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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라는 녀석이, 내 성에 당분간 머무르기로 했다. 

녀석은 아침마다 일어나면서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우리는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있다. 

어느 날, 그가 내 성의 창고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저기, 같이 체스 해 보지 않을래?"

"음? 그게 무엇이냐?"

"성의 창고에 있던 건데, 이렇게 썩혀두면 아깝지. 같이 해보자."

"좋다. 규칙은 알고 있으니, 따로 설명은 안해도 된다."

"그래."

툭, 툭, 툭, 말을 내려놓는 소리가 계속 들린다.

"흐음, 오랜만에 하니 잘 안풀리는구나."

"너가 이기고 있는데?"

"그래, 원래대로라면 벌써 끝나야 했지만 말이지."

"대체 얼마나 잘하는 거야, 넌."

"모르겠다. 200년 전에 성에 마지막 손님이 떠난 후 이걸 창고에서 꺼낸 적은 없으니까 말이지."

"뭐? 그럼 넌 200년 동안 여기에 계속 가만히 있었단 말이야?"

"그렇다."

"불쌍하네...."

"불쌍하다니?"

"아니, 그렇게 오랫동안 혼자서 이 성에서 지냈다니, 외롭지 않았어?"

"뭐, 거의 시체처럼 지냈으니, 감정을 느낄 겨를은 없었지."

"아니, 잠깐만. 네 부모님들은? 너도 부모가 있을 거 아니야."

"글쎄다. 내가 철들 무렵에 이 성을 넘겨주고, 어디론가 떠났지. 200년 전에 말이야."

"그럼 그 마지막 손님이라는 게..."

"그렇다, 내 부모님이다."

"넌, 진짜 기구한 인생을 살았구나."

"왜 그렇게 생각하지?"

"그렇게 주변에 아무도 있지 않고, 외롭게 살아가는게 힘들지 않았어?"

용사 녀석의 말을 듣고, 난 체스 말을 움직이는 걸 잠시 멈췄다.

"힘들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그런데 왜 여기에 가만히 있었어?"

"그야, 내가 태어나고 나서 철들 무렵까지 내 세상은 이 성이 다였으니까, 성 밖에는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너가 성 밖에서 이리로 들어왔으니, 당연히 이 성 밖에 무언가 더 있다는 것을 알게 됐지."

몇 번의 차례 이후, 결판이 났다.

"체크메이트."

"이런, 내가 졌군. 200년 동안 하지 않은 탓인가."

용사가 이겼다.

"다음에는 이길 수 있을 거야."

"좋다. 내일 다시 해 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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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됐다.

난 일어나서 등교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침을 먹고, 세수를 하고, 이빨을 닦고, 교복을 입고, 나설 준비를 마쳤다.

문을 열자 그 앞에는...

"반갑다."

마왕이 있었다.

"같이 등교하자고?"

"그렇다. 천천히 걸어가며 담소나 나누자꾸나."

"그래."

나는 그녀와 함께 등교하며, 얘기했다.

"앞으로 그대와 함께 살아갈 날을 생각하니 정말 행복하군."

"그렇게 내가 좋아?"

"당연하지. 그대가 나에게 해준 일을 생각하면, 그대와 평생 같이 있고 싶다는 마음을 품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하지."

"너랑 놀아주고 대화를 나눈 게?"

"나랑 대화를 나누고, 진실로 기쁜 감정을 느끼게 해준 자는 그대가 처음이니 말이다."

"정말 그것 때문에 나에게 반한 거야?"

"너가 내게 해준 말을 '그것'으로 치부하지 말거라. 그대가 내게 해준 말들, 행동들 하나하나가 내게는 소중하니 말이다."

"..."

나는 그녀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그녀가 그리도 내가 한 모든 말에 기뻐하는 이유를 알고 있으니까.

동시에, 멋대로 죽어버린 나 자신을 향한 죄책감도 느껴졌다.

"그, 미안해."

"음? 무엇이?"

"그때, 성을 떠나고 인간들한테 돌아가고 나서 멋대로 죽은 거."

"그대가 그대 멋대로 죽은 것이 아니다. 어리석은 인간들이 그대를 죽인 것인지. 나는 그것 때문에 그대를 조금도 원망하지 않는다."

"그래도, 네 말대로라면 내가 너에게 말을 걸어서 너가 날 소중히 생각하는 거 아냐. 근데 내가 그때 죽었으니..."

그녀는 손가락을 내 입술에 갖다댔다.

"쉿. 난 그때 그대가 죽은 것을 절대로 원망치 않는다. 마왕의 이름, 베리타스를 걸고 맹세하마."

"정말?"

"그렇다. 그리고 그대를 죽인 인간들은 최대한 잔인하고 고통스럽게 죽였으니, 너무 걱정 말거라."

"하하... 그건 좀 무섭네."

"그만큼 그대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고맙다. 날 소중히 생각해 줘서."

대화를 나누다 보니 학교에 도착했다.

"그럼, 들어가자."

"그래. 같이 들어가자."

드르륵, 문을 열자마자.

"요올~커플 왔다!"

"야! 용철! 어제 네가 말한 대로 했는데 여자친구는 생기지도 않았어! 이 기만자!"

"너네 외모로 여자친구는 무슨~ 그나마 용철이가 잘생겼으니까 저렇게 여자친구가 생긴 거야~"

"씨발!"

친구들이 우리를 반겼다.

나는 내 옆의 마왕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베리타스, 이제는 이 세계에서 행복하게 지내자."

"물론이다."

나는 교실에 들어가, 자리에 앉고, 그녀와 함께 수업을 들을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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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용사에게 진 게 분했던 것인지, 오늘은 그 체스라는 걸 다시 했고, 용사에게 이겼다.

"체크메이트."

