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온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

철혈 중순양함 론


1화


"엔터프라이즈, 방금 귀환했다"


힘차게 문을 연 그녀는, 늠름한 생김새를 특징으로 하는 함선이였다


"어서 와 엔터프라이즈"


잠시 펜을 멈추고, 그녀의 귀환을 축하했다

앉아 있던 시리우스도 허리를 꾸벅였다


"보고할 것이 있다. 잠시 괜찮을까?"


"그래, 시리우스, 홍차 좀 가져다 주겠어?"


시리우스는 내 말에 끄덕이고 퇴실했다

손님 접대 또한 그녀의 일이였다


홍차를 만들어 줄 다른 메이드를 찾아야 겠는데

역시 그녀의 홍차는 다른 함선들에겐 낼 수가 없어...


귀찮은 일을 생각하니 또 한숨이 나와버렸다

아직까지 대체로 언급은 피하고 있었지만

언젠가는 말해야 할 일이였다

그러나 열심히 노력하려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말문미 막혀버렸다


결국 오늘도 의식하지 않도록 냉정하게 대하는 날이 와버린 것이다


"해역 순찰엔 별 문제는 없었다"


"그것 참 잘됐군"



문제없다고 말하는 것 치고는, 얼굴이 어딘가 어두워보였다

억지로 재촉하지 않은 채, 주의 깊게 듣는 태도로 일관했다


"철혈과 유니온의 합동작전이 있었다..."


그 말만 들어도 대강 짐작이 갔다

최근에 들어온 함선을 말하는 거겠지


"론에 관해서인가?"


내가 금방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자, 엔터프라이즈는 고개를 끄덕였다


"론은 다른 함선들과는 많이 다르다

그래서인지 주변에 비해 조금 뜬 것 처럼 느껴진다"


"여기 온지 얼마 안돼서 그래

모두들 처음엔 익숙하지 않았잖아?"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아는 다른 함선들...

특히 어린 아이들은 무서워 하고 있다"


"그렇군..."


엔터프라이즈가 가볍게 골머리를 앓았다

그녀가 전투 이외에서 그런 곤란한 얼굴을 하는 것은 드물었다


"다음에, 비스마르크와 한 번 상의해 볼게"


"알겠다"




철혈의 리더이기도 한 비스마르크

함선들과의 분쟁이나 상담은 소속되어 있는 리더를 통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정해진 바는 없었지만, 암묵의 룰 같은 거였다


사쿠라라면 나가토

로얄이라면 엘리자베스

유니언은 리더라는 존재는 없지만

문제에 관해서는 엔터프라이즈가 상담해 응해 주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철혈의 경우는 더욱 그랬다

다른 진영보다 동료의식이 강해

마치 가족과도 같은 사이인 이들을 상대하는 이상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비스마르크의 존재는 매우 컸다


다른 진영과 트러블이 생기기 전에 빨리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미안하다, 어두운 얘기부터 꺼내서

하지만 좋은 소식도 준비되어 있다"


그녀는 무언가 자랑스러운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녀가 전역에 나갔을 때는 자주 이렇게 직접 보고를 하러 와주었다

그리고 그 때의 공적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해 주는 것이였다


특히 내가 사무일을 중심으로 하면서

제대로 밖에 나가는 일이 없어지고 나면서, 자주 방문해 주게 되었다

나는 그런 그녀의 이야기가 좋았다


그 어느 때보다 이번 공적을 강하게 말하고 싶어 하는

그녀의 모습에 흥미를 끌었다

눈 앞의 문제를 좀 더 뒤로 미루고, 그녀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내 키는 평균보다 비교적 적었다

정면으로 향할 시, 그녀의 어깨에 시선이 맞았기 때문에

나는 고개를 들어올려, 그녀의 눈을 마주칠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흐뭇해 하고, 흐흐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번에 큐브를 얻었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소식에, 나는 매우 놀랐다


