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권 풀버전 팬픽 쓰던 거 시간 없어서 던짐. 아까워서 쓴 부분까지 올려봄.



 -머리말-


원작 15권까지 읽고 쓴 16권으로, 15권까지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며 원작 15.5권 이후 내용과 무관함.


아래 팬픽들 이후로 이어지는 16권 내용이고, 15.5권 아사히나 파트도 쓰다가 던져서 내용 누락 있는데 그렇구나 하면서 읽으면 읽을 수 있도록 해뒀음.

 

 

 

15.5권 케이 파트 -『예정된 결말』

https://arca.live/b/youjitsu/23082347?category=%EC%B0%BD%EC%9E%91&target=nickname&keyword=%E3%85%87%E3%85%87&p=1

 

[스포] 15.5권 카루이자와 케이 SS - 『준비된 입술』

https://arca.live/b/youjitsu/23095486?category=%EC%B0%BD%EC%9E%91&target=nickname&keyword=%E3%85%87%E3%85%87&p=1

 

15.5권 히요리 파트 - 『휴일의 기억』

https://arca.live/b/youjitsu/23244811?category=%EC%B0%BD%EC%9E%91&target=nickname&keyword=%E3%85%87%E3%85%87&p=1

 

[단편] 15.5권 이치노세 파트 - 『친구 이상』

https://arca.live/b/youjitsu/23491785?category=%EC%B0%BD%EC%9E%91&target=nickname&keyword=%E3%85%87%E3%85%87&p=1

 

[단편] 15.5권 아마사와 파트 - 『아들 둘에, 막내 딸 한 명』

https://arca.live/b/youjitsu/23594829?category=%EC%B0%BD%EC%9E%91&target=nickname&keyword=%E3%85%87%E3%85%87&p=1


[단편] 15.5권 사카야나기 파트 - 『겹쳐지는 두 사람』

https://arca.live/b/youjitsu/24963380?category=%EC%B0%BD%EC%9E%91&target=nickname&keyword=%E3%85%87%E3%85%87&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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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7일 금요일

 

 

-0-

 

여름방학이 끝난 주 금요일.

고도육성고등학교에서는 8월의 더위가 학생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장마철이 지나 습한 날씨는 여러 학생들을 땀으로 적셨다.

손으로 얼굴에 부채질을 하며 턱을 괸 나는 반을 둘러봤다.

 

수업이 전부 끝나고 종례만을 기다리는 우리 반 학생들은 벌써부터 들떠 있었다.

다가오는 주말에 무엇을 하며 보낼지 이야기하는 학생들.

여름의 더위보다도 뜨거운 청춘이 이야기를 달군다.

 

드르륵.

열리는 문소리와 함께 담임인 챠바시라가 들어온다.

이 종례시간만 끝나면 모두가 한 주의 노고에 대한 보상의 시간을 받을 수 있다.

나 또한 그런 생각을 하며 기숙사의 에어컨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러나 더운 여름도, 뜨거운 청춘의 이야기도 식혀버린 것은 챠바시라로부터 나온 익숙한 한 마디였다.

 

“지금부터 특별시험의 개요를 설명하겠다.”

 

눈짓으로 부재인원을 파악하는 챠바시라.

반을 둘러보는 시선에 학생들은 자세를 바로하고 경청할 준비를 했다.

방학동안 긴 무인도 특별시험을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행되는 특별시험.

누군가는 불만을 말할 법도 하지만, 입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훗. 의외로 침착하구나.”

 

챠바시라는 숨을 한 번 고르고 지체할 필요 없다는 듯 본론으로 들어갔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마. 이번 특별시험은 『흑백 재판』이다.”

 

챠바시라는 이번 시험의 명칭만을 소개했다.

 

“흑백 재판이요?”

 

이케가 명칭만으로는 어떤 시험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 중얼거렸다.

 

“뭐, 규칙 자체는 간단한 시험이니까 일단 들어라.”

 

챠바시라는 말이 끊기는 걸 막기 위해 질문을 미뤄뒀다.

 

“오늘부터 사흘 후, 즉 다음주 월요일 아침에 각 반에서 한 명씩 상담실로 불려갈 거다. 그곳에서 각 반 담임들은 너희들 각각에게 『흑』과 『백』 중 하나의 칭호를 부여할 거다.”

 

『흑』과 『백』이라는 칭호.

분명 이번 시험의 중요한 열쇠가 될 단어들이 나왔다.

 

“거창하게 말하고 있지만 간단하게 한 명씩 불러서 너는 『흑』이다, 너는 『백』이다. 이야기할 뿐이다.”

 

챠바시라는 가볍게 이야기하면서 슬쩍 나를 쳐다봤다.

 

“이렇게 모든 학생이 칭호를 부여받게 되면 시험이 시작된다. 너희들은 그로부터 일주일 후, 즉 다다음주 월요일 1교시에 전교생을 상대로 누가 『흑』과 『백』 중 어떤 칭호를 부여받았는지 테블릿에 체크해서 제출하면 된다. 아주 간단한 시험이지.”

 

챠바시라는 그렇게 말을 마치고 또 한 번 내 쪽으로 시선을 보냈다.

 

뭔가 이상하군.

 

챠바시라는 의도적으로 시험 설명을 미루고 있다. 해야 할 말을 아끼고 있다.

그리고 그런 중에 나에게 시선을 보내고 있다.

분명 무언가 전하려 하는 것이 있는 것이다.

챠바시라가 보내는 신호에 눈치챈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보험을 들어두기로 했다.

휴대폰을 조작해 작업을 마친 나는 양손을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선생님, 설명이 그게 전부는 아닌거죠?”

 

뜸을 들이는 챠바시라에 기다리다 지친듯, 이케가 다음 설명을 재촉했다.

 

“그래. 여기서부턴 조금 복잡한 내용이 될 거다. 전교생은 0명부터 전교생 수 만큼 무제한으로 학생들의 칭호를 기입해서 제출할 수 있다. 그리고 기입한 학생의 칭호가 맞을 때와 틀릴 때 각각 점수가 반영된다. 또한 자신의 칭호를 타인이 기입해서 맞고 틀리는 여부에 따라서도 점수가 반영된다. 이렇게 점수를 종합해서 높은 점수를 받은 학생이 보상을 받고, 낮은 점수를 받은 학생이 패널티를 받는다.”

 

“선생님, 너무 간략해서 잘 모르겠는데요.”

 

“예를 들어 설명해주마. 다음 주 월요일 내가 반에서 한 명씩 상담실로 부를거다. 이케 너를 부르면 ‘이케, 너는 『흑』이다.’, 스도를 부르면 ‘스도, 너는 『백』이다.’, 아야노코지를 부르면 ‘아야노코지 너는 『흑』이다.’라는 식으로 각자한테 칭호를 부여할 거다. 그렇게 되면 너희는 자신의 칭호를 기억하고, 다른 학생들의 칭호를 알아내야한다. 어떤 수단으로 이케 네가 ‘스도, 너는 『백』이다.’, ‘아야노코지, 너는 『백』이다.’라고 파악했다고 치자. 그러면 시험 시작으로부터 일주일 후 월요일 1교시에, 테블릿에 있는 OAA시스템에서 2-D 학급에 있는 스도와 아야노코지의 이름을 터치하면 칭호를 체크할 수 있도록 뜰거다. 너는 그 중에서 스도에 『백』, 아야노코지에 『백』을 체크해서 제출버튼을 누르면 된다. 그러면 실제로 스도는 나에게 『백』이라고 선언받았으니까 정답을 맞춘 이케 너에겐 점수가 가산되고, 자신의 칭호를 들킨 스도는 점수가 깎인다. 반대로 아야노코지는 내게 『흑』이라고 선언받았으니까 정답을 맞추지 못한 이케 너는 점수가 깎이고, 자신의 칭호를 들키지 않은 아야노코지는 점수가 가산된다. 여기까지 질문은 있나?”

 

한 번 설명을 멈추고 우리들이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하는 챠바시라.

이케는 제대로 이해한건지, 아직 이해를 못한 건지 조용히 입을 닫고 있었다.

 

“선생님, 그러면 서로가 상대의 칭호를 기입했을 땐 어떻게 되죠?”

 

아무런 질문이 없었기 때문인지 요스케가 질문을 던졌다.

 

“서로가 칭호를 기입했을 때도 계산 방식은 동일하다. 이케가 스도의 칭호를 기입해서 반영된 점수에, 스도가 이케의 칭호를 기입해서 반영된 점수가 합산될 뿐이다.”

 

간단하게 질문에 답한 챠바시라는 뜸을 들이며 더 질문이 있는지 기다렸다.

아무도 질문하지 않는 것을 확인한 챠바시라는 다음 설명으로 넘어갔다.

 

“여기서부터가 중요하다. 타인의 칭호를 맞히거나, 자신의 칭호를 지키는 것에 따라 반영되는 점수다만, 이 화면을 봐라.”

 

그렇게 말한 챠바시라는 모니터에 문자가 나열된 화면을 띄웠다.

 

 

 

1. 자신이 기입한 학생 이름과 칭호가 일치할 경우 +2점.

