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가르쳐…… 가르쳐 주지 않을래? 난 어떡해야 돼……?"


교정 한편.


가스미 준은 한 미소녀와 마주하고 있었다.


그녀는 촉촉한 눈동자로 그를 보며 바람 소리에도 묻힐 것 같은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어떡해야 나 혼자 안 있어……? 어떡해야 곁에 있어 줄 거야……?"


준은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다.


그저 눈앞의 소녀만 바라볼 뿐이다.


명인이 금으로 만든 세공품을 방불케 하는 아름다운 금발. 반짝반짝 빛을 내는 금발을 그녀는 투사이드업으로 묶었다.


머리를 다 묶은 게 아니라 양쪽 옆머리만 묶고 남은 뒷머리는 늘어뜨렸다.


금발 못지않게 얼굴도 아름답다.


야무진 눈을 긴 속눈썹이 꾸며 주고 있다.


피부는 속이 비칠 것처럼 희다.


잘 연마된 뽀얀 대리석처럼 잡티가 없다.


코와 입술은 단정한 것이 어쩐지 기품이 느껴진다.


히바리가오카 유키.


이것이 그녀의 이름이다.


유키와 준은 표면상 대립하는 입장에 있었다.


두 사람은 취주악부에 소속되어 있다.


그렇지만 같은 취주악부는 아니다.


이곳 쓰부라야마학원에는 사실상 두 개의 취주악부가 있는 것이다.


저출산에 따른 학교 통폐합으로 쓰부라야마학원은 학원 하나를 흡수 합병했다. 그것이 올봄까지 준이 다녔던 아카기야마학원이다.


합병으로 아카기야마학원에 있던 많은 특별활동은 쓰부라야마학원의 특별활동에 흡수되었다.


하지만 준이 소속된 취주악부만은 합병이 잘 되지 않았다.


쓰부라야마학원 측 고문이 합병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어떤 취주악부를 정식 특별활동으로서 인정할 수 있는지……


그것을 걸고 교내 콩쿠르가 열리게 된 것이다.


유키는 쓰부라야마학원 취주악부 부장. 준은 아카기야마학원 취주악부 부장.



서로 이렇게 단둘이서 만나는 것조차 공공연히 할 수 없는 처지이다.


"결국…… 전……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혼자군요……"


그렇게 자조적으로 중얼거리는 유키.


준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에게 해 줄 대답이 마음속에 서서히 떠오른다.


"유키는 혼자가 아니야"


"그런…… 거짓말…… 필요 없어요"


"거짓말 아니야"


"하지만……"


"확실히 난 유키네 부에는 못 들어가지만…… 하지만 유키 가까이 있어"


유키는 외로움이 담긴 눈동자로 준을 쳐다보았다.


준은 그런 유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본다.


슬픈 듯 고개 숙인 채 떨고 있는 유키.


준은 두 팔로 그녀를 꼭 껴안아 주었다.


"앗, 자, 잠깐……"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놀랐는지 유키는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저항다운 저항도 하지 않고 그대로 준의 팔에 몸을 맡긴다.





"자…… 이렇게 가까이 있잖아?"


유키의 고동이, 그리고 몸의 온기가 옷을 통해 전해졌다.


그녀도 준을 같이 껴안는다. 그렇게 세게 안은 건 아니지만 유키는 준의 등에 확실하게 팔을 두르고 손에는 힘을 주고 있었다.


유키는 조그맣게 속삭인다. 슬픔으로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가 아니라 부끄러움을 억누르고 간신히 낸 듯한 희미한 목소리로……


"저, 저기…… 조, 조금만 더…… 아니에요, 아무것도……"


준은 더욱 힘을 주어 소녀를 껴안으면서 그녀의 귓가에 살며시 속삭였다.


"저기, 유키…… 조금만 더 이렇게 있어도 될까?"


"당신이 원한다면…… 딱히 상관없어요……"


유키는 그러면서 준의 품에 얼굴을 묻는다.


