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 대학교의 개인 연구실.



"하..씨발.."



난 눈 앞에 있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우수에 찬 것만 같은 짙은 검은 눈동자와 기다란 검은 머리.


한국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하얀 피부를 가진 그녀는.


모든 이들이 보자마자 아름답다고 입을 모아 칭찬할 수 있을 정도의 외모를 가졌지만.


아쉽게도..


그녀는 나의 교수님이었기에.


난 그녀를 아름다워 하는 감정 대신 두려워한 감정을 담아 바라보았다.



"야 김얀붕!!!! 넌 도대체 몇 년째 발전하는 게 하나도 없냐?! 졸업 생각이 없는 거야?! 아니면 뭐 진짜 지능이 딸리기라도 하는 거야?!"



여느 때와 같은 교수님의 폭언.


비수처럼 날카로운 한 마디 한 마디가 심장을 후벼 파는 것만 같고.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가 아무런 변명조차 할 수 없게 얼어붙게 하며.


갑자기 튀어나온 벌레를 보는 듯한 싸늘한 눈빛은 나라는 존재가 살아있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말하는 듯 했다.



[..얀붕 선배 또 혼나네요..]


[..그러니까..쟤 저 정도면 교수님한테 쌍욕이라도 박은 거 아니냐?]


[..불쌍하네요..]


[..그렇다고 괜히 위로 하려고 하지 마..쟤 도와주려고 했던 사람들 다 교수님한테 찍혀서 탈주한 지 오래야]


[...진짜요..?]



날 동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며.


한편으로는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위험해지는 방사능 물질처럼 보는 주변 이들의 시선은.


날 찢어발기는 것만 같은 교수님과는 달리.


날 하염없이 초라하고 한심한 존재로 만든다.



'...죽고 싶다..'



너무나 괴롭지만 대학원을 그만두고 탈주 할 수도 없다.


이제 와서 대학원을 탈주하기에는 그동안 썼던 시간이 너무나 아깝고.


어떻게 해서든 버텨내어서 졸업 하고 말겠다는 내 개인적인 욕심이.


나의 대학원 탈주의 발목을 잡았다.



"후우....시발.."



차가운 밤 공기와 퀘퀘한 담배 연기.


숨을 크게 들이마셔 이상하게 잘 어울리는 두 가지를 흡입하고 내 뱉자.


아까 전 교수님에게 당했던 그 끔찍한 폭언들이 어느 정도 치유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야 좀 살 것 같네..



"........후"



스트레스로 인하여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 잡으며 벤치에 가만히 앉아.


차가우면서도 꺠끗한 밤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 정신 상태처럼 뿌연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고독에 잠기자.


한편으로 어쩌면 교수님이 날 혼내는 이유가.


단순히 내가 마음에 안 든다 거나.


교수님의 성격이 나쁜 게 아니라.


내가 무언가 교수님한테 잘못을 했거나.


혹은 진짜로 내 실력이 병신인 것이 아닌가 하는 그런 의구심이 머릿속에 피어올랐다.



'..그러고 보니..교수님..다른 애들한테는 욕 한 번 안 하시니까..진짜 나한테 뭔가 문제가 있는 건가..?'



애초에 내가 교수님의 랩 실에 굳이 지원한 이유도.


교수님의 성격이 매우 좋고 졸업도 빨리 빨리 시켜준다는 친한 선배의 말 때문이었으니..


실제로 교수님은 날 제외한 다른 이들에게는 욕은 커녕 표정을 구긴 적도 없었고.


나와 같이 들어왔던 동기는 박사로 졸업한 지 오래였다.



"..나 정도면 천재라고 생각했는데.."



어린 시절부터 주위 사람들에게 똑똑하다는 소리를 자주 들어왔었으며.


다른 남자 아이들에 비해 덩치도 작고 여성스러워 친구가 없었기에.


다른 아이들이 친구들과 노는데 사용하는 시간들을 오로지 공부에만 쏟아부어.


학창 시절도 내신 평균 1.3 정도로 맞췄을 정도였으니.


난 내가 천재인 줄 알았다.


그러나 이 대학에 온 뒤로 내가 느낀 감정은 단 하나.



'경외심...'



우물 안 개구리처럼 우물 안이 내 세상의 전부인 줄로만 알았지만.


그런 내 생각은 교수님을 만난 이후 180도 달라졌다.


처음에는 다른 교수님들에 비해 나이도 젊고.


엄청나게 예쁘다는 점 하나 때문에 약간의 흥미만 있었을 뿐이었지만.


이후 우연하게 교수님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생겨 대화를 한 뒤.


말 몇 마디 나눴음에도 교수님은 나 따위와는 다른 진짜 천재라는 걸 느낄 수 있었고.


그런 교수님을 본 받고 싶어 대학원에 진학했다.


물론 처음에는 교수님도 날 매우 마음에 들어하셨던 걸로 기억한다.


나도 그 당시에는 교수님을 존경했었고.


...한편으로는 이성적인 호감까지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때는 진짜 착하셨는데.."