2. 자신이 기입한 학생 이름과 칭호가 불일치할 경우 -3점.

3. 자신의 칭호를 타인이 기입하여 맞췄을 경우 -1점.

4. 자신의 칭호를 타인이 기입하여 틀렸을 경우 +1점.

5. 아무도 자신의 칭호를 기입하지 않을 경우 +-0점.

6. 자신이 누구의 칭호도 기입하지 않을 경우 +-0점.

 

 

 

모니터에는 이번 시험에 반영되는 점수 기준이 정리되어 있었다.

 

“이것도 예를 들어 설명해주마. 이케, 네가 스도가 『백』이라는 것을 맞췄다면 너는 +2점이 가산되고 스도는 -1점이 깎인다. 반대로 네가 아야노코지가 『백』이라고 오답을 제출했다면 너는 -3점이 깎이고 아야노코지는 +1점이 가산된다.”

 

챠바시라는 신중히 설명하기 위해 중간중간 말을 끊어가며 반응을 살피고 말을 이었다.

 

“그러나 이건 개인 한 명을 기준으로 봤을 때다. 두 사람 이상이 엮인다면 반영되는 점수도 많아진다. 만약 여기서 스도와 이케 너희가 서로에게 자신의 칭호를 알려줘서 스도는 이케가 『흑』이라고 기입하고, 이케 너는 스도가 『백』이라고 기입할 경우 두 사람 모두 +2점-1점으로 종합 +1점이 가산된다. 반대로 이케 네가 아야노코지에게 속아서 아야노코지가 『백』이라고 기입하고 아야노코지는 이케를 속여 이케가 『흑』이라고 기입한다면 이케는 -3점-1점으로 종합 -4점이 깎인다. 그 반면 이케를 완벽하게 속인 아야노코지는 +2점+1점으로 종합 +3점이 가산되지. 이렇게 스도의 칭호와 아야노코지의 칭호를 기입하고 자신의 칭호를 기입당한 이케는 +1점-4점으로 종합 -3점이 깎인다. 여기까지가 대략적인 점수 반영 규칙이다만, 질문은 있나?”

 

또 다시 규칙을 잘 숙지했는지 질문하는 챠바시라.

어딘지 모르게 평소보다 더욱 신중하게 설명하는 챠바시라를 보고 위화감을 느낀다.

분명 이번 시험은 제법 복잡한 규칙이지만, 지난 특별시험들에 비교한다면 아주 어려운 규칙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몇 번씩 확인을 한다면 이번 시험에는 중요한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질문이 없다면 다음 설명으로 넘어가겠다.”

 

내가 챠바시라의 의도를 생각하고 있는 동안 침묵을 확인한 챠바시라가 다음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제 중요한 보상과 패널티에 관해서다. 이번 시험에서 점수가 전교 상위 12위 안에 드는 학생들은 각각 클래스 포인트와 프라이빗 포인트를 획득한다. 획득하는 포인트는 그 학생의 점수에 비례하지. 게다가 상위 3위 안에 드는 학생들은 프로텍트 포인트도 획득할 수 있다. 자세한 건 이 화면을 확인해라.”

 

간략하게만 설명을 마친 챠바시라는 화면을 넘기며 시선을 모았다.

 

 

 

1. 전교에서 점수가 상위 12위 안에 드는 학생들은 각자가 획득한 점수에 따라 클래스 포인트와 프라이빗 포인트를 획득한다.

2. 입상한 학생들은 학생의 점수 * 0.5 클래스 포인트, 학생의 점수 * 10만 프라이빗 포인트를 획득한다.

(Ex 1. 101점 획득시 50.5 클래스 포인트와 1010만 프라이빗 포인트 획득.)

3. 전교에서 점수가 상위 3위 안에 드는 학생들은 +1 프로텍트 포인트를 획득한다.

4. 동일한 점수인 학생들이 있을 경우 동일한 순위로 각각에게 보상을 지급한다.

 

 

 

챠바시라가 띄운 화면에는 구체적인 보상에 대한 것이 적혀있었다.

지금까지 조용히 챠바시라의 설명을 듣고 있던 우리 반은 이번 보상을 보고 조금씩 웅성이기 시작했다.

이 화면을 본다면 분명히 모든 학생들이 의문으로 여기는 것이 있을 것이다.

 

“선생님, 질문이 있습니다.”

 

반의 웅성거림을 눈치챈 요스케가 대표해서 챠바시라에게 질문을 하려 한다.

 

“그래. 뭐냐.”

 

“저 내용만 보면 이번 시험에서는 획득할 수 있는 포인트가 정해져 있지 않은 것 같은데요. 그럼 상한선 없이 점수에 따라 포인트를 획득할 수 있다는 말인가요?”

 

“훗. 좋은 질문이다. 그 말대로다. 이번 시험은 학생이 획득한 점수에 비례해서 클래스 포인트와 프라이빗 포인트를 상한 없이 획득할 수 있다. A반을 목표로 하는 사람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기회지.”

 

요스케의 질문에 답한 챠바시라는 평소에 잘 보이지 않는 웃음기를 띠고 있었다.

분명 누구보다 A반으로 올라가길 원하는 챠바시라에게도 이번 시험은 좋은 기회로 보였을 것이다.

B반, C반과 격차가 얼마 없는 지금 D반에 기대를 품는 것도 이상하진 않다.

반 애들도 챠바시라의 확답을 듣고 기대에 찬 눈빛으로 작은 환호를 여기저기 터트리고 있다.

 

“그럼 이번 시험만 잘 본다면 우리가 단번에 A반으로 올라가는 것도 꿈이 아니란 거잖아!”

 

잔뜩 기대에 부푼 이케가 실낱 같은 희망을 이야기했다.

 

“그래. 이번 시험만 잘 보면 단숨에 역전할 수 있어!”

“역전을 못하더라도 A반과의 격차를 단숨에 줄일 수 있을 거야!”

“게다가 프라이빗 포인트도 많이 받아서 그동안 사고싶었던 것들도 살 수 있다고!”

 

작은 희망 이야기에 들뜬 것은 이케뿐만이 아니었다.

스도, 케세이, 시노하라가 각각 이케에 동조하며 대성의 꿈을 꾸고 있다.

A반과의 격차를 줄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반 애들이 기대하는 것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 반의 기대에 찬 시선이 모인 곳에 있는 한 여학생.

우리 반의 중심 인물로 성장한 그녀가 있기 때문이다.

그녀, 호리키타 스즈네가 반을 지휘했기 때문에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위치까지 올라와 있다고 우리 반 애들은 굳게 믿고 있다. 분명 앞으로도 호리키타가 있으면 A반까지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도 생겼을 것이다.

그러나 그 기대의 주인공인 호리키타는 조용히 두 눈을 감아 침묵하고 있을 뿐이었다. A반으로 올라가길 간절히 바라는 그녀라면 분명 이번 상한이 없는 시험 보상에 기뻐했을 터이지만, 그럼에도 조용히 무언가를 골똘히 고민하는 것 같았다.

 

“진정해라. 아직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모두의 기대와 흥분을 챠바시라가 다시 한 번 차갑게 식혔다.

 

“보상이 있다면 당연히 패널티도 있는 법이지. 이번 시험에서 전교에서 하위 12위 안에 드는 학생은 퇴학이다. 동일 점수인 학생들이 있다면 모두 동일하게 퇴학 처분을 받는다. 이 퇴학 처분을 막기 위해서는 반드시 300만 프라이빗 포인트를 지불해야 하지.”

 

챠바시라가 내뱉은 말은 뜨거워졌던 반의 분위기를 얼렸다.

환호하던 이케도 지금은 인상을 쓰고 있다.

뒤따라 스도도, 케세이도, 시노하라도 입을 열지 않게 됐다.

 

“이번 시험의 보상과 패널티 설명은 여기까지다. 질문 있나?”

 

챠바시라는 이번에도 신중하게 질문을 받고 있다.

분명 방금 설명만 들으면 평소 치르던 특별시험과 별로 다를 것 없어 보이지만, 챠바시라의 설명에는 중요한 내용이 누락되어 있다.

 

“선생님. 질문 있습니다.”

 

“그래. 뭐냐 호리키타.”

 

지금까지 침묵을 고수하던 호리키타가 챠바시라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번 특별시험에서 퇴학생이 나온 반은 어떤 패널티를 받게 되는지 아직 설명해주지 않으신 것 같은데요.”

 

호리키타는 내가 의문스럽게 여기던 것을 질문했다.

 

“아 그래. 그 얘기인가. 이번 시험에서 퇴학생이 나온 반은 어떤 패널티도 지지 않는다. 누군가가 퇴학되더라도 반에는 타격이 없으니 안심해라.”

 

“…….”

 

챠바시라는 호리키타에게 안심하라며 답해줬지만, 호리키타는 심각한 얼굴로 또 다시 고민에 빠졌다.

 

“왜 그러는 거야, 스즈네. 반에 손해가 없으면 좋은 거 아니야?”

 

호리키타를 지켜보던 스도가 걱정되었는지 호리키타에게 묻는다.

 

“호리키타 양.”

