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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


"아가츠마 선배! 안녕하세요!"


 그때부터 그 후배는 저를 쫓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어머, 안녕하세요... 야마기시 양?"


 그녀의 이름은 야마기시 히메루(山岸姫瑠), S양이 말하기론 미즈시로(水城), 카레시바(枯芝), 야마기시(山岸) 세 가문으로 이뤄진 지방의 명가 출신이라고 하네요. 어라, 카레산스이(枯山水)? 정원 관리가 가업인가요?


"아직 저번 일에 답례도 하지못했으니, 점심 식사에 초대하고싶어서 왔어요!"


  그녀는 쭉 뻗은 뒷머리를 허리까지 길러두고, 앞머리는 깔끔하게 정돈해 뒀습니다. 히메컷(姫カット)이군요. 이름이랑 맞춘걸까요? 아마 아니겠죠. 저와는 3살 차이에, 아직 중등부라고 합니다. 그러고보니 제복도 다르네요. 나이에 비해 키는 큰 편이지만, 얼굴엔 아직 앳됨이 남아 있었습니다.


"어머나, 히메루 양도 아가츠마 양을?"

"헤헤헷"


 그녀는 테니스부 소속이고, S양의 후임격인 모양입니다. 활발하지만 고지식한 성격에, 테니스는 그렇게 잘하는 편이 아닌, 부주장에 어울리는 타입이라고 합니다. 그런 타입도 있군요, 윤활유 같은 걸까요?


"아가츠마 선배는, 제가 동경하는 언니이시니까요..."


 그녀는 좋던 나쁘던, 다른 야하기 키요스미의 학생들과는 다른 소녀였습니다.

 뭐라고 해야할까요? 후배라기보단 마스코트나 애완동물 같은 느낌?


"어머, 꽤 기운 넘치는 아이가 따르게 됐구나, 쥬리아 양"


 이 아이는 그 사건부터 어째선가 저를 마음에 들어하고 있습니다.

 이정도 나잇대일땐, 연상이 멋있게 보이기 때문일까요.

 

"후훗, 정말 고마운일이네요, 츠즈하라 양"


 저도 처음엔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학교의 마스코트가 호의를 표하고있다면, 학교에서의 행동거지도 아주 간단해지니까요.


 연하에게 따라지던 경험은 없지만, 저라면 잘 해낼 수 있겠죠.


    ◆


 결과만 말하자면 그건 큰 오산이었습니다.


"아가츠마 선배!"


 일단 첫번째 이유는, 야마기시 히메루가 생각보다 훨씬 인기가 많았던 것.

 그녀가 복도를 지나가기만해도 여러 사람들이 말을 걸어왔습니다.

 즉 시선을 끈다는거죠. 그, 저는 낯을 가리자나요? 후후후, 그런건 조금 힘들어요.


"아가츠마 선배는 전학온지 얼마 안돼서, 엄청 불안해 하시고 있을거라 생각해요!"


 그리고 제일 큰 이유는 그녀 본인.


"그러하니, 제가 이야기 상대를 해드리겠어요! 제 조모님도 '한숨 100번 쉬면 진짜 울쩍해 질 수 있다' 라고 말하셨으니까!"


 아무튼 부담스럽게 다가오고


"선배는 어디서 전학 오신거에요?"

"아쉽지만 비밀이랍니다"

"....! 분명 괴로운 일이 있으셨던거군요!"


 그리고 한번 생각한건 강하게 믿고


"야마기시 양, 제 상대만 하고 있으면 힘들지 않나요? 그 상급생하고 친하게 지내면 안좋은 소문도 생기곤 하잖아요?"

"괜찮아요! 기운 넘치는게 장점인지라!"


 그리고, 별로 똑똑하지도 않습니다.

 말에서 진의를 읽지 않으려하는 아이와는 대화도 꽤 어려운 법이군요. 처음 겪는 일입니다, 좋은 경험으로 삼아야겠죠.


    ◆


 한 일요일 저녁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다른 기숙사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소동이 났습니다. 몇몇은 기분이 나빠져 의무실에 갈 정도인데, 원인은 알 수 없다는 것.

 저도 무슨일인가 궁금해 가봤더니, 코에서 뇌까지 통과하는 띵하는 냄새가 났습니다.


