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열심히 썼읍니다. 부족한 필력이지만 언제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편 : https://arca.live/b/yandere/9693730



용사(파논) 성녀(엘리사) 궁수(아르카) 암살자(아이샤) 마법사(이얀붕)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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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궁의 접견실은 그야말로 대단했다.

천장에는 화려하게 장식된 샹들리에가 수없이 달려있었고, 벽에는 온갖 화려한 벽화들이 잔뜩 걸려있었다.

황제가 앉는 자리 좌,우로 기사들이 일렬로 서있었고, 그 앞을 따라 신하들이 정렬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우리는 황제의 얼굴이 보이는 곳까지 가서 예를 갖추었다.

그리고 알게 된 것은 조르디온 제국의 황제는 여황제라는 것이다.




"황제 폐하께 예를 갖춥니다."




우리는 모두 격식에 맞게 인사를 하였다.

나도 눈치껏 파논이 알려준 대로 따라 하였다.

손에 땀이 나는 것 같았다.




"고개를 들어라."




자세히 본 황제는 그야말로 고귀함, 그 자체였다.

샛노란 색의 긴 머리를 늘어뜨려놓고 한 손으로는 턱을 괸 채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황금 왕관과 황금 팔찌. 하얗다 못해 빛이 나는 것 같은 드레스.

그 자태에서 나오는 카리스마로 인해 숨이 턱턱 막혔다.




"그대가 이번에 새로 용사 일행에 합류하게 된 마법사인가."




"예... 그렇습니다."




"너무 긴장하지 말게, 가볍게 인사를 하는 자리이니."




"감개무량합니다."




"특이한 단어를 쓰는구나. 딱히 크게 해줄 이야기는 없다. 다만 용사 파티의 일행이니 행동에 특별히 주의를 가할 수 있도록."




"항상 유의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피곤할 텐데 얼른 가보거라. 아! 곧 있을 축제 때 황궁 연회가 있을 예정이니 다들 알아두도록 하여라."




"예 알겠습니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만 물러나도록 하겠습니다."




1시간이 12시간 같았다.

이제 사진만 찍어서 얼굴 등록하고 오면 끝이다.

이후에는 자유롭게 활동해도 된다고 하는데 뭐하지?




그나저나 사진이라니 이 세계에서는 사진을 어떻게 찍는 거지.




"좀 웃어보세요."




하...하...사진을 찍는다는 게 이렇게 찍는 거였나.




저 멀리 한 사람이 네모난 액자를 들고 내 얼굴에 맞춰 요리조리 맞추고 있었다.

저 액자 안에 얼굴을 맞추고 마법으로 빛을 투영하여 액자에 안 보이게 걸려있는 종이에 내 얼굴을 맺히게 한단다.

나는 이과와는 담을 쌓았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등록이 성공적으로 완료된 걸 확인하고, 나는 도서관으로 향했다.

듣자하니 이 제국의 도서관은 꽤 많은 양의 책들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아직 나는 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떤 것들이 존재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

또한, 마법에 문외한이기 때문에 더더욱 정보의 습득은 필요했다.

파논과 엘리사 아르카는 마을 구경을 간다고 했다. 뜻밖에 파논이 같이 가자고 했지만 거절했다.

아이샤는 그 새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어머 이번에 새로 용사 일행에 참가하신 얀붕님이시군요! 뭔가 찾으시는 거라도?"




"아 안녕하세요. 저... 기초 마법에 관련된 책이랑 제국 및 기타 나라의 역사나 문화를 정리한 책들이 필요한데요."




"그런 책들쯤이야 금방 준비해드릴 수 있어요. 혹시 또 필요하신 건 없으신가요?"




흠... 내가 이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남들과는 다른 게 필요하긴 하다.

남들과 다른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뭐 있을까....

아!




"혹시 기초 의학책이랑 연금술이라고 해야 되나 제작 기술 같은걸 모아둔 책은 없을까요?"




"그것들도 물론 있죠. 저기 앉아계시면 찾아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도서관은 사서가 알아서 책을 찾아주는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책이 너무 많아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책을 찾다가 그냥 돌아가는 경우가 많아서 이렇게 되었다고 들었다.

도서관을 둘러보니 꽤 사람들이 많았다.

그 중에 커플처럼 보이는 두 사람이 딱 붙어 앉아 같은 책을 읽고 있었다.

불현듯 가슴이 아려왔다.

... 다 잊은 줄 알았는데.



"저기...괜찮으신가요? 식은땀 흘리시는 거 같으신데."



"아 괜찮습니다. 책은 여기다가 두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가져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



"저희가 해야 할 일인데요 뭐."




후... 예전 생각은 그만하고 책이나 읽자.

슥....슥....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도서관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오늘은 이만 읽고 자리에서 일어나볼까.




역시 정보를 얻는 데는 책이 최고인 것 같았다. 오늘만 해도 엄청난 수확을 얻을 수 있었다.

