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붕이는 키가 크고, 잘 생겼으며, 여자의 마음을 쥘 줄 알았다.


그런 얀붕이의 별명은

'로마 귀족' 이었다.


식탁에 차려진 맛있는 여자를 골라서

자기 입에 넣고 단물을 빨아내고 질겅질겅 씹다가

질리면 '퉤'


그리고, 또 다른 여자를 찾아서 입에 넣는 일의 반복이었다.




얀순이는 순수한 소녀였다.

학교에서는 학생회장에

모두가 얀순이를 좋아했다.


활달하고, 공부도 잘하고

의사 딸이라는 뒷배경에, 선생님들에게도 싹싹하고.


그런 얀순이에게도

'나도 어른이랑 연애 해 보고 싶다' 라는 소망은 있었다.



나쁜 욕망은 아니었다.

남고생이건 여고생이건 고등학생들은 대부분 어른을 동경했고

얀순이 역시 '의지할 수 있는, 믿을만 한 오빠'랑 사귀고 싶었다.


그리고

얀순이가 얀붕이의 눈에 띈 것은 불운이었다.




어린 나이

뛰어난 학교 성적

행복한 가정과, 의사 아버지와, 열성적인 어머니


이렇게 망가트리기 좋은 여자는 없을 것이라 생각하며

얀붕이는 침을 삼켰다.




얀순이는 아무 것도 몰랐다.

성관계는 체육시간이나 생물시간에 지나가듯 배웠고


그런 얀순이에게 얀붕이는 '어른의 모든 것' 이었다.



입맞춤이 그렇게나 야한 것이라는 것은 처음 알았다.

아이가 어떻게 생기는지도 직접 경험해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게 그렇게 기분 좋은 것이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얀순이는 점점 망가져갔다.


학교 성적은 떨어지고

교우 관계도 점점 나빠졌다.


학교가 끝나면 도망치듯 뒷골목으로 사라졌고

얀순이의 친구들은 얀순이를 걱정했다.




너무나도 순수했던 사람이어서였을까

얀순이는 그 어떤 여자보다도 금세 망가져버렸다.


음어를 거리낌없이 얀붕이에게 말했다.

얀붕이를 자기 방 안에 숨기고, 가족과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화하며, 다시 방 안에 숨겨둔 얀붕이와의 밀회도 즐겼다.

야간자율학습 시간도, 학원도 빠져가면서 얀붕이에게 모든 것을 바치는 암캐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얀붕이는

얀순이에게 질려버렸다.




"야, 우리 끝내자. 너 너무 지겨워."


얀붕이는 그렇게 이별 선언을 했다.



얀순이에겐 '먹버'라는 개념이 없었다.

학교에 있는 친구들도 그런 개념은 몰랐고

집에서도 연애를 하면, 서로 행복해지다가, 결혼으로 가는 것으로만 교육받았다.


자신의 모든 것을 원하는 만큼 빨아먹고 도망가버리는 남자가 존재한다는 것은

얀순이의 환경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얀순이는 곧 자기가 당한 것이 뭔지

서서히 깨달아갔다.




뒷골목을 찾아가 얀붕이에게 따졌다.

얀붕이와 그 패거리는 낄낄 웃으며, '너도 좋아서 그런 거 아니냐'며 비웃기 바빴다.


이제까지 있던 일들을 폭로하고 싶었다.

얀붕이는 아무것도 없는 양아치였으며, 자신은 아직 앞날이 창창한 고등학생이었다.


얀순이에겐 복수할 방법이 없어 보였다.




"야, 다음에도 그 년 오면, 걍 그년 돌려먹어라. 어휴, 더럽게 귀찮네"


얀붕이는 같이 다니는 패거리에게 그리 말하고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이번엔 클럽에서 만난 또 다른 여자가 눈에 들어왔었고

그 여자 역시 망가트릴 보람이 있다고 생각해서.



집에 들어와서

술을 들이키고


그 날따라 술이 잘 받아서

그 날은 금방 뻗어버렸다.


술 뚜껑이 살짝 열려 있었다는 것은 깨닫지 못한 채로.

누가 자신을 질질 끌고 간다는 사실도 알지 못한 채로.




얀순이의 아버지는 딸 걱정에 잠을 못 이뤘었다.


중학교 때 까지만 해도 모범적이고 예의바른 딸이었는데

어느 순간 엇나가나 했더니, 성적도 서서히 떨어지고 있었다.

집에서는 계속 헉헉거리며 가족들과 밥을 먹는 것도 피하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야자나 학원까지 빼먹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부터

다시 웃음을 되찾았다.


공부도 잘 했다. 학원도 야자도 안 빠졌다.

어떤 날은 자기 방에 있는 의학 서적도 들여다보고 있었다.


"딸, 뭐해?"


"아, 아빠. 나도 의사 되고 싶어서, 근육 해부도 보고 있었어."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딸은

그리 말하며 웃고 있었다.


방금 알코올을 적신 솜으로 닦아낸 메스와

근육 해부도를 보며 웃는 딸이


그냥 '미래에 의사가 되기 위해서 공부하는 딸'로 비춰져서

그저 귀여울 뿐이었다.


"아빠, 그런데, 나 이제 곧 수능이잖아. 공부하려면 진짜 조용해야 해서 그런데, 지하실에서 하려고 하거든? 그러니까, 절대 지하실로 들어오면 안 돼?"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제안이었다.

어디 밖에 나가서 걱정시키는 것보다는

그래도 집에서 공부하는 게 낫겠지.


"그럼, 그럼! 너 밥 먹을 건 네 엄마한테 부탁해서 냉장고에 두라고 할 테니까, 밥은 잘 챙겨먹어야 한다! 알았지?"


"응!"


"아유, 우리 딸 착하네~"


딸이 지은 미소는 순간 섬뜩했지만

요즘 자신이 너무 피곤해서 그러리라 넘겼다.


자꾸 자기 병원으로 가져가야 할 향정신성 의약품들의 재고가 비니까, 좀 신경질적이 되어서 그런 것이리라.

프로포폴이나 메스암페타민 같은 것들이 자꾸 조금씩 재고가 비니까 피곤한 것이리라.


우리 딸은 착한 애니까, 엇나가지 않고 잘 크겠지.


그러니까, 지하실은 딸이 공부 열심히 할 수 있게, 들어가지 말아야지.




p.s. 얀데레가 나쁜 년이 아니라, 얀붕이가 나쁜 놈인 것도 한번 써 보고 싶었음.


소재 제공 및 과거글 모음 : https://arca.live/b/yandere/83284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