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다. 오늘도 그녀가 보인다.

그녀가 자기를 내 뇌에 각인 시키겠다며 칼로 목을 그어 자살한지 세달째.

뇌에 물리적으로 각인시킨건 아니지만 차라리 그래줬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죽은 나는 이런 꼴을 당할 일이 없었을태니까.


죽어가면서도 피투성이가 되가면서도 나를 보면서 미소짓던 그녀가 언제든 어디서든 보인다.

아침에 일어나면 천장에 그녀가 보인다.

화장실에 들어가 마주한 거울에 그녀의 얼굴이 보인다.

출근을 하기 위해 버스에 타면 좌석 아래에서 그녀의 얼굴이 빼꼼히 나온다.

회사에서도 그녀의 얼굴이 언제 나올지 몰라 피해망상에 사로잡혀 일도 제대로 할수가 없다.

집에 들어오면 그녀가 현관에 서있다. 

자려고 누우면 침대 밑에서 비정상적으로 긴팔이 나와 내 몸을 감싼다. 

이내 길다란 목을 가진 그녀의 얼굴이 침대 밑에서 나와 나를 빤히 쳐다본다.

이 때는 일반적인 사람의 형상을 취하려 하지도 않는다. 


'에이 씨발, 이럴줄 알았으면 그냥 한번 따먹힐걸.'

'아니야. 그랬으면 또 다른형식으로 지랄을 했을거야.'


그녀가 죽은 이후로 악몽을 꾸는 일이 많아졌다. 악몽은 항상 그녀가 내 앞에서 목을 긋던때로 데려가준다.

덕분에 식은땀에 젖은채로 깨면 눈앞에 그녀의 얼굴이 보인다.  난 그녀의 무릎을 베고 누워있고.

그녀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무슨일이냐고 물어본다. 아주 가증스러운 년이다.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된건데.


술기운을 빌려 잠에 들어야겠다는 생가에 주방으로 가 맥주캔을 하나 꺼내 비웠다.

탄산 때문에 쓰린 목을 달래며 방에 들어가면 그녀는 사라지고 없다. 확실히 술기운이 도는 모양이다.

고작 맥주 한캔에? 라는 생각은 하지 말아줬으면 한다.  

스트레스에 찌든 인간은 모든것에 취약해진다. 맥주 한캔이면 떡을 치고도 남지.

그렇게 맥주 한캔으로 그녀를 퇴치한 나는 침대에 다시 누워 잠을 청했다. 

언제까지 이 지랄맞은 상황이 계속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버텨낼것이다.




그녀는 오늘도 보인다. 요즘들어 그 모습이 더 자주 보인다.

심지어는 말도 걸어오기 시작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그녀가 내옆에 누워서 나를 빤히 쳐다보고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걸 보는 눈빛을 띄며 나에게 말을건다.


"잘잤어?"


그녀의 질문을 무시하고 일어나면 그녀는 삐진듯한 말투로 다시 말을 걸어온다.


"뭐야? 이렇게 귀여운 여자친구의 말을 씹는거야?"


역겹다. 말투는 둘째치고 그녀는 내 여자친구였던적도 없다.

아침을 만들려고 주방에 가면 어느샌가 식탁 앞에 앉아있다.


"오늘은 쉬는날이지? 그럼 아침 대신...날 먹지 않을래? 막 이래"


난 귀신을 믿지 않는다. 저년은 내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환상이다. 근데 왜 점점 구체적으로 나오는거지?

'술 때문에 이러나? '

'술을 좀 줄일까?' 

'그럼 잠을 못자는데?'

'병원에 가볼까?'


고민하는 사이 그녀는 내 앞으로와 팔로 내 목을 감싸며 내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그렇게 고민하는 모습을 보면 내가 더 마음이 아파. 그냥 나한테 모든걸 맡겨..."


그녀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달콤했다.  순간 그녀의 목소리에 정신을 뺏긴 나는 싱크대 앞으로가 식칼을 집어 목에 갖다댔다.


칼날이 목에 닿는다.

따끔하다. 이내 뜨거워진다.  그 고통에 나는 정신을 차릴수 있었다.

하지만 겨우 정신을 차린 내가 할수있었던건 그녀의 목소리에 조금이라도 혹했다는 자괴감에 악을 지르며 집안의 물건을 부수는 것이었다.

언제까지 이 지랄맞은 상황이 계속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버텨낼것이다.



그녀는 오늘도 보인다. 이제는 내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그녀는 하나가 아니다. 수없이 많은 그녀들이 나에게 다가온다.

그녀들은 끊임없이 내 귓가에 달콤한 말들을 속삭인다.

이제 그만 편해지자고.  지금까지 버틴것만으로도 잘해온거라고.

자기들 품에 안겨 모든것을 잊어버리자고.

나는 지지 않을것이다.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니들한테 안기지는 않을것이다.

주방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다시 한번 식칼을 잡은 나는 이번엔 망설임 없이 내 목을 찔렀다.



내 목을 뚫고 들어온 차가운 칼날이 내 피로 인해 뜨거워짐과 동시에 고통이 내 몸을 엄습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면 안된다. 나는 목에 꽃은 칼을 뽑았고 이내 내 목에선 피가 솟구쳐 나왔다.


성공이다. 그녀들이 하나둘씩 사라져가기 시작한다.

사라지기 직전에 그녀들이 보여준 미소가 께름칙하다.

어떤건 마치 해냈다! 라고 외치는듯한 함박미소를 지으며 사라지는가 하면, 어떤건 음흉하게 손으로 입을 가린채 눈웃음만 지으며 사라진다.

하지만 이제 내가 신경쓸 일은 아니다.

그녀의 환각에 더 이상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나에겐 더 중요했다.

눈이 감긴다. 하지만 미소가 멈추지 않는다.


'자, 이제 어쩔래 개년들아.'




원래는 뇌의 각인을 없앨려고 머리 자체를 깨부수는 엔딩이었는데 갑자기 이거 생각나서 웃느라 글을 못씀ㅋㅋㅋㅋㅋㅋ

덕분에 급선회 해서 마무리가 좀 허술하게 나온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