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친구 얀붕이는 킹카에요.

큰 키에, 적당히 잡힌 근육에, 누구에게나 웃는 미소를 가지고 있어요.


저처럼 구석에 쳐박혀서 책이나 읽는 찐따에게도 친절해요.


학교에서, 얀붕이는 인기가 많아요.


"야, 얀붕아! 축구 고!"

"콜!"


언제나 활달한 애들하고도 같이 운동을 하지만

저처럼 구석에 쳐박힌 애들에게도 말을 걸어줘요.


"야, 얀돌아. 너 읽는거 그거 뭐냐? 아, 이번에 새로 나온 베르베르 신작이구나."


"응? 아, 알아?"


"알지~ 그럼. 우리 아버지가 이 작가 팬이라가지고 맨날 책 사오는데. 다 읽고 나도 좀 빌려주라."


저는 학교에서 독서가 취미인 몇 안 되는 애였는데도

제가 읽는 책이 어떤 책인지 알고 말을 걸어 줬어요.


평소 취미가 운동과 독서라서 그런지

얘와 대화주제가 안 겹치는 애는 우리 학교에 한 명도 없었어요.



남자애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지만

여자애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아요.


한 학년 선배 여자애는 얀붕이에게 고백을 했었대요. 차였지만요.

동갑 여자애들도 많이 고백을 했었어요. 차였지만요.


"야, 여자는 언제건 사귀고 싶으면 사귈 수 있는데, 굳이 지금 사귀어야 하냐?"


이런 소리를 하면서, 얀붕이는 친구들과 노는 데에만 집중했어요.




우리 반엔

얀순이라는 애도 있었어요.

굉장히 음침한 여자애였는데

저보다도 더 사회성이 부족해 보이는 애였어요.


얀붕이는 그런 애한테도 말을 걸었어요.


"뭐해? 아, 그 책 재밌지. 주인공의 내면 묘사가 좋았었어."


"이 책, 알아?"


"그럼! 내가 모르는 게 뭐 있겠어~"



얀붕이는 쾌활하게 말을 하고 돌아섰어요.

오늘도 소외된 친구에게 말을 걸어주었고, 이렇게 소외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게 하려는 그 정신은

친구로서는 존경스러웠지만...


얀순이의 눈빛은 뭔가 이상했어요. 조금 빛나는 듯 했어요.



며칠 뒤


얀순이는 얀붕이에게 고백했다가 차였다고 했어요.

주변 사람들 모두 '학교 최고 예쁜 얀진이나 누구누구도 차였다는데, 쟤는 저 꼴에 고백을 하네 ㅋ' 하고 비웃었대요.


하지만

저는 웃을 수 없었어요.


그 날

얀순이의 그 눈빛은 좀 심상치 않았어요.




원래대로라면

오늘은 얀붕이와 게임하러 피시방에 가기로 한 날이에요.


그런데

저는 낡은 창고에서

입에 천 같은 게 가득 쑤셔넣어진 채로 깨어났어요.


"... 일어났네?"


얀순이였어요.

뭔가 묘하게 색기 있는 미소를 짓던 얀순이는

손에 전기충격기를 들고 있었어요.


"너, 우리 얀붕이와 같이 자주 다니더라."


얀붕이가 저 말을 들으면 화냈을 거에요. 감히 자기에게 '우리'라는 말을 쓰냐고요.

걔는 여자한테 크게 관심이 없어 보이던데...


치직


히익, 저거 진짜 작동하는 거였어요!


"그러니까, 얀붕이를 이리로 불러와줄래?"


저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어요. 함부로 얀붕이를 부를 순 없었어요. 제가 외따로 떨어져서 책을 읽을 때도 걔는 제게 말을 걸어줬고, 친구 없어 외로워 하는 절 위해서 걔는 저와 등하교를 같이 해주어어어어어어얶!


"자꾸 그러면, 어디, 니가 얼마나 버티나 보자."



쇠사슬이 제 몸을 때렸어요.

전기충격기가 제 몸을 지졌어요.


하지만

어차피 우리 엄마아빠도

술을 먹으면 절 때리는데


이깟 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유일한 제 친구를 이리 둘 순 없어요.



"하아... 진짜 잘 버티네."


그 순간

제 핸드폰에 알림이 왔어요.


'야, 얀돌아. 왜 안오냐? 지금 너만 오면 딱 5인 자랭 뛸 수 있다고, 임마!'


얀붕이의 톡이었어요.


그리고

얀순이가 씨익 웃었어요.


"흐음, 이러면 되겠네..."



저는 핸드폰 잠금장치를 패턴으로 해 놓았지만

얀순이는 몇 번 고심하더니 금방 풀어냈어요.


"야, 난 니 뒷조사도 해봤어. 너와 나 같은 찐따들의 특징이 뭔지 알아? 핸드폰 패턴 같은 건 최고로 복잡하게 해 놓는 거야."


저는 아무 말도 못 했고

얀순이는 얀붕이에게 톡으로 '지금 XX 공장 폐허에 와 있어. 잠깐 와 줄수 있어?' 라고 보냈어요.


"자, 어디, 오나 볼까?"


안 돼요.

얀붕이는 올 거에요.
얘는 친구를 버리는 애가 아니에요.


팔에 묶인 쇠사슬을 흔들며 철컥거리는 소리를 내고

의자에 고정된 다리를 어떻게든 휘두르며 움직였어요.


얀붕이는 안 돼요.

저는 괜찮아요. 집에 돌아가도 술 먹은 어머니 아버지가 절 때릴 꺼니까.

어디에서나 얻어맞기만 하는 저니까.


하지만 제 친구 얀붕이는 안 돼요. 걔는 착한 애에요.


구하고 싶어서 팔다리를 휘두르고, 의자에 벗어나려고 하다가




다시 깨어보면

넘어진 의자에 묶여 있었어요.

목이 따가웠고

얀순이는 저 멀리서 전기충격기를 들고 웃고 있었어요.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얀붕이가 보였어요.


"얀돌아? 야안도올아아아~ 어디있... 야! 너 뭐야!"


얀붕이는 폐공장을 둘러보다가

묶여있는 절 찾고 소리를 질렀어요.


"지금 풀어줄게! 잠깐만 기다려봐!"


안 되는데

얀붕이가 지금 나한테 오면 안 되는데

지금 당장 도망가야 하는데


지금 저기서 얀순이가

오로지 얀붕이만 바라보며 웃고 있는데


"얀돌아. 야, 임마! 뭔 일이야! 괜찮아!?"


얀붕이는 제 팔에 있는 쇠사슬에 집중을 했고

얀순이는 얀붕이의 뒤로 성큼 다가왔어요.


제 입 안에는 천조각들만 가득차서 읍읍거리는 소리밖에 낼 수 없었어요.


당장 얀붕이가 나가서 경찰에 신고하게 해야 하는데

나는 고통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는데


비명을 질러야 하는데 입이 없어서

얘라도 도망치게 해 줘야 하는데 소리를 지를 수 없어서


얀붕이가 쇠사슬을 거의 푼 순간


파직 하고


전기충격기가 빛나고


덩치 큰 얀붕이가 순간 쓰러지고


미쳐버린 웃음소리와 제 울음소리가 섞여서...




p.s. 제목은 '비명을 질러야 하는데 입이 없다' 패러디임.

얀데레 주변인 시점에서 글 쓰기 진짜 어렵긴 하네.


소재 제공 및 과거글 모음 : https://arca.live/b/yandere/83284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