"신너(Thinner).....?


 이 아가씨들은, 이 자극적인 향기가 뭔지 모르시나 봐요. 뭐 여긴 매니큐어도 바르지 못하게 하는 곳이니.

 SM 콤비와 함께 냄새가 나는 곳으로 향했습니다.


"어라? 선배들 무슨일이에요?"


 야마기시 양이 있었습니다.

 가스마스크 같은걸 얼굴에 쓰고 있었지만, 야마기시 양이네요.

 중등부는 기본 2인 1실인데, 룸메이트는 이미 도망갔는지 방엔 야마기시 양이 홀로 있었습니다.

 창문은 열어둔 채고, 여러 색의 락카와, 커다란 상자 속엔


"프라모델이에요!"


 흐응, 그렇군요.

 여자 기숙사에서, 프라모델을 만들고 놀기도 하나요...?


"수성 아크릴은 안전해서 좋지만, 역시 락카의 비할 수는 없네요! 빨리 마르는 만큼 작업 시간도 여유롭고, 무엇보다 원작 재현도가 뛰어나서"


 그리고나선, 다 함께 청소를 했습니다.


"아아! 그건 전매상과의 혈투 끝에 겨우 손에 넣은 한정품인데...!" 

"이런걸 사감 선생님한테 들킨다고 생각해보세요. 당신 집으로 쫒겨 날지도 모른다구요?

"색 별로, 적어도 색 별로 나눠서 자루에라도 넣어주세요! 아직 서페이서를 바르지 않은것도 있어요!"


 냄새를 어떻게든 하기 위해서, 저는 룸 프레이그런스를 남김 없이 뿌렸습니다.

 이거, 엄청 마음에 들었던건데.


"아가츠마 선배! 거기있는 빨간 런너를 주실 수 있나요!"

"............."

".......? 앗! 런너라는건 이 파츠가 붙어있는 프레임을 말하는거에요...!"


 안물어 봤거든요.

 야하기 키요스미의 학생들은 정숙한 소녀뿐이라고 들었는데, 그렇지도 않나보네요.


    ◆


 그녀는 언제나 갑작스럽게 나타납니다.


"아가츠마 선배, 가정 실습에서 만든 요리에요, 드셔주세요!"

"여기는 화장실이에요"


 어디에서라도 나타납니다.


"카레에요!"

"화장실이라구요"


 요전 일입니다.

 아름다룬 꽃들이 피어있는, 노을지는 정원에서 불러 세워졌습니다.


"아가츠마 선배, 이걸 받아주세요!"


 양손으로 하트씰이 붙어 있는 두꺼운 핑크색 봉투를 내밀었습니다.

 우와,.. 무거워 보이네요.


"저를 더 알아주셨으면 해서... 조금 길어졌지만..."


 어라, 생각보다 가볍네요.


"열어 봐도 되나요?"

"물론이에요"


 안에서 나온건, BD 케이스 였습니다.


"건담이에요"

"건담...."


 아아 그, 카도가와 였던가요....

 헤..

 영상 편지가 아니라...?


"제 목숨보다 소중한 콜렉션이에요..."

"그런 소중한건 받을 수 없는걸요"

"아뇨! 받아주세요, 제 마음이에요!"


 마음 가짐이 독특해.


"그러니까, 그게...."


 엄청 거리가 가까워....


"앞으론 쥬리아 언니, 라고 불러도 괜찮을까요!?"


 그리고 단순하게 목소리가 커....

 부활동을 하면 폐활양이 늘어나는 걸까요.


"마음은 기쁘지만, 저 같은게 언니라니, 쑥스럽네요"

"저도 히메루라고 불러주세요! 이름으로!"


 저는 정말로 관심 있는 사람만 이름으로 부르는데요.


"후훗, 생각해 볼께요?"


 라곤 해도 상대는 어린 하급생입니다.

 지금도 봐요, 얼굴을 새빨갛게 하고 있는 어린 소녀 한명을 어찌할 수는 없으니.


"네.... 잘 부탁드립니다, 언니...."


 제 계획을 방해만 안한다면, 그걸로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


 저는 학생들과 잘 어울리는것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자 속 정원에서는 교사들이 상당한 힘을 가지고 있죠.

