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붕이는 촉망받는 육상선수였어. 신이 축복이라도 내린 듯한 재능도 있었고 예쁜 매니저도 여자친구로 붙었었지. 육상 하나로 명문대에서 와달라고 초청받을 정도였다니깐?


왜 죄다 과거형이냐고?


어느 날 가족여행에서 돌아오던 얀붕이네 가족이 탄 차가 음주운전하던 화물트럭과 교통사고를 일으켰거든. 얀붕이만큼은 살아남았지만 트럭운전사가 도망친 탓에 너무 늦게 치료를 받아 다리가 절단됐지. 거기에 몇년동안 사귀었던 매니저도 얀붕이가 앉은뱅이가 되니까 망설임도 없이 일방적으로 이별통보를 하는거야. 처음부터 돈 잘버는 선수 하나 잡아서 빨대꽂으려고 한 건데 돈만 드는 병신은 필요없잖아? 라이벌과 교제하며 자기를 병신취급한 둘을 본 얀붕이가 창문까지 기어가 뛰어내리려 할 때 어떤 미녀가 그를 막았어.


얀순이었지. 뺑소니를 한 트럭이 소속된 재벌집의 막내딸에, 얼굴은 미소년인 얀붕이가 완벽하게 취향저격이었던 거야. 그래서 얀순이는 속죄의 의미로 얀붕이의 인생을 책임져주겠다며 붙는거야. 인간불신에 걸린 얀붕이는 얀순이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결국은 얀순이의 헌신과 사랑에 굳게 잠근 마음도 다시 열렸지.


몇 년 뒤,


라이벌 그룹의 스폰서를 받으며 뛰던 라이벌은 도핑 의혹에 휘말리며 자살했어. 사실 도핑은 얀순이가 조작한 거였지만 대마초 반응만큼은 진짜로 라이벌이 핀 탓에 나머지 약물들도 그대로 누명을 쓴 거지.


순순히 얀붕이를 포기해준 매니저는 고마워서 살려줄 생각이었지만 생각해보니까 얀붕이를 버렸네? 얀붕이가 자살시도를 한 것도 그년탓이네?


어? 열받네?


그래서 매니저는 철거 예정인 빌딩 위에서 달려야 했어. 안 그러면 런닝머신에서 미끄러져서 자유낙하를 해야 하니까. 뭐, 매니저 치고는 꽤 오래 뛰었지만 말이야.


얀붕이는 평생 얀순이의 새장 속에서 붙들려 아무 것도 모르고 행복하게 사는 애완인간이 되었어. 의족만큼은 절대 못하게 하고 얀순이가 이끄는 휠체어가 없으면 목줄 탓에 얀순이의 침실을 벗어나지 못했지만 얀붕이는 개의치 않았어. 이미 얀붕이의 머릿속에서 얀순이는 폭력도 폭언도 절대 안 하는 사랑스러운 그의 주인님이자 여신님이니까.


어느 날 민달팽이처럼 질척한 유사 오네쇼타 야스가 끝난 후 얀순이는 그녀의 품 위에서 새근새근 잠든 얀붕이를 사랑스럽게 쓰다듬었어.


얀붕이는 알 필요 없어.


망가진 얀붕이가 갖고 싶어 마약중독 노숙자였던 트럭기사한테 뺑소니를 의뢰한 뒤 마약으로 암살해 입을 막은 것도.

의사한테 뒷돈을 먹여 재활하면 살아날 수 있던 얀붕이의 다리를 자르도록 한 사실도.

얀순이보다 키가 훨씬 작아진 얀붕이의 몸에도, 뭉툭한 얀붕이의 다리에도, 휠체어에 앉아 얀순이에게 안아달라고 팔을 뻗는 얀붕이의 애처로운 모습에도, 절단면에 남은 흉터에 욕정하는 얀순이의 이상성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