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도스 아일랜드를 떠난 지 어느덧 반년.


우리는 이동도시 에덴을 기점으로 빠르게 성장해나갔다.


"박사, 초대장이야."


소나기가 내리는 오후.


엑시아가 가져온 보고서에는, 그다지 반갑지 않은 내용이 적혀있었다.


"로도스 아일랜드, 용문과의 삼자대면 회담인가……"


분명 첸과 아미야가 나를 보면 온갖 폭력과 폭을 휘두르겠지.


또 내게 무슨 매도를 할까?


태어나서는 안 되는 존재라면서 내게 저주를 퍼부을까?


아니면 나를 단체로 벌레처럼 짓밟으면서 비웃을까?


그때처럼 다시 몸의 온 곳이 욱신거려온다.


"박사!"


"어, 어……?"


"괜찮아? 가기 싫으면 우리가 정해서 갈게."


순간,


그 말에 기뻐해버린 내가 너무나도 미웠다.


나는 이들의 지휘관이자, 리더다.


그저 뒤로 숨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는데도, 이런 배려심에 금방 현혹되어버리는 내가 너무나도 한심했다.


"아냐, 내가 갈게."


"괜찮겠어?"

"이건, 내가 가야 해결되는 일이야."


그때,


"아니, 그냥 가지 마."


지마가 사무실의 문을 열고 내게 말했다.


"지마, 순찰돌고 온 거야?"


"솔직히 우리한테 순찰을 맡겼을 때 제정신인가 싶었는데, 역시 박사는 뭐가 다르다니까."


"할 말은 마저 해. 박사가 다칠까봐 그렇게 말하는 거야?"


접대용 소파에 앉은 지마는 탁자에 놓여있던 보드카를 들이키고 입을 열었다.


"그런 것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게 있거든."


저 폼에 중학생이라니, 우르수스는 신비한 종족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됐다.


"오늘 찾아온 반가운 손님이 있거든. 만나볼래?"


"이상한 건 아니였으면 좋겠는데……"


"굼, 이스티나! 여기로 모셔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굼이 이스티나와 함께 방독면을 쓴 사람을 데려왔다.


"박사. 설마, 저 사람……"


"스컬슈레더……!"


리유니온의 간부, 스컬슈레더가 나를 향해 걸어왔다.


"지마, 머리가 어떻게 된 거야!? 여기에 리유니온이 침입하도록 두다니……!"


"침입해 온 것 같냐, 엑시아?"


"뭐……?"


"저 스컬슈레더인가 뭔가하는 녀석, 무기도 안 들고는 내게 박사에게 안내해달라고 했다고."


확실히, 그의 손에는 그때의 위협적이었던 무기가 보이지 않았다.


지마와 엑시아가 말싸움을 하는 사이, 스컬슈레더가 내게 말을 걸었다.


"로도스, 아니 에덴의 총책임자. 난 싸우러 온 게 아니야."


"그건 알고 있어. 그렇다면 어째서 나를 찾아온……"


그리고, 그는 내 책상에 머리를 박으며 울기 시작했다.


"여동생이, 미샤가 로도스 녀석들에게 붙잡혔어…… 부디 힘을 빌려줘! 아니면 미샤가, 죽어버리고 만다고……"


엑시아는 그 말을 듣고 지마와의 말싸움을 멈춘 채로 얼어버렸다.


나 또한 머리가 한순간 멈추는 듯 했다.


"잠깐, 스컬슈레더! 무슨 소리야!? 로도스 아일랜드가 미샤를 잡아가다니, 거짓말하는 거지?!"


그에게 다가간 엑시아가 멱살을 붙잡고 윽박질러도, 스컬슈레더는 그저 울 뿐이었다.


"……지마."


"어."


"이럴 줄 알고, 나보고 가지 말라고 한 거지?"


지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웃으면서 지마는 보드카를 들이키고서 말했다.


"글쎄다? 난 워낙 머리가 안 좋아서."


거짓말치기는.


나는 지마의 뒤로 다가가서 있는힘껏 지마의 귀를 만지면서 머리를 쓰다듬었다.


"잠깐, 귀 만지지마! 간지럽다고, 이 자식아!!"


"이 귀여운 녀석 같으니."


"아아, 진짜! 패기 전에 그만해!!"


곰이 성질낼 때만큼 무서운 것도 없는지라, 적당히 놀려주고 다시 스컬슈레더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스컬슈레더, 그럼 우리와 거래를 하지 않을래?"


"거, 래……?"


"그래, 아주 간단한 거래야."



***



모래바람이 드리우는 노을저녁.


창 밖으로 붉은 노을이, 키메라소녀와 용 인간의 얼굴을 향해 빛을 비췄다.


"……"


"……"


로도스 아일랜드는, 박사의 해임 이후로 내리막길과 다름없는 길을 걷고 있었다.


더이상 그들은, 감염자들을 위한 집단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늦으시네요."


"그렇군……"


그때 회의실의 문이 열리고,


"……다들 구면이군."


스컬슈레더와 전 로도스 아일랜드의 오퍼레이터들이 회의실로 들어왔다.


"스컬슈레더……!!"


"이 *용문 욕*이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아미야와 첸이 스컬슈레더를 공격하려들자,


"자, 거기까지."


주위의 모든 것이 느리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금의 그는 리유니온이 아니라, 에덴의 대표 대리로서 왔을 뿐이야. 무의미한 피는 보고 싶지 않은데."


모스티마.


시간을 다루는 시간술사인 그녀가 나서자, 아미야와 첸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공격태세를 풀었다.