 상대가 연상이라 어려워? 설교 당할지도 몰라?

 아뇨, 그럴 일은 없어요.


"하앙, 앗...거기이잇,,, 쥬리아, 야..앙...."


 왜냐면 여의사와 여교사는 변태같은 여자만 된다구요?


"정말 오랫만에, 땀 흘렸네... 홍차 마실래?"

"감사히 받겠어요. 그야 선생님이 원하셨으니까요... 기뻐서 그만"


 그 두개가 합쳐진 양호교사라면, 변태임이 틀림없다. 그런거에요.

 선생님에게 동경을 표하는 소녀를 연기하면, 엄청 기뻐해 준다구요?


"침대 빨리 정리해야 돼. 요즘 방문하는 사람이 많거든"

"어머, 그런가요?"

"그래, 컨디션이 망가지는 학생들이 많아서, 덕분에 약도 부족해"


 야하기 키요스미는 양호 교사가 상주하는 의사도 겸하고 있어요.

 자격도 있는지 약 처방도 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1형 당뇨병인 학생이 있으면, 피하주사를 처방해야 하죠. 그런 의미에서 요구되는게 많은 직무네요.


"또 신세지게 될거라 생각하니, 잘 부탁해"

"네, 조부님과 아버지껜 잘 말해드릴께요"


 그 때문에, 학교장과 그녀만이 제가 미나이의 사람인걸 알고 있습니다. 

 할아버님이 연락한 모양입니다. 저를 감시하고 있다는 의미겠죠.


"부모님은 키요스미를 어떻게 생각하셔?"

"멋진 학교라고 말하셨어요. 이대로 야하기 계열의 대학에 가는게 제일 좋지 않겠냐 라고 하실 정도로"


 정확하겐 그 이외의 진학처를 허락할 생각이 없을뿐이지만요. 아마도 여기에 있으면 조금이라도 얌전해질거라 생각하고 있지 않겠어요?

 정말 실례네요. 저는 어디에 가더라도 변하지 않을건데.


"...그래서 말이야, 이 나잇대엔 무리하게 다이어트하는 애들이 많으니까, 자주 체중을 재보는데 엄청 말라있는거야."


 조금 전에 이야기하던 주제였습니다.


"어머나, 거식증인가요?"

"아니, 먹은걸 매일매일 기록하라고 말해놨으니까 그런건 아니야"


 그러고보니 건강 노트 같은걸 써서, 무엇을 먹었는지 학교에 제출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역시 여학교. 먹는 것까지 관리하고 있으니, 부모들도 안심하고 있을 수 있다는 거겠죠.


"그렇다면 구토?"

"그런 흔적도 없어.... 식욕이 아예 없다고만 말해, 그러니 다른 이유일거야"


 그렇게 말하며, 30대 전반의 양호교사는 미간을 강하게 짚었습니다.


"덕분에 병상이 꽉 차서 야단법석, 밤낮 가릴거 없이 지칠정도야. 가슴 좀 빌릴게..."

"후후, 저라도 괜찮으시다면"


 저, 연상의 여성에게 호감을 사기 쉽나봐요.

 왜 그런걸까요?

 여고생이라서?


"이름, 불러줘...듣고 싶어졌어..."


 후훗. 금단의 과실이란건, 무의식중에 손을 뻗게 되는건가 봐요.


"뭔가...뒤에서 이상한 약물이라도 돌고있는게 아닐까, 라고..."


 그런데 참, 제가 생각하기에도 얼마나 편리한 목소리인지.


"....헤에"


 지금까지 다른 누군가와 키워왔을 시간도 관계 없이


"그건 정말 큰일이네요"


 간단하게 마음을 열어주니까요.



 보건실을 나간 뒤, 저는 교사 근처를 산책 했습니다.

 한손엔 카메라를 든 채로, 조부가 취미로 모으고 있는걸 전학 기념으로 받아 왔답니다. 분명 라이카 M3 라는 제품이라고 들었는데, 콜렉션 중엔 제일 싼 모양이에요. 낡았지만 제대로 찍히는 군요. 할아버님처럼 노망나서 쓸모 없을거라 생각했었는데, 후훗.

 

 그 골동품으로, 저는 촬영합니다.

