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혈귀


그 어떤 인간도 부정하지 못할, 현 사회의 지배층


신에 필적한 권능을 지닌 종족


스스로의 강함을 잘 알기에, 그 무엇보다 고고하고 오만한 자들.


“후우… 다 자는거 맞지?”


그리고 같은 종족의 그는, 인간들이 잠든 시간 몰래 들어와 피를 노리고 있었다.


‘서럽다 서러워… 이럴거면 차라리 인간으로 태어나지...’


분명 그는 흡혈귀 사이에서 태어난 순혈 흡혈귀였지만, 불로 불사라는 점을 제외한 흡혈귀의 권능 대부분을 상실한 채 태어나 인간으로 치면 장애인과 같은 존재였다.


사실상 그 불로불사도 어디까지나 자연사를 하지 않는 것이지 정도 이상의 피해를 받으면 죽긴 했기에


다른 흡혈귀들과 달리 어떠한 권능도 없는 그는 그냥 밤낮이 바뀐 인간이라 해도 다를게 없었다.


이런 그였기에, 스스로를 우월한 존재로 여기는 흡혈귀들에겐 동족 취급도 받지 못하고 살았다.


부모에게도 일찌감치 버림받고, 흡혈귀 사회에선 쓰레기 취급을 받다 나가 떨어진 신세.


그렇게 반강제로 인간 사회로 흘러들어오긴 했지만, 그들과도 완전히 어울릴 수 없었다.


요즘의 인간들은, 흡혈귀들의 가혹한 핍박에 이를 갈고 있다. 자신의 출신이 들킨다면 결코 무사한 꼴은 못당할게 뻔했다.


그래서 그는 인간들과도 접촉을 줄여가며 거처마저 이리저리 옮기는, 그저 들개와 같은 삶을 살아갔다.


하지만 이런 그도, 가끔씩은 인간의 피를 노렸다.


흡혈귀인 이상 피가 주식이었다. 굳이 인간의 피가 아니어도 됐으나, 안타깝게도 흡혈귀의 입맛에 짐승들의 피는 끔찍하게 맛이 없었다.


다른 흡혈귀는 거뜰어도 안 보는 그런 음식물 쓰레기라도 꾹 참고 마셨지만, 인내심엔 한계가 있어 특식의 개념으로 가끔은 마신 것이다.


모두가 잠든 새벽을 노려, 턱없이 높은 담을 낑낑거리며 넘어와, 현관을 잠그지 않은 집을 일일이 돌아다니며 선별 후 


간신히 들어온 집에서 그가 바라는건 그저 피 몇모금.


이런 신세가 한탄스럽지만 어쩌겠는가, 멀쩡한 인간은 제압조차 못할 힘으로는 이게 최선이었다.


그는 곤히 잠든 사내의 목덜미 부근에 마취약을 슬쩍 발랐다. 혹여나 깨물림을 느껴 잠에서 깨면 낭패였으니까


‘죄송합니다. 정말 살짝만 마시고 갈게요’


그렇게 준비를 마친 후, 그가 송곳니를 가져다 댄 순간


“음… 아빠…?"


난데없이 뒤에서 들린 여자아이의 목소리


“끄아아아아악!”

동시에 남자의 목에서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뭐, 뭐야 아빠! 왜 왜그래… ㅇ...어? 흡혈...귀?”


‘...좆됐다.’


이보다 더 최악일 수 있을까. 집 안에 다른 사람이 있는지 확인도 안해 들킨것도 모자라, 깜짝 놀랐다는 이유로 남자의 목을 절반 가까이나 씹어버렸다.


입 안에 감도는 혈향은 달콤했지만, 어쩐지 사형수가 머금은 마지막 담배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된 이상, 방법은 딱 하나였다.


‘…미안해요!’


에라 모르겠다. 고통에 찬 비명과 흡혈귀가 나타났다며 안절부절하는 목소리를 뒤로한 그는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곧장 집을 뛰쳐나왔다.


시야도 확보되지 않는 한 밤중의 뒷모습을 아이가 기억할린 없다. 치료 못한 남자는 죽겠지만, 그렇다고 지혈을 해 주려 남았다간 자신이 붙잡힐 판이다.


‘어, 어차피 인간은 누구나 죽으니깐… 미안하게 됐습니다!’


자신의 삶이 더 소중한건 생물체의 본능이니까, 결국 그는 애도 하나만 가슴에 품고 꽁지 빠져라 달아났다.


그러나 고작 도망으로 상황을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게 된 건, 고작 다음날이었다.