 

그러나 반응을 보이지 않는 호리키타 대신에 다른 곳에서 호리키타를 부르는 목소리가 나왔다.

 

“호리키타 양, 설마 저번처럼 기회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자리에서 일어난 요스케는 호리키타를 바라보며 마찬가지로 심각한 얼굴로 말을 붙였다.

 

“저번처럼?”

 

요스케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 이케가 반문한다.

스도는 요스케의 질문을 듣고 호리키타가 무엇을 골똘히 고민하고 있는지 추측한 것인지, 입을 다물었다.

 

“저번에 야마우치 군이 퇴학당했을 때 코엔지 군이 했던 말…퇴학으로 인해 반에 리스크가 없다면, 반에 방해되는 인물을 퇴학시킬 기회라고 했던 이야기야.”

 

다소 걱정스러운 얼굴로 이케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명해주는 요스케.

요스케의 설명을 들은 이케는 야마우치 이야기에 금방 고개를 숙였다.

지금 이 순간 모두가 반에 필요없는 인물은 퇴학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것이다.

 

“호리키타 양, 아니라고 말해줘. 이번에는 반에서 누군가를 반드시 퇴학시킬 필요가 없는 시험이잖아”

 

요스케는 애써 침착하게 호리키타에게 확인을 구했다.

확답을 듣고 안심한 채로 이번 시험에 임하고 싶은 것이겠지.

그러나 요스케의 간절한 요청에도 호리키타는 두 눈을 감은 채로 생각하는 자세를 고수할 뿐이었다.

안심할 수 없는 호리키타의 반응에 요스케가 다시 한 번 호리키타를 불러보려 하지만, 그 말은 다른 소리에 가로막혔다.

 

“앉아라 히라타. 아직 시험 설명이 안 끝났다.”

 

챠바시라가 요스케를 제지했고, 요스케는 잠시 진정하기 위해서인지 입을 다물고 자리에 앉았다.

확실히 야마우치가 퇴학당했던 시험 때와는 달리, 다소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불안함은 여전히 남아있을 것이다.

그것을 해결해 주는 것이 반의 리더가 할 일이라고, 나는 호리키타를 한 번 바라봤지만 그녀는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럼 마지막으로 이번 시험의 주의사항을 말해주겠다.”

 

운을 뗀 챠바시라는 반의 이목이 모이는 것을 확인하고 말을 이었다.

 

“이번 시험에서 학생들에게 칭호를 부여할 때는 그 어떠한 물증도 없이 구두 전달 한 번으로 끝낼 것이다. 그러니 반드시 자신의 칭호를 기억하도록. 또한, 상담실에 녹음기나 핸드폰같은 전자기기는 일절 반입할 수 없다. 각 학생에게 철저한 익명성과 비밀을 보장한 상태로 칭호를 전달하기 위함이다. 이것은 시험 규정이므로 어기면 즉시 퇴학 처분이니 알고 있도록. 마지막으로 시험 기간 중 학생들 간에 칭호에 관해 이루어지는 언급과 거래에 대해 학교는 일절 관여하지 않을 방침이다. 신중히 행동하도록. 이상이다.”

 

모든 설명을 끝마친 챠바시라가 학생들을 살펴본다.

아까 요스케가 호리키타에게 했던 질문 때문에 아무도 말을 하지 않고 있는 상태.

질문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챠바시라는 내 쪽으로 아주 잠깐의 시선을 보내더니 마지막 한 마디를 남기고 교실을 나갔다.

 

“너희들에겐 어려운 시험이 될 것 같구나.”

 

드르륵.

챠바시라가 문을 열고 나간 뒤에도 우리 반은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이번 시험에서 누군가가 퇴학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모두를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평소라면 요스케가 이런 분위기를 없애보려 노력했겠지만, 호리키타의 확답이 없으면 입발린 소리만 반복할 뿐이다.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호리키타가 움직일 수밖에 없다.

 

“하아…”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한숨소리.

숨을 크게 내쉰 것은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던 호리키타였다.

반의 리더로서 이 상황을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각오한 호리키타는 일어서서 말하기 시작했다.

 

“모두 들어줬으면 좋겠어.”

 

두 눈을 뜨고 반 전체를 둘러보며 이야기를 꺼내는 호리키타.

그 진지한 모습에 모두가 귀를 기울였다.

 

“나는 이번 시험이 A반으로 가기 위한 중요한 기회라고 생각해. 그래서 어떻게든 이번 기회를 살릴 생각이야. 하지만 아직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조금 시간이 필요해. 그러니까 다들, 다음주 월요일이 돼서 칭호를 부여받게 되더라도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지 말고 기다려줘. 그 누구에게도 알려줘선 안돼. 월요일 종례 때까지는 방침을 전달할 테니까 나를 믿고 기다려줘.”

 

호리키타의 솔직한 고백에 아무도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분명 호리키타는 반의 중심인물로 성장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모두에게 나약한 소리를 한 적은 없었다.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으니 기다려달라고 학급 모두에게 부탁하는 호리키타는 분명 예전과는 다른 사람이었다.

그 성장과 진정성이 전해졌기 때문일까, 여기저기서 호리키타를 응원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당연하지! 애초에 스즈네가 없었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다고.”

“맞아, 맞아. 켄의 말대로라고. 애초에 나는 아직 시험 규칙도 잘 모르겠다니까~”

“그건 너무 심하잖아~ 너는 다시 설명을 들으러 가는 게 어때?”

“뭐라고!”

 

스도를 시작으로 이케도 호리키타를 격려했고, 그대로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시노하라와 이케의 다툼이 시작됐다.

 

호리키타로부터 대기라는 명령을 받은 우리 반은 하나둘씩 귀갓길에 오르기 시작했다.

이 당연스럽게 받아들여주는 반응이 부끄러웠던 것일까, 호리키타는 그대로 자리에 앉아 잠시 가만히 웃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향해 다가오는 그림자.

요스케는 호리키타에게 다가가 사과했다.

 

“미안해, 호리키타 양. 아까는 조금 불안해서 너무 호리키타 양을 재촉했던 것 같아. 정말 미안해.”

 

“아니. 사과할 필요는 없어. 오히려 마땅히 가져야할 의문을 지적해줘서 고마울 정도야.”

 

호리키타는 별 것 아니라는 듯 요스케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이런 부분은 변함이 없는 호리키타의 모습에 요스케도 한 번 웃음을 흘리고 그대로 가방을 챙겨 반을 나갔다.

 

나도 이제 가봐야겠군.

 

나는 휴대폰의 동작을 잠시 확인하고 주머니에 넣은 뒤에 가방을 챙겼다.

 

“키요뽕, 오늘 시간 있어?”

 

기숙사로 돌아가기 위해 짐을 싸던 내 쪽으로 하루카가 다가와서 물었다.

하루카의 뒤에는 케세이와 아이리, 아키토가 서있었다.

오늘 방과후에 놀자고 이야기가 나와서 마지막으로 나한테 물으러 온 것 같다.

오늘은 특별한 예정도 없기에 오랜만에 그룹 친구들과 놀아도 괜찮을 것 같다.

 

“응. 나는 오늘ㅡ”

 

“잠깐만 기다려줄 수 있을까, 아야노코지 군.”

 

하루카에게 대답하려는 나를 불러세운 건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기 자리에 앉아있던 호리키타였다.

무슨 급한 용건이 있는건지, 금세 짐을 챙겨서 내게 다가왔다.

 

“그렇게 급하게 무슨 일이야 호리키타.”

 

“지금 당장 나랑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아주 중요한 얘기가 있어.”

 

“미안하지만 나는 지금 애들이랑 놀러가려고ㅡ”

 

“그래서 이렇게 부탁하고 있는건데.”

 

호리키타가 이 타이밍에 말을 걸어서 할 얘기라고는 특별시험에 대한 내용뿐이다.

나는 별로 좋지 않은 예감에 대화를 피하려 했지만, 쉽게 놓아줄 것 같지 않다.

 

그게 부탁하는 말투냐고.

 

“오래 걸리는 얘기야?”

 

“그러네. 어쩌면 오늘 내로 결론이 나지 않을지도 모르겠네.”

 

“엑…”

 

“그래서 어떻게 할거야.”

 

호리키타의 불길한 대답에 노골적으로 싫은 티를 내봤지만, 호리키타는 미안해하는 기색도 없이 대답을 강요해왔다.

 

피하는 건 무리인가.

 

호리키타의 압박에 백기를 든 나는 일단 나한테 먼저 권유를 해준 그룹 애들을 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친 하루카는 어쩔 수 없다는듯 한숨을 흘렸다.

 

“중요한 얘기면 어쩔 수 없지. 대신 다음에는 같이 놀기다?”

 

“미안. 다음에 꼭 벌충할게.”

 

시원하게 허락해준 하루카한테 사과의 뜻을 전했고, 그룹 애들은 금방 반을 빠져나갔다.

 

“그래서 어디로 갈건데.”

 

나는 호리키타에게 목적지를 물으며 마저 짐을 챙겼다.

가방을 들고 준비를 마친 나를 기다렸다가 호리키타가 목적지를 말했다.

 

“내 방으로 갈거야.”