일단 이 세계는 하나의 큰 대륙과 여러 개의 작은 섬 대륙으로 이루어져 있다.

큰 대륙은 구대륙 작은 섬 대륙들은 신대륙으로 부르고 있다.

신대륙 안에는 합쳐서 8개의 왕국과 제국 및 연합회가 있다고 한다.

왕국은 총 세 군데로 제피온 왕국, 샤르센 왕국, 타일 왕국이 있다.

제국은 내가 지금 있는 조르디온 제국과 푸룬 제국이 있다.




제국으로 부르고 있다지만 바다 건너 구대륙의 국가들은 제국도 왕국이라 부르기도 한단다.

황제라고 부르르냐 왕이라고 부르르냐 그 차이라고 한다.

옛날엔 조르디온 제국도 조르디온 왕국이었다.

지금 황제가 등극하면서 조르디온 제국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이 외 3개의 연합회가 있다. 각각 자일 해양, 자센 운송, 자린 인포메이션.




구대륙에는 동양풍의 나라도 있다는데 그건 다음에 알아보기로 했다.




기초 의학책에서는 놀랄 만큼 뭐가 없었다. 아무래도 신성력이 있는 세계이다 보니 웬만하면 성직자한테서 치료를 받는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의사 같은 직업이 생겨나질 않았을테고, 그냥 '무슨 병이 있다더라.' 이 정도 수준에 머물러있다.

급하게 치료가 필요할 땐 포션 같은걸 이용한다고 한다. 각 포션의 용도나 수급처 정도는 유용한 정보였다.




사실 내가 제일 기대한 건 제작기술 쪽이다.

기초 마법서를 아무리 읽어봐도 나는 여기서 마법이나 신성력을 쓸 때 필요한 마나에 대한 감응이 너무 떨어졌다.

그래도 조금이나마 그 흐름을 알 수는 있었다.

그래서 무기가 필요했다. 최소한 1인분은 할 수 있을 무기.

검이나 창은 잘 못 다루고 활도 못 쏘니 직접 만들어 쓰거나 희귀한 무기를 구해야 했다.

그래서 찾은 게 제작기술책이다.

완제품은 필요 없다 아니 여기에 내가 원하는 무기의 설계가 있을 리가 없다.



총. 소총이나 권총이 필요하다.

황당무계할 수도 있지만 나는 군대를 다녀왔다.

진짜 지겹도록 군대에서 하는 것 중에 삽질도 있지만, 총기 분해도 빼놓을 수 없다.

아마 지금도 눈 감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전역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그때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했다.

총을 거의 픽셀단위로 분해를 해봤으니 그 구조가 눈에 선하다.

들어가는 도구들도.

뒤지게 하기 싫었던 총기 분해가 이렇게 도움이 된다니.

나는 총기 제작에 필요한 물품들을 종이에 따로 옮겨적었다.

재료만 구하면 대장장이한테 의뢰를 맡기면 어느 정도 쓸만한 무기가 나올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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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저녁의 거리는 낮과 다름없이 활기찼다.

저녁이야말로 오히려 더 많은 사람이 모이는 것 같다.

나는 오랜만에 제네프 아저씨를 보러 주점으로 향했다.




"오 얀붕이 왔어?"




"안녕하세요. 아저씨. 저녁 시간에다가 배도 고파서 생각나는 데가 여기밖에 없더라고요."




"그럼 그럼 여기가 이 제국 수도의 최대 맛집이지."




그렇게 1인 테이블에 앉아 메뉴를 고민하던 중 반가운 얼굴과 그 외 2명이 보였다.




"오 파논 너도 저녁 먹으로 온 거야?"




"얀붕 형님~ 여기 계셨네요. 저희랑 같이 저녁 드시지 않겠어요?"




"그럼 나야 좋지 .안 심심하고, 괜찮을까 엘리사, 아르카?"




"뭐 파논이 좋다고만 한다면 저는 상관없어요."




"어쩔 수 없지 대신 파논 옆에는 내가 앉을 꺼야."




눼눼. 어차피 옆에 앉을 생각도 없습니다~.




우리는 적당한 크기의 테이블을 잡고 여러 가지 메뉴들을 시켰다.

나는 혼자 앉았고 내 맞은편에 파논을 중간에 끼고 3명이 나란히 앉았다.

오늘따라 옆구리가 시려온다.




"야 여기가 맛집이네! 맛집이여."




"맞아 여기가 진짜 서비스도 좋고 음식도 최고야."




"그렇네요... 파논이 좋아하는 걸 보니 요리법을 좀 배우고 싶네요."




아르카는 먹기 바빴다.

우리는 저녁을 먹으면서 서로에 대해 조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아르카와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동성애자라는 의혹을 벗을 수 있었고, 엘리사한테서 기초적인 신성력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다.

나는 내 예전 세계의 이야기를 주로 해줬다.

모두 귀 귀울여 듣는 게 마치 꼬마 아이들에게 옛날이야기를 해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나저나 다들 아이샤랑은 왜 멀리 지내는 거야?"




