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순이가 얀순이 아버지 장례식을 치르고 나고 얼마 안 있어서 일어난 이야기야.

얀순이는 아버지를 잃은 슬픔 때문에 두통에 시달리고 있었어. 타이레놀 한 알 사려고 편의점에 가고 있었지. 어느 으슥한 밤거리에서 얀순이는 누군가랑 부딪혔지. 서로 갈 길이 바빠서 그냥 지나갔었는데, 얀순이는 옆구리가 이상하게도 쑤셔왔어. 얀순이는 별 생각 없이 옆구리를 만졌는데 뭔가 축축하고 따뜻한 액체가 느껴지는 거야.

세상에, 그건 얀순이의 피였어. 방금 전 부딪혔을 때 그 사람이 칼로 얀순이 옆구리를 푹 찌르고 간 거야. 얀순이의 피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지.

얀순이는 현기증을 느끼고 바닥에 쓰러졌어. 얀순이는 하도 허탈해서 웃음 밖에 나오지 않았어. 이러니 저러니해도 결국 길바닥에서 비참하게 죽어가는 자신의 처지가 너무나도 어이없던 거지.

그런데 구원은 있었나봐.

같은 시각, 얀붕이는 밤거리를 지나가다가 누군가 쓰러지는 걸 봤어. 뭔가 이상해서 다가갔더니 옆구리가 피범벅이 된 얀순이를 발견했어.

얀붕이는 깜짝 놀라서 119에 신고했어. 이윽고 손수건을 꺼내 상처를 꾹 눌렀어. 피가 울컥울컥 새나왔지만 얀붕이는 개의치 않았지.

얀붕이 덕분에 얀순이는 병원에 후송될 수 있었고 큰 이상 없이 상처를 봉합할 수 있었어. 돈 없는 얀순이를 위해 얀붕이는 진료비를 지불한 건 덤이었고.

얀순이는 얀붕이가 너무나도 고마웠어. 생면부지인 자신을 이렇게까지 도와주다니, 얀붕이가 자신을 구원해주려고 내려온 천사로 보였지. 얀순이는 얀붕이에게 답례로 데이트를 신청했고, 둘은 썸타는 사이가 되었어.

얀순이는 얀붕이와 함께라면 영원히 행복할줄 알았어. 하지만 얀순이의 불행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지.

사실 얀순이 아버님은 공장에서 일하다가 의문사를 당했어. 신체 건강하시고 얼마 뒤에 있을 가족여행 준비에 활력이 넘치시던 아버님이 갑자기 직장에서 자살하시다니. 그것도 온몸에 이상한 상처를 입고 평소 아버님의 필기체와 전혀 다른 유서가 발견되다니. 얀순이와 얀순이 어머님은 이상함을 느꼈지.

얀순이 어머님은 얀순이 아버님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파헤치려고 백방 돌아다녔어. 그러다가 어머님도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버렸어.

빚쟁이들에게 집도 넘어갔고, 몇 푼 안되는 아버지 사망보험금조차도 보험사의 줄소송에 포기하게 되었지. 얀순이가 갖고 있는 재산은 아무것도 없었어.

거기다가 학교에서는 '얀순이가 보험금을 타기 위해 부모님을 죽였다'는 이상한 소문이 퍼져서 친구들도 얀순이를 멀리하더라. 등교하면 책상 위는 '걸레년, 애미 애비도 없는 새끼, 엌ㅋㅋㅋ' 이딴 낙서로 뒤덮였고 사물함에는 쓰레기가 넘쳐났었어.

얀순이는 넋이 나갔지만 그래도 버틸만 했어. 얀붕이가 있었기 때문이야.

얀순이는 희망을 잃고 자살하려고 했고. 처음엔 손목을 그으려고 했고 올가미를 만들어 목을 메달려고도 했지. 불행인지 다행인지 얀붕이 덕분에 얀순이는 살 수 있게 돼.

얀붕이는 그런 얀순이를 토닥이면서 '아직 끝난 게 아니라고. 적어도 너를 사랑하는 나는 네 곁에 있다고. 너는 아무 잘못 없다고.' 말해줬어. 얀순이에게 있어 얀붕이는 희망이었어.

얀순이는 삶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마다 얀붕이를 떠올리면서 살아갈 의지를 되새겼어. 얀붕이의 헌신 덕분이 통했는지 얀순이는 점점 일상을 되찾아가게 돼.

어느날 문득 얀순이는 얀붕이의 친구를 만나게 돼. 친구들과 있을 때 얀붕이는 정말 행복해보였지. 얀순이가 있으나 없으나 얀붕이는 변함없이 행복하고 친절한 사람일 거야.

얀순이는 얀붕이가 자기와 전혀 다른 사람이란 걸 알아낸거야. 유복한 가정, 다정한 가족, 좋은 친구들, 전부 얀순이에게 없는 것들이었어.

얀순이는 엄청난 불안감을 느꼈지. 아주 좋은 환경에서 자란 얀붕이가 과연 불행한 얀순이를 진짜로 공감해줄까. 얀순이에게 질려서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다른 여자에게 떠나가면 어쩔까. 얀순이는 시도 때도 없이 손톱을 물어뜯고 다리를 떨었지.

