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김얀붕! 점심 먹으러 가..... 얼레? 너 뭐 쓰냐?"


"안 돼! 보지마!"



....라는 일이 있었던 것이 이틀 전, 그리고 오늘 얀붕이는 부탁을 해왔다.


"얀순아! 진짜 부탁이야! 고백 편지 쓰는 것 좀 도와줘....!"




* * *



내 이름은 이얀순.

얀붕이와는 14년째 소꿉친구인 사이다.

사실 이쯤이면 다들 예상하고 있겠지만, 김얀붕은 내 미래의 남편이 될 남자다.


몰론, 나만의 생각이긴 하지만....

하지만 '예전부터 너를 좋아했어'라는 류의 고백은 소꿉친구만이 할 수 있는 최강의 무기이기도 하고, 어릴 때부터 허물없이 지내왔으니까 서로가 편하기도 하다. 게다가 요즘은 일부러 이것저것 어필하고 있으니까, 얀붕이도 마냥 외면하기는 어렵겠지.


무엇보다도, 얀붕이만 떠올리면 심장이 터질 것 같다.

언젠가부터 얀붕이의 얼굴, 목소리, 성격, 그리고 나를 향해 지어주는 미소까지 모든 것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턴 겉으론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속으로 더 앵겨붙고 가까이 있고 싶은 마음이 깊어지는 것이다.

맨 처음엔 별 생각 안 했지만, 얼마 안 가서 나는 이 것이 '사랑'이라는 것임을 깨달았다.


나의 첫사랑이자 짝사랑, 나는 무려 5년 동안 그걸 해오고 있다.

하지만, 이 짝사랑도 이제 끝날 때가 왔나 보다.


이틀 전, 얀붕이가 몰래 숨겼던 편지.

빛의 속도로 감췄던 얀붕이였지만, 난 그 짧은 찰나에도 분명히 보았다.


'얀순이에게.'


설마 했는데, 그게 고백편지였다니!

게다가, 내 취향에 맞추고자 직접 나한테 부탁까지 하다니!


이런 기회를 놓칠 순 없다.

내 취향을 잔뜩 담아 고백편지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얀붕이가 그 아름다운 목소리로 내게 낭독을 해주겠지.

난 눈물을 흘리며 승낙을 할 것이고, 우리 둘은 찐한 사랑의 키스를 할 것이다.

아마 그 때쯤이면 분위기에 취해 덮칠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미래를 생각하면 상관은 없겠지만....


아차, 머리 속이 너무 꽃밭으로 가득 차 있었다.

침착해. 오히려 이럴 때일 수록 더 내 마음을 드러내면 안 된다.




* * *




"여기다가 이런 문구를 추가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너의 미래까지 책임질 수 있어. 그만큼 넌 좋아해' 이러면 내가....아니 상대가 더 낭만적이라고 느낄 것 같은데?"


"좀 그런 것 같은데....보통 이런 말은 고백편지엔 잘 안 쓰지 않아?"


"아니라니까~ 내 말 믿어봐. 내가 고백편지 여러 번 받아봤잖아."


사실 매일 자기 전에 하던 망상에서 얀붕이한테 받던 편지들이지만....


"알겠어. 일단 너 믿고 쓴다."


"나만 믿으라니까. 분명히 당장이라도 덮치게 될걸?"


"응? 방금 뭐라고 했어?"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아닌데, 너가 분명히 뭐라고 했-"


"아무 말도 안 했다니까?"


"아...알겠어."


하마타면 속마음을 뱉어버릴 뻔했다. 조심해야겠다. 함락되는 얀붕이의 모습은 고백일에 봐도 늦지 않으니까....




* * *



고백편지가 드디어 완성되었다.


"캬~ 내가 안 도와줬으면 어쩔 뻔 했어? 상당히 잘 썼지?"


"진짜 괜찮은 것 같아! 나중에 밥 한 번 살게!"


얀붕이는 해맑은 웃음을 지으면서 내게 감사를 표한다.

저 표정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얀붕이는 모를 것이다.


내 취향을 맘껏 담아 편지를 썼으니, 이제 남은 것은 받는 것 뿐이다.



"그래서, 편지는 언제 줄 거야?"


"그냥 지금 주려고. 더 이상 참기 힘들거든."




지금이다.




"얀순아."




바로 지금이다.




"나 사실..."




내 짝사랑이 끝나는 순간.




"너에게...."




행복한 고백과 사랑의 키스가 오는 순간.




