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바탕 음란한 식사를 마친 그들은 식기를 물리고 단 둘이 마주보며 시간을 보냈다. 어느쪽도 말을 하지 않았지만 한쪽은 그저 보는것 만으로도 환희를 느꼇고 한쪽은 불필요한 대화를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이런 밤이 늦어버렸네요 마음 같아선 함께 자고싶지만 저는 섣불리 가장 즐거운 부분을 맛봐버리는 바보가 아니랍니다, 그건 나중의 즐거움으로 해두고 일단 좋은 꿈 꿔주시길 바랄게요, 제가 나오는 음몽을 꿔주신다면 더할 나위가 없는 기쁨이겠어요."


"......밤이 늦었소 가서 주무시오."


쌀쌀한 태도에 섭섭함을 느낀 클로에는 볼을 살짝 부풀리더니 흑발의 기사의 볼에 입을 맞추고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에 두통을 느낀 흑발의 기사는 자신의 방에 있는 침대를 어루만져 보았다. 어렸을 땐 누님에게  보살핌 받기 전까지는 매일 창고에서 추위에 떨며 잠이 들었고 기사가된 후엔 막사에서 잠을 자거나 집무실의 의자에 앉아 쪽잠을 자는게 전부였다. 이런 고급 침대는 오랜만이었던 그는 그 침대에 걸터앉아 밤하늘을 내다보았다. 부디 그 아이 만큼은 무사하길 바라며 클로에에게 자신의 말을 지킬 정도의 상식이 있길 기도했다. 클로에의 얼굴을 떠올리자니 묘한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그녀는 매력적인 여성이다 하지만 그녀 뒤에는 뭔지 모를 두려움이 그 안에 자리 잡은것 처럼 느껴졌다. 흑발의 기사에게 여자 경험이 없는건 아니다 다만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거나 상대가 의문스러운 죽음을 맞이했을 뿐.


그러한 생각을 하며 잠이 든 그가 눈을 떴을 땐 아직 회색의 하늘이 자리잡은 새벽녘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로에는 창문을 통해 내다보이는 연무장에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흑발의 기사는 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와 연무장으로 향했다. 연무장으로 들어오자 검을 휘두르던 클로에가 휘두르던 검을 다시 검집에 넣고 그에게 다가왔다.


"아아... 오셨군요 오셨군요... 드디어 처음으로 절 찾아오셨군요 소녀 너무나 기뻐서 잡념까지 사라졌답니다."


"그냥 내려와봤을 뿐이오 훈련을 방해했다면 사과하도록 하지."

  

"아니오 소녀는 그냥 몸을 풀고 있었을 뿐이랍니다. 기사님과의 시간을 보내는데 지장이 없으니 조금도 상관이 없으내 개의치 말아주세요."


흑발의 기사는 주변에 놓인 무기들 중 멀쩡해보이는 검을 하나 뽑아 들었다. 검을 들고 그녀를 죽이려는 것일까, 아니면 협박을 해 탈출하려는 것일까.

둘중 어느쪽도 아니었다, 애초에 그가 이 곳에 잡혀온 시점에서 저항의 의미는 없는 셈이었다. 그 검을 들고 구석으로 가 의미없이 검을 휘두를 뿐이었다. 누가 보면 엉성해보이고 무식해보이는 검의 사용법이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클로에는그 모습을 보고도 이상하다며 조소하긴 커녕 아름다운 인형극을 보는듯한 소녀의 표정을 보이며 감동하기까지 했다.


클로에는 그 모습을 바라보더니 비슷해보이는 품질의 검을 들고 그에게 다가왔다.


"기사님 그러면 소녀하고 몇 합 나눠보시지 않을텐가요? 검의 합도 좋답니다 아니면 몸의 합도 좋답니다."


"검의 합으로 하겠소."


묘하게 단호한 태도를 보인 흑발의 기사는 어깨죽지까지 오는 비교적 긴 머리칼을 묶고 대련에 임했다.  하지만 그저 검을 부딫힐 뿐인데 클로에의 기분은 고양되어갔고 얼굴에 홍조마저 띄우고 있었다. 기쁘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행복한 표정을 보인 그녀가 검을 부딫히며 말했다. 매우 매우 행복한 목소리와 함께 말이다.



