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 확보 실패, 팀 전멸!"


고통과 절망이 섞인 목소리가 거친 숨소리와 함께 튀어나왔다.

헐렁해진 방탄헬멧이 정신없는 뜀박질 때문에 정수리 위에서 요동친다.

상황을 녹화하기 위해 설치되었던 머리 왼편에 있던 카메라는 먹통이 된 지 오래다.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달리던 것을 멈추고, 깊은 숲속 한가운데 놓여진 이질적인 암석 아래로 내려와 엄폐물로 삼았다.

그리고는 다시 야시경을 내리고, SR-25를 암석 밖에 튀어나오지 않게 은밀히 조준했다.

SR-25는 저격총이고 오랜 시간동안 많은 실전에서 사용해왔던 터라 어떤 총보다도 자신있는 병기였는데, 지금은 아니다.

저건, 기관총을 갈겨도 부족하다.


미치도록 무섭게 따라오던 놈의 기세는 어디가고, 내가 전투태세를 갖추자마자 증발한 듯 전혀 보이지 않는다.

칠흑같이 어두운 숲속.

총구는 암석에 걸려 제한적인 기동밖에 못하고, 만약 더 적극적으로 움직인다면 순식간에 놈의 먹이가 되고 말 것이다.


식은땀은 흘러나오고, 팔에 생긴 상처에선 점점 피가 맺힌다.

고통은 점점 심해지고, 나는 교신만을 기다리고 있지만 어떠한 반응도 없다.

이렇게 된다면 무리다.

최정예 대원들로 꾸려진 우리 팀은 놈의 형상조차 보지 못하고 궤멸당했다.


나도 결국 죽게 되는것은 시간문제.


그리 생각하니 점점 그립에 쥔 손의 힘이 슬슬 빠져든다.

포기해버린 것 때문인지, 팔에 생긴 상처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더 이상 조준경에 눈도 맞추지 않은채, 죽음만을 기다린다.






...저기.




놈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니, 년의 목소리인가.

괴물 주제에 무척이나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녔다. 

묘하게 앳된 목소리이기도 하다.

그러니 숲의 세이렌이라는 별명으로 소문이 났었겠지.



..저기, 있잖아.


그런데 괴물의 목소리가 이상하다.

뭔가 수줍어하는 듯하면서 상기되어있다.

하긴 그런건가.

술래가 마지막으로 남은 사람을 잡기 직전의 짜릿함과 여유..?


나는 총을 결국 낙엽 가득한 황망한 숲의 바닥에 던져버리고 눈을 감는다.




나, 정말로 기뻐.



얀붕이를 다시 만나게 돼서... 너무너무너무 기뻐.

사실.. 얀붕이 너를 불러내기 위해서 사람들을 죽였던거야.

그리고 오늘 얀붕이, 너가 와줬어.




".......너, 누구야..?"





...기억 못하는구나아..

괜찮아! 곧 기억하게 될거니까!

사실, 얀붕이 친구들은 오늘 죽일필요가 없었어.

얀붕이 너만 데리고 갈 생각이였는데에.....


너가 그들이랑 많이 친한 것 같아서, 그들을 의지하는 것 같아서 전부전부 다 죽여버렸어.






"너, 누구냐고 씨발년아!!!! 모습을 드러내! 이 좆같은 년아!"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뭉실뭉실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괴물년에 극도로 분노해 홀스터에서 권총을 뽑아들고 마구 쏘아댔다.






귀여워... 얀붕이.

아무것도 못하면서.. 앙탈 부리는거야?



그리고 그년은 모습을 드러냈다.



순식간에 내 권총을 뺏어버리고는, 길고 창백한 손을 내 목에 가져다 댔다.

그저 손가락이 목에 닿은 것 뿐인데 내 몸은 뻣뻣하게 마비되었고, 호흡도 통제 되었다.

그제서야 보이는 괴물의 모습은, 너무나 낯익으면서도 이질적인 것이였다.


길고 윤기나는 흑발, 지극히 햐야면서도 창백한 피부.

그때나 지금이나 거대한 흉부와, 190cm는 족히 넘을듯한 키.

그러면서도 같은 여자도 홀릴듯한 치명적인 외모와 우월한 몸매.

그리고.. 붉은 눈.



"너...너는..."



알아봐준거야? 알아봐준거야? 얀붕아, 나 누군줄 알겠어?? 



괴물의 목소리는 매우 흥분한 듯 파르르 떨려온다.



"아....라냐.."



아아...

얀붕아.. 환영해.

우리의 신혼집에 온 것을...♥



5년전에 구 소련 연구기지에서 구해줬던 돌연변이인 그녀.

그때는 한없이 병약했던 소녀가 지금은 비교할 수 없을정도로 강한 괴물이 되어 있었다.



그때 연구소 타격작전이 끝나고 그녀와 깊다면 깊은 유대를 맺고 헤어지게 되었을때 아라냐는 나를 못 가게 꽉 붙잡았었다.

그러나 내가 어떻게든 귀국을 했고, 그녀와는 작별인사도 못한채 헤어졌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열어본 가방에는 그녀의 편지가 적혀 있었다.





미워, 얀붕아.

이 편지를 봤을때는 분명 너는 나를 버리고 도망갔던거겠지.

너를 붙잡기에 나는 한참 약하니까.

미워. 그렇지만 사랑해. 그리고 이해해

그렇지만 초조해. 불안해.

나는 너가 날 버렸어도  널 찾을거야.

너가 날 구해줬을때 덮어주었던 담요, 네가 날 쓰다듬던 손길.

앞으로 영원히 잊지 못할거야.

항상 복면을 쓰고 있어서 맨얼굴 보기 힘들었던 너의 모습도 나는 절대로 잊지 않아.

다시 만날때는 강해져있을거야. 돌연변이 답게.

너를 그때는 절대로절대로절대로절대로절대로절대로절대로 못 도망가게 할거야.

그리고, 마지막.

내 이름이 Aranea 인걸 기억해.

절대로 나는 포기따위, 안해.






Aranea. 아라냐.

라틴어로 거미줄.

거미는 자기가 쳐놓은 줄에 걸린 먹이를 절대로 놓아주지 않는다.

특히 불안정하고 굶주린 거미는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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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존나 안써진다

글이 써지면 그 전 이야기부터 착정섹스후임신출산라이프까지 연재할까 생각했는데 단편이 더 나을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