"아! 오늘은 내가 졌네. 마왕 너 대단하다?"

"이 정도야 기본이지."

"어, 오늘은 다른 이야기를 해 보자."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으냐?"

"이번엔 네 얘기가 들어보고 싶어. 마왕, 넌 정말로 그 200년 동안 여기에 가만히 있는 채 시간을 보냈어?"

"그렇다. 주변엔 아무도 없으니 이렇게 즐거운 걸 할 수도 없었고, 대화도 할 수가 없었지. 거의 시체처럼 지냈었지. 그런데 네가 성 밖에서 나온 걸 보니, 성 밖으로 한번도 나가지 않은 것이 좀 후회가 되는구나."

"....내가 옛날 얘기를 들려줄까?"

"좋다. 무슨 이야기이지?"

"빨간 도깨비 파란 도깨비 이야기."

"좋다. 한번 들어보겠다."

"어느 한 숲에, 빨간 도깨비와 파란 도깨비가 살고 있었어. 빨간 도깨비는 비록 인간이 아니었지만, 인간들이랑 친해지고 싶었지. 그래서 빨간 도깨비는 스스로 직접 인간들이랑 친해지려고 노력했지만, 인간들은 그를 두려워 해 그랑 친해지고 싶지 않았지. 어느날, 상심한 빨간 도깨비의 집에 파란 도깨비가 찾아왔어. 파란 도깨비는 빨간 도깨비에게 왜 이렇게 기분이 안 좋냐고 물었지. 그러자 빨간 도깨비는 인간들이랑 친해지고 싶은데 인간들이 멋대로 쫓아 보내서 슬프다고 말했어. 그러자 파란 도깨비는 자신이 인간들에게 행패를 부릴테니 그때 나를 쫓아 보내서 인간들에게 호감을 사라고 말했지. 하지만 빨간 도깨비는 그 계획에 선뜻 동의할 수 없었어. 왜냐하면 파란 도깨비는 빨간 도깨비의 죽마고우(竹馬故友)였기 때문이야. 하지만 결국 파란 도깨비는 인간들에게 행패를 부렸고, 그걸 본 빨간 도깨비는 차마 그를 때릴 수 없었기에 때리는 시늉을 했지만, 파란 도깨비는 때리는 시늉만 한다면 인간들이 빨간 도께비도 수상히 여길 것이라고 말해서 있는 힘껏 때려달라고 했어. 그래서 빨간 도깨비는 눈물을 머금고 파란 도깨비를 흠신 때렸고, 파란 도깨비는 도망치고 빨간 도깨비는 인간들과 친해지게 돼. 하지만 빨간 도깨비는 슬펐어. 자신의 찬구를 때린 것 때문에 파란 도깨비의 집에 찾아가서 사과하려고 했지. 그런데 파란 도깨비의 집 앞에는 편지가 있었어. 편지를 읽어보니, 자신과 계속 만나게 되면 인간들이 자신을 수상히 여길 것이라는 내용이었어. 결국 파란 도깨비는 자신의 친구를 위해 그의 곁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갔어."

"흠, 꽤 안타깝구나. 친구를 위해 자신을 희생시키고, 결국 그 친구 곁에서 영영 떨어지게 되다니."

"난 이 이야기에서 너랑 파란 도깨비가 닮았다고 생각해."

"음? 어째서냐?"

"그야, 넌 원치 않았는데도 인류의 적이라는 악명을 뒤집어 쓰게 됐잖아. 마치 인간들을 위한 희생 마냥. 그런걸 보면 파란 도깨비도 자신은 원치 않았지만 친구를 위해 희생한 거 보면, 넌 파란 도깨비랑 닮았어. 하지만 넌 파란 도깨비랑 달리 네 주변에 친우(親友)가 없으니 그 희생은 너에게는 의미가 없어. 그래서 네가 좀 안타까워."

"내가, 안타깝다고?"

"그래. 너는 희생을 했는데 정작 널 박해한 인간들에게만 도움을 주고 너 자신에게 도움이 되진 못했으니까, 그게 안타깝다는 거야."

"..."

"그러니까, 내가 네 첫 번째 친구가 되어줄께."

"....?"

"우리 둘이 친구가 되어서, 더 나아가 내가 인류에게 너가 해악이 되지 못한다고 하면, 넌 이 지긋지긋한 폐쇄적인 생활을 끝낼 수 있을 거야."

"그게, 사실이냐?"

"그래. 내가 너의 그 비참한 생활에 종지부를 찍을께. 넌 이제 그런 외로운 싸움을 하지 않아도 돼."

"흑... 흑...!"

영문도 모른 채, 나는 울고 있었다.

"괜찮아? 왜 갑자기 울고 그래?"

"아니다. 기뻐서 우는 것이다...!"

그날, 나는 용사 앞에서 통곡하고 있었다. 칠정(七情) 중에서 기쁨이 극에 달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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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수요일이다. 

우리 학교에서는 동아리 활동을 하는 날이다.

"화영아, 너는 동아리 어디에 들어갈래?"

마왕은 전학을 와서, 현재 소속된 동아리가 없다.

"음, 난 그대가 들어간 동아리에 들어가고 싶다."

"어, 보드게임 동아리인데 괜찮겠어?"

"보드게임이라면, 예전에 해본 체스 같은 것들 말이냐?"

"어, 그렇지?"

"그렇다면, 그대랑 같이 보드게임을 한다면 나는 더할 나위 없이 재미있을 것 같구나."

"그래? 그럼 넌 보드게임 동아리로 들어간다는 거지?"

"당연히 들어갈 것이다. 그대랑 같이 보드게임을 하는 것이 기대되는구나."

그렇게, 마왕은 내가 속해있는 동아리에 들어오기로 마음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