결국 얀순이는 무시무시한 계획을 세우게 돼. 얀순이와 얀붕이의 처지가 똑같으면 서로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얀붕이의 부모님을 죽이고 헛소문을 퍼트려 사회관계를 파탄낸다면, 그리고 얀붕이 옆구리에 칼빵을 놓는다면 얀붕이는 얀순이의 처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먼저 얀순이는 얀붕이의 주소록을 해킹하고 얀붕이가 미자를 사먹었다는 거짓정보를 주작해서 퍼트렸어. '얀붕이는 초등학생을 사먹는 변태 페도필리아'라는 소문이 빠르게 퍼져나갔고 얀붕이는 사회에서 매장되게 돼.

얀붕이는 얀순이에게 울면서 하소연을 했어. 오직 얀순이 뿐인 내가, 살면서 업소는 전혀 간 적이 없는 내가 어떻게 이런 꼴을 당해야 하나. 얀순이는 그런 얀붕이를 끌어안고 토닥였어.

그러거나 저러거나 얀붕이는 '인간쓰레기, 제발 자살해라.' 이런 악성문자에 시달리게 되었어. 얀붕이의 지인들이 보내는 문자였지. 얀붕이의 대인공포증은 점점 더 심해졌고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를 않게 돼.

얀순이는 얀붕이 방에 눌러 앉아서 지극정성으로 얀붕이를 간호하지. 얀붕이는 얀순이를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는 단계까지 오게 돼. 얀순이와 얀붕이는 이제야 비슷해졌지.

마침내 결전의 그날이 왔어. 그날은 얀붕이의 생일이었지. 얀붕이의 생일을 기념하여 얀순이는 오랫동안 세워놓은 계획을 실행하기로 했어.

우선 얀붕이 어머님을 조폭에게 팔아넘겼어. 방법은 간단했지. 장보러 밖에 나간 틈을 타 으슥한 곳에서 마취제로 기절시키고 검은 봉고차로 끌고 가는 거지. 그 후로는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는 거야. 얀순이 어머님처럼 말이지.

그러고 나서 얀붕이 아버님이 주무시고 계신 틈을 타 골프채를 꺼내고 얀붕이 아버님의 머리를 비롯한 온몸을 사정없이 내리쳤어. 얀붕이 아버님은 두개골이 함몰되어 돌아가셨지. 얀순이 아버님처럼 말이야.

얀붕이는 얀붕이 아버님의 비명소리, 둔기로 무언가를 내리치는 소리에 깜짝 놀라 뛰어 나왔어. 그가 본 건 머리가 으깨진 아버지와 해맑게 웃으면서 피 묻은 골프채를 든 얀순이였어. 얀붕이는 비명을 지르면서 도망치려고 했지.

하지만 어쩌나. 얀붕이보다 얀순이가 조금 더 빨랐어. 얀순이는 과감하게 골프채를 휘둘러 얀붕이의 다리를 가격했지. 얀붕이의 다리는 우지끈 소리를 내면서 부서졌어. 얀붕이는 쓰러진 건 마찬가지고.

얀붕이는 얀순이를 이해할 수 없었지. 방금 전까지 자신을 끌어안고 토닥이던 그녀가 어째서 아버지를 죽이고 나를 죽이려고 하는 거지? 얀순이는 그런 얀붕이의 속마음을 읽었는지 이런 말을 했어.

"이제야 우리가 같은 처지가 되었네요."

"대, 대체 무슨 짓이야?"

"얀붕씨는 유복한 가정, 다정한 가족, 좋은 친구들을 갖고 태어난 축복받은 사람이에요. 저에게는 전부 없고요. 이런 비천한 저를 사랑하시다니 당신은 천사에요."

"대체 무슨 말을..."

"두 사람 두 집안 환경이 비슷해야 결혼해서도 불행하지 않는다고 하잖아요. 제 아버지도 얀붕씨 아버님도 두부외상, 제 어머님도 얀붕씨 어머님도 실종, 저나 얀붕씨나 사회관계 파탄. 비로소 저희는 같아졌네요."

"서, 설마 그 헛소문을 네가 퍼트린 거야? 아버지를 죽이더니 어머니에게도 손을 댄 거야?"

"예, 그래요. 그래야 얀붕씨가 다른 잘난 년들과 엮이지 않고 오직 비천하고 불행한 저에게만 함께할 수 있으니까요."

"씨발새끼."

"저를 잔뜩 미워하셔도 좋아요. 그런 얀붕씨도 사랑스러운 걸요. 그리고."

얀순이는 눈을 희번덕거리면서 식칼을 들었어. 얀순이는 광기 어린 웃음을 내뿜으면서 사정없이 얀붕이의 배에 칼침을 꽂았지. 얀붕이는 그런 얀순이를 막으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어.

"제가 처음에 칼빵을 맞은 덕분에 얀붕씨를 만났어요. 이제야 저를 본 얀붕씨의 속마음을 이해할 수 있겠네요. 정말로 사랑해요♥ . 이제 마지막이 남았네요."

얀붕이는 정신이 혼미해졌어. 얀순이는 어딘가로 가더니 기름통을 꺼내 집안 곳곳에 뿌렸지. 잠시 후 얀순이는 다시 얀붕이에게 다가가 입맞춤을 했어.

"여보, 죽어서도 영원히 함께해요. 사랑해요♥ ."

그리고 얀순이는 라이터를 켜고 던졌어. 얀붕이와 얀순이는 손과 입을 포갠 채로 함께 불타 죽었지.

----------

얀데레 소설은 처음 써봐서 잘 모르겠음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