남자는 결국 죽었으나 범행이 들키진 않았다. 남자와 그의 딸, 단 둘이 사는 집이었고 아이는 자신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게다가 그 나름대로 주의를 기울여 침입한 것이기에 목격자도 없었다. 아마 앞으로도 들킬 일은 결단코 없을 터였다.


그럼에도 그가 이 상황을 벗어나지 못한 이유는 단 하나.


“아, 아빠아… 흐…흐흑…흡혈귀가…아빠르을…”


보통의 흡혈귀는 이런 일에 죄책감 따위 갖지 않는다.


흡혈귀에게 있어 인간은 한낱 도시락이나 장난감에 불과한 존재들


오락을 위해서도 죽이는 인간을, 실수로 죽인걸로 죄책감에 시달리는 흡혈귀는 없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태어난 이후 흡혈귀들에게 멸시와 핍박을 받아온 그의 심리는 인간에 보다 가까웠다.


하루 아침에 부친을 잃은 아이의 상실감과 슬픔도 얼마든지 공감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범인이 다름아닌 본인인 이상, 당연히 죄책감이 발목을 붙잡는다.


흙을 만끽하는 시체의 싸늘함이 몸을 옥죄고, 그를 조는 아이의 울음이 가슴을 도려낸다.


그렇지만 차마 자수할 용기 까진 갖지못한, 이기적인 소시민에 불과한 그가 선택한 방법은


“...있잖아. 혹시 괜찮다면… 우리집에 오겠니?”


아이를 양녀로 들이기로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이는 친척이 없어 자신 외에 딱히 거둬 줄 사람은 없었다.


그 유일한 혈육을 죽인 죄책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지만, 그 죄는 자신이 양부가 되는 것으로 갚아나기로 했다.


가끔이나마 즐기던 인간의 피도 완전히 끊었다. 그런 일을 저지르고도 다시 인간의 피를 마시려 든다면 그건 진정으로 뉘우치는거라 할 수 없으니까


불편함을 무릅쓰고 밤낮도 바꾼 채 아이에겐 온 정성을 들였다. 난데없이 아빠가 되어 주겠다며 나타난 그를 경계하던 아이도, 그의 정성을 느끼며 새 아빠를 받아들였다.


이렇게 죄책감으로 시작한 관계였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는 단지 부모라는 역할 자체에 더 충실하게 되었다.


그동안 흡혈귀 사회에서 핍박받고 인간 사회엔 섞이지 못하던 나날이 반복된 탓에, 마음을 나누는 관계에 자기도 모르게 감화된 것이다.


그렇게, 아이가 친부 보다 양부인 그와 지낸 세월이 더 많아져, 어엿한 아가씨가 될 무렵엔


“후우, 오늘은 열 마리쯤 죽였네”


흡혈귀 사냥꾼이 되었다.


딸이 처음 소망을 털어놓았을때 그는 기겁하며 말렸다.


동족인 흡혈귀들을 죽이겠다는게 꺼림칙 해서는 아니었다. 동족 의식따위 오래전에 내다버렸기에 그들이 죽든 말든 관심도 없다.


단지 자신같은 잉여 흡혈귀가 아닌 진짜 흡혈귀들의 강함을 알기에, 흡혈귀를 사냥하겠다며 나섰다 비명횡사하거나 노예로 전락한 이들을 수도 없이 봐 왔기에 말린 것이었다.


“딸… 흡혈귀들이 얼마나 무서운데… 위험하니까 그러진 마, 응?”

“아니, 꼭 멸종시켜버릴거야. 세상에 단 하나도 남지 않게”


그러나 평소엔 고분고분하던 딸은 그것 만큼은 결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녀는 새로이 자신의 양부가 되어준 그를 받아들여 슬픔을 이겨냈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친부를 죽인 흡혈귀에 대한 증오를 잊은 적은 없었다.


조금만 자세히 볼 걸, 어떻게 해서라도 붙잡아 둘걸 하는 후회와 죄책감을 계속 품고 살았다.


그런 양녀의 감정을 모르지 않은데다, 여전히 자수할 용기는 없던 그는


결국 딸이 흡혈귀 사냥꾼이 되려는걸 더 이상 말릴 수 없었다.


딸이 흡혈귀에게 당해 죽지만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지금이라도 관뒀으면 하는 바람을 품었지만


그녀가 가진 증오가 상상을 초월했던 덕인지 흡혈귀를 죽이겠다는 일념으로 미칠듯이 단련을 거듭한 그녀는 일대에서 손꼽히는 흡혈귀 사냥꾼으로 성장했다.