내가 막내였던 시절.


당시의 교수님은 지금의 교수님과 동일 인물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무척이나.


상냥하고 친절하셨다..아름답기도 했었고...


밤 늦게까지 남아서 실험하다 깜빡 졸아버렸을 때는 말 없이 담요를 덮어주셨고.


대학원생들 가난하다는 거 안다면서 밥도 자주 사주셨다.


또 가끔씩은 본인 사비를 털어 선물까지 해주셨고.


나 또한 그런 교수님에게 보답하기 위해 최대한 열심히 연구하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때부터였나.."



대학원에 들어간 지 2년 정도 지난 후.


핑크빛 캠퍼스 라이프라는 단어가 본능적으로 떠오르는 어느 봄 날.


처음으로 여자 친구를 사귀게 된 이후부터.


모든 것이 변했다.



[...여친..생겼네..?]




내가 여자 친구가 생겼다는 걸 알게 된 교수님은 이전보다 확연히 눈에 띌 정도로 무뚝뚝 해지셨고.



[하..너 발표 자료가 이게 뭐야? 계속 참고 있었는데 너 슬슬 감 잡아야 하는 거 아니야?]



세미나 등에서 내가 발표를 하는 날이면 유독 나에게만 쓴 소리를 하시기 시작했다.


당시의 난 영문도 모른 체 교수님의 쓴 소리를 들어야만 했고.


어떻게 해서든 실망하신 교수님에게 다시 잘 보이자는 일념 하에.


최대한 열심히.


밤까지 새가며 실험을 하며 공부했지만.



[..넌...하아..됐다..넌 나중에 보자..다음]



상황은 더더욱 최악으로만 치닫았다.



[..너 변했어..예전에는 나한테 잘해줬었는데..이제는 모든 거에 무관심해 하고...다른 사람 같아...]



교수님에게 다시 한번 잘보이겠다는 일념 하에 밤까지 새가며 노력했음에도 달라지는 것이 없자.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난 주변인들.


심지어는 내 첫번째 연인이었던 얀진이에게마저도 무관심해졌고.


그로 인해 우리는 고작 4개월 정도 밖에 만나지 못했음에도 이별을 택했다.



[야!! 너 내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 들어?! ..하..씨발..! 너 지금 뭐 반항하는 거야?!!]



얀진이와의 이별 이후에도 내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오히려 이별에 대한 스트레스와.


교수님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누적 되어 난 더더욱 피폐해져만 갔다.



[하..얀붕이..저 새끼 때문에 랩 분위기 또 씹창났네..]


[에휴..저 병신..저럴 거면 왜 들어온 거야?]


[얼마나 병신이면 그 착한 교수님 입에서 욕이 나오게 하냐..]



동기들과 선배들 또한 점점.


매일 교수님이 언성을 높이게 만들어 분위기를 망가뜨리는 날 비난하기 시작했고.


안 그래도 괴로웠던 난 믿었던 이들에게까지 비난을 받자.


더더욱 망가져만 갔다.


..그 이후로는 말 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교수님에게 폭언을 받아 스트레스가 쌓인 난 더더욱 피폐해졌고.


피폐해진 나는 피로와 스트레스에 제대로 된 연구를 할 수 없었으며.


나아지기는 커녕 오히려 점점 퇴보하는 나로 인해 화가 난 교수님에게 다시 한번 폭언을 듣게 되는.


그런 악순환이 계속 되어.


지금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다..



"죽고 싶네..."



죽으면 편해질까? 하는 그런 멍청한 생각도 가끔 떠오르지만.


겁쟁이인 난 두려워 죽을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이제 슬슬 들어가자..."



==



"..다들 퇴근했나..."



담배를 피고 들어오자.


연구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차라리 이 편이 더 좋네.


아무도 없으면..


아무도 날 욕하지 않을 테니까..


아무도...날 괴롭히지 않을 테니까..



".....진짜 죽고 싶다..."



다른 이들의 자리와 조금 많이 떨어져 있는 내 자리에 앉아.


그동안 연구 했었던 내용들과 아직 켜져 있는 컴퓨터 화면 속 ppt를 보며.


난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흐윽...흑...끄흑..."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아무도 내 추한 모습을 보지 못하게.


양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구슬프게.


처량하게.


병신같게.


눈물을 흘렸다.


...그때였다..



"너 거기서 뭐하냐?"


"흑...끕..교..교수님..?"


"....쯧..멍청한 새끼...어디갔나 했더니..혼자 쳐 울고 있네.."



뒤 편에서 인기척이 느껴져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리며 뒤를 바라보자.


그곳에는 평소와는 달리 매우 노출도가 높은 그런 옷을 입고 있는 교수님이 서 있으셨다.


평소처럼 날 바라보는 싸늘하면서도 혐오가 섞여있는 교수님의 눈빛을 보자.


더욱 서러워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았지만.


그렇게 되면 상황은 더더욱 최악으로 치닫을 것만 같았기에.


난 억지로 눈물을 그치려고 노력했다.



