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의 첫 만남은 도서관이였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나에게 도서관은 안식처였으며, 작가들이 써 내려간 창작물 속 세상은 내게 늘 새로움을 반겨주었기 때문.

 

말 한마디 없었다. 하지만 한 두번 마주치다 보니 자연스레 그녀가 눈에 밟혔고 어느순간 단 하나뿐인 친구가 돼버렸다.

 

"얀붕아, 오늘 시간있어?“

 

"응?“

 

그녀는 나를 집으로 초대했다. 처음 본 그녀의 집은 마치 중세시대의 귀족들이나 살 법할 정도로 웅장했으며, 나의 손을 이끌고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이거 어때?“

 

그녀는 차곡차곡 꽂혀있는 책 중에 하나를 꺼내어 나에게 보여주었다. 그녀가 늘 도서관에서 보던 책의 단행본이였으며 자랑하는 듯한 말투에 나는 웃으며 칭찬했다.

 

이렇게 내 중학교 시절은 그녀와 단 둘이서만 행동했고 별 탈 없이 지나가나 싶었다.

 

하지만 고등학생이 되어 문제가 생겼다.

 

"야, 너 왜 맨날 책만읽냐?“

 

"아..취미라서...“

 

같은반의 한 무리에게 찍혀버린 것, 하루종일 반에서 책만 읽던 내가 만만해 보였는지 처음에는 한 두명이 비꼬는식으로 놀리다 어느순간 하나의 무리가 나를 장난감 마냥 괴롭히기 시작했다.

 

나는 더욱더 내 안식처인 도서관으로 향했고, 그녀와 마주칠 수 있는 그 곳은 내 유일한 힐링이였다. 그녀와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한 것 만으로 해도 다행이라 생각했다.

 

"얀붕아, 너 무슨일 있어?“


"아니, 딱히없어.“


"요즘 많이 피곤해보이는데..“

 

도서관에서 나오는 그때였다.

 

"오 네 여자친구야?“


날 괴롭히는 무리중 한명이 내 어깨에 팔을 걸치며 옆에서 걷고있던 그녀를 바라보며 나에게 친한척을 했다.

 

"...응?“

 

"와 우리 얀붕이 연애도하고 기특하네.“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꺼내는 그는 그녀를 한번 힐끔 쳐다본 후 머리를 한번 툭 치며 반으로 향했다.

 

쪽팔렸다. 아니 이 분위기가 너무 괴로웠다.

 

그새끼가 떠난 이 후 이 삭막해진 분위기가 너무 싫었다. 그녀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모습을 보여줬다.

 

아무말 없이 서로 걷던 우리는 각자의 반으로 향했고 그때부터 지옥이 시작됐다.

 

 

 

"야 이새끼 여자친구 존나이쁘던데?“


"우리 얀붕이 여자친구도 있었어?“


"그냥..친구야..“

 

틈만나면 그녀에 대한 얘기를 꺼냈으며, 가슴이 컸다. 차분한 애가 한번 맛들리면 난리난다 등, 내 옆에서 음담패설이 끊기질 않았다. 더 화났던건 이런 상황에서 아무말도 못하고 가만히 있던 나였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갔을 무렵, 그 무리는 나를 무너트리는 제안을 했다.

 

"야, 걔 다음에 술마실 때 같이 오면 더 이상 안괴롭힐게.“


"그건..“


나를 괴롭히는 얘들은 주말마다 모여 술을 마셨으며, 틈만나면 나를 불러서 술안주 라며 괴롭혔다.

 

"아니 쉬운일 이라니까?“

 

역겹고 화났다. 그것 보단 그 말에 제대로 화내지 못하는 내 행동에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때부터 나는 도서관을 가지도 않고, 그녀와의 연락도 하지 않았다. 줏대도 깡도 없는 나와 같이 있으면 무슨일을 당할지 모르니까.

 

며칠간 그녀와의 만남을 피했지만, 집 앞에서 마주쳤다.

 

"얀붕아, 왜 나를 피해? 내가 뭐 잘못했어?“

 

"...“

 

여태것 청순하고 온순했던 그녀와 달리 화가 많이 나있는 얼굴. 그 얼굴을 보자마자 나는 도대체 얼마나 약하고 추악하고 위선적인 건지 생각했다.

 

결국 그녀를 위한다며 문제를 회피하고 눈앞에 닥친 상황을 무시했던 것.

 

"얀붕아, 왜그래..?“


"그..그..끅..“


눈물샘이 고장난 듯 순식간에 눈물이 넘쳐났으며, 나는 도저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볼수 없어 고개를 숙였다.

 

놀란 그녀는 나를 껴안고 달래줬으며, 그런 포근함에 나는 하염없이 울었다.

결국 나는 그녀에게 여태까지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얘기했고, 그녀는 자신이 해결하겠다고 했지만 극구 말렸다.

