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그림


"있잖아, 어릴 땐 매주는 아니더라도 2주에 한 번은 꼭 아빠가 유원지에 데리고 놀러 가주셨거든.


옷이 땀에 흠뻑 젖도록 이름도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와 놀기도 하고 산책을 나온 강아지와 놀기도 하고.


그렇게 놀다가 피곤해서 아빠와 함께 벤치에 앉아 솜사탕이나 아이스크림 같은 간식을 먹다 보면.


항상 아빠가 풍선을 하나 사 들고 와주셨어.


그때면 언제나 해가 뉘엿뉘엿 저가는 바람에 마지막으로 내가 아빠를 졸라서 느긋이 산책했어.


이리저리 풍선을 흔들고 풍선을 잡고 있던 손을 잠시 풀어주곤 다시 잡아끌고 장난을 치다가.


결국엔 노을 져 가는 하늘에 풍선을 날리게 되었어.


아, 방금 그 장난을 치지 않았더라면. 아, 좀 더 내가 소중히 여겼더라면.


그렇게 후회하고 몇 번을 더 풍선을 날려 보냈지.


어느 날은 그 자리에 서서 하늘 높이 날아간 풍선이 점으로도 보이지 않을 때까지 올려다보곤 했어.


내 것이어야만 했던, 내 것이었던 것이 사라져가는 시간을 느긋이 들여서 말이야, 복수라도 다짐하듯이.


그러다 어린 마음에 그날은 절대로 풍선을 잃고 싶지 않았던 거야.


그래서 어느 날보다도 조심히 또 소중히 품에 안고선 집에 돌아와서 방 안에 가둬놓았어.


그렇게 하나, 둘 풍선이 계속해서 쌓였지.


.....


맞아, 그렇게 계속해서 풍선이 천장을 메꾼대도 하나도 즐겁지 않았어.


결국엔 하나둘씩 가스가 빠져서 쭈글쭈글해져서는 바닥에 떨어져 뒹굴 뿐이었으니까.


결국, 내 진심도 사랑도 소중함도 즐거움도 행복함도 모두.


바닥에 떨어져 뒹굴던 풍선이었던 것들처럼.


영원하지 못했던 거야.


결국 빈방에 계속해서 이젠 즐겁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알록달록하게 색바랜 풍선을 채울 뿐이었어.


앞으로 나는 이 빈방에, 이 빈 마음에 무얼 채워야 할까?


내가 진정으로 원했던 건 뭐였을까?


날 지나가던 강아지? 이름 모르던 그 아이? 아니면 솜사탕 하나 더?"


길고도 짧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소감을 말한 소녀의 눈앞에, 침대에 묶인 소년이 어이가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래서 원했던 게 뭔데?"


소녀는 다리를 고쳐 꼬고 앉아서 턱을 괴고서 소년을 똑바로 바라보곤


"이름 모르던 그 아이. 내 눈앞의 너."


"어차피 풍선에 질리듯 버릴 거 아니야?"


소녀는 바닥에 아무렇게나 떨어져 있는 풍선 하나를 집어 올려 풍선을 불고선 대답했다.


"봤지? 사랑도 이렇게 다시 채울 수 있거든.


다른 '무언가'도 채울 수 있고"


소년은 미간을 찌푸리며 소녀가 불어낸 밋밋한 풍선을 보자 풍선과 비슷한 다른 것임을 눈치챘다.


그런 소년에게 한 걸음 한 걸음 소녀는 다가갈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