일반적인 사냥꾼들은 하나의 흡혈귀를 죽이기 위해 수십에서 수백의 인원이 움직였다. 어지간한 날붙이로는 상처조차 내기도 힘든 흡혈귀를 죽이기 위해선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달랐다. 혼자서도 얼마든지 흡혈귀를 죽였다. 행적이 쌓일수록 소문을 들은 흡혈귀들이 오히려 그녀를 피했다.


동시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외모만으로도 감탄을 자아낼 여성이 수백년에 걸쳐 인류를 핍박해 온 흡혈귀를 단죄하고 다닌다, 난세에 내려진 영웅이자 인간을 구원할 여신이라 추앙받기 부족함 없었다.


그렇게 매일 매일을 인류의 찬사와 흡혈귀들의 단말마를 휘감으며, 사냥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그녀는


“흐에엥 우리아빠 너무 보고싶어쪄엉~”

흡혈귀인 그를 끌어안으며 애교를 부렸다.


“우리 딸. 오늘은 안 힘들었어?”


“우웅, 솔직히 죽이는건 쉽지만 그 새끼들이 나만 보면 다 숨어다녀서… 찾는게 좀 힘들었어”


그는 조심히 침을 삼켰다. 맙소사, 흡혈귀를 죽이는게 쉽다는 문장이 완성될 수 있다니. 심지어 그 문장이 자신에게 얼굴을 부비는 사랑스러운 딸 입에서 나오다니.


그리고 딸을 이렇게 만든 계기가 다름 아닌 본인이라니


언젠가 한 번, 더 이상 딸을 속일 수 없다는 죄책감이 치민 날 모든걸 털어놓기로 마음먹고 물었다.


만약에 친부를 죽인 흡혈귀를 알게되면 어떻게 할 것인지


“흐음, 일단 온 몸의 살갗을 한번 벗겨볼까? 살은 재생하지만 고통은 그대로 느끼니까. 벗기고 재생 시키고를 쭉 반복하는 식으로


그 다음엔 바늘로 몸에 구멍을 잔뜩 내서 피를 흘리게 만들고 그 피를 먹이로 줘 보고도 싶어. 그렇게 피를 좋아하니까 어디 자기 피도 맛 보라지. 그 다음엔…“


그 뒤로 한참이나 쏟아지는 참혹하기 그지없는 고문들을 듣는 그의 이마엔 식은땀이 질질 흘렀다.


평상시의 그녀는 키우는 내내 자신에게 투정 한번 부린적 없이 언제나 상냥하고, 자신에게 서슴없이 애교를 부리는 귀여운 딸이었다.


하지만 이런 면모는 어디까지나 증오, 분노, 원망같은 감정을 흡혈귀, 특히 자신의 친부를 죽인 그 흡혈귀를 향해 있기 때문이라, 결국 목구멍까지 올라온 자수를 그대로 씹어 삼켜버렸지만.


“앗… 내가 너무 무서운 말 했지? 미안해 아빠…. 


굳어버린 자신을 폭 끌어안고는 부드럽게 사과를 흘리는 딸을 보면 또 죄책감이 기어오르곤 했다.


그러면서도 진실을 밝히진 못한 채, 그저 하루를 미루기만 반복했지만


“근데 아빠 진짜 동안이다. 어떻게 늙지를 않아?”

“아… 하하. 그야 널 처음 데려왔을 땐 나도 많은 나이는 아니었으니까…”


“에이, 그래도 10년이 넘게 지났는데? 우리 같이 다니면 사람들은 내가 누나인줄 알아”


그렇게 미룰 시간도 이제는 얼마 남지 않았다.


세월이 더 쌓여도 주름 하나 생기지 않는 모습을 보면 의심할 것이고, 의심이 누적되면 탄로날 것이다.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그는 사실을 털어놓지 못했다.


흡혈귀인걸 들키더라도, 살해범인게 들통나진 않을테니까. 그렇게 되면 그래도 살 확률이 있지 않을까 하는, 내면의 생존 본능이었다.


진작에 죗값을 치르지 않아 끊임없이 이자를 만든 어리석음도 놀랄 일이었지만


‘이런 생각이나 하고… 나 정말 쓰레기다...’


그 보다도 스스로의 추악함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어떻게 이렇게 뼛속까지 이기적이기만 할까.


안 그래도 창백한 그의 얼굴은 최근들어 더욱 핏기를 잃어갔다.


-똑 똑-


“음? 이 시간에 누구지?“


의아해 하는 그를 두고, 그녀는 뭔가 짐작이라도 한 것처럼 문으로 다가갔다. 잠시 대화를 나누고 온 그녀는 너무도 벅찬 표정을 지었다.


허나 그 미소에 드리운 잔잔한 광기를 느낀 그의 심장은, 어째서인가 떨림이 거세졌다.


