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https://arca.live/b/yandere/9209531

1편 https://arca.live/b/yandere/9213173



2편 https://arca.live/b/yandere/9307852










아무리 좋은 주인이라 하더라도 그가 좋은 남자라고 생각한다는 것은 아니다.


내가 테스 백작에게 가지고 있는 감정 또한 그러한 호의와 비슷한 것이었다.




그러한 단순한 호감이 연모로 바뀌는 계기는 어느 날 밤이었다.





평소와 같이 집안의 청소를 끝내고 나는 백작이 각 사용인마다 마련해준 작은 방으로 돌아갔다.





엄밀히 말해서 이 저택의 모든 방은 백작의 소유이며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이 방은 '빌린'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백작이 방문을 벌컥 열어제끼는 성격은 아니었기에 이 공간만큼은 내 방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방에 들어온 나는 조심스레 바랜 사진 한 장을 펼쳐보았다.
이미 찍은지 몇 년이 지나 해질 대로 해진 그 사진은 색이 바래 찍힌 게 누구인지도 잘 보이지 않았다.





조그마한 왕국.


결코 강대하다거나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그 곳에서 나는 공주로써 뛰어놀고,거닐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군대가 밀고 들어오기 전까지는.



백전백패.


전쟁은 커녕 사람들간의 소소한 다툼이 전부였던 우리 나라는 순식간에 멸망했고 패배한 왕족의 말로는 그렇게 유쾌하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내 조국을 정복한 나라의 노예로 팔려나가게 되었다.


저항하려 했다. 싸우려 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경멸도,동정도 아닌 압도적인 무관심이었다.



네가 무엇을 하든 상관없다는 듯한 태도. 그나마 내가 죽지 않을 정도로만 신경쓰는 처사.




그리고 나는 이내 맞서싸우는 걸 포기했다.

 프랑스에서,일부 귀족들이 승전기념이라며 노예 시장에 찾아오기 전까지는.


비록 주인들 앞에서 말은 하지 못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들을 수 있는 것이 더욱 많았다.



내 전 주인들은 자신들의 영광스러운 승리를 기념하는 트로피로서 나를 원했고 나는 트로피처럼 딱딱하게 대응해주었다.



수많은 귀동냥을 통해서 나는 이 전쟁의 다양한 소문을 들었다.


당라르 후작이 커다란 공을 세웠다는 소문, 페르몬 장군은 이번 전쟁을 통해서 또 한 번 승승장구 할 것이라는 소문,
그리고 테스 백작이 뒤에서 전쟁물자를 계속해서 지원해줬다는 소문까지.




당라르와 페르몬은 내가 생각한 그대로의 귀족상이었다. 능력있고,젊고,실로 오만한.

이 둘은 내가 노예 시장에 있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나를 당장 사들였고 며칠 후 기분나쁜 표정으로 나를 돌려보냈다.

그들은 두려움,혹은 기쁨에 가득 찬 노예를 원했지만 정작 온 것은 말 안하는 인형이었으니까.


그것도 속에는 시커먼 흑심을 품은.


수많은 이들을 죽여온 둘이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누구보다도 자신을 향한 살기에 예민해지는 듯 했다.

나는 그저 속으로 눈물을 삼키며 그들을 놓칠수밖에 없었다.



나는 자연스레 테스 백작을 기다리게 되었다. 직접 전쟁에 나가지는 않았으나 누구보다도 큰 공헌을 한 인물.



그러나 내가 생각한 것보다 그는 나에 대해 관심이 없는듯 보였고 내가 그에게 고용된 것 또한 단순한 우연일 뿐이었다.



이 저택에서 일하면서 그는 다른 이들과는 전혀
다른 귀족이라는 것을 잘 알게 되었다.



오만하지만 그것을 뽐내지 않는다. 검소하지만 인색하지 않다.

무뚝뚝하지만 차갑지는 않다.


이상적인 사람이자 이상적인 주인.


하지만 나는 아직 잊지 않았다. 페르몬과 당라르때는 미숙해 때를 잡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이야말로....준비는 되었다.

테스 백작은 다른 둘과는 달리 내가 무엇을 꾸미는지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는듯 했다.

 자신이 후한 대우를 해주는 만큼 자신을 배신할 필요가 없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방심이 아마 유일한 죽음의 원인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해진 가족사진을 접어 소중히 품에 넣고 대신 그 안에서 자그마한 비수를 꺼냈다.


도망치는 것 까지야 무리라 하더라도 그의 옆에서 찔러넣는 것 정도야 충분히 가능하다.



며칠동안의 저택 생활동안 그에게 익숙해져버렸고 그를 정말 찔러야 하는 회의감이 들었지만

계속해서 저택내에서 들려오는 소문은 그야말로 이번 전쟁의 진짜 주역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이것은....정당하다. 나는 복수를 할 권리가 있다.





나는 그렇게 되뇌이며 백작의 방으로 조심스레 걸어가 문을 두드렸다.




"누구냐."




"......"



나는 문을 한 번 더 두드렸다.




"문은 열려있으니 들어오도록."




나는 조심스레 비수를 들키지 않게 소매속에 넣고 방으로 들어왔다.




"늦은 시간에 별일이군. 뭔가 안 치운 거라도 있나?"



"......"




백작은 나를 지나쳐 문을 닫으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나를 지나친 그 등은 너무나도 무방비해보였다.



찌른다면 지금뿐.




내가 비수를 손에 쥐고 꽂으려는 순간 백작이 작게 말했다.




"복수를 할 거면 원한이라도 말해야 하는것 아닌가?"