두 사람은 껴안은 채 한참 서로의 체온만을 느끼면서 시간을 보냈다……


………………


…………


"저기, 유키…… 조금만 더 이렇게 있어도 될까……?"


준은 후끈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안 돼요"


몹시 단호하게 대답한다.


"저기, 유키…… 조금만 더 이렇게 있어도……"


"그러니까 안 된다고요"


여자아이의 목소리.


그것이 누구 목소리인지 준이 착각할 리 없다.


플루트 소리를 연상케 하는 우아한 목소리는 이제는 부내의 모두가 인정하는 그의 애인 유키의 목소리이다.


"왜…… 왜 그래? 유키"


매달리듯 애인의 이름을 부른다.


(그럴 리…… 그럴 리 없어. 유키가 나를 거부하다니……)


거기서 준은 눈을 떴다.


졸음을 몰아내며 간신히 눈을 뜨니 금발 미소녀가 팔짱을 끼고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다. 아침 햇살을 받은 금발이 반짝반짝 빛났다. 타고난 기품이 느껴지는 예쁜 얼굴에는 언뜻 보면 화난 듯한 표정이 서려 있다.


그녀가 서 있는 곳은 준의 방……


"으응……? 왜 유키가 내 방에……?"


잠에서 막 깼다는 게 느껴지는 어리바리한 목소리로 준은 고분고분 물어보았다.



오늘은 토요일이라 학원은 안 갈 텐데……


"정말, 잠에 취해 있지 말고 그만 정신 차리세요"


말투는 엄하지만 그녀의 표정에는 분노 말고도 무언가가 상당히 담겨 있다.


유키를 가까이서 보아 온 준은 그녀의 미묘한 표정 차이를 알 수 있다.


준의 사적인 공간에 단둘이 있는 것이 기쁘다, 그렇게 해석하는 건 너무 자만하는 것일까.


"오늘은 휴일 연습이라고 어제 그렇게 말했는데"


그 말을 듣고 보니 그녀는 교복을 입고 있었다.


지금은 기말고사가 끝나고 여름 방학을 목전에 둔 시기이니 유키가 입은 것은 하복이다.


하얀 반팔 세일러복에 연푸른색 조끼 조합이다. 세일러 칼라에는 파란색 선이 들어가 있어서 시원한 느낌을 주었다.


그녀의 치마는 오늘 아침에 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반듯하게 주름이 잡혀 있다. 탱탱하고 우아한 다리에는 검정 스타킹을 신고 있었다.


참으로 양갓집 규수라고 할 모습으로 복장과 용모에 빈틈이 없다.


하지만 유키는 이런 무더운 계절이 되어서도 여전히 검정 팬티스타킹을 신었다. 최대한 맨살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양갓집 아가씨의 교양일까. 여름철 검정은 보는 사람에게는 꽉 조인다는 느낌을 준다.


탱탱한 다리가 그려 내는 선은 스타킹을 신음으로써 더더욱 부각되었다.



매우 얇은 나일론 재질을 통해 비치는 허벅지 살은 눈부실 만큼 하얗게 느껴진다.


준은 군침을 삼켰다.


(다리도 예쁘지만……)


그의 시선은 허벅지와 치마의 경계에 고정되어 있다.


유키는 준의 머리맡 바로 옆에 서 있으므로 위치와 각도를 이용하면 치마 안을 볼 수도 있다.


뒤척이는 척하면서 머리를 움직인다.


치마 안은……


(하윽)


자신이 하고 있는 짓을 깨닫고 준은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유혹을 못 이기고 애인의 숨겨진 곳에 시선이 향하고 만다.


그녀의 고간.


검정 팬티스타킹 너머로 보인 것은 여성스럽게 둥그스름한 하복부와 새하얀 속옷이다. 매우 새하얀 팬티이다.