 학원 곳곳을. 작은 비품까지.

 

"흐흐흐흥, 흐흥... 흐흐흐흥, 흐흥.... 흐흐흐흥, 흐흥..... 음~♬"


 아아, 따분해 

 따분해, 따분해

 너무 따분해서 죽을 것 같아.


"언니이!!"


 그 목소리를 들은 순간, 저는 억지로 미소를 만들었습니다.

 뒤돌아보니, 야마기시 양이 달려왔습니다.


"카메라 정말 들고 다니셨네요. 모두와 이야기하고 있었거든요"

"어머나, 정말이요?"

"누군가를 찍고 계시는 걸까? 누가 먼저 언니에게 찍힐 수 있을까? 라고요! 그러면 멋진 추억이 될테니까요"


 그건 정말 영광이네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사람은 찍지 않는답니다.


"아직 전학온지 얼마 안됐으니, 이런식으로 길을 기억하고 있었어요."

"그러셨군요, 정말 아쉽네요..."


 야마기시 양은 그러더니, 기세좋게 손바닥을 맞대었습니다.


"그거에요! 그럼 이 야마기시 히메루, 교사를 안내해 드리겠어요!"


 우와, 민폐.


"괜찮답니다, 스스로 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말하지 마시고! 저, 키요스미에 오래 있었어요. 샛길부터 고양이의 낮잠 장소까지, 전부 망라하고 있으니까요! 그럼 맡겨만 주시길!"


 당연한것처럼 야마기시 양은 나란히 걷기 시작했습니다.


"제 학우중에, 사과를 잘 못먹겠다고 하는 분이 있는데요. 저건 좀 그렇다란 느낌이라고 하면서"

"어머나"

"그러더니 '저걸 처음 먹은 놈은, 일족 전원 용서 못해" 라고...!"

"세계를 적으로 돌릴것 같네요"

"아하핫!"

"속설에 의하면 사과는 지혜의 열매인 모양입니다만"

"엥!?"


 역시 자연스럽게 시선이 모이기 시작했네요.

 촬영은 나중에 하는게 나을지도 모르겠네요.


 야하기 키요스미 학원은 넓지만 길은 좁아서, 마치 미로 같습니다. 안뜰의 일부분은 산울타리가 쭉 이어져 있어 시야가 열렸다 닫혔다 한답니다.

 여길 다 파악하려면 확실히 시간이 걸리겠네요.


"저기, 언니!"

"네?"

"저길 봐 주세요!"


 야마기시 양은 큰 목소리로, 먼 곳을 가르켰습니다.


"여긴 '한숨 다리' 에요. 저기 옛날 예배당이 보이죠? 지금은 쓰지않는 건물이지만, 옛날에 사랑을 하던 소녀가 연모하던 상대를 바라보면서 한숨을 쉬었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해요!"

 

 역시 운동을 하면 시력도 좋아지나 보네요.

 흘끗 한번 쳐다보고나서, 저는 말했습니다.


"어떤건가요?"

"봐요, 제일 눈에 띄고 있자나요"

"제겐 어느것도 대단하게 보이네요"

"그! 제가 누브라일까 했었을때 속옷 색이랑 같아요!"

"아아, 저 하얀 건물이군요"


 적당히 말을 맞춰서 대답했습니다.


"어, 틀린데요"


 저는 얼어 붙었습니다.

 아니겠지?


"저 그때는 보라색에 검은 레이스가 들어간 브라를 입었어요...."


 어째서 그런 자극적인 색을 입고다니는거야, 이 후배..?

 이 얼굴이라면 보통 하얀색이자나...


"저도 여기선 어렴풋이지만... 그래도 색이 특이하니까, 보여서, 그..."


 그리고 예배당은 보통 하얗자나...


"....저기, 아니라면 죄송합니다"


 아니겠지


"저번에...프라모델 정리할때도, 조금 이상하네, 라고 생각했었지만..."


 설마, 이런 별거아닌 일로


"혹시, 쥬리아 언니는──"


브라 같은걸로, 내 비밀을 들키다니


"색을, 구별하지 못하시는건가요?"


 그때, 저는 처음으로


"그렇다면 뭐?"


 자신의 목에서 부터, 목소리가 나오는 것을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