내가 이 말을 하자 묘한 침묵이 이어졌다.




"우리라고 처음부터 그렇게 멀리 지낸 건 아니야!"




뜻밖에 아르카쪽에서 대답이 나왔다.





"얀붕이는 아이샤 그 년이 어떤 년인이 몰라서 그래."





"아르카 진정하고 너무 그렇게 화내지 마."




"파논은 이래서 문제야. 너무 감쌀려고만해. 너도 봤잖아 그때 그 일."




그때 그 일?




"어쨌든 얀붕이 너 아이샤한테 관심 안 가지는 게 좋을 거야."




"얀붕씨. 이 이야기는 그만하도록 하죠. 차차 다 알게 될 거에요."

"저희가 이렇게 말하는 것보단..."




그렇게 대화가 끝이 났다.

파논도 조용하게 침묵을 유지해서 더는 물어볼 수도 없었다.

나는 그 뒤 숙소로 돌아와 조용히 생각에 빠졌다.




그때 그 일이라니. 무슨 일이지.

파논은 왜 저렇게 조용하고.

아직 나는 이 파티에 대해 많이 모르는구나.

그렇다고 섣불리 끼어들었다간 누군가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나는 시간을 들여 천천히 알아가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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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짹짹-




오늘도 어김없이 해는 뜨는구나.

나는 일찍 일어나 도서관으로 향할 준비를 했다.

오늘은 할 일이 많았다.

도서관에 가서 어제 다 못 읽은 책들도 마저 읽어야 하고, 무엇보다 대장장이를 찾아가는 게 오늘의 주된 목표이다.




"어라. 오늘도 오셨네요."




"안녕하세요. 어제, 마저 못 읽은 책들을 읽으려고요. 번거롭게 해서 죄송해요."




"아니에요. 정말 열심히 시네요. 부지런 하시달까."




이번에는 제국의 문화나 간단한 생활 지식에 대한 책만 읽고 바로 대장간으로 향했다.

진득히 책만 읽을려니 좀이 쑤셔서 말이다.




"어서오게나. 자네가 이번에 새로 들어온 풋내기이구먼."




"안녕하세요. 잘부탁드립니다."




이놈의 풋내기소리 한동안은 들을 것 같네.

간단한 통성명 후 나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대충 제작한 설계도를 보여주고 재료들을 정리한 종이를 보여주었다.




"흐음... 보기에는 간단한데 꽤 정교한 물건이로구먼. 자세한 수치가 적혀있질 않아 조금 걸릴 수도 있네만."




사실 아무리 총기 분해를 했어도 그 파츠들의 세세한 길이나 크기까지는 모른다.

대충 감으로 적은 거라 상당히 걸릴 것이란 건 알고 있었다.

그래도 만들어만 진다면 내 여정이 확 편해질 것이다.




"괜찮습니다. 시간은 많습니다. 그리고 여기 사례금이랑 추가로 돈을 조금 더 넣었습니다."

"제가 이러한 물건들을 의뢰했다는 것을 비밀로 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애초에 설계서대로 만들어진다고 총이 제대로 작동하리란 법은 없었다.

그러나 총의 제작법이 제국이나 다른 곳에 넘어간다면 메리트가 사라진다.

그리고 나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 그러니 최대한 조심해야했다.

돈은 뭐 파논한테 잘 말해서 두둑이 챙겨 올 수 있었다.

장비는 나라로부터 제공받으면 된다는 말에 적당히 둘러대고 도망쳤지만 말이다.




"흠흠...뭐 이렇게까지 부탁한다면야. 내 못할 것도 없지."




"아 그리고 이것도 만들어 주셨으면 합니다."




나는 손목까지 이어지는 장갑의 설계도를 보여주었다.

보기에는 평범한 장갑이지만 손바닥 부분은 힘의 강약에 따라 악력에 도움을 주도록 마법 재료를 섞은 원단을 썼다.

장갑 속에 여분의 공간을 조금 만들어두었고, 손가락 부분은 강철을 조금 덧대서 손가락을 보호할 수 있게끔 했다.




"물론이지. 되고말고 허허 일감이 몰려오니 기분이 좋구먼."




"장갑은 모쪼록 축제 전까지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번에 아이샤와 장갑에 대해 얘기를 했을 때 보았던 장갑은 정말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를 정도지만 그래도 계속 마음에 걸렸다.

오지랖일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그때 이후로 서먹서먹했기에 깜짝 선물을 주면서 사과하려 했다.




이 후 다시 도서관으로 돌아왔다.

마음다짐은 했지만 여전히 책은 읽기가 싫었다.

곧 있다는 축제에 대해서나 알아보기 위해 도서관 사서와 이것저것 이야기를 했다.

묘하게 어디서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도서관이니 조금 시끄럽게 굴었다는 생각이 들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나저나 축제라... 얼마만의 축제인지.

축제가 오기까지만을 손꼽아 기다리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