걱정스러웠는지


방 안에서 조용히 머물고 있던 그녀는 미닫이문을 빼꼼 연 채 그 너머로 나를 몰래 바라보았다.


이국적인 그 외모에 한복을 입힌 그 이질적인 모습마저도 자신의 빼어난 미모로 아름답게 승화시킨 그 모습을 보이면서 말이다.


부인의 출산이 임박한 이후 며칠 동안이나 부정을 탄다는 이유로 방 안에 갖혀만 있던 그녀는


나와 아내가 너무 걱정스럽기라도 했는지 문 너머에서 그 아름답고 이국적인 새하얀 얼굴에 또르륵 눈물을 흘리면서


나를 향해 빨리 아내가 아이를 순산하기를 간절히 비는 듯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를 보자 마음 속 근심이 잠시 잊혀진 나는 다시 그녀를 바라보며 아무 문제 없다는 듯이 멋쩍게 미소를 지어 화답했고


그런 나를 본 그녀는 다시 한 번 기쁘게 웃으며


그동안 자신이 나의 근심을 몰래몰래 편안하게 달래 준 것처럼, 혹시라도 마음이 너무 고통스럽다면 자신에게 언제든지 오라는 듯이 


푸근한 표정을 지은 채 나를 문 사이 작은 틈 너머로 은은히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녀에게 미소를 지어 잠시라도 혼란스런 내 마음을 달랬던 그 짧은 순간만으로도


집안 사람들의 헛소리대로라면 그녀에 의해 내가 부정을 타 버린 걸까. 


방 안에서는 아이가 거의 다 나왔다는 소란스런 소리와 함께


아내가 마지막으로 내뱉은 그 귀를 터트릴 듯한 비명까지도 터져 나왔지만


아이가 성공적으로 건강하게 태어났음을 알리는 우렁찬 갓난아이의 울음소리나 산파들과 아내의 행복에 겨운 웃음소리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새어 나오지 않았다.






"이번에도... 사산한 건가?"


차마 전할 수 없는 소식을 전하게 되어 착잡한 표정을 지은 늙은 산파에게 내가 묻자


그녀는 나지막히 한숨을 내쉬며 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럼 그 죽은 아이라도 보여 주게... 이번엔 부인에게 보여 줄 만한 정도의 모습을 한 채 나왔나? 이번에도 아이의 얼굴도 못 보여 주고 그냥 묻었다간 그녀가 진짜 미쳐 버릴 지도 모르겠어..."


그러자 산파는 차마 내게조차 보여 주기 힘든 것인지, 내 시선을 피하며 우물쭈물거리다


결국 내 간청에 못 이겨 이번에 그녀가 낳은 그 죽은 아이를 내게 보여 주고야 말았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그 모습들과도 비교조차 안 될 정도로 충격적인 아이의 모습을 보고 만 나는


아내가 또 사산하고 말았다는 울분과 억울함, 그 아이의 모습에서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느껴 버린 메스꺼움에 결국 마당에 토사물을 게워 내고야 말았다.


"대체 왜... 대체 왜... 그녀와 내가 이런 고통을 받아야만 하는 것이냐...


나라면 몰라도 그녀는 왜, 평생 동안 개미 한 마리 못 죽이고 살았을 정도로 유순하고 선량한 그녀는 무슨 죄를 지었길래


천하의 역적들의 자손들도 겪지 않을 이런 기괴한 재앙을 겪어야 하는 것이냐... 대체... 대체 뭘 잘못했길래!!!"


하지만 울분에 찬 내가 이성을 잃고 내지른 그 억울함에 찬 한탄은


그저 안방 속에서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만을 조마조마하게 기다리며, 제발 아이에게 숨은 붙어 있게 해 달라고 간절히 빌던 가여운 부인에게 닿아


결국 그녀의 정신을 완전히 망가뜨려 자식을 또 다시 잃었다는 슬픔에 그저 괴성만을 내지르게 할 뿐이었다.






출산을 하던 와중에도 신들께 간절하게 빌었지만 그 모든 바램이 완전히 무시당하고 조롱당해 버렸다는 걸 깨달은 그녀는


예전의 그 수수하면서도 빼어나게 아름답던 얼굴과 미소, 너무도 온순하던 그 귀여운 모습을 모조리 버려 버린 채


정말 미친 광년들이나 할 법한 꼴이 되어 머리를 부여잡고 미친듯이 울부짓고 있었다


나를 보더니 그녀는 지체 높은 양반가의 며느리라는 위치도 다 잊어버리고 포기하기라도 한 듯이


나를 향해 깔깔깔깔깔 웃으면서 외쳤다.


"서방님, 서방님... 이 하찮은 소첩이 또 아이를 죽여 버리고 말았나 보군요... 


열 달이나 소중하게 배 속에서 잘 자라라며 매일같이 사랑스런 말을 건넸고


매일같이 천지신명께 서방님을 꼭 빼어닮을 그 잘생긴 사내아이를 낳게 해달라면서 그토록 빌었건만


그 개같은 천지신명이란 것들이 대체 뭐가 모자라고 뭐가 그렇게 질투가 났는지


우리에게 사랑하는 아이를 안겨 주기는 커녕 또 괴상한 살덩어리나 낳게 해서 또 우리를 조롱하기라도 했나 보네요? 아하하하하하하...