 

엑…

 

갑작스러운 초대에 불길한 예감은 더욱 커져만 간다.

 

 

 

 

 

 

 

 

 

-1-

 

“커피면 되지?”

 

“타준다면야.”

 

나를 상 앞에 앉혀둔 뒤에 바로 커피를 타러 가는 호리키타.

나는 불편한 장소 선정에 좀처럼 진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작년에 그 일이 있던 이후로 처음인가.

 

한 번 뿐이었지만 이곳에 와서 좋은 일이 있던 적은 없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아무 말도 꺼내지 않은 호리키타가 어떤 말을 꺼낼지는 상상이 가지만, 솔직히 별로 듣고싶은 이야기는 아니다.

 

“자, 여기 있어.”

 

내가 이런저런 감상을 품고있는 동안 호리키타가 커피를 내왔다.

 

“잘 마실게.”

 

일단은 감사를 전한 나는 커피를 손에 쥐었다.

차가운 에어컨 바람 속에서 뜨거운 커피잔을 손에 쥔 여유로운 상황에 조금은 기분이 진정된다.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어. 내가 여기까지 부른 이유, 알고있지?”

 

“글쎄. 감금 정도밖에 안 떠오른다만.”

 

“감금이라…틀린 말은 아니네. 경우에 따라선 그정도는 할지도 모르겠네.”

 

진짜냐…

 

호리키타의 질문을 적당히 받아넘기려 했던 나였지만, 호리키타의 살벌한 발언에 잠깐 한기를 느낀다.

분명 농담이겠지만, 호리키타가 말하면 농담으로 들리지 않아 무섭다.

여기까지 와서 적당히 넘어가는 건 어려울 것 같다.

 

“하아…어차피 이번 특별시험에 관해서잖아.”

 

“당연하잖아. 너랑 그 이외에 무슨 이야기를 한다는 거야?”

 

바로 본론을 꺼내지 않는 내 태도에 호리키타는 불만이 있는지 가시돋은 말투로 대답했다.

 

아니, 말투는 원래부터인가.

 

“요즘엔 나 없이도 알아서 시험을 잘 치렀잖아. 그런데 이번엔 왜 갑자기 나를 부른건데.”

 

호리키타가 이번에 나를 부른 이유는 짐작이 가지만, 여기선 확실하게 호리키타의 생각을 들어둘 필요가 있다.

 

“…정말 몰라서 묻는거야?”

 

“짐작도 안 간다만.”

 

여전히 무표정으로 대답한 나는 따뜻한 커피잔을 바라봤다.

 

“…어쩔 수 없네.”

 

잠시 내 얼굴을 살핀 호리키타였지만, 금세 포기하고 이야기를 처음부터 진행할 생각인 것 같다.

 

“이번 시험 어떤 시험이라고 생각해?”

 

호리키타로부터 날아온 질문.

나는 잠시 오늘들었던 특별시험의 개요를 떠올린다.

 

『흑백 재판』

각 학생은 『흑』과 『백』 중 하나의 칭호를 부여받고, 자신의 칭호를 들키거나 타인의 칭호를 착각하면 감점당하고, 자신의 칭호를 속이거나 타인의 칭호를 알아내면 득점하는 시험.

고득점을 얻기 위해서는 타인을 속이는 게 가장 효율적인 시험이다.

 

“속지 않으면서 속이는 시험이려나.”

 

짤막하게 호리키타에게 답한다.

 

“그러네. 확실히 고득점을 얻기 위해서는 거짓말이 필요하겠네. 하지만, 이번 시험은 거짓말을 하지 않고도 극복할 수 있는 시험이란 거 잘 알고 있잖아.”

 

“칭호 교환 때문인가.”

 

이번 시험은 거짓말이 중요한 시험이지만, 거짓말을 하지 않고도 득점을 쌓을 수 있다.

바로 칭호 교환이다.

나와 호리키타가 서로에게 솔직하게 칭호를 알려주고 서로 기입한다면 타인의 칭호를 맞혀서 +2점, 자신의 칭호를 들켜서 -1점으로 두 사람 모두 종합 +1점을 획득할 수 있다.

남을 속였을 때보다 득점은 적어지지만, 남은 학교생활 동안의 신뢰를 잃지 않고도 득점을 쌓을 수 있다는 것은 중요하다.

 

“그래, 맞아. 나는 칭호 교환 때문에 이번 시험을 개인전이 아니라 단체전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단체전이라.”

 

호리키타의 말도 일리가 있다. 칭호 교환을 이용한다면 우리 반 39명이 모두 칭호를 솔직하게 공유하고 기입한다면 전원이 +39점을 무난하게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더 많은 학급과 칭호 교환을 한다면 거짓말을 사용하지 않고도 득점을 끌어올릴 수 있으니 단체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정도까지 한다면 상위권에 들지 못하더라도 하위권에 들어 퇴학하는 학생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단체전으로만 보기엔 문제도 많잖아.”

 

나는 호리키타도 알고 있을 내용에 대해 의문을 표했다.

 

만약 우리 반이 호리키타를 상위권에 들게 하려 한다면 우리 반 38명의 칭호를 호리키타가 기입하고, 38명은 호리키타의 칭호를 일부러 반대로 기입해서 호리키타에게 +76점에 +38점으로 종합 +114점이라는 고득점을 몰아줄 수도 있다. 물론 이것은 우리 반 38명이 모두 -4점이라는 리스크를 안게 되지만, 나머지 37명과 칭호 교환으로 +37점을 쌓는다면 결과적으론 +33점이 돼서 하위권을 피하기엔 나쁘지 않은 점수라고 할 수 있다.

하위권을 피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단체로 칭호교환을 통해 다수가 적은 득점을 꾸준히 쌓는 방식도 유효할 것이다. 그러나 상위권을 노린다면 방금 생각한 것처럼 누군가에게 감점을 안겨주고 더욱 큰 득점을 쌓는 것이 효율적이다.

이번 시험은 분명하게 상위권을 노리는 자와 하위권을 피하는 자가 구분된다.

이런 입장차이 속에서 단체전을 도모하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ㅡ

 

“배신자 말이지.”

 

호리키타는 내가 굳이 입으로 말하지 않은 것을 언급했다.

 

이번 시험은 남을 퇴학시키는 것도 쉬운 시험이다.

그저 상대방의 칭호를 알아내서 여기저기 퍼트리고 다니기만 하면 감점이 쌓여 퇴학당할 수 있다.

때문에 누군가를 퇴학시키기 위해 기회를 엿보는 사람이 있다면 분명 단체전을 이용해 상대방의 칭호를 알아내서 퇴학시키려 할 것이다.

단체전은 신뢰를 바탕으로 성립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한 명이라도 배신자가 나온다면 학급 전체의 득점도 낮아지고 특정 인물들이 위험해질 수 있다.

어지간한 신뢰와 단합이 없으면 칭호 교환을 통한 단체전은 역효과만 낳을 뿐이다.

심지어 우리 클래스에는ㅡ

 

“오늘은 그것 때문에 너에게 할 말이 있어서 부른거야. 아야노코지 군.”

 

호리키타가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응시하며 말한다.

 

무슨 얘기일지는 짐작이 가지만 일단 들어볼까.

 

“할 말이라니.”

 

“아야노코지 군. 이번 시험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무슨 농담인가 싶은 한마디였지만, 여전히 나와 마주보고 있는 호리키타의 모습에 생각을 고쳤다.

 

“갑작스럽군.”

 

“그러네. 하지만 이번 시험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인 건 확실해.”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건 잠자코 퇴학당하라는 얘기인가.”

 

“그럴리가.”

 

호리키타는 별로 달갑지 않은 제안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내게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전했다.

 

“이번 시험, 단체전으로 전략을 짜려면 반이 일치단결해서 칭호를 공유해야 해. 하지만 우리 반에는 쿠시다 양이 있어. 그녀는 여전히 너와 나를 퇴학시키려 하고 있겠지. 오히려 이번 시험이 기회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네. 그러니까 너는 당연히 단체전 전략에 반대하겠지.”

 

“뭐, 그렇지.”

 

단체전을 전략으로 삼는 것 자체는 현명한 방법이다. 그러나 문제점도 분명 존재한다. 칭호를 공유하는 학생은 자신의 클래스메이트를 믿고 칭호를 알려주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칭호를 공유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학생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 분명 그 학생은 클래스메이트를 믿지 않는다는 식으로 여겨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의 시험에서 그 학생에게 역으로 불신을 품게 될지도 모른다. 자신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을 신뢰한다는 불합리한 일은 아무도 하려 하지 않겠지.

따라서 학급의 전략은 단체전임에도 쿠시다라는 배신자를 경계해서 나나 호리키타가 칭호공유를 거부한다면 클래스메이트의 신뢰도가 떨어지고 반의 단합을 이끌어내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런 위험을 고려한다면, 쿠시다를 어떻게 하지 않는 이상 이번 시험에서 단체전은 전략으로 사용할 수 없다.

