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얀붕, 얀순은 10년 된 소꿉친구로, 내성적인 성격 탓에 지금까지 스스로 남들에게 말을 건네 본 적이 몇 번 없던 얀붕이였지만, 바로 지금,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에게 말을 건넨 얀붕이를 본 얀순이는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별일이네~ 얀붕이 네가 먼저 말을 걸 줄이야~"



"노, 놀리지는 말아줘..."



마치 풀 죽은 강아지처럼 기 죽은 모습이 퍽 귀엽긴 했지만, 얀붕이를 생각해서 이쯤 하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어줘야겠다고 생각한 얀순이는, 얀붕이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래, 뭔데?"



막상 자리가 마련되기는 했지만, 역시 아직은 자신의 고민을 털어버리기에는 무리인지, 자신의 검지 손가락을 맞대며 우물쭈물하던 얀붕. 그리고 그런 얀붕의 모습을 넋 놓고 쳐다보던 얀순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었다.



"얀붕아, 무슨 고민이 있는지 말해줘야 내가 도움을 줄 수 있어."



"그, 그게..."



얀순이의 재촉이 효과가 있었던 것일까. 이내 두 손을 가지런히 자신의 다리에 놓은 채, 고개를 숙이던 얀붕은 결심한 듯, 큰 목소리로 얀순에게 말했다.



"여, 여자들은 어떤 남자를 좋아하는지 알려줘...! 야, 얀순이 네 취향이 궁금해...!"



"내, 내 취향?!"



얀붕이의 말 한마디에 얼굴이 터질 듯 달아오른 얀순. 이후, 그녀는 입 밖으로 내뱉지 않고, 속으로 오만가지 생각이 뒤섞이기 시작했다.



'이, 이건 날 좋아한다는 뜻인가? 좋아하는 거 맞지?! 서, 설마 얀붕이도 나랑 같은 생각인 줄은 몰랐는데...'



어렸을 때부터 함께 지내서 그런것일까, 얀순은 일찍이 얀붕을 짝사랑하고 있었지만, 아직 얀붕의 생각이 어떤지 모르기에, 섣불리 고백은 커녕, 스킨십 조차도 시도해본 적이 없는데...



"가, 갑자기 내 취향은 왜...?"



얀순이 되묻자, 얀붕 역시 얀순이 만큼 당황한 채,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 내가 아는 여자애는 너, 너 밖에 없고... 게다가 너... 치, 친구 많잖아... 여자들이 어떤걸 좋아하는지... 잘 알 거 같아서..."



'차마 좋아한다고는 당당히 말하지 못하겠으니, 말을 돌리는건가? 푸흐, 귀엽긴.'



물론 얀순이 본인은 얀붕이가 어떻든, 얀붕이의 모든 모습이 전부 좋았다. 지금까지 얀붕이와 지내며, 얀붕이에게 거부감이 든 적은 단 한 번도 없을 정도였으니. 하지만 그렇다고 이 사실을 솔직하게 말해버리면 얀붕이가 혼란스러워 할 테니...



"뭐, 좋아. 소꿉친구니까 당연히 도와 줄 수 있지. 일단 여자들은, 개성이 확실한 남자를 좋아해."



"개성이... 확실한 남자...?"



얀붕이가 말끝을 흐리자, 얀순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얀붕이에게 다가가더니.



"일단 이 못생긴 안경부터 벗어."



어렸을 때부터 봐왔던 얀붕이의 작고 못생긴 안경. 안경을 고를 때 마다 안목이 어찌나 이렇게 최악일 수 있는지, 얀순이는 이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그, 근데 이러면 안 보이는데..."



"넌 안경이 안 어울려. 그러니 이제부턴 렌즈를 끼던가, 수술을 하도록 해."



그 뒤, 얀순이는 자신의 눈을 거의 뒤덮다시피 내려간 얀붕이의 앞머리를 위로 쓸어 올렸다.



"그리고 예전부터 생각했는데, 머리카락 좀 관리해. 이렇게 덥수룩하고 앞머리가 긴데, 앞은 보이긴 하는 거야? 넌 다른 남자애들보다 꽤 괜찮은 얼굴인데 왜 숨기고 다니는 거야?"



"으응...?"



무심코 자신의 속마음을 내뱉은 얀순은 순간 아차 싶었지만, 이내 헛기침을 하며, 빠르게 화제를 넘기기 시작했다.



"크흠... 어쨌든, 네가 바라는 대로 여자가 좋아하는 남자가 되려면 내 말을 들어. 당장 미용실 가서 머리 손질하고 네 얼굴을 당당하게 보이란 말이야."



"으... 으응..."



얀붕이의 소극적인 대답 이후, 얀순이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시선을 내려, 얀붕이가 입고 있는 옷을 보았다.