”어… 무슨 얘기 하고 왔어?“


”있잖아! 우리 아빠를 죽였던 그 흡혈귀를 잡을 수 있게 됐대“


그녀는 친부가 마지막으로 입던 옷을 아직 간직하고 있었다. 매일 아침마다 피가 짙게 베어든 그 옷에 증오와 분노를 맹세한 것이다.


그리고 그 옷엔 피와 함께 다른 것이 섞여있었다.


다름 아닌 물린 대상의 피가 쉬이 응고되지 않게 만드는 흡혈귀 특유의 타액


그것은 흡혈귀마다 조금씩 성분이 달라 일종의 지문 역할을 했다. 이전에도 흡혈귀의 범죄임을 알아낼 수단으로 활용되곤 했다.


그동안은 단지 인간의 소행이 아님을 밝혀내는 정도에 그쳤지만, 오랜 연구 끝에 드디어 흡혈귀 개개인을 특정해 내는 정도까지 발전한 것이다.


그는 입도 뻥긋 못하고 굳어버렸다. 


드디어 제대로 된 복수를 할 수 있게 되었음에 너무도 상쾌한 미소를 짓는 딸이


잠시 다녀오겠다며 자신에게 입을 맞추고 집을 나서는 순간까지.


아니


그렇게 나갔던 딸이, 결과를 받아들고는 다시 돌아와


서늘한 표정으로 자신을 쏘아보는 순간까지


“아빠… 였어?”


목소리가 원하는 답이 무엇인지 그는 알고있다.


‘아니지? 그럴리 없지?’


하지만 이 상황에서 거짓을 고할 순 없다.


“…응”


콰직, 일순간 그녀가 쥐고 있던 칼의 손잡이가 손아귀 모양으로 일그러졌다.


쳐다보기 조차 두려운 눈빛이 머리 위에 떨어진다. 가까스로 화를 다스리는 차분한 숨소리는 그 무엇보다 강렬한 열기를 품고있다.


한 없이 차가운 얼음 같은 목소리가 천천히 귀에 스며든다.


“왜 그런거야”


”배가 고팠어…“


”그게 아니라, 난 왜 키운거야“


하지만 그는 알고있다. 저 목소리는 분노로 뭉쳐지지 않았다.


차갑긴 하나 단단하진 않다. 녹아내리는 얼음처럼 슬픔이 뚝뚝 느껴진다.


“나한테 미안했던거야? 아빠, 사실을 그대로 말해. 적어도 아빠가 말 할 때까진 참을 수 있으니까”


그래 사실을 말해야된다. 그간 품고 있던 모든 감정을 이제 꺼내 놓아야 한다.


다짐한 그의 입이 마침내 열렸다.


“푸, 푸하하핫… 미안해? 내가? 흡혈귀가? 아하하하하!”


그녀의 동공이 떨렸다. 요사스럽게 안면을 일그러뜨리고 비웃어재끼는 모습, 그야말로 흡혈귀다. 자신이 그동안 봐온 다정한 아빠의 얼굴이 아니었다.


“그냥 재미일 뿐이야, 내가 죽인 인간의 딸을 키워 보는게… 


얼마나 웃겼는데? 범인이 눈 앞에 있는데 그것도 모르고 멍청하게 아빠아빠? 푸하하하…“


악을 쓰듯 웃던 그는, 그녀가 점차 칼을 들어올리는걸 보며 안심했다.


눈 앞의 흡혈귀를, 친부를 죽인 살인범을 처형하려는 복수자가 되어있는 딸의 모습.


이게 맞다. 자신은 죽어 마땅하다. 일말의 망설임도 갖게 할 수 없다. 흡혈귀를 처단할 영웅이 사소한 정 따위에 휘둘리게 냅둬선 안된다.


그는 눈에 힘을 실었다. 혹여나 눈물이 흘러선 안된다. 자신은 그저 사악한 흡혈귀 그 자체여야 한다.


‘죽여서 미안합니다… 죗값의 100만분의 1도 안되지만… 당신의 딸은 남부럽지 않게 키워냈습니다… 


딸… 진짜로… 정말 미안해…’


이윽고 그녀의 팔이 움직인다. 화살도 튕겨내는 흡혈귀도 무참히 베어내는 칼이, 압정에도 구멍이 뚫리는 자신에게 드리우려 한다.


쉬이익,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귀를 뚫듯했다.


푸우우욱


”…뭐, 뭐야… 이게 무슨…“


”아… 하하… 생각보다 더 아프네…“


칼이 그녀의 가슴을 관통했다.