그렇게 로도스 아일랜드, 용문, 에덴의 삼자대면 회담이 시작되었다.


"보아하니, 미샤를 돌려달라고 하기 위해서 에덴의 총책임자를 찾아가신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저희는 미샤 씨를 돌려드릴 의향이 없습니다."


"그녀는 중요한 인물이니까 말이야."


스컬슈레더는 놀랍지도 않았다. 이미 박사가 다 예상한 말이었으니까.


"어차피 알고 있었어. 이런 회담에서 리유니온인 나를 믿어줄 사람은 없을테니까."


"그럼, 이제 조용히 이 회의실에서……"


그때,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스카디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래도 괜찮겠어? 이 협상이 결렬되면, 로도스 아일랜드의 적은 리유니온으로 모자라서 에덴까지 등을 돌리는 꼴인데?"


"스카디의 말대로, 우리 리유니온은 에덴과 임시동맹을 맺었어. 거절했다가는, 로도스 아일랜드는 많이 힘들어질 거야."


그 말에 아미야와 첸은 얼어붙고 말았다.


메피스토 하나 막는 데에도 애를 먹는 신세인데 신규세력인 에덴마저 상대한다는 선택지는, 길이 어디든 끝이 파멸이라는 소리밖에 되지 않았다.


"역시, 이 *용문 욕*을 죽여야……!!"


분노한 첸이 칼을 뽑아 스컬슈레더의 목을 향해 휘둘러봤지만,


"근위국 감찰팀장 나리, 칼 집어넣는 게 좋을걸?"


이내 지마의 소방도끼에 기분나쁜 쇳소리를 내며 가로막혀버렸다.


"그쪽이 우리한테 뭐라 할 입장은 아니잖아? 우리가 누구 때문에 로도스 아일랜드에서 나오고 에덴을 세웠는데!!"


지마가 포효같은 목소리로 윽박지르자, 그녀의 시선 끝에 있는 아미야는 불편한 듯이 눈을 피했다.


"제기랄……"


첸이 칼을 거두고, 지마가 뒤이어 도끼를 거두자 다시 회의실이 조용해졌고, 어금니를 꽉 깨문 아미야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미샤 씨를 풀어드리죠."


"말이 통해서 다행이네, 덕분에 살았어."


그러던 도중에 지마의 귀에서 작은 소리가 흘러나오고, 얼마 못 가서 지마는 무전기를 들고 조용히 말했다.


"엑시아, 그 새끼들 전부 회의실로 데리고 와."


"무슨 일이라도……?"


"감찰팀장 나리, 끝까지 이렇게 비겁하게 나오기야?"


잠시동안 불편한 침묵이 흐르다가, 우르르 몰려오는 발소리에 아미야와 첸은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문이 열리자,


"너, 너희들……!"


용문근위국의 제복을 입은 남자들이 밧줄에 묶인 채로 내팽개쳐졌다.


"으윽……"


"지마, 정확히 15명이야. 전부 용문근위국 계급장을 달고 있었어."


"이 새끼들이 우리가 온 이동도시로 숨어들려고 했다는데, 이거 당신 지시지?"


"그게 무슨……?"


"아가리 여물고 내 말에 대답해!!"


"윽, 맞다……"


첸은 눈을 내리깔고 깊게 분노했다.


그런 모습을 본 지마는 회의실의 탁상에 올라가, 첸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툭툭 치며 말했다.


"인과응보라고 생각해. 똑똑히 들었겠지?"


지마가 탁상에서 내려오자, 뒤에 대기하고 있던 스카디가 무전기를 들었다.


"블루포이즌, 스나이퍼들 후퇴시켜."


치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잔잔한 목소리가 무전기에서 흘러나왔다.


"알겠습니다."


스카디가 무전을 끊자 엑시아가 스컬슈레더를 데리고 나갔다.


"앞으로는 안 봤으면 좋겠네, 아미야."


전방을 맡고 있었던 우르수스 학생자치단도 뒤따라 회의실을 나갔다.


"꼴불견이네, 감찰팀장 나리."


우르수스 학생자치단을 이어, 스카디를 비롯흔 어비셜 헌터스도 회의장을 나갔다


"후회해도 늦은 거, 알고 있지?"


그렇게 모스티마를 마지막으로, 에덴 오퍼레이터들이 모두 떠나갔다.


어두워져버린 회의실에는, 자존심마저 완전히 짓밟혀버린 첸과 아미야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



"이번 일은 고마웠어. 우리가 어떻게 답례를 해야 할지……"


평온하기 그지없는 박사의 사무실.


스컬슈레더는 방독면 사이로 질릴 정도로 박사에게 고맙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보답은 됐어, 내가 독단적으로 생각한 일이니까."


"아냐, 그래도……"


그때, 스컬슈레더의 무전기에서 치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스컬슈레더, 응답해라."


"스컬슈레더, 호출 확인했다. 무슨 일이지?"


들려오는 그 목소리는, 박사가 알고 있는 여성의 목소리였다.


"설귀 소대를 포함한 지원부대가 에덴에 도착했다. 위치 보고하도록."


그녀의 이름은 리유니온에서 악명높은 설귀 소대의 대장,


프로스트노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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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가 가서 매도당하는 장면을 넣으면 더 사이다가 될 것 같았지만 너무 절망적일 것 같아서 다른 루트로 바꿈

빌드업까지 좀 지루할 수 있겠지만 좀만 버텨줘

근데 확실히 1편 당 10000자 쓰는 거랑 3000자 쓰는 피로감이 확실히 다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