분명 호리키타도 여기까지 생각하고 이야기를 꺼낸 것일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그럼에도 나는 이번 시험, 단체전으로 승부할 생각이야. 이번 시험은 신뢰도가 중요한 시험이야. 그런 시험을 단체전으로 무사히 넘긴다면 분명 우리 반의 결속은 강해질 거야. 나는 이 결속이야 말로 우리 반이 A반으로 올라가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라 생각하고 있어.”

 

호리키타는 확신을 가지고 자신감 있게 이야기했다.

열의가 담긴 호리키타의 목소리에 조금은 귀를 기울여주고 싶지만, 내게도 사정이 있다. 호리키타의 생각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어둘 필요가 있다.

 

“그래서, 나보고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단체전에 참여하라는 건가?”

 

“아니. 아무리 그래도 반을 위해 클래스메이트를 위험에 내던질 수는 없어.”

 

“그럼 어떻게 할 생각이지.”

 

“너와 나는 단체전에서 빠질거야.”

 

“단체전에서 빠지면 문제가 있잖아.”

 

“그러네. 단체전에서 빠지면 점수도 얻을 수 없겠네. 자기 칭호를 알려주지도 않으면서 다른 사람의 칭호를 들을 수 있을 리 없는 걸.”

 

“그래서 어떻게 하게.”

 

“이치노세 양에게 부탁할 거야. 우리반 37명의 칭호를 이치노세 양만 기입한다는 조건으로, 이치노세 양 반의 37명의 칭호를 너만 기입한다는 조건으로 교섭해볼 생각이야. 이치노세 양이라면 칭호를 알려줘도 새어나가지 않을 거라 믿을 수 있으니까. 이걸로 네 점수는 어느정도 확보되겠지.”

 

호리키타가 자신의 전략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곳에는 여러가지 문제점이 있다.

 

“……이번 기회를 포기할 생각인가?”

 

이번 시험은 상위에 입상한다면 클래스 포인트 획득에 상한이 없다. 그렇다면 누군가에게 득점을 몰아줘서 입상을 하도록 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럼에도 이치노세 반과의 칭호 교환을 부족한 내 점수 메꾸기에 사용한다면 상위에 입상하기 위한 점수 몰아주기가 힘들어진다.

 

“확실히 불리한 전략이긴 하네. 하지만 포기할 생각은 없어. 이번 시험에서 호센 군과도 다시 한 번 이야기를 해볼 생각이고, 히라타 군과 쿠시다 양이라면 여러 사람과 칭호를 교환해서 득점을 쌓아올릴 수 있을거야.”

 

호리키타는 이야기를 하면서 처음으로 시선을 아래로 떨궜다.

말하는 호리키타 본인도 알고 있겠지. 다른 학급과 교섭을 통해 칭호 교환을 하는 것은 현명한 방법이지만, 호센과 이야기를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게다가 히라타와 쿠시다라고 해도 순수하게 개인의 역량으로 득점을 쌓아올리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상위 입상을 기대하기엔 너무나 얇은 희망이다. 사실상 포기한 거나 다름없는 방법이다.

게다가ㅡ

 

“그렇게 되면 너나 쿠시다는 어쩔 셈이지. 내 점수는 이치노세에게 협력을 구한다고 해도, 아직 네 점수가 안 메꿔졌잖아. 게다가 이번에 이렇게 넘겨도 쿠시다를 어떻게 하지 않는 이상은 의미가 없어. 너와 내가 단체전에서 빠진다면 명분도 필요해. 문제점이 너무 많은 것 아닌가.”

 

반 내에 쿠시다라는 배신자가 한 명 있는 것만으로도 생각해야할 점이 이렇게 많아진다. 만약 이번에 쿠시다에 대한 대응책을 세워두지 않으면 앞으로의 시험에서도 마찬가지로 고난을 겪게 될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A반으로 가는 데에는 방해물이 되겠지.

 

“알고 있어. 쿠시다 양은 내가 설득하겠어. 내 점수도 뭐…일단은 생각이 있어. 단체전에서 빠지는 명분은 아직 정하지 못했지만, 월요일까지는 생각해내겠어.”

 

여전히 시선을 아래로 향한 채로 호리키타가 말하고 있다.

모든 것이 희망사항으로 이루어진 전략이라고는 할 수 없는 방법.

아직 시험 내용을 들은 당일이라고는 하지만, 평소의 호리키타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자세이다.

 

어쩌면 이번 시험이 호리키타에게는 가장 어려운 시험이 될 수도 있겠군.

 

호리키타의 이상도 문제지만, 나도 이번 시험에서 어떻게 할지 정해야 한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미 방침은 정해져 있고, 나머지는 구체적인 수단을 잘 해결해 나갈 뿐이다.

나는 이번 시험에서 내가 해야할 첫 단계를 시행하기 위해 호리키타와 마주봤다.

 

“억지로군. 그런 이상론에 따를 생각은 없어.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다면 돌아갈게.”

 

나는 호리키타의 말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면서도, 구체적인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여기서는 호리키타에게 반론의 실마리를 주지 않는 것이 좋다.

 

“잠깐 기다려.”

 

아직 식지 않은 커피잔을 두고 일어서려는 나를 호리키타가 불러세웠다.

 

“이 이상은 의미없ㅡ”

 

“여기서 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내 말을 끊는 살벌한 한 마디.

호리키타는 평소처럼…아니, 평소보다 나를 노려보며 한기를 내뿜고 있었다.

 

“아까 말했었지. 감금정도는 할지도 모른다고.”

 

“농담이라고 생각했다만.”

 

돌아올 대답을 알면서도 나는 작게 발버둥쳤다.

 

“내가 농담을 할 거라 생각해?”

 

“…아니.”

 

나는 뻔한 답변에 간단한 부정조차 하지 못했다.

 

“다행히 아야노코지 군은 숨을 쉬는지 안 쉬는지도 구분이 안 가는 사람이니까. 일주일 정도 호흡을 멈춰도 아무도 모르겠지.”

 

“내 존재감 너무 옅은 것 같다만.”

 

감금이라고 해놓고 살인 예고를 하는 호리키타에게서 살기가 뿜어져 나온다.

이대로라면 호리키타에게 무슨 짓을 당할지 모르겠다.

 

이쯤이면 되겠지.

 

“하아…일단 나도 생각이 있어.”

 

나는 돌아가려던 발걸음을 다시 돌려 자리에 앉았다.

눈 앞에 있는 커피잔에 손을 대보니 조금 열기가 식어있었다.

 

“생각이라니?”

 

“너는 이번 시험, 거의 포기한 것 같다만, 포기하고 싶지는 않잖아.”

 

나는 본론을 꺼내기 전에 일단 호리키타의 의향을 확인했다.

 

“그러네. 지금도 포기하지 않았지만, A반으로 가기 위한 중요한 기회를 쉽게 버릴 생각은 없어.”

 

“그리고 쿠시다도 이번에 어떻게든 해서 앞으로는 반의 단합까지 이뤄내고 싶은 거고.”

 

“맞아. 그게 A반으로 가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니까.”

 

“그걸 위해서 이번에는 나한테 아무것도 하지 말고 기다려 달라고 말하는 거라고 생각해도 되겠지?”

 

“그렇게 되겠네. 너도 우리 반의 일원이니까. 무작정 개인 행동을 허락할 수는 없어.”

 

호리키타는 내 질문에 주저없이 대답했다.

호리키타가 이대로 A반을 목표로 반의 단결을 목표로 한다면 나도 해야 할 일이 있다.

 

“그럼 이렇게 하자. 이번 시험에서 내가 1등을 할게. 너는 쿠시다랑 클래스만 신경 써. 그리고 이시험 이후엔 날 풀어줘.”

 

“…뭐?”

 

나는 짤막하게 호리키타에게 의사를 전달했다.

그러나 호리키타는 잘 못 들었는지 의문을 되물어올 뿐이었다.

 

“가불을 하겠다는 거야. 내가 졸업 때까지 반에 할 기여를 전부 이번 시험에서 1등하는 걸로 땡기고 이후엔 나에게 자유를 보장해달라는 거지.”

 

“지금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거야? 코엔지 군이랑 완전히 똑같은 이야기인데.”

 

나는 다시 한 번 내 말 뜻을 설명해줬지만, 여전히 호리키타는 못 믿겠다는 듯이 두 눈을 크게 뜨고 반문한다.

 

“알고 있어. 오히려 코엔지랑 똑같은 이야기라서 하는 거야. 반의 이득을 위해서라면 코엔지의 가불을 허락해줄 정도니까, 내 가불을 허락해주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만.”

 

“……아무래도 진심인 것 같네.”

 

호리키타는 변화 없는 내 표정을 살피고는 이내 포기한 듯 말했다.

 

“확실히 코엔지 군한테 가불을 인정해준 이상 너에게 가불을 허락해주지 않는 건 불공평하겠네. 그래도 1등을 하겠다니. 그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거야?”

 

“자신감은 없어. 할 수 있으면 하겠다는 것 뿐이야.”

 

“전혀 그렇게는 안 보인다만.”

 

호리키타는 내 의도를 읽어보려 계속 시도하지만, 내가 속내를 드러내는 일은 없다.

 

“어찌됐든 이번 시험은 A반으로 올라가기 위한 좋은 기회잖아. 내가 1등을 한다면 너는 쿠시다와클래스에 집중할 수 있으니까 좋은 거 아닌가?”