사타구니가 포개진 부분에는 타원형 둔덕이 어렴풋이 도드라져 있다.


불룩하게 부푼 그곳에는 세로로 파고든 줄이 하나 가 있다.


심장 박동이 빨라진 것을 자각하면서 준은 치마 안을 응시한다.


"어디 보시는 거예요, 어디!"


싸늘한 목소리를 듣고 준은 서둘러 위를 보았다.



그러자 이번엔 유키의 가슴에 눈이 향하고 만다.


가슴 앞으로 팔짱을 낀 유키.


불룩한 가슴이 팔짱으로 밑에서 올려지니 그 풍만함이 더욱 강조되었다. 세일러복의 가슴 부분은 풍만한 유방 때문에 팽팽했다. 유키 본인은 그럴 생각이 없겠지만 마치 자신 있는 가슴을 과시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은 연습 얘기를 하는 거예요. 어제 특별 활동 끝날 때 분명히 얘기했는데"


"그, 그러고 보니 그런 거 같기도……"


"혹시 잊어버렸나 해서 와 봤더니 역시나 이런 몰골. 부부장이 이런 꼴을 해서는 다른 부원들에게 모범이 될 수 없어요"


달아오르는 유키와는 반대로 준은 아직도 잠기운이 완전히 빠지지 않았다.


하품이 나왔다.


그녀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자장가가 되어 꿈나라로 유도한다.


"그렇구나…… 그래서 유키 꿈을 꾼 건가……"


머리맡에 있는 시계를 보니 일어나야 할 시간까지 5분 정도 남아 있었다.


"조금만 더 있으면 좋은 단계로 넘어가니까……"


꿈을 조금만 더 꾸면 유키와 처음 연인이 되었을 때의 상황으로 넘어갈 것이다.



이불을 끌어안고 뒤척이면서 다시 자려고 한다.


"안 돼요. 윗사람은 항상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해요"


이불을 잡아 뺏는다.


"아슬아슬한 시간까지 자다니 당치도 않아요"


그래도 준은 몸을 둥글게 말고 더 자려고 고집을 부렸다.


"일어나세요. 일어나라니까요……"


침대에 드러눕는 내 몸을 흔들어 댄다.


이런 시간을 애인과 단둘이서 보낸다는 것은 준에게는 더없이 즐거운 일이다.


분명 유키도 그럴 것이다.


만약 유키가 정말로 화가 났다면 그녀가 '호신술'로 가차 없이 두들겨서 깨웠을 것이다. 이것도 양갓집 규수의 교양일까? 유키는 맨손으로 남자를 제압할 수 있을 정도로 무술을 익혔다. 실제로 준은 그 '호신술' 덕분에 팔을 꺾이거나 바닥에 엎어진 적이 있었다.


('호신술'이 발동되지 않는다는 건 유키도……)


그런 생각이 드니 문득 장난기가 발동한다.


다시 뒤척이면서 유키 쪽으로 몸을 돌리고 기대에 찬 눈빛으로 금발 미소녀를 올려다봤다.


"유키가 키스해 주면 일어날게"



아주 살짝 쑥스러운 요구.


"아…… 당신이라는 사람은 이런 아침부터 무, 무, 무슨……"


비난 섞인 말투나 치켜 올라간 눈썹으로 보건대 유키는 화가 난 것 같다.


역시 쉽사리 해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모닝 키스는 남자의 로망. 간단히 포기할 수는 없지)


일부러 눈을 감고 잠을 자려는 듯한 기색을 보인다.


"유키가 키스 안 해 주면 이대로 다시 자 버릴 건데?"


그러면서 실눈을 뜨고 유키의 낌새를 살폈다.


금발 아가씨는 여전히 눈썹이 치켜 올라가 있다.


표면상으로는 준의 요구를 거부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녀의 하얀 볼에는 살며시 홍조가 떠올라 꼭 싫어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나타냈다.


