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

 

이 날은 내가 병실에서 깨어난 날이다.

옆에 있는 간호사가 말하길 10일간 혼수상태였다고 한다.

큰 수술을 받았고 수술은 다행히 성공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다행이 아니었다.

나는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다.

 

“…내 이름이 뭐지?”

 

5월 2일.

내가 병실에서 깨어난 날이자 기억을 잃은 걸 확인한 날이었다.

 

 

 

*******

 

 

 

온몸이 고장났다. 란 말이 정확하다.

나는 누워서 팔을 움직이는 것 외에는 움직일 수 없었다.

긴 재활이 필요하다고 한다.

수액을 조절하던 뚱뚱한 간호사가 말했다.

 

“여자친구분이 좋아하시겠어요! 호호.”

“…여자친구요?”

“네. 정말 매일같이 지극정성으로 돌봤다니깐요? 덕분에 전 한시름 놨지만요. 이따 올터니 잘 위로해주세요. 호호.”

 

간호사는 문을 닫고 나갔다.

탁자에 올려져 있는 물잔에 내 얼굴이 비춰졌다.

머리는 하얀 붕대에 감싸졌고 그 밑에 있는 이목구비는 잘 나지도 않고 못 나지도 않은 평범한 남자였다.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얼굴이다.

기억상실이란 게 그런 모양이다.

 

‘그래도 이런 내게 여친이 있었다니… 왠지 기분 좋은 걸?’

 

하지만 걱정이 들었다.

몸상태도 이 꼴인데 기억상실까지 당했다고 밝히면 그 여자친구란 사람은 얼마나 걱정 할까?

그런 생각에 잠깐 상념이 들 때였다.

벌컥.

누군가 문을 열어 고개를 돌렸다.

늘씬한 몸매에 긴 흑발을 한 아름다운 여자였다.

 

‘와. 진짜 이쁘다. 누굴 만나러 온 거지?’

 

중환자실에는 나 말고 세 명이 더 있었다.

우유를 먹는 꼬마애 한 명, 휴대폰을 보며 낄낄대는 할아버지 한 명, 화장실을 가서 지금은 없는 중년 남성의 빈 침대와 나. 이렇게 네 명이 있다.

그래서 주위를 둘러보는데 꼬마애와 할아버지의 시선이 내게 향하고 있지 않은가?

 

‘응?’

 

모델 같은 여자가 내게 천천히 걸어왔다.

 

‘어?’

 

와락

여자는 눈물을 글썽이며 나를 끌어안았다.

 

“!”

“오빠…! 사, 살아줘서 정말 고마워…. 흑흑. 내가 앞으로 오빠한테 더 잘할게. 끅끅…. 미안해 오빠… 흑흑흑.”

 

어딘가 익숙한 것 같으면서도 생전 처음 보는 아름다운 여자의 포옹에 나는 당황했고 얼어붙었다.

 

‘진짜? 이 사람의 남친이 나라고?’

“오빠…? 왜 그래? 아직도 많이 아픈 거야? 말은 할 수 있어? 흑흑.”

‘어떡하지?’

 

맞은편의 할아버지가 날 쳐다보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말했다.

 

“얌마. 사내 새끼가 뭘 하고 앉아있어? 안아주지 않고.”

‘일단은 안아주고 보자. 그 후에 말하던가 해야지.’

 

나는 어쩔 줄 몰라하는 손을 들어 여자친구로 추정되는 여자의 등을 감쌌다.

급하게 뛰어왔는지 따뜻한 감촉이 느껴졌다.

 

“끅. 오빠 날 용서해주는 거야? 정말로? 흑흑.”

 

기억은 상실됐지만 상식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쁜 여자가 우는 건 어떤 남자든 용서할 수 밖에 없다는 상식이 말이다.

더군다나 극진히 날 간호했다고 한다.

무슨 잘못을 했건 용서하지 못 할게 뭐가 있단 말인가?

나는 여자의 등을 토닥였다.

 

“그럼 그럼. 용서해줄게. 그…”

 

자연스레 이름을 부를려 했는데 기억나지 않아 말이 끊겼다.

 

“정말이야? 정말? 끅. 오빠 사랑해! 흑흑….”

‘살아서 다행이다. 이런 여친을 두고 죽을 뻔 했다니. 억울할 뻔 했네.’

 

나는 여자가 진정될 때까지 계속 등을 토닥여줬다.

 

 

 

*********

 

 

 

”…그게 진짜야? 기억상실… 이라고?”

 

나는 휠체어에 올라타 여자의 도움을 받으며 옥상으로 올라갔다.

아무래도 중요한 애기다보니 둘이서 이야기 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여자는 큰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응. 내 이름도 기억나지 않아. 솔직히 말해 네가 내 여친인 줄도 몰랐어.”

 

여자의 큰 눈은 더 없을 만큼 커졌다.