"옷도 마찬가지야. 얀붕이 넌 만날 볼 때 마다 같은 옷만 입고 오는 거 같더라?"



"이게 편해서..."



얀순이의 말대로, 옛날부터 얀붕이는 한 가지 옷을 입기 시작하면 곧 죽어도 그 옷만을 입는 경향이 있었다. 물론 얀순이는 얀붕이가 어떤 옷을 입든 그 자체로 사랑스러워 보였기에 상관없었지만, 얀붕이가 이 일을 계기로 조금 더 멋있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얀순이는, 그동안 오랫동안 고착화 되어 있었던 얀붕이의 패션 센스를 뜯어 고치기 시작했다.



"옷은 내가 사줄게. 이따가 나랑 같이 옷 고르러 가자."



"에... 에엑?"



"왜, 싫어?"



"아, 아니... 싫은게 아니라... 날 이정도까지 도와주니까..."



얀붕이의 말에, 기분이 날아갈듯한 얀순은 새어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고 있었고, 이내 간신히 웃음기를 잠재우고 다시 한번 헛기침을 하며 진지하게 얀붕이를 바라보는 얀순.



"그 외에도 피부 관리 같은 자기 관리. 그게 가장 중요해. 나 뿐만 아니라 여자들 대부분, 자기 관리가 철저한 남자를 좋아하거든."



"그... 그렇구나..."



이제 끝났나 싶어 안도의 한숨을 쉬는 얀붕. 하지만 그런 얀붕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갑자기 얀붕에게 다가가, 얀붕을 일으키는 얀순.



"아직 안 끝났어. 방금 너한테 알려준 건 너의 겉 모습을 바꿔준 것에 불과해. 다음은 내면의 모습이지."



"내면...?"



"여자는 개성적인 거 말고도, 자기 의사 표현이 확실하고, 당당한 남자를 좋아해. 너처럼 이렇게 계속 움츠려 있는 남자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그러더니, 자신의 두 손을 얀붕의 움츠려 들어 있는 어깨와 허리에 갖다 대더니.



"이렇게!"



"읏!"



그대로 힘을 줘, 얀붕의 어깨와 허리 펴는 얀순.



"앞으로 움츠린 채 다니지 말고, 이렇게 어깨랑 허리를 펴고 당당하게 다녀."



"부, 불편한데..."



"그건 네가 지금까지 움츠린 채 다녔기 때문이고. 계속 이렇게 다니다보면 익숙해질거야."



얀순이가 펴준 어깨와 허리가 아직도 어색한 듯, 계속 몸을 움찔거리며 허리와 어깨를 다시 움츠리지 않기 위해 애쓰는 얀붕.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얀순은, 이내 말을 다시 이어갔다.



"그리고 얀붕이 너의 가장 큰 문제점. 바로 목소리와 행동."



"으, 으응...?"



"내가 말했지? 여자는 자기 의사 표현이 확실하고 당당한 남자를 좋아한다고. 너처럼 이렇게 말끝을 계속 흐리고 목소리가 작은데다, 어디에도 나서지 못할 정도로 소심하다면, 그 어느 여자도 널 좋아하지 않을거야."



물론 이건 얀붕이를 자극하기 위한 얀순이의 거짓말이었다. 지금 이대로의 얀붕이도 좋지만, 당당한 모습의 얀붕이가 되어, 훗날 자신과의 데이트에서 리드를 하는 모습이 보고 싶었기에.



"뭐든지 의사를 전달 할 땐 눈을 똑바로 보고 확실하게, 그리고 또박또박, 크게."



"그, 그건 너무 어려운..."



하지만 노력하지않고 금방 포기하려는 얀붕이의 모습에 나지막하게 한숨을 쉰 얀순은.



"아앗!"



얀붕이의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을 가져가더니, 얀붕이의 앞에서 휴대폰을 흔들며 말했다.



"자, 내가 네 휴대폰을 가져갔어. 그럼 뭐라고 해야 할까?"



"도... 돌려줘..."



"그렇게 말하면 잘도 돌려주겠다. 내가 말한대로 변하지 않으면 네 휴대폰은 절대 돌려주지 않을 거야."



"......"



하지만 그저, 어쩌지도 못한 채 울먹거리는 얀붕. 그 모습을 본 얀순은 마음이 약해져 휴대폰을 돌려줄 뻔했지만.



'안돼. 이건 얀붕이를 위한 일이야.'



다시 한번, 얀붕이와의 미래를 위한다고 생각한 얀순이는 진지한 태도를 유지한 채, 얀붕이 앞에서 휴대폰을 흔들고 있었다.



