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자칼의 날 0-1장

요란하게 울리는 사이렌 소리, 사건 현장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 현장에 테이프를 두르고 증거를 수집 중인 감식반. 뉴 에리두에서 흔히 보는 사건 현장의 모습이었다.


주연의 청의는 타고온 순찰차를 도로변에 주차해놓고 현장으로 들어갔다. 마스크를 낀 감식반 대원들 사이로 사고가 난 차량을 주의깊게 살피는 세스의 모습이 그들의 눈에 들어왔다.


"세스.", 주연의 그를 부르자 세스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세스는 가볍게 목례로 그들을 맞이하며 그녀의 앞으로 달려왔다.


"오셨네요, 대장님. 사고 차량은 바로 저거에요."


세스가 손짓하는 손가락 끝을 바라보니 벽에 들이박힌 차량이 눈에 확 들어왔다. 범퍼 아래에선 연기가 새어나오고 있었고, 앞유리창에는 혈흔이 가득 묻어있었다. 운전수가 어떤 몰골일지는 불보듯 뻔했기에 주연은 고개를 저었다.


"감식반 말로는 기름이 새지는 않아서 폭발하진 않을거라고 하네요."


"누가 타고 있었는지 신원 확인은 됐어?"


"아직요. 타고 있던 건 두 사람인데, 뒤쪽 좌석에 앉아있던 피해자 시신은 수습해서 옮겨놨어요."


"얼굴을 좀 보고 싶어. 시신은 어딨어?"


주연의 말에 세스가 그들을 시신 앞으로 인도했다. 시신은 테이프가 쳐진 현장 가장 구석진 곳으로 옮겨져 있었고, 이미 수습되어 시체 가방 안에 놓여진 상태였다. 주연이 지퍼를 열어 시신의 얼굴을 확인하자, 곧바로 그녀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뒤쪽 사람 상태도 말이 아니지만, 운전석에 앉아있던 사람은 수습을 어떻게 해야할지 감식반도 감을 못 잡겠데요. 지문을 채취할 손가락 하나 제대로 남아있을지도 장담을 못하겠데요."


"...일단 이 사람 얼굴부터 찍어서 정보과에 넘기자. 뭐라도 알아내겠지."


"청의 선배.", 주연의 말에 청의는 자신의 안구 카메라를 확대해 시신의 얼굴을 강조했고, 그대로 촬영하여 치안국 정보과로 전송했다. [파일 전송 완료] 라는 문구가 뜨자, 청의는 주연에게 말한다. "전송 완료야."


"이 사고, 분명 말씀하신 그 EMP 장비 때문에 일어난거죠?"


세스가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자칼과 벨의 관계, 그리고 토끼굴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숨기고 있던 두 사람이지만 EMP 장비 같은 경우에는 이미 다른 사건들로 보고를 해둔 상태였기에 세스가 알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 정황상 그런 것 같네."


"하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아.", 주연의 말을 청의가 이으며 말한다. "지금까지의 사건들은 대부분 금전적인 목표를 노리고 한 절도 행각들이고, 사망자는 아직까진 없었어."


청의의 그 말을 들은 주연은 잠시 생각에 빠진 듯 싶더니, 이윽고 그녀에게 말했다.


"선배가 찾은 서류에서 이 장비들은 개량형이라고 적혀 있었죠?"


"그랬지. 뭔가 짚이는게 있어?"


"만약 절도가 아니라 암살이 목적이었다면요? 그러니까... 이 EMP 장비에 대한 테스트였던거죠. 암살용으로 쓸 수 있는지 실험한 거에요."


"...가능성은 충분하지만, 무작위 대상을 상대로 고급장비를 실험하진 않았을텐데."


"속단하진 말자.", 청의의 말에 주연과 세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되었건 지금은 현장을 수습하고 증거를 채취하는 것이 우선이었기에 그들은 사고 당시 현장에 있었던 시민들을 탐문하고서 현장을 떠났다.


주연과 청의는 타고왔던 순찰차에 다시 몸을 실었는데, 치안국으로 돌아가는 와중에 주연의 휴대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이름을 확인하니 제인이었고, 그녀는 곧바로 스피커폰으로 통화를 연결했다.


"제인, 진척도는 어때?"


"나쁘진 않다고 할 수 있겠네. 토끼굴 사장님이랑 알고있던 해커 한 명이 그 사람을 추적하는데 도움을 주겠데. 그리고 교활한 토끼굴의 친.절.한 사냥개분들이 자칼에 대한 정보를 수집 중이야."


"친절하다는 걸 강조하는 점에서 뭔가 뒤숭숭한데..."


"뭐, 신경쓰지 마. 문제가 되진 않을테니까. 팀장님 쪽은 어때? 뭔가 좀 알아냈어?"


"정보과에 자칼에 대한 정보를 건내주고 기다리는 중이야. 근데 문제가, 오늘 또 EMP 장비를 쓴 걸로 보이는 사건 현장이 또 발생했어. 피해자들은 현장에서 즉사했고."