"그…… 그런 거…… 하고 있을 시간 같은 거, 지금 없어요……"


평소에는 초롱초롱한 빛을 띠고 있는 그녀의 눈동자.


하지만 지금은 아주 살짝 촉촉해져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부장으로서 책임감 때문에 그리고 그 상황이 부끄럽기 때문에 준의 제안을 거부하고 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흔들리고 있을 것이다.


(좀만 더 하면 되겠군……)



그 자리에서 떠올린 유키가 난처할 이론을 내세워 본다.


"급하잖아? 유키가 키스해 주면 순식간에 일어나 줄게"


유키는 기품이 느껴지는 예쁜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노려보듯 준을 쳐다봤다.


"하, 하는 수 없군요…… 당신이 원한다면…… 딱히 상관없어요……"


(아싸)


가슴이 고동친다.


눈을 감고 박동이 빨라지는 걸 느끼면서 그 순간을 기다렸다.


유키의 손이 어깨에 살포시 닿는다.


은은한 샴푸 향기가 콧속을 간질임과 동시에 그녀의 숨결을 귓가에서 느꼈다. 긴장과 쑥스러움 때문인지 살짝 거칠어진 호흡을……


"일어나세요"


청량하고 우아한 목소리는 아주 살짝 떨리고 있다.


그녀가 두 손으로 내 볼을 잡았다.


입술과 입술이 맞닿는다.


촉촉하고 부드러운 그것을 눈을 감고 만끽했다.


미세하게 거칠어진 그녀의 숨결과 아름다운 금발에서 풍기는 향기, 그리고 볼을 잡은 손의 온기…… 그것들도 준을 기분 좋게 자극해 주었다.


맞닿은 입술을 통해 서로에게 황홀함이 전달되고 두 사람의 몸은 점점 더 고양되었다.



그녀의 입술을 더 즐기고 싶다……


준은 유키의 등에 팔을 두르고 가냘픈 어깨를 끌어당겼다.


입술과 입술이 더욱 밀착되게 한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유키의 부드러운 입술을 쪽쪽 빨아들였다.


반질반질하고 탱탱한 입술을 마음껏 탐하며 찬찬히 즐긴다.


"으음…… 음…… 아으응……"


금발 아가씨는 황홀한 표정으로 작게 신음 소리를 냈다.


헤벌어진 입술 사이로 준은 혀를 밀어 넣는다.


"으음"


늘씬한 몸이 준의 팔 안에서 움찔한다.


유키는 갑자기 혀가 들어와서 놀란 것 같지만 금세 힘을 뺐다.


유키의 몸은 어깨도 허리도 가늘지만 가슴은 커서 불룩하다. 풍만한 가슴이 준의 가슴팍에 푹 눌려서 찌부러졌다.


부드러운 유키의 가슴을 자신의 가슴으로 느끼면서 준은 혀를 넣었다 뺐다 한다.


반쯤 열린 입술 사이로 혀를 밀어 넣고 침으로 소리를 내며 휘젓는다.


유키도 머뭇머뭇하면서도 준의 혀에 반응해 주었다.



쳐들어온 것을 혀끝으로 쪼기도 하고 가까워지도록 휘감기도 한다.


미끌미끌한 혀와 혀가 서로 비벼진다.


쪼옥…… 쪽…… 추릅…… 쪼쪼오옥……


"하으응…… 음…… 으음…… 음……"


뜨거운 신음 소리를 내면서 유키는 준의 팔 안에서 몸부림치고 있다. 상체는 완전히 힘이 빠져서 황홀한 표정을 하고 준의 포옹에 몸을 맡겼다.


"유키……"


이렇게나 아름다운 여자아이가 애인이라는 행복함을 느끼면서 준은 유키의 입술을 마구 빨아들이며 혀로 사랑을 주고받았다. 꼭 껴안고 고동을 느낀다.


"아으응…… 응……"



두 사람은 시간을 잊고서 혀와 입술로 하는 애무에 푹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