 

“뭐 그렇지. 하지만, 코엔지 군과 마찬가지로 가볍게 내기에 응할 생각은 없어. 이번에 1등을 하지 못한다면ㅡ”

 

“알고 있어. 다음, 체육대회 때 전력을 다해서 반에 공헌할게.”

 

“의외로 순순하네.”

 

나는 호리키타가 내걸 조건도 예상하고 있었기에 더 들을 필요도 없이 확답했다.

호리키타는 여전히 내 반응에 의심을 품고 있는 것 같았지만, 더 이상 무언가를 요구하거나 하진 않을 것이다.

 

“그럼 가불 조건은 이번 시험에서 1등을 한다면 앞으로 기본적인 참가까지만 해도 인정하는 것. 그리고 1등을 하지 못한다면 체육대회 때 전력으로 반에 공헌할 것. 이거면 되는 거지?”

 

“아니. 그 부분도 코엔지와 동일해.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하든, 완전한 자유를 보장해주는 거야.”

 

“……도무지 눈에 띄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의 태도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발언이네. 무슨 일이 있던 거야?”

 

“잠깐 눈에 띄더라도 아무것도 안 하면 금방 조용해질거라 생각할 뿐이야. 그래서 어떻게 할 거지?”

 

“뭐, 좋아. 네가 코엔지 군과 같은 타입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으니까. 적당한 선을 지키는 정도는 알아서 할 수 있겠지. 가불 조건은 그걸로 좋아.”

 

“다행이군.”

 

호리키타는 내 말에 동의하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분명 걱정거리가 하나 줄어든 것에 안심한 것이겠지.

게다가 처음에 호리키타의 제안을 완전히 거절했던 내가 타협안을 내놓은 셈이다.

호리키타로서도 이대로 거절당하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하겠지.

그렇게 생각하도록 화술을 사용했다.

 

“그럼 네가 단체전에 참여하지 않고도 고득점을 얻을 명분도 생각해야겠네.”

 

“아니. 단체전에는 나도 참여할 거야.”

 

“뭐? 제정신이야? 단체전에 참여하면 쿠시다 양한테 네 칭호를 알려주는 꼴이라고.”

 

호리키타가 오늘 몇 번째일지 모를 놀라움을 드러내며 말했다.

 

“알고 있어. 하지만 고득점을 얻기 위해서는 반의 칭호도 필요해. 쿠시다가 아니더라도 이번 시험 자체가 고득점을 노릴수록 위험도 증가하는 구조잖아. 어쩔 수 없어.”

 

나는 진짜 의도는 덮어둔 채로 간단하게 호리키타에게 설명했다.

과연 호리키타는 어디까지 읽어낼 수 있을까.

 

“그러다가 퇴학당하면 웃지도 못하겠네.”

 

호리키타는 침착한척 이야기하지만, 아직 내 의도까지는 읽어내지 못한 것 같다.

 

이번 시험은 여러모로 아직 호리키타에게는 버거운 것 같군.

 

반의 중심인물로 성장하고 있는 시기에 이런 시험과 쿠시다라는 내적을 동시에 신경쓰는 것은 벅차겠지.

여전히 시험에 어떻게 대응할지 확고한 방안을 찾지 못하는 것도 그 증거라고 볼 수 있다. 평소라면 이미 방침을 정하고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었을 것이다.

 

힌트라도 주도록 할까.

 

“대신 나를 좀 도와줬으면 좋겠어.”

 

“…꽤나 뻔뻔하네. 네가 1등을 하는 걸 내가 도와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렇다고 상위권에 입상도 못하길 바라진 않을 거라 생각한다만.”

 

“읏…”

 

상위 12위 안에 입상하지 않으면 아무리 고득점을 쌓아도 클래스 포인트를 얻을 수는 없다.

이번 시험은 12위 아래로는 그 어떠한 보상도 없다. 최상위권에 보상이 집중된 형태인 셈이다. 호리키타도 내가 12위 안에 들지 못해 아무 보상도 얻지 못하는 것은 바라지 않을 것이다.

 

‘’뭔가 네 장단에 놀아나는 것 같아서 싫지만 어쩔 수 없네. 그래서, 나한테 뭘 해달라고 할 셈이야?”

 

혀를 한 번 찬 호리키타는 투덜거리면서도 내 말을 들을 생각인 것 같았다.

 

“내 부탁은ㅡ”

 

나는 솔직하지 못한 호리키타에게 이번 시험에서 승리하기 위한 힌트, 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침을 간단하게 이야기했다.

 

“무슨 대단한 부탁인가 싶었는데, 그런 얘기였어? 그정도라면 나도 알고 있던 일이야.”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호리키타는 내 충고를 듣고 굳이 말로 할 필요도 없는 이야기라며 가볍게 흘러넘겼다.

실제로 어떤지는 몰라도, 이정도라면 갑자기 방침을 바꿔서 내 계획에 지장이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걱정 없겠군.

 

“대충 방향도 잡힌 것 같은데 그만 돌아가봐도 될까.”

 

나는 아까와는 다르게 긴장이 풀린 듯한 호리키타를 보고 물었다.

 

“그러네. 이제 감금할 필요는 사라졌네. 그만 돌아가도 돼.”

 

“아직도 그 얘기냐.”

 

호리키타의 허락을 받은 나는 입을 대지 않은 커피잔을 내려놓고 일어섰다.

 

“어라, 반 정도는 진심이었는데. 그 커피, 독을 타뒀거든.”

 

진짜냐…

 

호리키타의 소름끼치는 고백에 나는 내려둔 커피잔을 바라봤다.

이곳에 오기 전부터 불길한 예감뿐이었기에 손이 안 갔을 뿐이지만, 그 덕분에 연명한 것 같다.

 

“농담이야. 수면제를 넣을까 고민했을 뿐인 걸.”

 

“그것도 충분히 무섭다만.”

 

“어차피 안 마셨잖아.”

 

어느새 호리키타는 평소처럼 무섭고 살벌한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아까도 충분히 진지한 모습이었지만, 이쪽이 훨씬 자연스럽다.

 

“그럼 난 돌아갈게.”

 

나는 마지막으로 호리키타에게 인사를 하고 현관으로 향했다.

현관에서 신발을 신고 뒤를 돌아봤지만, 호리키타는 거실에서 그대로 나오지 않고 있었다.

 

굳이 마중을 나와달라고 할 필요는 없겠지.

 

별로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문을 열자 호리키타로부터 한 마디가 날아왔다.

 

“아야노코지 군. 나한테 뭐 숨기고 있는 건 없는 거지?”

 

호리키타의 질문에 뒤를 돌아봤지만, 그녀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숨기는 것…인가.

 

호리키타가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할 말은 정해져 있다.

 

“딱히. 거짓말은 안 했어.”

 

아직은.

 

지금의 호리키타에겐 버거운 시험.

그러나 극복하지 않으면 안될 시련.

그녀는 더욱 성장해야 한다.

이번 시험은 그를 위한 기폭제가 될 것이다.

 

 

 

 

 

 

 

 

이번 시험의 결말을 상상한 나는 호리키타를 뒤로하고 방을 나왔다.

 

 

 

 

 

 

 

 

 

 

 

 

 

 

 

 

 

 

8월 28일 토요일

 

-0-

 

이제 슬슬인가.

 

띵동.

 

적적한 방 안에 초인종 소리가 울린다.

 

“열려 있어.”

 

언제나처럼 잠기지 않은 문을 그녀는 익숙하게 열고 들어왔다.

 

“…오랜만이야. 키요타카.”

 

“오랜만이네. 케이.”

 

그녀, 카루이자와 케이와는 개학 후에 처음 만난다.

아니. 정확히는 같은 교실에서 매일 보기는 하지만 이런 개인적인 만남을 갖는 것은 오랜만이라고 할 수 있다.

어제 호리키타와 시험 방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나는, 이번 시험에서의 구체적인 어떤 목표들을 세웠다. 그리고 그것들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오늘은 그 준비 중 하나를 위해 케이를 불렀다.

헤어진 전 여자친구를 방에 불러낸다는 것에 어색함이 들긴 했지만, 케이라면 괜찮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믿음으로 문자를 보냈었다.

이전과는 다르게 금방 읽음 표시가 뜨진 않았지만, 케이가 방으로 올 것이라고 확신한 나는 낮부터 책을 읽으며 케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려.’

 

그리고 조금 전에 도착한 짧은 문자.

구체적인 내용은 일절 적혀있지 않았지만, 금방 도착할 것이라 생각한 나는 미리 문을 열어두었었다.

 

그렇게 지금 케이가 도착했다만…

 

아직은 좀 어색하군.

 

내 방에 들어오고도 여전히 현관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케이를 보고, 나와 마찬가지로 케이 또한 아직 이 관계에 적응하지 못했음을 느낀다.

 

“일단 들어와.”

 

불편한 침묵을 뒤로 하고, 일단은 케이를 안쪽으로 불렀다.

방에 불러놓고 문 앞에서 대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편한 데 앉아. 마실 거는 코코아로 괜찮아?”