"즉사?", 제인이 의아한듯 되물었다. "피해자들 중에 부상자는 있었지만 죽은 사람은 없었잖아?"


"맞아. 그래서 이 사건에 대해서도 우리가 알아봐야할 것 같아. 일단 정보과에서 결과를 보내줄 때까지 기다려야하니까, 그동안에는 이 사건에 대한 걸 알아보고 있을게. 운이 좋으면 자칼과 관련된 단서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몰라."


"알겠어. 그럼 그건 팀장님한테 맡길게... 슬슬 가야할 것 같네, 나중에 또 연락줄게."


"제인.", 그녀가 연락을 끊기 전에 청의가 입을 열었다. "토끼굴 아이들을 잘 지켜보고 있어줘. 그 애들은 우리만큼이나 자칼에 깊게 관련되어 있으니까."


"걱정 마. 절대 놓치지 않을테니."


제인이 전화를 끊었고, 그렇게 두 사람이 탄 차량은 루미나 지서로 계속해 달려나갔다.


건물 위에서, 그들의 대화를 감청하는 자칼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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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단지, 6단지의 이웃 동네인 이곳은 최근 살짝 소란스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저번에 그 일대를 주름잡았던 대형 갱단, 이스트 캐슬이 자칼에게 박살났기 때문이었다.


보스였던 아키히로는 간신히 목숨만 부지해 살아남았고, 조직원들 대부분도 괴멸된 상황. 라이벌 갱단 입장에선 최대 적수가 약화되었으니 그 틈을 타서 세력을 확장시키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지만, 그 누구도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그 이유는 당연히 자칼 때문이었다. 라이벌 갱단들은 왜 자칼이 이스트 캐슬을 괴멸시켰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무슨 불화가 있었는지, 아니면 그냥 너무 세력이 커진 꼴이 자칼이 보기에 못마땅했는지 함부로 판단이 불가능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 굳이 자칼의 눈에 띄게 세력을 확장시키려는 바보는 없었다. 이스트 캐슬 잔당들에게는 그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고, 그날 아지트에 없었던 간부들과 남은 세력들, 고용한 용병들을 끌어모아 어찌저찌 조직을 유지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바로 오늘-


자칼과 빌리가 지옥으로 만들어놓았던 그들의 기지에 특별한 손님들이 와 있는 상태였다.


"왜 그렇게 벌벌 떨고 있어?"


'손님' 이 와있는 이스트 캐슬 아지트의 응접실, 고급 브랜드를 흉내낸 듯한 어설픈 소파에 앉아있던 아키히로는 벌벌 떨면서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 원인은 맞은편 소파에 거만하게 앉아있는 니콜이었고, 소파 양 옆으로는 토끼굴 직원들이 자리잡은채 아키히로와 주위의 조직원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들은 금방이라도 무기를 뽑아들 준비가 되어있는 상태였다.


기습에 당해 속수무책이었던 지난번과는 달리 이번에는 니콜이 주도권을 꽉 쥐고있는 상황이었고, 때문인지 니콜은 매우 여유롭게 그가 내어준 고급 커피를 음미하며 얼굴에 미소를 잔뜩 머금었다. 명백히 그를 비웃는 의도가 다분했다.


하지만 아키히로는 분노를 표출하지도, 불편한 기색을 보일 수도 없었다. 그저 두려움에 떨면서 최대한 저제사로 나올 뿐.


"시, 신경쓰지 마시죠, 마담 니콜...! 최, 최근에 조금 신경쇠약에 시달릴 뿐이라서... 아하하...!"


"갱단의 보스가 신경쇠약이라니, 안 어울리게.", 니콜이 말했다. "너희들한테 시달린 사람들은 더 힘들었을텐데."


아키히로의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그녀가 입으로 내뱉는 말 하나하나가 그의 운명을 결정지을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그는 그녀가 자비를 베풀길 바랄 뿐이었다.


그런 아키히로의 속내를 니콜은 알아차렸는지, 크게 웃으면서 그를 안심시키듯 말했다.


"아하하하! 어깨 좀 풀지 그래? 이제 우린 사업 파트너잖아? 너희들이 우리한테 유용한 정보들을 풀어준 덕에, 뒷골목에서 의뢰받기도 쉬어졌어. 지난번에 갱단의 밀수품을 털어서 짭잘하게 수익을 봤고 말이야."


"너희들은 쳐낼 생각은 없으니까 안심해.", 니콜의 말에 아키히로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까지는."


그리고, 이어지는 그 말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마치 안전 벨트도 없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만 같은 느낌. 롤러코스터가 하강할 때마다 느끼는 스릴이 백 배로 돌아오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당연히, 안전벨트 없는 롤러코스터에 타면 목숨을 부지하지 못할 것이었고, 그는 어떻게해서든 자신의 생존을 보장받을 안전벨트를 쥐고있어야 했다. 그리고 그건 바로 눈앞에 있었고 말이다.