꽈악-



한편, 조용히 말을 아낀 채 무언가를 생각하던 얀붕은 드디어 결심을 내린건지, 두 손에 주먹을 꽉 쥔 채, 얀순이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도... 돌려줘. 그건... 내 꺼야."



"아직 멀었어. 조금 더 네 의사를 확실하게 표현하라고."



10년 소꿉친구인 자신의 눈도 똑바로 못 마주쳤던 얀붕이가 이젠 자신과 눈을 마주친다는 사실에 가슴이 뛰었지만, 조금만 더 변하면 된다는 사실에 얀붕이를 더 몰아붙였고.



자신의 낯선 모습이 익숙하지 않은 듯, 심호흡을 하던 얀붕은 얀순이의 말을 듣고선, 다시 한번, 얀순이와 눈을 마주치고선, 다시 입을 열었다.



"내 휴대폰 돌려 줘. 그건 내 꺼야."



즈큥-



드디어, 자신이 원하는 모습의 얀붕이를 본 얀순이는 아랫배가 떨려왔고, 하마터면 떨리는 육체를 제어 하지 못해 주저 앉을 뻔했다.



'우으으...♥ 얀붕이의 전혀 다른 모습♥ 너무 멋있어♥ 당장 우리 집으로 데려가고 싶지만...♥'



"거 봐. 할 수 있잖아."



이내, 달아오르는 육체를 참으며,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얀붕이에게 휴대폰을 돌려주는 얀순.



"하아... 하아..."



한편 얀붕이 본인도 달라진 자신의 모습이 믿기지 않은 건지, 얀순이에게서 휴대폰을 받은 이후에도, 심호흡을 멈출 줄 모르고 있었다.



"앞으로 여자 친구를 사귀어서 데이트를 하든, 다른 일을 하든, 이렇게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란 말이야. 알겠지?"



"으, 응! 고마워! 얀순아!"



그 뒤로도 얀붕이를 변화시키기 위한 얀순이의 노력은 멈추지 않았다. 얀붕이와 함께 옷을 고르며 얀붕이에게 맞는 패션을 선택했고, 미용실에도 함께 가 얀붕이에게 어울리게 머리를 손질했으며, 그 후에도 만약 얀붕이가 여자를 사귄다면 데이트를 해야 하는 코스 등, 여러 가지 알려주었고.



그렇게 다음 날. 자신에게 찾아온 얀붕이를 모습을 본 얀순이는, 그대로 입을 벌린 채, 넋을 놓을 수 밖에 없었다.



덥수룩하고 지저분했던 머리를 깔끔하게 손질했고, 안경 대신 렌즈를 써 똘망똘망한 강아지 같은 자신의 눈을 보여주고 있었으며, 얀붕이의 체형, 그리고 외모에 어울리는 색감과 무난한 옷 종류를 고른 덕에 얀붕이가 입은 옷은 그 어떤 남자보다 소화가 잘 되었다.



"저기... 얀순아... 나 어때보여?"



"대박... 정말 내가 알던 얀붕이가 맞아?"



"그 정도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얀붕. 이제 자신을 비롯해, 어쩌면 다른 여자들까지도 얀붕이를 좋아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이 약간 초조했지만, 어차피 얀붕이는 자신을 좋아하고 있을테니, 그다지 신경 쓰이지는 않는 얀순이었다.



"그... 있잖아. 얀붕아."



이젠, 마지막 단계가 남았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으니, 이젠 그 확인된 마음을 기정 사실로 옮기는 것.



"너... 너무 티 나는 거 알아?"



"어? 뭐가?"



'모른 척 하기는. 지금이 고백 하기 딱 좋은 시긴데. 후훗.'



얀순이는 부끄러운 듯, 발로 땅을 계속 천천히 그으며 말을 이어갔다.



"여자가 어떤 남자를 좋아하는지 물어 본 것도 그렇고... 굳이 내 취향 까지 물어본 걸 보면..."



"아..."



"나한테 까지 숨길 거 없어. 얀붕아. 내가 말했지? 당당하게 자기 의사를 표현하라고."



"그런가... 역시 그렇지? 너한테 까지 숨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나봐..."



두근- 두근-



얀붕이의 말에, 점점 심장 박동이 빨라지며 얼굴이 달아오르기 시작하는 얀순.



"그, 그냥 솔직하게 말해도 괜찮잖아."



"그래. 이렇게까지 도와줬으니... 너한테 만큼은 솔직하게 말할게."



이후, 한번 깊게 심호흡을 하던 얀붕이는, 똑바로 얀순이를 쳐다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사실 전부터 네 친구 얀진이를 좋아했는데... 이번에 얀진이한테 데이트를 신청하고 싶어. 혹시 얀진이 번호 좀 알려 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