"이런 병신이..."


"교수님..그..그게..."


"....내가 말했지 쉬는 시간 없이 밤 늦게까지 하면 오히려 능률이 떨어진다고"



날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에 난 내가 한 없이 작아지는 것만 같았고.


또 그녀의 싸늘한 눈빛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아..무리다..이제..더 이상은..무리야...


버텨보려고 했지만.


교수님의 눈 빛을 보니 알 수 있었다.


나는 구제 불가능한 쓰레기.



"...교수님..저 그만두겠습니다"


"...뭐..?"


"더..더 이상은..못하겠어요..."


"......"



더 이상은 이 지옥같은 삶을 지속하고 싶지 않다.


버티고 싶지만.


버티려 했지만.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나라는 존재가 너무나 한심해 버틸 수가 없다.


..그래 많이 늦은 감이 있지만..그냥 아예 취직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



"교수님..죄송하지만..저 더 이상은.."


"...안돼.."


"네..?"


"..안돼..안돼...! 절대...못 보내..."



다시 한번 교수님께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밝히기 위해.


고개를 들자.


그곳에는 내가 알던 교수님이 아닌.


무언가 상당히 뒤틀린 무언가가 있었다.



"....이렇게 된 이상..."


"교..교수님..?"



무언가 단단히 잘못 되었다는 걸 깨달은 난 본능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뒷걸음질을 쳤지만..



"커헉...!"


"걱정마..잠깐 재우는 것 뿐이니까"



교수님은.


아니 그 여자는 도망치려는 날 붙잡아 힘의 차이를 이용해 넘어뜨린 뒤.


내가 그녀보다 훨씬 약해 저항하지 못한다는 점을 노려.


양손으로 내 목을 졸랐다.



"케흐....커....어...헉.."


"잠깐만..아주 잠깐만 자고 일어나는 거야.."



목이 짓눌리는 고통과 머리에 공급되는 산소가 줄어들어 생기는 몽롱함에.


점점 정신이 아득해져만 갔고.


마치 전등을 끈 것처럼 온 세상이 어두워진 직후.



"...여..여기는...?"


"일어났어?"


"교..교수님..?"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새하얀 천장.


그리고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르겠을 정도로 노출이 많은 검은색 속옷만을 입은 교수님이었다.



"지금 이게 무슨...!"



양 손목에서 느껴지는 답답한 구속감에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자.


침대 윗 부분에서 부터 이어진 밧줄에 단단히 구속된 내 손목이 눈에 들어왔다.



"교수님이라니..그런 딱딱한 호칭 말고..여보라고 불러야지?" 


"그게 무슨...?"



...도대체 이게 뭔 상황인 거지?



"하아...드디어..단 둘이 남았네..."



교수님은 평소에 보여주던 쌀쌀 맞은 표정이 아닌.


사랑에 빠진 소녀와도 같은 표정으로 내 품에 안겨.


내 목덜미에 얼굴을 쳐 박고 내 체취를 들이마셨고.


너무나 갑작스러운 교수님의 모습에 내가 당황을 금치 못하자.



"이건 너가 나쁜 거야..내가 그렇게 좋아했는데 웬 여우 같은 년이랑 바람이 나고..아예 날 떠나려 했으니까.."



그녀는 다시 한번 표정을 바꿔 싸늘하게 날 내려다보며 날 붙잡고 있는 손에 힘을 주었다.



"ㄱ..그게 무슨...?"


"변명은 안 들을 거야.."



그녀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걸 본능적으로 느낀 난 다급하게 그녀를 말려보려고 했지만.


그녀는 양 손으로 내 입을 막은 뒤 내 귀에 입을 대고 조근 조근 속삭였다.



"나쁜 얀붕이는..철저하게 교육해서..다시는..다시는..다른 년한테 눈길도 안 주고 날 떠나지도 않는 그런 착한 얀붕이로 만들어 버릴꺼야..."



귀를 긁는 듯한 그녀의 속삭임에 난 깨달았다.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그리고 이 상황은..


내가 초래했다는 것을..



"사랑해..."



..아아...난 역시 병신이 맞아.


진작에 도망쳤어야 했는데.


아니 교수님을 만나지 말았어야 했는데..


아니...그냥..이 여자의 눈에 띄지 말았어야 했는데..


==


"너 그 소식 들었냐?"


"뭔데"


"그 얀순 교수님 조교분 있잖아"


"응"


"그분 대학원생 시절에 매일 같이 얀순 교수님한테 욕 먹던 사람이라던데?"


"그 착한 얀순 교수님한테 욕을? 얼마나 병신이면...아니..잠깐 근데 그러면 도대체 왜 굳이 졸업하고 나서도 조교를..."


"나야 모르지..? 뭐 진짜 말 그대로 교수님한테 조교당한 거 아닐까?"


"...미친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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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글썼는데 또 뇌절했다..미안하다.


피드백 할 수 있으면 해줘


수용할게


아직 많이 부족한 글이지만 재밌게 봤으면 고마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