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소설에 나오는 일부 이름과 기관은 허구임을 밝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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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나 /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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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거미가 지고 있는 부산의 어느 한 대학교의 옥상.


평소 사람들이라면 관심도 없고 잘 오지도 않지만,

한 여성이 난간에 기대어 저 너머의 도시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깔끔하고 윤기가 흐르는 새카만 머리카락,

햇빛을 적당하게 받은 듯한 새하얀 피부에 아름다운 이목구비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특징은 보는 사람마다 암묵적인 긴장감을 흐르게 할 만한 공허하면서도 매우 날카로운 눈빛,


그리고 뒷머리를 모아 올리면 새하얀 목의 피부에 새겨진 '날개달린 십자가'의 문신이었다.


단정하면서 간단한 흰색 셔츠와 기다란 다리에 딱 맞는 청바지를 입은 그녀는 물끄러미 건너편의 풍경을 바라보더니 이내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BOHEM CIGA MASTER'


그녀가 꺼낸 것은 보헴 시가 마스터. 즉, 담배였다.


"......."


무감정적으로 담배를 꺼내고는 익숙한 듯 한 개비를 꺼내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쓰읍....후우...."


그녀가 숨을 들이쉴 때마다 담배 또한 타들어가며 줄어들고 있었다.


본래 해당 대학교 학과 건물 옆에는 흡연실이 따로 있었지만,

옥상에 올라오면 풍경 구경을 하며 조용히 생각에 잠길 수 있기에 유나는 담배를 피러 올때면 이 곳으로 오곤 했다.


'카톡 -!'


이내 또 다른 반대편의 주머니에서 있는 휴대폰에서 메세지가 왔다는 알람음이 들렸다.


휴대폰을 꺼내 카카오톡을 들어가자, 알람음의 출처는 최상단의 단톡방에서 울리고 있었다.


'컴퓨터정보융합과 3학년 B반'


현재 정유나가 속해있는 학과이며, 소프트웨어 쪽 언어와 코딩을 담당하고 있는 학과였다.


이내 단톡방을 클릭하자 안에서는 해당 과에 속하는 여러 학생들이 무언가를 의논하고 있는 듯 했다.


"쓰읍....후우...."


조용히 담배를 빨았다가 내뱉으며 그녀는 찬찬히 톡을 읽어내려갔다.


과에 속해있는 각 학생들의 일상적인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고,

좀 더 내려가 최근에 온 메세지를 읽어보니 이번 주 주말에 다른 하나의 학과와 함께하는 대대적인 MT가 있다는 내용과 함께 저마다 MT가 기대된다는 식의 메세지가 올라오고 있었다.


메세지를 읽고 있을 무렵에 그녀가 피고 있던 담배가 약지 즈음 정도 되는 길이가 되자,

그녀는 검지손가락으로 담배를 툭툭 치고는 학과 건물을 나와 옆 쪽 흡연실 재떨이에 넣은 후 학교를 나왔다.


가방을 맨 채 그녀가 향한 곳은 그녀가 창업한 카페이자 그 곳에서 바리스타로 활동하고 있는, '드림 에스프레소(Dream Espresso)'.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번화가 쪽에 자리를 잡은 가게이며 그녀의 분위기로 손님들을 휘어잡은 탓인지 제법 수완이 되는 가게였다.


'딸랑딸랑 -'


입구문을 열자 전체적으로 세련된 인테리어와 매끈한 대리석, 그리고 양 옆에는 테이블과 의자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어, 유나 언니! 오늘은 좀 빨리 오셨네요~ 방금 전에 오픈 준비 시작했거든요."


"에, 누나가 벌써 왔다고? 발주한 원두랑 시럽 아직 다 못 옮겼는데!"


아직 오픈하기 전의 시간인지 안에는 손님이 없었고,

카운터와 서빙을 전문으로 하는 얀진이가 웃으면서 유나를 반겼고,

재고 관리를 담당하는 얀돌이가 카운터 안쪽의 방에서 소리쳤다.


둘 다 고졸 이후에 온 파릇파릇한 사회초년생에다가 안정적인 직업을 구하고 열심히 하고자 하는 열망이 있기에 뽑았다.


유나는 카페를 찬찬히 둘러보다가 카운터에 있는 얀진이에게 말했다.


".....호윤는 아직?"


"아, 호윤이 오빠요? 언니 오기 딱 3분 정도 전 쯤에 와서 아마 옷 갈아입고 있을껄요~?"


강호윤.