무리도 아니지


큐브는 마치 함선들을 건조하는 자원 같은 것

이것이 없으면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었다


제조방법이나 원료, 성분 등

기본적인 것 까지 미지의 소재인 큐브는 쉽게 구할 수 없었다

때문에 하나만 구해도 엄청난 소득이였던 것이다


그런 그걸 구해주다니

이런 반가운 소식은 더할 나위 없었다


나의 과장된 반응을 보고 만족했는지, 기쁜 듯 다시 웃는 그녀

나는 조금 부끄러워하면서, 조금 침착한 모습으로 다시 앉았다


"귀중한 큐브다. 잘 써주길 바란다"


"고마워"


그녀는 내게 다가서며


"고마운가? 그럼 상은 뭐 없나?"


"...아"


그녀는 자신의 팔과 내 팔을 맞닿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겹쳐지는 정도에 이르렀다

어쩌나 강하게 밀어붙이지는지, 아플 지경이였다


놓치지 않겠다


뭔가 그런 의도를 조금 느꼈다


"나는 전쟁터에 있을 때가 가장 편해, 거기야말로 내가 있어야 할 위치니까

하지만, 외로움도 있어. 그곳에서는 당신을 만날 수 없잖아?

가끔은 함께 전선에 서지 않겠어?

지휘해주는 사람만 있다면, 나는 더 잘해낼 수 있다

예전처럼 내 곁에서, 나의 전장 활약을 지켜봐 줘"


"...노력해볼게"


사무일이 너무 바빴다. 겉치레가 아니라 진짜로...


예전과는 달리 함선이 늘어난 지금은

제반 관리를 포함해, 할 일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옛날에는 지휘를 맡았던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일이 좀처럼 없었다

엔터프라이즈를 비롯한 신뢰할 수 있는 함선들에게 

군사를 맡기는 실정이였다


"지휘관이 바쁜 건 알고 있어...

훈련도 실전도 못한채, 줄곧 이곳에서 서류와 싸우고 있다

이곳이 당신의 전쟁터

하지만 그 사실을 알고 있어도, 외로움은 없어지지 않는다

당신은 나의 의지니까, 조금이라도 함께 있고 싶다

내가 이곳에 오는 것도 좋겠지만

전쟁터에 설 일이 많은 나로서는 그럴 기회도 적단 말이다

나는 슬프다..."


"...노력해볼게"


"지휘관은 늘 그 대답만 반복한다

물론 그 대답에 불편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지휘관이 바쁜 것을 알고 있다

항상 노력하는 당신을 곤란하게 만들고는 싶지 않다

다만 이 외로움이라는 것에서 벗어날 줄 모르는 것이다

전쟁터에서 사는 내게, 사람이 외로울 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무식한 내가 알리가 없는 것이였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내 곁에 있어 주겠어?"


그녀는 이 말을 마지막으로 내 어깨를 세게 부둥켜 안았다

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그녀의 강대한 힘에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갔다


"...미안하다"


"나야 말로 미안해, 외롭게 만들고 말이야"


진심이였다

엔터프라이즈가 이렇게까지 강하게 소원을 말하는 일은 흔치 않았다

특히 개인적인 용무가 아니고서야 말이다

그만큼 쓸쓸하게 느끼고 있단 소리겠지


나는 고개를 돌려,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서류더미들을 바라보았다


저것이 없었으면 하고, 가끔 생각하는 바가 있었다

저것이 없었으면... 모두와 접하는 시간이 더 증가하겠지

그렇지만, 저것을 하지 않으면 곤란해지는 것은 모두다

그렇게 생각하고 열심히 했었다

그런데 그 결과가, 이거라니...


나는 새어나올 것 같은 한숨을 필사적으로 참았다


엔터프라이즈도, 벨파스트도... 다른 함선들로부터의 불만을 자주 들었다

자기 일이 힘들다고 인정받길 원하는게 아닌

조금이라도 접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고 싶다는 요구였다


문득 벨파스트의 얼굴이 떠올랐다

벨파스트라면 일손을 거들어 줄 수 있을까


"지금 뭐하고 계신가요?"