서방님... 소첩은 어떡합니까? 정말 너무나도... 너무나도... 가슴이 정말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처럼 아파 옵니다...


이 억울한 마음을 또 마음 속에 묵혀 두다간 제 속이 썩어 문드러져 떨어져 나갈 것 같고


또 누군가에게 증오 어린 행동으로 풀었다가는 천지신명에게 더 큰 저주를 받아 더 괴상한 걸 낳게 될 텐데


그럼 소첩은 어찌 해야하는 겁니까? 어찌 해야 하오리까? 대체 뭘 어찌 해야 하느냔 말입니다!!!


아... 아하하... 아하하... 끄아아하하하하하학!!!"


미친 듯이 웃어 제끼는 부인의 울음 소리에 가족들은 황급히 방 안으로 달려와 그 비참한 일이 또다시 벌어졌음에 탄식했고


나는 그저, 정신을 놓아 버린 듯이 미쳐 울부짓는 그녀를 달래기 위해 그녀를 와락 안은 채 그저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그러던 그때, 혼란스런 집안 상황에 놀라기라도 한 것이었는지


그녀가 그만, 규칙대로 방 안에만 잠시 갇혀 있어야 했던 그녀가 그만 방 밖으로 걸어 나와 안방의 문 앞에 서고 말았다.


그리고 내가 놀라서 새파랗게 질린 채 갑작스레 나타난 그녀에게 다시 돌아가 있으라고 말하기도 전에


나의 사랑스런 부인은... 그 순하고 선량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그저 모성애가 산산히 조각나 버려 광기에 미쳐 버려서는


부인의 입에서 나오기라곤 믿기 힘들 정도로 상스러운 폭언들을 그녀에게 쏟아붓기 시작했다.


"아하하하하하하.... 네 년 때문이야... 그래... 이게 다 너란 년 때문에 우리가 다 부정을 타서 생긴 일이야...


너같은 역겹고 끔찍한 도깨비 년을 서방님의 집에 들인 데 천지신명이 전부 분노해서 생긴 일이라고...


다 네 년 탓이야... 네 년 때문에 우리 가족이 전부 다 저주를 받은 거야... 네 년 때문에... 네 년 때문에... 


우리 아들이... 우리 아들이... 그 역겹고 불결한 고깃덩이의 모습으로 태어나 세상 빛도 보지 못하고 버려지게 생겼단 말이다!!!


어찌할 게냐? 응? 양이(서양 오랑캐)들 요술쟁이라던 네 년의 그 같잖은 힘으로 그걸 되살려 주기라도 할 터이냐?


빨리 말해... 그 아가리로 뭐라도 말해... 불쌍한 내 아들을 어찌 살릴 거냔 말이야!!!"


진노한 부인은 그 수척하게 변한 몸에서 어떻게 그런 힘이 나온 건지 단박에 일어나


그녀의 머리채를 잡고는 손으로 때려 가며, 방안의 자기들을 그녀에게 던져 깨트려 가며 그녀에 대한 증오를 뿜어 내었다.


하지만 황급히 달려들어 그걸 제압하려 들던 나를 제외한 그 어떤 가족도


부인에게 얻어맞아 멍이 들고 엉망진창인 모습이 되어 버린 채 이제는 히끅거리며 가엾게 울기 시작하던 그녀를 도와 주지 않았다.


아마 나를 제외한 가족 중 그 누구도... 부인의 말에 도무지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었을 터였다.


가족 모두는 철썩같이 믿고 있었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새하얀 머리카락, 겨울의 첫 눈처럼 새하얗고 뽀얀 피부


새파란 바다의 푸른 빛보다도 더 청아한 푸른색 눈, 그리고 인간과는 확연히 다른 뾰족하고 길쭉한 귀를 지닌


서양의 이종족인 요정이었던 그녀가


내 사랑스런 부인이 우리 집안에 시집온 이후로 우리 집안에 닥쳐 온 그 모든 재앙의 원흉이라고 말이다.


















길진 않아서 한 두세편 안으로 끝날듯

원래는 현대 한국 배경으로 엘프 얀데레 수명물로 쓸려다 스토리가 바뀌어서 배경이 조신시대가 됨...

그래서 딱히 엘프랑 조선시대를 스깔 만한 이유가 없어졌지만 최대한 잘 풀어 볼테니 봐주시면 감사한레후


전작도 그렇고 이것도 그렇고 너무 좀 과격하거나 고어한 장면이 좀 나오는 것 같긴 한데

나도 그런 건 별로 쓰기 싫어서 스토리상 이 편에만 쓰고 다음 편엔 그런 내용은 많이 안 쓸려고

그리고 말투 최대한 조선시대스럽게 써 봤는데 사극 안본지 오래 되서 조선시대 말투 잘 모르니 봐주셈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