2년 전 그때 유나와 같은 1학년 생이었고 그때 당시에도 지금과 같은 눈빛과 문신, 그리고 분위기 덕에 주위 사람들이 다가가기 힘든 유나에게 그는 서슴없이 다가가 과제를 같이 하자며 친분을 쌓아왔다.


그러부터 1년 뒤 그가 군대를 갔다온 이후 학교를 자퇴하고 취직을 고민하는 호윤에게 유나의 권유로 해당 카페에서 고정직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아, 뭐야 유나 왔냐? 기계 전원만 키면 준비 끝이다."


".....그래? 나도 슬슬 준비하고 올게."


그리 말한 유나는 환복을 하기 위해 창고 쪽으로 걸어들어갔다.


"저기저기, 호윤 오빠!"


".....? 왜?"


창고 쪽으로 들어간 걸 확인한 얀진이가 눈치를 보며 호윤에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


"유나 언니 있잖아요~ 오빠는 안 무서워요?"


"왜? 쟤가 왜 무서운데?"


"아니 그게, 무언가 눈빛을 보고 있자면 '뭘 꼬라봐.' 하는 듯한 말이 들리는 거 같다니까요. 게다가 전에 테이블 치우다가 창문 너머 언니 봤는데, 막 담배 피고 있었다니까요!"


"여자가 담배 필 수도 있지 임마."


"그게 다가 아니라 목에 문양 같이 보이는 문신도 새겨져 있었다니까요! "


"외형만 그렇지 너한테나 얀돌이한테나 화낸 적은 없잖아."


"그건 그렇지만....볼때마다 뭐랄까 토끼가 호랑이 만난 기분이랄까요...으으 아무튼 언니 너무 무서워요...."


"내가 대학교 1학년 때 시절에도 똑같이 담배를 ㅍ....."


"환복 다 했어. 오픈하자."


호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뒤에서 중압적인 목소리가 그들에게 나지막하게 들렸다.


그 말을 들은 얀진이는 녹슨 로봇처럼 삐걱거리며 가게 문의 팻말을 'Open'으로 바꿈과 동시에 문을 열었다.


"거기 '아라비카 원두(원두 품종 중 하나)' 좀 줄래?"


"아, 잠만....여기."


손님 맞이하기 전 간단히 원두 준비를 하고 있는 그때 유나가 호윤이에게 물었다.


"이번에 우리 학과에서 MT 한다던데."


"아 그래? 난 퇴학했으니 못 가겠네."


"아니, 다른 학과랑 같이 결합하는 규모가 큰 MT라 외부인도 같이 참석 가능하댔어."


"으음... "


"너 생각은 어떤지 물어보고 결정할려고."


"나? 너가 가면 가겠지."


"왜, 다른 남자들한테서 나 지켜줄려고?"


멈칫-


옆에서 그릇 정리하던 호윤의 손이 잠시 멈추는 듯 하더니 이윽고 다시 움직였다.


"뭐야, 설렌거냐?"


".....아니? 너가 거기 가면 깽판칠거 같아서."


꽈아악 -


호윤이 유나에게 시럽을 건네는 그 손목을 한 손으로 잡은 채 힘을 주었다.


"아, 아, 아악! 아파! 아파!"


"......"


"와 손목 마비될 뻔 했네. 얘는 운동했더니 무슨 남자보다 더 쎈 거 같냐."


"......아무튼 정확한 스케줄이랑 장소 나오면 톡 보낼게."


"그래그래."


이후 손님들이 계속 들어와 이야기할 틈새도 없이 빠르게 작업하다보니 어느새 밤 11시 30분.


폐업시간인 자정에 맞춰 그들은 카페 청소와 짐 정리를 하고 있었다.


얀진이와 얀돌이는 10분 정도 일찍 퇴근했고, 두명은 남아서 가게 정리를 하던 도중 유나가 말했다.


"대충 정리된 거 같으니, 밖에서 기다릴게."


"그래라. 마저 정리하고 나감."


호윤이에게 말한 그녀는 가게 바깥으로 나와 다시 그녀가 애용하는 담뱃갑 속에서 담배 하나를 꺼내 입에 물고는 불을 붙여 피웠다 


"쓰읍....후우"


그렇게 담배를 완전히 다 태우는 시간보다 빠르게 피운 그녀는 그가 나올 시간에 맞춰 몸에 향수를 뿌렸다.


'딸랑딸랑 -'


"스읍~ 하아~ 와, 새벽공기 쩐다."