"부탁 하나만 할 수 있을까?"


.....응?



"그... 8반 박연순한테 이 것 좀 전해줄 수 있어? 내가 가면 들킬 것 같아서..."


"....무슨 소리야?"


"넌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니까, 솔직하게 말할게. 작년부터 연순이한테 반한 것 같아. 근데 어떻게 고백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끙끙거리다가, 걔가 아날로그 감성 좋아하는 걸 알게 되서 고백편지를 쓰게 된거야. 근데 나 표정 잘 못 숨기잖아. 내가 가면 무조건 들킬 것 같아서, 한 번만 더 도와주면 안 될까? 내가 나중에 간식도 살게."


"......"


"...얀순아?"


"와....내가 착각한거였구나. 내가 잘 못 봤네. 내가 글씨를 잘 못 봤어, 너무 흥분해서."


"야...얀순아. 갑자기 왜 그래....?"



띠리링 띠리링 띠리링.

'잠시 후 점심시간이 끝나니 모두 반으로 돌아가 수업을 준비해 주시기....'



"헉! 점심시간 다 끝났다...! 얀순아, 한 번만 부탁할게! 고마워!"




* * *




그러곤, 나와 편지만 남겨져 버렸다.

내가 아니었다.

내가 착각한 것이었다.


얀붕이가 좋아하는 여자는 내가 아니라 나와 이름이 비슷한 딴 년이었다.


왜 내가 아닌거지?

그렇게 어필을 많이 했는데?

얀붕이 취향에 맞추기 위해 그렇게 몸을 많이 가꿨는데?


왜 내가 아닌거지?

얀붕이가 고민있을 때마다 다 들어줬는데?

위로도, 격려도 항상 내가 해줬는데?


왜 내가 아닌거지?


왜 내가 아닌거지?


왜 내가 아닌거지?



왜 내가 아닌거지?

왜 내가 아닌거지?

왜 내가 아닌거지?


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왜 내가 아닌거지?



...용서 못 해.

좋아하는 마음은, 내 쪽이 더 크다.

사랑하는 정도도, 내 쪽이 더 크다.

몸도 얼굴도, 내 쪽이 더 낫다.


근데 왜 나를 선택하지 않은거지?



이미 너무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

이젠 되돌릴 수 없다.




💔 💔 💔




"흐잉~ 얀순아, 나 까였어!"


"진짜? 괜찮아?"


"날 한 번도 남자로 본 적이 없대. 게다가 이제 학교에서 말 걸지 말아주래! 엉엉엉...."


"괜찮아. 내가 있잖아. 자, 진정하고, 울지 마. 너가 그런 얘 때문에 울 이유는 없잖아?"


"흐끅, 너가 그렇게 도와줬는데... 진짜 흐끅, 미안해...."


"괜찮아, 자 좀 더 와. 나한테 안겨도 괜찮으니까...."



사실 얀붕이는 까이지 않았다.

애초에 편지는 전해지지도 않았으니까.

대신, '누군가'가 필사해서 쓴 거절과 악의가 가득 찬 편지가, 빅연순의 이름으로 대신 전해졌을 뿐이다.


"미안해, 흐끅, 도와준게 허투로 되어버려서..."


아니야. 네 잘못이 아니야.

눈웃음으로 널 홀린 그 년 잘못인거야.


그 쓸모없는 년 대신, 내가 너를 사랑해줄게.


"얀붕아. 괜찮아. 좀 더 안겨줘. 오늘 하루종일 위로해줄 수 있으니까, 옳지 착하다~ 그래. 괜찮아. 괜찮아. 너와는 인연이 아니었나봐."


당연하지. 너의 인연은 나야. 나라고.


"괜찮아~ 오늘 끝나고 우리 집에 갈래? 맛있는 것 좀 먹고 예전처럼 놀다보면 기분도 좀 나아질거야."


"응, 훌쩍, 고마워..."


"눈물 그치고. 토닥토닥~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너한텐 내가 있잖아?

나만 있으면, 뭐든지 괜찮을거야.

그래, 오늘 집에 가서 '재미있게' 놀자.


예전보다, 더 재미있게 노는거야.

그년 고백 따윈 생각도 나지 않을만큼...



괜찮아.

고백편지를 받지 못한다면,

고백편지를 얻어내면 되는거야.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




진심이야, 얀붕아.

다음 번엔 '제대로 된' 고백편지를 전해줘.


그 때도 눈치채지 못한다면....





진짜로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 💌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