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우연히 가족의 약속에 휘말렸을 뿐이다.

얌전히 버스를 타고 가면 될 것을, 나이의 많고 적음을 장난스레 들먹이며 누나는 기어코 운전대를 잡게 만들었다.

본의아니게 도착하게 된 고향이었다. 일요일에 일정없는 청년은 변덕을 부리기에 충분했다.

부슬비가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어쨌거나, 걸어봐야하지 않겠는가. 트렁크를 열고 아버지의 장우산을 꺼냈다.

기분좋은 고향관광에 적합한 날씨는 아니었지만 사정을 봐가며 찾아오기엔 삶이 너무 바빴다. 타의를 빌리지 않고선 너무 먼 거리였다.

발걸음을 띄우기 시작했다. 여러 곳을 둘러보았지만 유독 우중충한 날씨를 제외하곤 별다른 감상의 차이는 역시 없었다.

아무도 없는 학교, 문을 닫으려는 도서관, 새로 페인트 칠한 초등시절의 아파트. 모두 그대로였고 어색했다.

놀랍게도 그다지 갈 곳이 떠오르지 않았다.

목적지를 잃은 채 가만히 서 있으니 사연스레 상념에 젖었다.

어제 4라운드에서 기껏 어라이즈 도라를 세웠지만 광암앙헬 케어를 까먹어 썬드에게 쳐맞은 공인의 기억은 괜시리 울적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순간 한 장소가 떠올랐다. 어렸을 적 자주 가던 학교 앞 문방구.

부모님 몰래 형과 스트럭처 덱을 사서 밖에서 즐겼던, 그리고 곤란한 우리의 사정을 이해해 주며 문방구에 카드를 보관해주시던 사장님이 계신 곳이다.

시간은 별로 걸리지 않았다. 낡았지만 여전한 간판이 나를 맞이했다.

3평이 채 되지않는 조그만 공간에서 사장님은 나를 기억해주셨다. 꼬맹이였던 녀석이 이젠 제법 청년티가 난다며 장난스레 농담을 던지시며 웃으셨다.

사장님은 머리가 눈에띄게 희어지셨다. 문방구엔 아이들 완구가 여전히 가득했지만 이젠 아이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며, 아쉬운 얼굴이셨다.

청년은 나잇값을 하고 싶다는 사소한 욕심으로 레오디 한 상자를 호기롭게 구매했다.

백원 동전을 모아 한 팩, 두 팩씩 카드를 까며 oka 썬더 한 장에도 예쁜 카드가 떴다며 좋아라 하던 꼬맹이가 이젠 툭하면 통 단위로 사다니. 

이젠 순수하게 이 비닐을 뜯지 못할 테지만 하여튼 감회가 새로웠다.

다음에 또 오겠다는 인사로 문구점을 뒤로하고 차로 돌아가는 길에 오락실에 들렀다.

휘황찬란한 상가가 들어선 곳은 가족들과 텃밭을 가꾸던 어딘가였다.

누군가가 노래방에서 열정적으로 노래 부르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고, 오백원 동전을 철권 태그 2에 밀어넣었다.

맞은편에 앉은 누군가가 6번의 코인을 넣었지만 아스카 겐세이로 남성을 귀가시키고, 나 또한 집에 갈 채비를 했다.

날씨는 벌써 어둑해졌고 빗줄기는 거세졌다.

살벌한 빗속도로를 주행하며 무사히 귀가한 청년은 주머니의 레오디 한 통을 꺼내놓았다.

내일도 지겨운 출근이지만, 작은 즐거움을 누리고 잠에 든다면 조금은 개운한 아침이 되지 않을까?




























사장님 어째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