그 납득못할 풍경에 얼어 있던 그는, 균형을 잃고 쓰러지던 그녀를 보곤 반사적으로 받혀 안았다.


“아빠도 참…. 거짓말이 너무 서툴러…


지금도 봐… 나 다치자 마자 달려오면서… 


으휴… 딸 놀리니까 재밌어?”


쿨럭, 기침과 함께 피가 덩어리져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녀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단지, 자신을 걱정스러운듯 바라보는 그의 뺨을 어루만졌다.


“너, 너 이게 무슨 짓이야… 왜… 너를 찌르고…“


“일단 얼굴부터 닦어 아빠… 흡혈귀는 울때 피를 흘리는데 왜 아빤 눈물이 나오는거야… 피를 얼마나 안 마시고 살았길래…”


”말하지 말고 있어… 붕대 가져올게… 기다려 봐“


”소용없어… 심장 주변을 그대로 찔렀으니까… 어차피 죽을거야“


너무도 태연한 그녀의 태도. 그는 자리에 주저앉은 채 허망히 되냬였다.


“…왜 날 안 찔러… 복수하고 싶었다며… 네 친부를 죽인 사람 나야… 왜 복수하지 않고…”


“지금 하고 있잖아”


“…뭐?”


“아빠… 좀 알겠어…?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게 얼마나 가슴 아픈지… 발이 잘린듯한 무력감과 눈이 파인듯한 절망감이 어떤지… 좀 이해 돼?”


누가 뭐라해도 그녀는 흡혈귀에게 가차없는 인물이었다.


그의 거짓말과 진실을 모조리 분간해 무엇보다 강렬한 복수를 실행중이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그도 결국 납득한듯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그렇네… 진짜 괴롭고… 슬프구나… 충분히 안다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훨씬…. 훨씬 아프다…


난 죽지도 못하니까… 이 슬픔을 영원히 간직하겠네… 하하…“


그런데 그 순간 쯧, 혀 차는 소리가 집 안에 울렸다.


황망한 순간을 일깨우는 듯한 그 소리의 주인은, 다름아닌 그녀였다.


”…아빠 진짜 흡혈귀 맞긴 하지…? 슬퍼만 하라고 이런건 아닌데…”


그가 고개를 들었다. 딸의 표정이 조금 바뀌어 있었다. 마치 자기가 생각한 일이 안 풀린다는 듯, 조금 심통이 나 보였다.


“그게 무슨…“


“아으윽… 말하기도 힘드네 진짜… 아니 아빠… 모르는거야 모르는 척 하는거야…“


의아한듯 머리를 굴리던 그는 가슴을 부여잡은 그녀를 보고 마침내 그 뜻을 깨달았다.


흡혈귀의 노예는, 인간의 삶을 버리고 주인을 따라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그리고 그 수단은 단순하면서도 확실하다.


다름아닌 흡혈귀에게 심장을 물리는 것


이것은 권능도 아닌 흡혈귀의 특징이었다.


강대한 힘을 가진 흡혈귀는 심심풀이로 저지를 만큼 몸에 베어있으나, 평범한 인간도 이기기 힘든 그는 오래전에 까먹었던 것 뿐이었다.


”그러면… 너 설마… “


“후후… 가슴을 아주 활짝 열어뒀어 아빠… 이 정도면 충분하지…? 


내 성격 알잖아, 이건 복수야… 흡혈귀를 향한 차디찬 복수…


노예를 영원히 아끼고 사랑하는 흡혈귀라… 푸하핫. 정말 웃기겠다.”


그녀가 다시 미소지었다. 분명 피를 치사량 이상으로 쏟아냈음에도 어째서인지 홍조가 눈에 띄었다. 코 앞까지 다가온 죽음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했다.


”하아… 아빠, 이러다 딸 죽겠다아… 빨리 해. 그거 죽은 사람 한텐 소용 없잖아…“


그가 그녀에게 다가갔다. 이젠 그의 표정에도 미소가 담겨있었다. 눈물이 아직 멈추지 않아 뺨을 그렁그렁하게 적시고 있었지만 미소는 울음을 담고도 남을 만큼 넓었다.


”조금만 참아. 그렇게 아프진 않을꺼야…“


그가 송곳니를 드러내는걸 본 그녀는 다시 한번 웃었다.


“그동안 날 속인 아빠니까… 딸로써 또 복수할거야…


어디보자... 그게 좋겠어…


딸과 사랑을 나눠버린 아빠


푸훗, 재밌는게 많네?


이번 복수는…“


가슴 속 살점이 찢기는 소리와 함께


그녀가 나지막히 읊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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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소재 떠올렸을땐 재밌을줄 알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