벨파스트의 얼굴을 떠오르고 있는 중

무언가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엔 조금 당황스러움이 묻어있는 듯 했다


"다치신건 아니시죠?

자랑스러운 저의 주인님"


가지고 온 홍차를 테이블에 쾅하고 내리치며 들어오는 시리우스

홍차는 출렁거리며, 반 이상의 내용물을 그대로 쏟고 말았다

시리우스는 그러든 말든, 엔터프라이즈의 팔을 내리치며

반대로 내 등 뒤에서 양팔로 나를 껴안았다


그녀는 걱정스러운 눈을 하고 있었다


"엔터프라이즈 씨, 너무 주인님을 곤란하게 하지 말아주세요"


"곤란하게 하고 있다는 자각은 있다

그래도 난 굶었던 것이다

그의 온기에...

너와 달리 나는 항상 그의 곁에 있을 수 없으니까..."


"저는 자랑스러운 주인님이 뽑으신 비서함입니다.

비서함이자 메이드로서 주인님의 온기를 느끼는 건 당연한 겁니다"


"그럼 나와 바꾸지 않겠어?"


갑작스러운 소망에

시리우스는 입을 떡 하고 벌렸다


"뭐 어때?

시리우스도 원래는 전투에 능한 메이드라고 들었다

마찬가지로 전투에 능한 나와 바꿔도 상관 없겠지

나도 그의 온기를 느끼고 싶다

계속, 언디서나, 언제라도, 곁에서 느끼고 싶단 말이다"


엔터프라이즈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뭐 비서함은 메이드만 맡는 건 아니잖아?

시리우스가 비서함으로 있는 건 메이드라서가 아닌...

무슨 이유로 비서함을 맡고 있는 거지?"


"그건..."


말을 더듬으면서 불안하게 내 얼굴을 바라보는 시리우스


그건...


"네가 부럽다"


엔터프라이즈는 그렇게 중얼거리고서는 살며시 날 떠나듯이 일어섰다

슬픔에 가득찬 눈동자에선 어딘가 초조함도 느껴졌다

그녀는 그런 눈으로 시리우스와 그녀에게 안긴 나를 바라보았다


"만약 내가 처음으로 부임했다면

나는 비서함으로서 계속 옆에 있을 수 있었을 텐데..."


자문자답처럼 작은 소리로 중얼거린게 그녀의 마지막 말이였다

그리고는 말도 없이 방을 나가버렸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시리우스가 비서함으로 곁에 있는 이유에 대해 명확한 답변이 없었다

말한 그대로다. 그냥... 처음부터 같이 있었으니까

그것뿐... 일지도 모른다...


벨파스트에게서는 능력을 지적받았다

엔터프라이즈에게서는 이유를


시리우스가 비서함을 하는 것에 불만을 갖고 있는 것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나는 내 문답에 스스로 대답했다


내가 이 방에 틀어박혀 있는 것이 맘에 안드는 거겠지

좀 더 다른 함선과 접할 시간을 가져야 하는데

그러기엔 내가 사무 능력이 높지가 않았다


그래서 그녀들에게 상처를 주었던 것이다

나는 테이블에 번진 홍차와 시리우스를 번갈아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자랑스러운 주인님"


나는 시리우스를 바라보았다


"제가 늘 곁에 있었으면, 이런 사태를 막을 수 있었을 텐데... 죄송합니다"


"아냐, 엔터프라이즈도 피곤 했던 거야

그리고 나도 좀 방자해졌을 뿐이지"


"아, 자랑스러운 주인님"


시리우스는 살짝 내 뺨을 감쌌다

힘을 빼고, 그저 가만히 있자

그녀는 내 얼굴이 위를 향하도록 했다


"이 무능하고도 천한 메이드에게 그런 다정한 말을...