땡그렁-




비수가 손에서 떨어졌다. 단순히 백작이 내 생각을 눈치채서가 아닌 그의 말 때문이었다.




"......."




"아,여기는 둘 밖에 없으니 편히 말해도 되네."






말해도 된다고? 대체 언제부터? 무엇 때문에?





"....!"




"혹시  몇 년 안 썼다고 해서 벌써 까먹은건가? 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언어야말로 한 사람의 국가적 정체성을 결정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



"당신,어떻게 그 말을!"



"오. 다행이군. 혹시나 기나긴 노예생활때문에 진짜로 벙어리가 되어버렸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폴리트 왕국의 의지는 훌륭하게 계승되고 있는 모양이야."



"언제부터?"



"언제부터 자네가 말을 할 수 있는 걸 알았냐고? 음....의심을 한 건 처음 자네가 내게 화상자국을 보였을 때였고 확신을 가진 건 그로부터 이틀 후였다고 할까."




"그렇게 빨리? 하지만 저는...."



"그래그래. 실로 훌륭한 연기였지. 하지만 이미 나는 진짜 벙어리를 알고 있거든.

그들은 절대 쓸모없는 고통을 받으면서 비명도 안 지를 정도로 의지가 강하지는 않네.

그런데 굳이 화상을 입어가면서까지 입을 다문다?
그럼 벙어리라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무언가 초인적인 의지를 가진 이라고 생각하는게 타당하겠지.
그리고 전 주인인 당라르와 페르몬한테 들었는데 자네는 이상하게 중얼거렸다면서?

언어란 참 신기한 게 어투만으로도 그것을 언어다,라고 알아들을 수 있는가 하면 무의미한 웅얼거림으로 생각할 수도 있단 말이지.
아마 스스로도 언어를 잊지 않기 위해 노력을 한 모양이더군."




"하....처음부터 알고 계셨던 건가요. 저만 백작님 손에서 놀아난 셈이군요. 그렇게 저희 왕국도 뒤에서 쥐락펴락...."



"음? 아니. 나는 딱히 폴리트왕국을 멸망시킨 건 아니다만."



"거짓말! 그 말도 분명히 저희왕국을 이간질시키기 위해서.....어?"



프랑스에만 있던 백작이 폴리트어를 배우는 게 가능했을리가 없다.


처음부터 폴리트 출생이거나,혹은 누군가에게 배우거나.



내 표정에 나타난 당혹감을 읽었는지 백작이 말했다.



"왕가의 마지막 보호자로서 이 정도 회화는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공주님?"



"네?"




백작은 히죽 웃으며 책장에서 책을 한권 힘껏 빼냈다.



그러자 조용한 진동음과 함께 책장이 마치 문처럼 열리더니 그 안으로 길쭉한 통로가 보였다.




"들어오시죠."



"백작님,아니 당신을 대체 어떻게 믿고...."




"그럼 이 자리에서 귀족을 살해하려 한 노예로서 너를 교수대에 올리는 것도 괜찮겠군."




"칫....."




그 말대로다.

등 뒤에서의 기습도 읽어내는 백작을 상대로 내가 다시 덤벼봤자 결과는 똑같을 뿐이다.




나는 조심스레 통로를 걸어 내려갔고 백작이 뒤따라 걸었다.





몇 분 정도 걸었을까,나타난 것은 커다란.....




"고문실?"




보기맘 해도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부터 도대체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 건지조차 모르겠는 도구까지. 인간에게 고통을 주기 위한 방이 그곳에 있었다.



"하,수호자니 뭐니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더니 결국 이런 더러운 욕망으로 가득 차 있었군요. 그렇다 하더라도 제 의지만큼은 결코..."




"여기가 아니다. 더 밑이지. 이곳의 주인은 따로 있어."



백작은 고문실 벽 뒷편으로 다시 자그마한 통로를 보여주었고 그곳을 따라 내려가기를 다시 몇 분.







"에델?"


"아버지?"





나는 가족과 재회하게 되었다.




"다,다,당신....아니,백작님. 도대체 이게 무슨..."



"왕가의 수호자라고 말했잖나. 폴리트 왕국의 왕족들은 꼭 필요한 인물이라서 말이지."



"필요하다니,대체 무슨 소리죠?"



"복수란다,에델."



부드럽게 말씀하시는 아버지가 백작을 바라보는 눈은 마치 신을 신봉하는 신도의 그것과 같아서-




"테스 백작의,우리 폴리트 왕국의 모든것을 파멸시킨 이들을 향한 완벽하고 아름다운 복수말이다."



"네? 대체 누구를 향해서..."


"당라르 카루스에게! 페르몬 리아트에게!"




백작이 지금껏 들어보지 못한 격정적인 어조로 말했다.

그 목소리에는 헤아릴 수 없는 분노와 증오만이 끓어넘치고 있었다.




 "빼앗긴 나의 14년을 위해! 잃어버린 나의 마음을 위해!

오직 한 번만을 위해서 준비된 계획.

둘의 완전한 파멸을 보느냐,내가 먼저 고꾸라지느냐. 오직 신만이 옳음을 결정하시리라!"



아버지를 비롯한 전 폴리트 시민들이 백작의 계속되는 웅변을 듣는 와중 나는 어렴퓻이 떠올렸다.




아아,이거였구나. 내가 그 날 본 백작의 눈 안쪽에 숨겨진 것은 열정도,사랑도 아니었다.

단순한, 그렇기에 너무나도 강렬한,

 복수심이었다.



















휴 벙어리 떡밥 초스피드로 풀어서 전개 병신이어도 이해좀.....


빨리 복수끝내고 얀파트 쓰고싶은레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