 

“으응, 오늘은 괜찮아.”

 

머뭇거리는 케이를 방 안쪽으로 데려왔다.

마실 거라도 줘서 조금은 긴장을 풀어볼 생각이었지만, 케이는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듯 했다.

나는 내 몫만큼만 코코아를 탔다.

케이는 여전히 어딘가 불편한듯 침대 위에 걸터앉아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쉽지 않군.

 

이럴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나는 코코아를 한 모금 마시며 생각에 잠겼다.

코코아의 단맛이 내 머리속을 활성화시킨다.

 

분명 전에 그렇게 말했었지...

 

‘잘 들어 키요타카. 여자랑 만났을 땐, 그날의 복장이 어떤지부터 말하는 거야. 대화는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거라고.’

 

나는 코코아를 마시고 불현듯 떠오른 가르침을 되새겼다.

 

“케이. 오늘 예쁘게 입고 왔네.”

 

나는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작하기 위해 케이로부터 배운 지식을 활용했다.

그러나 케이는 내 예상과는 달리 침대 위에 앉아서 조용히 나를 올려다봤다.

오늘 처음으로 눈이 마주친 순간.

 

“……그래?”

 

나지막이 내뱉은 케이의 한 마디.


침대에 걸터앉아 나를 올려다보는 케이의 뺨에는 불그스름한 홍조가 올라와 있었고, 언제나 보던 저녁 노을이 영롱한 빛을 발하며 케이를 비추었다.

 

“응.”

 

어째서일까.

자연스러운 대화를 시작하기 위해 꺼낸 말인데 내 말문이 막혀버렸다.

짧은 대답만을 흘린 나는 타들어가는 목을 적시기 위해 코코아를 한 모금 마셨다.

 

“이치노세 양이랑은 어떻게 됐어?”

 

내가 침묵하자 이번에는 케이가 말을 꺼내왔다.

 

“이치노세랑은 당분간은 친구로 지내기로 했어.”

 

케이의 물음에 간략하게 사실을 전했다.

 

“그렇구나…”

 

조용히 중얼거리는 케이.

나는 케이가 꺼낸 화제에 대해 한 가지만 확인을 해두기로 했다.

 

“나한테 화나거나 하진 않았어?”

 

나는 케이에게 이치노세의 고백에 대해 이야기해 헤어졌었다.

그랬음에도 이치노세와 사귀지 않는다는 상황에 케이가 화를 내더라도 이상하지 않다.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나는 매몰찬 비난을 각오하고 질문을 던졌다.

 

“으응, 화가 나진 않았어. 오히려 키요타카랑 헤어지고 여러가지가 보이게 된 것 같아.”

 

내 예상과는 다르게 케이는 차분하게 대답했고, 이것이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이라는 것은 바로 알 수 있었다.

끊어진 화제에 다시 고요함이 깔린다.

고개를 숙이는 케이와 시선을 피하는 나.

벌어진 두 사람의 거리가 저녁 노을로 물든다.

 

“으으…역시 이런 건 나랑 안 맞아!”

 

어색하기만 한 침묵에 케이의 인내심이 한계에 달했다.

케이는 소리치며 침대에서 일어나 말을 이었다.

 

“헤어진 연인관계는 여기서 끝! 친구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야! 알겠어?“

 

한껏 힘있게 말을 내뱉는 케이의 모습은 내가 자주 보아왔던 익숙한 그 모습이었다.

아직 끝이 아니라고 말하는 듯한 이야기.

어딘가 제멋대로지만,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하게 된다.

 

“다시 시작하는 건가.”

 

이야기를 되뇌는 나를 보고, 케이는 다시 침대 위에 걸터앉아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응. 나 키요타카를 정말로 좋아하니까.”

 

마치 자랑이라도 하듯, 올곧게 바라보며 말하는 그 눈동자는 내가 모르는 모습이었다.

순수한 케이의 고백에 조금 멋쩍어진 나는 볼을 긁적였다.

 

“키요타카. 이쪽에 와서 앉아.”

 

내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자, 케이는 자신의 옆자리를 툭툭 치며 오라고 손짓했다.

 

“갑자기ㅡ”

 

“됐으니까 빨리!”

 

내가 이유를 물으려 했지만, 케이는 그런 나를 제지하고 빨리 오라며 다그쳤다.

나는 케이의 재촉에 코코아를 식탁에 내려놓고 케이의 옆자리에 앉았다.

 

“앉았다만.”

 

나는 아직도 아무 말도 꺼내지 않는 케이에게 말했다.

케이는 각오를 다지듯 잠시 숨을 들이마시더니, 옆에 앉은 내 팔을 잡아당겼다.

 

두 사람의 거리가 가까워진다.

 

케이는 그대로 내 머리를 자신의 무릎 위에 눕혔고, 작은 손으로 내 눈을 가렸다.

 

“절대 움직이지 마.”

 

따뜻한 손길로 시야를 가린 케이는 말을 이었다.

 

“…키요타카는 내가 이렇게 들이대는 거 싫어?”

 

불안한듯 긴장한 목소리.

 

“싫지 않아.”

 

짧은 대답.

 

“…나 앞으로도 키요타카를 좋아해도 되는 거야?”

 

서서히 상기되는 목소리.

 

“그래준다면야.”

 

그저 그런 한 마디.

 

“그럼ㅡ”

 

어두운 시야 밖에서 부드러운 온기가 퍼져나간다.

 

입술에 닿은 연분홍색 마음만이 내게 전해진다.

 

짧은 시간동안 불어넣어진 숨결이 내 몸 속을 휘젓는다.

 

“더…하고 싶어?”

 

달아오른 호흡을 통해 전해지는 목소리.

 

“……어.”

 

속삭임에 이끌리듯, 대답을 흘린다.

 

“그렇구나…”

 

저녁 노을로 불타는 방 안에 심음이 울린다.

 

“그럼 여기서 끝.”

 

케이는 나를 두고 일어서며 말했다.

한 발짝, 내게서 등을 돌리고 걸어간 케이가 뒤를 돌아보며 말한다.

 

“기대했어?”

 

이제까지 본 적 없는 그 모습에 멀뚱히 케이를 바라본다.

당황한 내 모습을 본 케이는 만족한듯 노을보다 밝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도 언제까지나 키요타카한테 휘둘리기만 하진 않는다고.”

 

환한 그 웃음은 그녀가 내 품을 떠났음을 실감하게 해주었다.

 

“그런 것 같네.”

 

여전히 짧은 감상.

그러나 많은 것이 느껴지는 감상이었다.

 

“그래서, 오늘도 부른 용건이 있는 거잖아. 이제 슬슬 본론을 말해줘.”

 

케이는 기분을 전환하듯 이전처럼, 평소와 같이 이야기를 진행했다.

 

“아아, 이번 시험에서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어.”

 

케이를 따라 나는 이번 시험에서 케이에게 필요한 조력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거 진심이야?”

 

“어. 앞으로를 위해 필요한 일이야.”

 

“그래. 그럼 어쩔 수 없네. 정말 키요타카는 내가 없으면 안된다니까.”

 

“어느새 그렇게 됐네.”

 

내가 직접 나설 수 없는, 다소 위험한 역할이다.

그러나 지금의 케이라면 분명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이다.

구구절절 길게 부탁을 하지 않아도, 나를 위해 움직여줄 존재이다.

 

어느새 그렇게 됐네.

 

첫만남에서는 상상하지 못했던 모습에 조금은 입꼬리가 실룩인다.

 

“맡길게.”

 

“맡겨둬.”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와의 짧은 교환으로 대화를 마친다.

 

 

 

 

 

 

 

 

 

 

 

 

-1-

 

8시 정각.

저녁 노을도 모습을 감추고 어두워진 시간.

나는 가로등 불빛을 의지해 인기척이 적은 곳으로 향했다.

방에서 케이와의 대화를 마치고, 만나야만 할 누군가에게 문자를 한 통 보낸 후 밖으로 나왔다.

약속의 상대를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긴다.

 

“아, 왔다.”

 

“안녕하세요.”

 

내가 향한 곳에는 나보다 먼저 도착해 있던 아사히나가 있었다.

그리고ㅡ

 

“여, 기다리고 있었다고.”

 

“일단은 약속시간에 맞춰서 왔습니다만.”

 

“딱딱한 녀석이군.”

 

학생회장 나구모 미야비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라면 3학년 기숙사에 가까운 곳으로 향해서 학생회장과 밀회를 갖는다는 눈에 띄는 행동은 극구 사양하겠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있다.

 

“약속은 잊지 않았겠지?”

 

나구모는 지체할 필요 없다는듯 바로 본론을 꺼내왔다.

 

“그 얘길 하기 전에 잠시만요. 중요한 연락이 있어서 잠시 휴대폰 좀 사용해도 될까요?”

 

나는 한 손에 휴대폰을 들어보이며 나구모에게 말했다.

 

“훗, 그래. 상관없다.”

 

별 일 아니라며 나구모는 흔쾌히 허락했다.

나구모의 동의를 구한 나는 아까 보냈던 문자의 수신 기록을 확인하고 한 통의 문자를 더 보냈다.