"아아 기사님과 검을 부딫히는 것 만으로 소녀 어떠한 것보다 큰 쾌락을 느끼고 있답니다, 기사님의 의지가 담긴 검이 소녀의 검과 부딫히는 것 만으로 행복해서 뇌가 흔들리는 느낌이랍니다. 좀 더 더 기사님의 혼이 실린 공격을 퍼부어주세요 더 더 소녀를 정신 차릴 수 없게 만들어주세요, 소녀를 더 어질어질하게 만들어주세요."


"대련 중에 대화는 금물이오."


이윽고 챙챙 거리는 소리만이 연무장을 가득 메웠고 어딘가검에 힘을 일부러 빼는듯한 흑발의 기사의 태도에 클로에는 다시금 볼을 부풀렸다.


"이게 아니에요 제가 반한 기사님의 일격은 이런게 아니에요, 제가 어릴적 본 기사님은 이러지 않으셨어요 소녀 지금 기사님이 일부러 힘을 빼신다는걸 알고있답니다."


"12년전 이야기라면 묻어두시오, 그 시절의 나는 물불 안가리는 애송이였소."


말은 그렇게 했지만 흑발의 기사 본인은 부끄럽게 여기는 흑역사였다. 누님이 적국의 기사와 사랑에 빠져 도망가다 살해당해

증오에 미쳐 날뛰던 시절의 그였다. 적국의 기사들을 죽이면서 살아있어도 된다고 허락한적 없다는 대사를 입에 달고 산 시절은

30대가 넘은 그가 생각하기엔 쪽팔려서 말도 못할 흑역사였다.


"그럼 소녀와 내기를 하시지요, 이기는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는 것으로 말이에요. 아 하지만 보내드리는건 안된답니다? 그리고 대충 하신다면 소녀 그 소원으로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답니다?"


무슨 짓 이라는 단어에 조카의 얼굴을 떠올린 흑발의 기사가 검을 맹렬하게 휘둘렀고 이전까지 와는 다른 공격을 받는 것 만으로 손목이 울리는 느낌을 받은 클로에는 다시금 행복한 표정을 보였다.


"아아 이거에요 소녀 이것만을 기다려왔답니다. 더 더 퍼부어주세요 기사님의 사랑을 퍼부어주세요."


"대화는 금물이라고 했소."


그렇게 몇십 합을 나누었을까, 검이 부러져버리고 말았다. 양질의 검이었지만 맹렬한 대련을 버티지 못한 모양이다. 클로에는 아쉽다는 듯 부러진 검을 구석에 던져버렸다. 그래도 충분한 만족감을 느낀 그녀는 흑발의 기사에게 다가가 그 품에 안겨 그의 체향을 느꼈다.


"승부가 무승부니 서로가 서로의 소원을 들어주는게 어떨까요? 소녀의 소원은 기사님께서 오늘 밤 소녀의 방으로 와주시면 말씀드리겠어요, 기사님께선 무엇을 원하시나요? 소녀의 순결도 괜찮답니다, 소녀의 신체도 다 괜찮답니다."


"그렇다면 그 아이를 만나게 해주시오."


"음 그건 곤란한데요... 소녀는 아직 기사님의 몸이 소녀에게서 떨어지는걸 원하지 않는답니다, 어젯밤 떨어져 있던 것 만으로도 마음이 얼어붙은 기분이었답니다."


"그대가 부탁의 선을 없애준다면 나도그대가 원하는 소원이라면 내 가능한 선에서 무엇이든 들어드리겠소."


"그럼 그 대신에 이 소녀를 꽈악 껴안아주세요 기사님의 온기를 느끼게 해주세요."


한숨을 내쉰 흑발의 기사가 그녀에게 다가가 클로에를 살포시 안아주었다. 그거 만으로도 클로에는 황홀함에 젖어 어쩔줄 모르는듯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와중에도 흑발의 기사를 불쌍히 여긴듯 살며시 혼잣말로 중얼중얼 무엇인가를 속삭였다.



클로에 어떤 비주얼 인지 외모 요사를 제대로 안해서 걍 그림판으로 그려옴

이래도 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