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드러지게 핀 목련꽃 아래서 너는 나에게 말했다.

 

“가지마” 라고 말하는 너의 눈에는 애욕과 집착이 서려서, 너의 빛나는 미래를 위해 나는 너를 등졌다. 

 

그 끝이 지금처럼 아플걸 알았다면, 처음부터 너를 품지 말아야 했는데.

 

왜 사람은 이렇게나 아프고 나서야 깨닫는 걸까.

 

 -역천마 장무영의 기록 중 발췌.

 

 

 

무영은 차가운 방구석에서 눈을 떴다. 밤새 만들다만 옷가지가 널려있는 방안을 보다가 방안에 뿜어져 나오는 입김에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마도 아궁이의 불이 꺼진 건지 방안이 냉골마냥 차가웠다. 

 

무영은 추위에 뻣뻣하게 굳은 팔다리를 주물러 펴고 방밖으로 나와 부엌으로 향했다. 부엌에 갔을 때, 그는 해뒀던 장작이 다 떨어졌음을 깨달았다. 무영이 한숨을 쉬고 집 밖으로 나와 마른 나뭇가지와 짚더미를 챙겨 부엌으로 가 불을 붙였다. 

 

저 먼 동이 땅에서 일하다왔다고 한 장인이 지어준 집은 부엌에서 불을 붙이면 바닥이 따뜻해지는 집인지라 무영은 부지런히 불을 붙였다. 방이 추우면 손이 곱아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납기일이 사흘 남았나..."

 

옷을 완성하려면 부지런히 손을 움직여야 했다. 이래봤자 겨우 철전 이백문이라는 싸구려 가격에 후려치기 당할게 뻔했지만 이 옷 만드는 재주가 아니면 굶어 죽을게 눈에 선했기 때문에 자신을 등쳐먹는 서씨 포목점에라도 옷을 팔아야 했다. 

 

"....."

 

힘겹게 아궁이에 불을 땐 무영이 손을 녹이기 위해 불 근처에서 불을 쬐고 있을 때였다. 

 

"야, 눈깔병신."

 

마당에서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린 무영이 부엌에서 나와 천천히 밖으로 나왔다. 

 

"...왜."

 

마당엔 언제나와 같이 서씨 포목점의 딸내미가 팔짱을 끼고 서있었다. 서역에서 들여온 염료로 물들인 건지 샛노란 머리카락을 한 날카로운 눈이 살짝 찡그려진 채로 무영을 보고 있었다.

 

"너 굶어 죽었나 살펴보고 오라더라. 며칠이나 마을에 얼굴을 안 내미니까 다들 죽었을 거라더라."

 

"안 죽었으니 됐잖아." 

 

무영의 말에 삐뚜름하게 무영을 바라보던 서씨 포목점의 딸내미, 서무화가 손에 들고 있던 보자기를 대충 내려놓았다. 

 

"찬거리 해놨으니까 대충 먹어."

 

"... 가져가."

 

무영의 거절에 무화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등신새끼, 남이 주는건 곱게 받으라고 병신아. 너 울 아빠한테 돈 올려달라고 하라고 한건 했냐?"

 

"니가 무슨 상관인데?"

 

"넌 우리가 몇 년이나 치고 박았다고 생각하냐?"

 

"... 나랑 놀다간 부정 탄다."

 

무영이 제 왼눈을 가린 천을 지긋이 문질러 누르자 무화의 입이 굳게 다물렸다. 

 

"등신."

 

그대로 몸을 돌려 마을로 내려가는 무화의 등을 무영은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그러다 고개를 휘휘 젓고는 그녀가 가져온 보자기를 들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방안으로 들어와 제 눈을 가린 천을 치운 무영이 한쪽 구석의 동경을 바라보았다. 

 

약혼녀에게 줄 패물로 준비했던 동경이지만, 무영의 집안이 역병으로 죽고 무영의 눈에 귀안이라 불리는 증상이 일어나자, 그대로 마을에 찾아왔던 낭인과 도망쳐버려 건네주지 못한 동경이었다. 

 

동경에 비치는 제 얼굴을 바라보던 무영이 고개를 돌려 바닥에 놓여진 옷을 바라보다 다시 바늘을 집어 들었다. 부지런히 하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이 옷은 이 성을 지배하는 백화궁의 궁주에게 들어갈 옷이었으니까. 

 

어쩌다 그런 커다란 곳의 궁주가 제가 만든 옷에 관심을 가졌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던 무영이 따끔함에 작게 혀를 찼다. 벌써 몇 벌이나 만들었는데 한눈을 팔았다고 제 손을 찌른 바늘을 보며 무영이 한숨을 쉬었다. 