 

”여, 여친…? 내, 내가?“

“어? 아니야?”

 

분명 반응도 그렇고 여자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아니 오빠라고 했으니 여동생일 수도 있는 건가?

걱정이 될려는 순간 여자는 내 손을 꽉 움켜쥐었다.

 

“으응. 마, 맞아. 내가 오빠의 여친이야! 헤헤.”

 

여자는 환하게 웃었다. 그 미소는 태양보다 밝고 아름다웠다.

 

‘대체 이런 여자를 어떻게 여자친구로 삼은 거지?’

 

기억을 잃은 게 아쉽다.

분명 소중한 추억일 거다.

그래도 살아났다는 거에 감사함을 느끼자.

살아 있으면 기억은 언젠가 찾아질 테니깐.

 

“그래서 그런데 일단 내 이름 좀 알려 줄래?”

“아, 그렇지 참. 오빠의 이름은 방우진이야.”

“…방우진.”

 

난 내 이름을 조용히 읊었다.

생소하다는 것은 슬픈 기분이다.

난 그 기분을 떨쳐내기 위해 여자의 이름을 물었다.

 

“네 이름은 뭐야?”

“…난 방하은이야. 우리는 성씨도 같고 참 천생연분이다. 그치? 응? 응?”

 

방하은은 내 어깨를 짓눌렀다.

강한 힘에 순간 놀라 나는 말을 더듬었다.

 

“그, 그러게.”

‘방씨란 성이 흔하진 않은데 하은이 말대로 인연이긴 한가 보네.’

 

그런 방우진의 뒷모습을 보며 방하은은 손으로 입을 가렸다.

씰룩거려 터져나오는 웃음을 감추기 위해.

 

 

 

*********

 

 

 

1달이 지나 병원을 퇴원했다.

힘겨운 재활 과정 덕분에 어느 정도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됐고 나머지는 병원을 통원하며 하기로 했다.

몸은 움직일 수 있게 됐지만 기억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의 말로는 장기적인 현상일 수도 있다고 하니 최대한 뇌를 자극할 수 있게 추억이 있는 것들을 찾아보라고 한다.

 

“추억이라….”

“응? 왜?”

 

20살의 대학생이 몰고 다니는 차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고급스러운 차량이다.

그 차량의 뒷좌석에 몸을 누운 나는 운전대를 잡은 방하은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아니야. 그건 그렇고 운전은 언제 배웠어?”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배웠지. 오빠랑 같은 대학교니깐 같이 통학하려고.”

 

방하은은 시선은 앞을 유지한 채 귀를 쫑긋 세우는 게 보였다.

그 모습이 귀여웠고 운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지만 속에 품어놨던 말은 해야한다.

 

“미안해.”

“응?”

“병원비 말이야…. 훔쳐보려고 한 건 아닌데 네 휴대폰에서 보여 가지고….”

 

병원비가 최소 수 천 만원이다.

집에서 내주는 건가 했지만 방하은의 말로는 난 고아라고 하니 그런 사람이 돈이 많을 리 없다.

방하은은 무려 여자친구란 이유 하나만으로 그 거액을 감당해내고 있었다.

돈 문제로 수없이 깨지는 커플들을 생각하면 믿을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지난 한 달간 수업도 빠지면서 밥을 먹여주고 재활을 도와주며 심지어 화장실 가는 것까지 옆에서 부축해줬다.

그 고마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미안한 건 나지.”

“어?”

“아니야. 신경 쓰지마. 난 이제 오빠의 여자친구니깐….”

 

그게 무슨 말이냐며 되물으려고 할 때 차가 멈췄다.

옆을 보자 최소 3,40평은 되보이는 전원주택이 웅장함을 드러냈다.

방하은은 차에서 내려 문을 열어주고 말했다.

 

“여기가 우리 집이야. 오빠. 어때?”

“어, 엄청 크네….”

“내꺼는 다 오빠 꺼니깐 전에 그랬던 것처럼 부담 없이 행복하게 살자? 후후.”

‘대체 무슨 일을 하길래 돈이 많은 거지? 부모님이 부자인가…?’

 

나는 차에서 내려 방하은과 함께 현관문으로 걸어갔다.

분위기가 이상했다.

 

‘집 주변을 왜 이렇게 감쌌지? 펜스가 최소 3미터는 돼보이는데….’

 

마치 누군가를 가두기 위한 감옥같은 느낌이다.

펜스는 검은색 쇠창살로 삐쭉 솟아져있었으며 잔디는 무성의하게 깎여져 있었다.

이상한 건 이뿐만이 아니었다.

 

“현관문에 잠금장치는 왜 이렇게 많은 거야?”

 

멈칫.

방하은은 열쇠뭉치를 꺼내들다가 손을 멈췄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웃는 얼굴로 날 바라봤다.