마음씨 좋은 주인님을 위해 이 시리어스

먼젓번과 같은 듣지 않도록

한층 더 메이드로서, 비서함으로서 힘을 기르고 싶습니다"


그녀의 서글픈 눈망울에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그녀는 갑자기 얼굴을 내 어깨에 대면서, 쓸쓸하게 중얼거렸다


"손님 앞에서 그런 말을 하다니... 전 역시 천한 메이드입니다

저 또한 주인님의 온기를 원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부디, 이 천한 메이드에게 잠시...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시리우스 만의 자랑스러운 주인님..."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은 채, 그녀에게 몸을 맡긴 채, 생각에 잠겼다


벨파스트도 엔터프라이즈도 모두 초기에 부임했던 함선들

그런 그녀들의 불만... 어떻게 하면 좋은 걸까

눈 앞의 명패를 가볍게 어루만지기만 할 뿐이였다





오늘도 피곤하군, 지쳤어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침대에 누웠다


자, 하고 중얼거리며

호주머니에 있던 일정부를 꺼냈다


엔터프라이즈의 소원을 들어주긴 어려웠다

그래도 조금이나마 이뤄주고 싶었기다

그녀가 노력하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몸이였기에


그렇다 치더라도

벨파스트도 엔터프라이즈도 이런 말을 하기 시작하다니...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처음부터 부임해 준 함선들의 입장에서 보면

내가 집무실에 틀어박혀 있는 모습은 영 아니꼬왔을 것이다

옛날 처럼 자신들 앞에 얼굴을 내밀었음 했겠지


그 소원을 져버리고 싶진 않았다

다들 열심히 하고 잇는 걸 아니까 말이다


일정이 일정대로 꽉 찬 일정에서

나는 훈련 예정으로 기재된 날짜를 찾을 수 있었다

재차 시야에 넣어 확인한 후, 뇌내의 스케줄과 대조했다

훈련 아래에 쓰여진 사쿠라, 유니온이라는 문자를 보았다


이 날에 나의 예정된 일은... 사무일 이군

한심하지만, 분명 그것만으로도 벅차겠지


하지만, 안 돼


그 고지식한 엔터프라이즈가 불만을 성토했다

모두들 불만을 쌓아두고 있겠지


조금이라도 더 함선들과 접할 시간을 만들어야 겠어

그것으로 모두의 불만이 조금이라도 누그러진다면...


그 일정 바로 옆에도 눈길이 갔다


로얄, 철혈


그들로부터 미뤄뒀던 문제들을 기억해냈다

우선은 비스마르크부터 만나야겠군


로얄....인가


엔터프라이즈는 말했다

시리어스 또한 전투를 선호하는 함선이라고


맞아


그녀 역시 전투에서 큰 전과를 올릴 힘을 가진 함선

그것을 집무실에 가두어 두고 있는 것은... 나였다


시리우스를 상처입히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 그녀의 슬픈 듯한 눈동자를 떠올랐다



스케줄 수첩을 책상 앞에 내팽겨쳤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라가는 모습을 보자니

오늘의 홍차가 생각났다


사람에게는 부적격한 것들이 각각 있다

그건 함선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전투를 좋아하는 것, 사무일을 좋아하는 것, 면학을 좋아하는 것

다종다양했다


그녀라면 어떤 식으로 배정을 할까

물론 정해져 있겠지

우선은 비서함의 자리를 자신에게 지명할 것이다


......옆에 있다면 지킬 수 있다는 것일까

보호받기만 해도 되는 것일까

이번 일정은 여러가지로 변경해야 겠군

비스마르크 뿐만이 아닌, 모두들 한번 씩 만나러 가야겠어


소중한 함선을 지키기 위해선 사사로운 정을 버려야 한다


사관학교에서 배운 기초의 기초를 되새기면서

나는 내일 이후의 예정을 머릿속에서 짜넣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