 

"안돼..“

 

"그치만, 네가 힘들면 내가..“

 

"안돼!“

 

 

 

 

 

"오 얀붕이 왔어?“

 

"야, 쟤 그 여자 부르는거 아니였냐? 그 가슴 큰 년“


새벽 구석진 놀이터에서 그들은 술을 들이키고 있었다.

 

"그..“

 

"왜 같이 안왔냐?“

 

"..걔는 건드리지 않았으면...좋겠어.“


"미쳤냐?“

 

그순간 깝친다고 나를 발로 걷어찼으며 급기야 내 스마튼폰을 뺏었다.

 

"야 이년 맞지않냐? 와 이새끼 친구없는거 봐라.“

 

세명중 한명이 내 스마트폰을 뒤적이며 그녀의 연락처를 찾아낸 것. 나는 그 즉시 몸을 움직였다.

 

탁!


"니 씨발 미쳤냐?“

 

그의 손에서 스마트폰을 낚아 채 바닥에 강하게 내려찍은 것. 내 마지막 자존심이였다.

 

그 이후에는 상상했던 대로 구타당했으며 집에 들어온 나는 화장실에서 혼자 끅끅 울 수밖에 없었다.

 

 

"얀붕아, 너 왜그래..?“


"아, 어제 자다가 굴러서.“

 

몸에 든 멍과 상처를 본 그녀가 나에게 물어왔고 나는 변명했다.

통할리 없는 변명인걸 알고 있다. 어젯밤 하루종일 울어 벌겋게 부운 내 눈을 본 그녀는 무슨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는 듯 했으며,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괜찮아, 나 때문에 벌어진 일이고 네가 신경쓸 필욘 없어.“

 

"얀붕아, 이제 그만해.“

 

"뭘 그만해?“

 

그녀를 더 이상 막을순 없었다. 자신이 해결하겠다는 그녀를 말리지 못했다.

다음날부터 그녀는 학교를 오지 않았다. 물론 날 괴롭히는 무리 세명까지..

 

"시발...시발..“

 

나는 그 세명과 그녀가 학교에 나오지 않은걸 알자마자 집으로 달려가 방에 틀어박혀 울었다.

무슨일이냐며 묻는 어머니의 말씀을 무시한 채.

 

"내가..내가..“

 

망상은 끝없이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고, 감히 그녀의 집을 찾아갈 용기도 없었다.

난 끝까지 추악했다.

 

 

 

 

 

 

 

 

 

"시발..뭐야..“

 

"뭔데 시발..“

 

얀붕이를 괴롭히던 세명이 눈을 뜬 곳은 습한 지하실, 손발은 철제의자에 묶여있었고 몸을 흔들어 봐도 흔들리지 않았다.

 

"아무리 흔들어봐도 소용없어.“

 

온갖 몸부림을 쳐 보아도 의자는 바닥에 용접되어 있어 아무리 흔들어도 뜯어질 기미가 안보였었다.

 

탁!

 

앉아서 책을 읽던 소녀는 한손으로 책을 소리나게 덮었으며 천천히 그들의 앞에 걸어왔다.

 

정신을 차린 이후에야 그녀를 바라보았다.

 

"씨발년아 뭐하는짓이냐?“

 

"너, 얀붕이 여친 아니냐?“

 

"돌았냐 씨발년아.“

 

쉴틈없이 욕을 내뱉는 그들을 향해 그녀는 옆 테이블의 의자를 꺼내 앉아 놓여진 종이를 들어 천천히 낭독했다.

 

"너, 외동에 어머님과 같이살고 여자친구가 있네, 너는 여동생이 있고 부모님은 맞벌이, 너는...“

 

한명씩 신상정보를 낭독하는 그녀의 말이 늘어질수록 그들은 점점 식은땀이 흐르는 듯 했다.

 

"참 대단하게도 살아왔어, 너네 벌써 이틀 지난거 알아? 그 동안 한명도 너희를 찾는 사람이 없어, 네 여자친구 조차 지금 다른남자들이랑 놀러다니느라 바쁘고. 얼마나 개떡같이 살았길래 단 한명도 너희를 찾는 사람이 없어, 부모조차.“


그말에 발끈했는지 말로는 차마 담아낼 수 없는 욕짓거리를 반복했고 그러다 한명이 그녀의 심기를 건드렸다.

 

"너 씨발 그새끼 좆집이지? 니년 조지고 얀붕이새끼도 존나 조질 거야 씨발아.“

 

탁탁

 

그녀는 조용히 탁자를 두드렸다. 그 후 갑자기 한 남성이 큰 상자를 들고왔고 상자를 뒤적이다 카메라를 설치했다.