"내 바로 옆에서 그렇게 크게 숨 쉬지마. 간접흡연 될 수도 있어."


"다행히도 담배 냄새보단 향수 냄새가 좀 쎄게 나오네ㅋㅋ"


"냄새 안나면 다행이고."


집이 서로 가까웠던 그들은 나란히 서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걸어가면서 이런저런 학교나 일상 이야기를 서로 하다, 문득 호윤이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나저나 넌, 담배 끊을 생각 없냐?"


".......글쎄."


"담배 몸에 안 좋잖아. 내 아버지도 담배 많이 피셔ㅅ...."


강호윤은 말하다가 무언가에 막힌 듯 뜸을 들이다가 이어 말했다.


"폐암으로 돌아가셨는데....."


"......"


"아무튼 스트레스 풀기 위한 담배면 금연 해. 아니면 차라리 담배 생각 대신 다른 무언가에 집중을 하면 되지 않을까."


".....다른 무언가라면?"


"아니 뭐.....취미 생활이라던가.....평소 너가 하고 싶었는데 담배 때문에 못했던 거?"


"......전에는 이런 소리 안하더니?"


"아버지 덕에 내가 담배를 무척 싫어하고 거기다가...."


"......?"


"니 몸도 안 좋은데 왜 피냐 그걸."


"그니까 금연하는 대신에 다른 내가 하고 싶은 무언가를 하라는거냐."


"그래."


그 이후로 말이 없어진 채 걷다가 이내 유나는 호윤에게 말했다.


"내일 주말인데, 집에서 술 좀 먹을래?"


"오, 너가 쏘는거냐?"


".......그래."


"오케~ 나 술 안 마시니까 난 안주만 먹는다."


그렇게 도착한 그녀의 집.


원래 평균적인 집의 평수보다 넓은 아파트의 사는 그녀였지만,

전에도 몇 번 놀러온 적이 있는 그이기에, 별 무리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새벽까지 그들의 수다가 이어지다 이내 윤호가 말했다.


"어우, 이제 좀 슬슬 졸리네."


"......"


스윽 -


"......? 정유나 어디가냐?"


그의 말을 무시한 채 그녀가 잠시 방에 들어갔다 나오더니, 손에는 그녀가 자주 피는 담뱃갑 여러개가 들려 있었다.


"와 이 담배 제법 비싸다며? 많이도 있네....."


탁자에 담뱃갑을 놓은 후 그녀는 말 없이 가위를 꺼내 모조리 반으로 자르기 시작했다.


".......?"


뭐하냐고 말릴 틈도 없이 멍하니 보던 호윤이의 너머로 유나가 이때까지 들은 목소리 중 가장 섬뜩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가 분명히 말했다. 담배 피우는 시간에 내가 하고 싶은 걸 해라고."


"......그....근데 그게 왜...."


그녀는 그의 손목을 붙잡더니 그녀의 방으로 끌고 가 침대 위로 던졌다.


"윽!"


꾸준히 운동도 하고 있는 그녀였기에 일반 남성 수준의 힘 정도는 문제 없이 낼 수 있었고,

산책하는 개가 주인을 끌 듯 그대로 강호윤은 끌려갔다.


"......."


그가 당황하고 있는 사이, 그녀는 말 없이 그녀 방의 문을 닫고는 잠갔다.


'철컥!'


"아니 잠시만. 진도가 너무 빨라요. 교수님? 야, 정유나! ㅈ....진정 좀 해! 너 많이 취한 거 같아!"


"아니. 안 취했고. 사실 담배 피우는 이유 중에 하나가 이거 참을려고 피우는 게 제일 큰 이유야."


"......저 아직 살면서 해본 적이 없는ㄷ......"


"괜찮아 나도 처음이니까.... 게다가 내일 주말이잖아? 내가 리드해야지."


그녀가 자켓의 단추를 하나씩 풀며 다가왔다.


"아까 얀진이랑 말 섞는 것도 보기 싫었고, 너무 꼴려서 안되겠다... MT 때 내꺼라고 각인하고 갈거야."


이윽고 그녀는 머리카락을 한 데 묶기 시작했다.


"......조졌ㄷ....."


그의 기억은 그녀의 목 옆 쪽에 있는 문신을 마지막으로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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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번째 소설.

소재 생각 날때마다 바로 쓰는거지만.... 잘 쓰는거겠죠.

오늘 사료는 저녁 먹기 전 간단한 햄치즈 샌드위치입니다. 맛있게 드십쇼.

오타 지적 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