 

바늘에 찔리기 전까지 얼마나 상념에 잠겨 바느질을 한 건지, 정신을 차리니 해가 서쪽으로 느릿하게 져가고 있었다. 비싼 등을 켤 돈은 없으니, 오늘의 작업은 여기까지 일테지. 저녁을 먹고 잘 생각을 한 무영이 창을 닫고 문을 열어 천천히 집 밖으로 나왔다. 

 

찌뿌둥한 몸을 해결하기 위해 허리를 쭉 당겨 기지개를 편 무영이 자신의 집으로 다가오는 한무리의 인영을 바라보았다. 검은 바탕에 하얀 목련.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옷을 입고 있는 가운데, 가운데에 선 여자만이 유일하게 잿빛의 옷을 입고 있었다. 무영은 그들의 복장을 보고서, 그들이 백화궁에서 나왔음을 꺠달았다.

 

"진짜네. 귀안이네 저거. 그리고... 사람이야 목내이야? 해골이라도 해도 되겠다야."

 

가운데 서있던 여자가 인상을 쓰며 들고 있던 부채를 쫙 펼쳐 제 입가를 가리는 광경을 보며 무영은 자기가 눈을 가리는 천을 하지 않았음을 깨닫고 손으로 눈을 가렸다. 그와 동시에 무사들이 거칠게 싸리문을 열고 들어와 무영에게 다가왔다.

 

"뭐.. 뭡니까.."

 

무영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무영은 그대로 오금을 걷어차여 거칠게 바닥에 무릎 꿇려졌다.

두 명이 무영을 붙잡은 사이, 나머지 무사들이 집안으로 들이닥쳐 방안을 뒤지고 있었다.

 

"뭐긴, 여기서 귀신들린 사람이 있다고 해서 왔는데."

 

무영을 요리조리 뜯어보던 여자가 한숨을 쉬며 부채를 접었다.

 

"귀안이긴한데 영가의 흔적도 없고, 상단전이 열리거나 백회가 트이지도 않았고. 허탕이네."

 

무사들에게 물러서라고 지시한 여자가 잠시 무영의 방안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한순간 눈에 이채를 띄며 말했다.

 

"옷이네. 헤에, 그렇구나 그럼 네가.."

 

짓궂은 미소를 지은 여자가 돌아섰다. 

 

"궁으로 돌아간다. 귀안이 열렸지만 방술사도 아닌 놈이야. 곧 귀신들려 죽거나 영원히 쥐죽은 듯 살겠지."

 

그 말을 끝으로 여자와 무사들은 다시 돌아갔다. 무영은 그대로 바닥에 엎드린 채로 숨을 골랐다. 화낼 힘도 없었다. 힘겹게 몸을 일으켜 뒤를 돌아보자, 엉망진창으로 어지럽혀진 방안이 보였다. 무화가 가져다줬던 찬거리는 거칠게 마당에 내팽개쳐진 채였다.

 

무영의 어깨가 절로 움찔거렸다. 뜨거운 입김이 무영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한동안, 무영은 마당에 남아 소리를 죽여 흐느꼈다. 

 

왜 자신만, 어째서 나만, 역병에 걸리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가족들이 다 죽어가는 걸 보며 살아남고 싶지 않았다. 도망친 약혼녀는 진심으로 사랑했었다. 무영은 묵묵히 그 모든걸 속으로 우겨넣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한동안 방안에선 소리 죽여 흐느끼는 소리만 들렸다.

 

* * * 

 

며칠 후 

 

일거리를 마친 무영이 옷가지를 무명보로 잘 감싼 뒤에 제 눈에 천을 둘렀다. 동경에 비친 제 모습은 해골이 천조가리로 제 얼굴을 가린 듯한 모양새라, 저도 모르게 실소가 나왔다. 오늘은 마을로 내려가는 김에 해야할 일이 많았다. 쌀도 사야하고, 색실도 새로 사야했다. 일당으로 살 수 있을지 모르겠네. 그렇게 생각하며 무영이 집을 나섰다. 

 

그리고 나무 위에서 마을로 내려가는 무영을 바라보는 남자가 있었다.

 

"저게 귀안이라고?"

 

새빨간 입술에 새빨간 머리카락. 마치 피같이 붉은 색 일색의 옷을 입은 남자가 무영을 보며 제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았다.

 

"무슨 맛일지 궁금하긴 하네. 큭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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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도 사라지고 이전에 써 놓은 것도 맘에 안 들던 참에 천천히 리메이크 했다. 기다려준 얀붕이들 미안하다. 

복귀하려고 했는데 갤이 없어져서 한참 찾다가 돌아왔다. 


연재 주기는 주에 한 번이다. 취업하러 다니면서 생활이 꼬인 것도 있고 뭐 개인 사정으로 컴을 오래 붙잡을 수가 없어서 이리 정했다. 


이제 여기 있으니까 여기에 연재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