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마 중2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 나는 레다메가 너무 갖고 싶었고, 당시 아직 프팩4가 나오기 전이라서 한판 레다메가 없던 시절이었음


그렇다고 일판 리미티드 에디션 11을 주문하자니 학창시절이라 학교가랴, 방과후 학원가랴 집에 없는 시간이 많은데 그러자면 택배를 엄마가 받게될 확률이 높고 택배 검사를 대딩때까지 받았기 때문에 이것도 꿈도 못꿨음

뭣보다 당시 거래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일판 팩 가격이 미쳐날뛰던 시절이라 팩 하나에 몇만씩 질렀다고 하면 무슨일이 터질지는 불을 보듯 뻔할 터,


그러던 와중에 대뜸 아빠가 나한테 한가지 부탁을 했음, 자기랑 같이 휴일에 어디를 같이가재, 그러면 유희왕 카드 하나 사주겠대


어디였는진 기억이 나질 않는데 고속도로를 탔었고 굳이 나한테 그런 조건까지 걸 정도면 내가 가기 싫어하는 장소였던 건 분명함

하지만 이건 바라마지않던 레다메를 엄마몰래 수령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싶어 흔쾌히 ok를 외쳤지


그렇게 가기 싫은 장소를 휴일까지 반납해가며 꾹 참고 갔다오고, 아빠는 갖고싶은 상품을 골라놓으라고 했어

나는 "아빠가 과연 이걸 사줄까... 팩 하나가 뭐 이리 비싸냐며 무르는 거 아니겠지... 가격보고 놀라서 그나마 있는 카드들도 다 갖다버라면 어떡하지?" 하며 맘속으로 수십수백번씩 갈등을 하다가


딸칵ー.

그렇게 장바구니에 리미티드 에디션 11이 담겼다


부푼 맘을 안고 아빠를 불렀고 아빠는 화면을 빤히 쳐다보다가 내게 뜻밖의 말을 걸었어


"○○아, 근데 너 이번에 성적 얼마나 나왔지?"


전혀 맥락 밖의 얘기를 하니 나는 뇌정지가 와서 어버버하고 있는데 내가 채 상황파악을 하기도 전에 아빠는 말을 이어갔어


"너 이번에 평균 몇점 이상 넘기기로 했잖아. 왜 아빠랑 한 약속 안지켜?"


그런 약속 한 적 없었다. 평균치 올리겠다고 한 약속은 더더욱.


"넌 아빠랑 한 약속 안 지키면서 너는 왜 약속 지키길 바래? 장손 구실 못하는(잘못 쓴거 아니다, 진짜 뜬금없는데서 장손 찾는 거 좋아했음) 아들 약속을 지켜줘야 해? 하...○○아 얘기좀 하자"


그렇게 한 시간 동안 의식의 흐름대로 설교를 듣게되고... 아빠 호의를 들어준 대가는... 반성문 써오기였다........


무슨 말인지 이해안가지? 나도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10년도 훌쩍 지난 지금까지 이해 못하겠어


결국 레다메는 1년쯤 지나니까 정발됐고 나중에 자취하게되면서 리미티드 에디션 11도 미개봉품으로 하나 구해놓게됐어 저거 볼때마다 그때 생각밖에 안나


사실 아빠가 이런 식으로 약속해놓고 나중가서 모르쇠하거나 이런 저런 구실 대가면서 안지키거나 때로는 안지키다못해 이 반성문 사건처럼 오히려 나에게서 뭘 더 뺏어가려 한 적이 한둘이 아니었어


예전에도 한번 언급했지만 내 부모님이 이혼했는데 엄마는 이런 아빠보다도 더 ㅈ같아서(아빠가 말이 안 통하는 인간이라면, 엄마는 그냥 짐승이었어) 그때 아빠편들었고 아빠는 이혼공방 끝나면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겠다고 했지만 당연히 나는 엄마를 몰아내는게 우선이었지 물심양면적 지원이야 어찌됐든 알 바 아니었음. 어차피 안해줄거 뻔히 알고 있었고, 당연히 안지켰음


안지키다 못해 작년에 우울증터져서 반병신으로 살고있는데 우울증인거 다 알고있는 와중에, 심지어 제자 중에 우울증 때문에 살1자한 사람있다고 운띄워놓고는 지 예비사위랑 나를 비교해가면서 내 속을 벅벅 긁더라


아빠에 대한 모든 희망을 놓아버리고, 난 아빠가 뭐라하든말든 쌩까고 자취방으로 돌아왔는데 카톡이 하나와있더라


"아빠는 너랑 잘해보고 싶어서 한 말인데 왜 이러니?"


씨발


그게 아빠와 내가 나눈 마지막 소통이다. 이후로 얘기 나눈 적 없어


레다메 썰풀다가 아빠랑 의절한 부분까지 왔네

참내 나는 왜케 썰을 중간에 끊는 걸 못하냐


유붕이들은 꼭 행복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