 

“아, 집에 소중한 게 있었거든. 그게 신경쓰여서 말이야. 후후.”

“소중한 거?”

“응. 무척이나 소중해. 최근에 잃어버렸는데 다시 찾아서 다행이야.”

‘물건 같은 건가? 아무튼 찾아서 다행이네.’

 

더 묻고 싶었지만 방하은이 열쇠를 모두 돌려 잠긴 문을 열었다.

 

“자. 들어와. 여기가 우리가 동거하는 집이야~”

 

방하은은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은 한 눈에도 무척이나 높고 넓었으며 깨끗했다.

나도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서려는 순간.

두근두근.

두근두근.

 

‘어?’

 

심장의 급격한 박동에 내 온몸은 멈춰섰다.

마치 이곳에 들어가면 안 된다는 것 같은, 이상하지만 그런 느낌이 들었다.

 

‘뭐지?’

 

방하은은 미소는 온데간데없이 무표정으로 말했다.

 

“…왜? 안 들어올 거야?”

“그, 잠깐 심장이… 이상해서, 부정맥인가? 뭐지?”

 

방하은이 다가왔다.

 

“그런 이상소견은 없었어.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 온 거라 긴장했나보다. 후후. 자.”

“자, 잠깐만!”

 

방하은은 갑자기 거칠게 내 손을 잡아끌며 억지로 집 안으로 들이려했다.

반항하고 싶었지만 환자의 몸이라 그럴 수 없었다.

쾅!

방하은이 문이 닫자 심장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더욱 커졌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두근두근!

 

“오빠 긴장하지 말고…”

 

찰싹!

나는 내 어깨를 잡으려는 방하은의 손을 거칠게 뗐다.

방하은의 얼굴이 굳어지는 걸 보자 난 내가 한 행동을 깨달았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그, 하은아… 미안해. 내가 지금 제정신이 아니라서….”

“…2층.”

“어?”

“오빠 방은 2층에 있는 맨 오른쪽 방이니깐. 거기 가서 쉬고 있어. 옷만 갈아입고 찾아갈 테니깐.”

 

사근사근한 말투가 차갑게 변했다.

방하은은 그 말을 남기고 휑하니 사라졌다.

 

‘멍청한 놈! 갑자기 왜 그러냐? 저런 착한 여친을 화나게 만들다니….’

 

다 내 잘못이다.

이따가 보면 고개숙여 사과해야겠다.

나는 멈춰지지 않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2층으로 올라가 내 방을 열었다.

끼익.

불을 키자 침대와 에어컨 그리고 탁자와 의자가 보였다.

그 외에는 아무런 가구도 보이지 않았다.

허리를 숙여 바닥을 손으로 쓸었다.

어제 청소라도 한 것마냥 먼지 하나 손에 쓸리지 않았다.

기억을 잃었으니 생소한 건 당연하다.

나 대신 방을 청소해준 여자친구에게 고마운 건 당연하다.

 

‘하지만 이 꺼림칙함은 대체… 어?’

 

방 가운데 밝은 전등에 희미하지만 어떤 검은 그림자가 보였다.

나는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의자를 끌고와 올라가서 전등 위 빈틈을 손을 간신히 집어넣었다.

손가락을 뒤적거리자 종이가 잡혔다.

종이는 검지만한 크기였다.

거기에는 피로 쓴 듯한 붉은 색 글자 네 마디가 적혀 있었다. 

 

『죽고 싶다』

 

“…?”

 

둥.둥.

바깥에서 누군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집에 아무도 없을 테니 방하은이 분명했다.

나는 서둘러 의자를 제자리에 갖다 놓고 메모지를 주머니에 숨겼다.

달깍.

문이 열리자 다리까지 내려오는 흰 와이셔츠로 옷을 입은 방하은이 보였다.

방하은은 날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왜 그렇게 땀을 흘리는 거야? 에어컨 틀어줄까?”

“어, 어. 좀 덥네. 하하.”

‘그 메모지는 대체 뭐지? 이게 왜 내 방에 있는 걸까?’

 

머리가 혼란스럽고 깨질 것 같다.

정확히 이 집에 들어오고부터 그랬다.

 

‘대체 왜?’

 

그 의문이 머릿속을 헤집을 때.

사르륵.

방하은이 와이셔츠의 단추를 풀었다.

나는 황급히 눈을 감았다.

왜냐하면 굴곡 있는 아름다운 나신이 시야에 보였기 때문이다!

 

“가, 갑자기 옷을 왜 벗는 거야? 그 꼴은 뭐고?!”

“응? 연인끼리인데 왜 그래. 후후. 나도 좀 더워서 그래.”

‘그 말을 누가 믿을까!’

 

방하은이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이 거부감은 대체 뭘까.

여자친구에게 드는 이 거부감은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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썼던 거는 재미가 없어 유기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