 

문자를 확인했으니 괜찮겠지.

 

문자의 상대는 내가 기숙사에서 나오기 전에 보낸 문자를 확인한 상태였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나구모와 이야기를 시작해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

나는 다 사용한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내 이야기를 전달할 준비는 끝난 거냐?”

 

나구모는 내가 휴대폰에서 시선을 떼자 음습한 웃음을 품으며 말했다.

 

떠보기…인가.

 

“어떻게 알았냐는 표정이군.”

 

“그런 표정으로 보이나요?”

 

“아니. 아무것도 읽을 수 없는 표정이다. 멍청한 척은 수준급이군.”

 

“그거 감사하네요.”

 

나구모는 가벼운 농담을 던지면서도 여전히 조소를 지우지 않고 있었다.

 

의미 없는 짓이군.

 

“하지만 별로 의미없이 내뱉은 말은 아니다. 나는 호리키타 선배가 인정한 남자를 인정한다고. 아야노코지.”

 

금방 부정한 발언을 나구모가 다시 부정한다.

 

“네가 여기까지 와서 중요한 연락이랍시고 핸드폰을 만질 리가 없지. 녹음기를 켰든, 통화 연결을 했든, 아니면 누군가가 여기 올 수 있도록 연락을 했든 어쨌거나 누군가에게 너와 나의 대화를 들려주는 게 목적이겠지. 아닌가?”

 

“글쎄요.”

 

나구모는 내 행동을 정확하게 예측했다.

나는 기숙사에서 나오기 전에 어떤 인물에게 나구모와의 약속장소와 시간을 전했고, 방금 확실하게 현장을 목격할 수 있도록 문자를 한 번 더 보냈었다.

 

예리하군.

 

“시치미 뗄 필요 없다. 네가 수작을 부린다고 해서 이야기를 물리거나 하진 않아. 어차피 너도 딱히 들켜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니까 여유롭게 내 앞에서 행동한 거겠지. 참 건방진 녀석이군.”

 

뭐, 그건 그렇지.

 

나구모의 말은 내 의도를 거의 꿰뚫고 있었다.

그러나 약간 부족하다.

나구모는 아직 나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슬슬 본론을 얘기하지. 이번 시험에서 승부한다는 약속은 물론 기억하고 있겠지?”

 

“네. 그만한 가치가 있으니까요.”

 

나는 저번 무인도 시험에서 힘을 숨기고 있다는 것을 나구모에게 들켰다.

그리고 방학 때 나와 아사히나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본 나구모는 그대로 내게 승부를 걸어왔다.

이번 시험에서 전력으로 승부하자고.

그러나 나는 여전히 나구모와 승부를 해서 얻는 것도 없으며, 호리키타를 필두로 승부를 피하는 것쯤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며 잡아뗐다.

그런 내게 나구모는 큰 제안을 해왔다.

 

‘승부에서 내가 진다면 내가 지금까지 모은 4100만 프라이빗 포인트를 네게 넘겨주지.’

 

나구모는 자신이 패배할 경우, 학년에서 끌어모은 전 프라이빗 포인트를 내게 넘기겠다고 말했다.

너무나도 큰 금액에 믿을 수 없다며 반론한 내게 나구모는 아사히나를 중계인으로 삼아서 이번 내기를 진행하겠다는 조건을 더 달았다.

시험 전에 아사히나에게 미리 프라이빗 포인트를 보내둬서 그것을 내게 보여주어, 공정함을 보증한다는 것이다.

게다가ㅡ

 

“여전히 그 생각은 변함이 없는 건가요. 쓸데없는 핸디캡을 질 필요는 없을 텐데요.”

 

“핫, 얕보지 마라. 이번 시험은 누가봐도 2학년인 너보다 3학년인 내게 더 유리한 시험이다. 이정도는 핸디캡도 아니지. 나즈나. 이제 그만 보여줘.”

 

“우…알겠어.”

 

아사히나는 내게 다가와 지신의 휴대폰에서 입출금 기록을 표시한 화면을 보여줬다.

 

『 잔액 : 43,296,800 pp 』

 

아사히나에게 있는 프라이빗 포인트가 4100만을 넘었다.

 

“확인했어요.”

 

나는 화면에서 시선을 돌려 나구모를 향해 말했다.

 

“그럼 이제 불만은 없겠지. 이번 시험에서 나는 나즈나에게 보낸 포인트에 손을 대지 않고, 너는 전력으로 승부에 임한다.”

 

“으…미야비. 역시 이런 건 그만두지 않을래? 모두한테서 모은 포인트를 내기에 건다는 것도 그렇지만, 프라이빗 포인트를 사용하지 않고 시험에 임한다는 건 무리라고.”

 

아사히나가 나구모를 향해 말한다.

 

“미안하지만 이제와서 물러설 생각은 없어. 우리 반은 이미 A반으로 졸업하는 게 확정된 거나 다름 없으니까 안심해. 포인트가 넘어가더라도 문제될 건 없어. 그리고ㅡ”

 

“호리키타 선배가 유일하게 인정한 남자를, 내게 굴욕을 준 이 녀석을 짓밟는 게 내가 졸업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이다.”

 

나구모는 눈빛에 노기를 품은 채 승부욕을 불태우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구모의 강경한 태도에 아사히나는 더 이상 반론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할 일이라기엔 너무 이른 거 아닌가요.”

 

나는 나구모의 속마음을 떠보기 위해 말했다.

 

“우리 3학년은 너희와 다르게 이미 승부가 나 있지. 무슨 일이 있어도 이 결과가 바뀔 일은 없어.”

 

결과…인가.

 

“뭐, 그렇다면야. 저는 이번 한 번으로 끝내준다면 이론 없어요.”

 

“핫, 여전히 건방지군. 마치 벌써 이긴 것 같은 말투잖냐. 안심해라. 내가 이길 거고, 이번 한 번으로 끝날테니.”

 

“그랬으면 좋겠네요.”

 

말은 저렇게 하지만, 나구모라면 자신이 졌을 때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승부를 걸어올 것이다.

 

“아야노코지 군까지…”

 

아사히나는 나와 나구모를 번갈아 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뭐, 그걸 위해 아사히나가 있는 셈이지만.

 

“흥, 이걸로 용건은 끝이다. 이번 시험에서 너의 전력을 평가해주지.”

 

“살살 부탁드리죠.”

 

“쳇, 끝까지 맥없는 녀석이군. 가자. 나즈나.”

 

“아, 같이 가.”

 

나구모는 더 이상은 시간낭비라며 기숙사 방향으로 몸을 틀어서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아사히나는 갑작스럽게 이동하는 나구모를 급하게 따라갔다.

그 때, 아무도 없을 수풀에서 작은 소음이 들린다.

 

역시 와 있었군.

 

나구모도 소음을 눈치 챘는지, 돌아가려던 발걸음을 멈췄다.

 

“후훗, 아야노코지. 선배로서 마지막으로 한 가지 충고해주마.”

 

수풀 쪽에 시선을 향하며 말하는 나구모의 말에 집중했다.

 

“키리야마 녀석을 어디에 쓸진 모르겠지만,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녀석은 이미 패배를 인정하고 떨어지는 콩고물이라도 얻어먹기 위해 발버둥치는 중이니까 말이지. 하핫.”

 

비웃음을 섞으며 말한 나구모는 그대로 떠나버렸다.

아사히나도 나중에 보자며 인사를 하고 나구모를 따라가 이곳에 나 혼자만 남았다.

 

“이제 나오셔도 돼요.”

 

나는 수풀 속에 숨어있을 그에게 안전하다는 신호를 보냈다.

내 신호를 확인한 그가 수풀에서 나와 가로등 아래로 굳은 표정을 드러냈다.

 

“날 이곳으로 불러서 어쩔 셈이지. 분명 방해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험악한 표정으로 나타난 키리야마는 내게 불만을 표출하고 있었다.

 

“방해할 생각은 없었습니다만.”

 

“뭐라고? 나는 네 문자를 받고 여기까지 나왔다. 그리고 도착해봤더니 나구모와 너의 대화가 들렸지. 나구모에게 너와의 관계를 드러낼 수 없어서 숨어있었다만, 나구모는 마지막에 나를 눈치챘다. 이게 방해가 아니라면 뭐라는 거지? 나는 이번 시험에서 나구모에게 아무 짓도 할 생각이 없었어. 그런데 너 때문에 나구모는 이제 완전히 나를 적이라고 인식하고 있다고.”

 

키리야마는 험악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분을 삭이며 말을 이었다.

 

“그래 보이네요.”

 

나는 여전히 무덤덤하게 키리야마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러나 나의 그런 태도에 키리야마는 견딜 수 없던 것인지 분노를 드러냈다.

 

“웃기지 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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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둔 건 여기까지. 전체 구상해둔 거의 10%도 못 쓴듯.

각 잡고 시작해서 전개랑 연출 복선까지 구상 다 해뒀는데 완성 못해서 미안함.

완성은 나중에라도 절대 무리일 것 같고

만약 수요가 있으면 짜둔 거라도 적당히 정리해서 언젠가 뻘글 하나 올리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