 

"아직 상황판단이 안된 것 같은데, 여기는 지하야.“


"뭔..“

 

"아버지께서 요양 목적으로 만든 펜션인데 지하는 창고목적으로 만들어진 곳이야.“

 

"그게 뭐.“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상자를 열어 까만색 망치를 꺼내어 아까 입을 험하게 놀린 그의 손을 강하게 내려찍었다.

 

쾅!

 

"아아아아악!“

 

"고무망치는 말이야 말만 고무지, 맞으면 아파. 생각보다 잘 만들어졌어. 뼈도 쉽게 안부러지고." 

 

그제서야 상황이 이해된 듯 두명은 입을 꾹 다물었고 손이 벌겋게 부어오른 한명만이 윽억 거리며 거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카메라를 설치하던 남성에게 손짓을 했다. 설치가 끝난 남성이 천을 들고 와 세명의 입을 둘러 막았으며, 읍읍 거리는 소리만이 지하실을 휘감았다.

 

"솔직하게 말하면 너네들이 얀붕이한테 하는 짓 다 알고있었어. 나에대한 희롱도, 협박도, 모든 것을 다 말이야.“

 

그녀는 아까 덮어두었던 책을 펼치며 말을 이어갔다.

 

"처음에는 화가났어, 근데.. 얀붕이가 나를 지켜줄려고 하는 그 모습이 너무나도 좋더라, 그래서 그냥 내버려뒀어. 근데 어느순간 나를 피해다니기 시작하더라.“


그녀는 책을 한 장씩 넘겼다.

 

"그때 얀붕이한테 너무 화가나 찾아갔어, 그때 어땠는줄 알아? 미안하다면서 끅끅 우는 얀붕이가 내 가슴에 묻혀 온몸을 떨었어. 그때의 감각을 기록할 수 있다면 나는 영원히 그 감각을 유지하면서 살고싶어.“


읍읍

 

뭔 미친년이냐는 마냥 세명은 어떻게든 벗어나고자 몸을 흔들었다.

 

"그래, 얀붕이가 우는건 나때문이여야 하고, 나 때문에 웃고 울어야해.“

 

그녀는 읽던 책의 표지를 그들에게 보여줬다. 중세시대 관한 책이였다.

 

"마녀사냥 이라는게 뭔지 알아? 말 그대로 마녀를 잡는거였지, 근데 처형당했던 사람들중에 마녀가 있었을까?“


책을 테이블 위에 얹어 두고 상자를 뒤적이며 말을 이어갔다.

 

"마녀는 없었어, 정치라는게 다 그래. 나라의 잘못을 다른사람에게 뒤집어 씌우기에 좋은게 뭘까? 바로 공공의 적을 만들어서 자신들에게 가야할 온갖 분노를 돌리는거지. 사람들을 하나로 뭉치는 것도 똑같아. 한 두명을 이용해 선동시켜 공공의 적이나 신념을 만들게 되면 자연스레 광적으로 믿는 사람이 생기고 그게 진실이라고 믿는거야.“

 

그녀는 상자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며 말했다.

 

"마녀사냥은 그저 쇼인거지, 민중의 눈을 돌릴만한. 그럼 쇼를 즐겁게 만드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지 않을까? 기상천외한 고문으로 거짓 자백하게 만들어 수백,수천의 대중앞에서 처형시키는거야, 자신들이 정의인 것 마냥.“


그 작은 상자에는 얇고 긴 바늘들이 가득했으며 그녀는 그들의 곁으로 다가갔다.

 

"이래서 과거가 재밌는거야, 미련하고 멍청한 사람들을 보면 온몸에 소름이 끼치거든. 근데..너네는 얼마나 버틸까?“

 

"으..읍..읍!!“

 

그들이 아무리 온몸을 흔들어도 의자는 굳은 의지를 가진 것 마냥 미동조차 없었다.

 

 

 

 

 

 

 

 

 

 

 

 

"얀붕아?“

 

"어..?“

 

사흘뒤 그녀를 학교에서 마주쳤다. 나는 그녀를 보자마자 안색이 새파래 졌으며 왜 학교를 나오지 않았냐며 감히 물어볼 수가 없었다.

 

"왜 병문안 안왔어..?“

 

"뭐?“

 

"나 아파서 병문안 오라고 문자 보냈는데 답장도 없고 전화도 안받더라.“

 

"아.... 나 폰이 부서져서 못봤었네 미안해.“

 

내가 망상한 일과 달리 그녀는 그저 아파서 학교를 쉰 듯 했다. 솔직히 마음 한편에는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그런일을 당했지만 밝은척 할려고 한다는 생각이 남아있긴 했다.

 

"가자.“

 

그녀는 나의 손을 잡고 이끌었으며 상상따위는 책으로만 만족하자 생각하며 넘어갔다.

다음주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날 괴롭히던 무리는 무슨 사고를 쳤는지 학교를 자퇴했으며 더 이상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다.









NTR인줄 모르고 본 만화에 정신이 혼미해져서 써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