"다, 다음에는 더 좋은 정보들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마담...!"


"그래, 좋은 모습이야. 그거면 돼."


니콜은 그렇게 말하며 후릅-, 하고 커피를 한모금 더 마셨다.


"그래서? 자칼의 흔적은 찾았어?"


"저, 저희 애들을 다 풀어서 찾고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마담. 근시일 내로 분명 쓸만한 정보가 들어올 겁니다...!"


"근시일이 언젠데? 오늘 오후? 내일? 아니면 일주일 뒤?"


정확하게 날짜를 말하라는 듯한 니콜의 압박에, 아키히로의 눈 앞에 흐릿해졌다. 그는 반쯤 정신이 나간 듯 초점이 이리저리 흔들리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힘겹게 내뱉었다.


"사, 삼 일내로 반드시 쓸만한 정보를 찾아드리겠습니다! 약속드립니다...!"


"이틀.", 니콜이 말했다. "이틀 내로 찾는게 좋을거야."


"이, 이틀. 알겠습니다."


니콜은 만족스럽다는 듯이 미소지으며 잔에 남아있던 커피를 마저 마시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문쪽으로 걸어가며 자기 직원들에게 "가자." 라고 말하고, 그녀의 뒤를 따라 직원들은 응접실을 떠났다.


빌리는 아지트의 복도를 이리저리 살피듯 바라보며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자칼과 함께 직접 쑥대밭으로 만들었던지라, 다시 들어온 기분이 묘한 듯 보였다.


"우리가 간 사이에 청소를 잘해놓은 것 같아.", 빌리가 말했다. "핏자국이 하나도 안 남았잖아."


"너희들이 벌린 일을 생각하면, 표백제가 얼마나 필요했을지 감이 안 올 정도야."


니콜이 빌리의 말에 맞장구쳤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흐릿하게 기억하던 복도의 모습은 피바다가 따로 없었는데, 지금은 티도 안나게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으니 내심 감탄했던 그녀였다.


"아키히로가 자칼에 대한 걸 제대로 찾을까?", 엔비가 니콜에게 물었다.


"무슨 뜻이야?"


"아키히로가 우리한테 필요한 정보를 바치는 건 자칼의 말 때문이었어. 그런데 자칼은 지금 우리 곁에 없고, 녀석도 그걸 알고 있을텐데 과연 제대로 우리 말에 따라줄까?"


"그 녀석은 잠시 우리랑 떨어져 있을 뿐인지, 우리한테서 눈을 땐 건 아니야. 우리한테 무슨 일이 생겼다고하면 바로 아키히로 저 녀석부터 족치러 올 걸? 놈들도 머리가 있으면 그걸 알거고, 이러나저러나 우리 요구를 들어줄 수 밖에 없을거야."


"쓸만한 정보를 건져야 할텐데 말이지...", 니콜은 그렇게 말하며 직원들과 함께 아지트를 나갔다. 건물 밖에서는 벨과 제인이 벽에 기대에 기다리는 중이었고, 벨은 니콜이 나오는 것을 보자 곧바로 그녀에게 달려갔다.


"니콜, 어떻게 됐어?"


"이틀 내로 쓸만한 걸 건져오겠다곤 하는데...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네."


"뭐야 그게... 애당초, 어디서 이런 사람들이랑 엮인 거야?"


"그런 게 있었어. 별로 좋은 이야기는 아닌데..."


"근데...", 니콜은 그렇게 말하며 벨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제인에게 시선을 보냈다. 그녀는 여전히 벽에 기댄채,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중이었다.


니콜은 그런 그녀를 여러감정을 담아 못마땅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누구한테 거는 거야?"


"조용.", 돌아온 제인의 대답은 짧고 명료했다. 거의 니콜의 말을 무시하거나 끊는 것에 가까워서 니콜의 미간은 절로 찌푸려졌다. 얼마간의 통화소리가 이어지고, 이윽고 제인은 휴대폰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어쩌면 일이 쉽게 풀릴지도 모르겠어."


"대체 뭔데 그런 말을 하는거야? 수수께끼 같은 거 집어치우고 좀 직설적으로 말해봐."


"애용하던 잠입 정보원 중에 하나가 갱단들 움직임이 심상치않아서 주시하고 있었는데, EMP 장비 거래 이야기가 나왔나봐. 혹시몰라 판매자랑 이야기하게 오늘 중으로 자리 좀 마련해 줄 수 있냐고 하니까 될 것 같다고 하던데?"


"뭐야. 그렇게 쉽게 된다고?"


니콜이 어이 없다는 듯이 말하자 제인이 말했다. "언더커버 요원들은 원래 사람 마음을 잘 읽고 아부할 수 있어야 되는 법이야."


"아무튼, 자칼이 EMP 장비를 거래하는 갱단을 숙청하고 있는 건 확실하니까 그쪽이랑 이야기하다가 운이 좋다면 자칼과 접촉할 수 있을지 몰라."


"운이 좋으면... 인가. 자칼이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보내줄 리는 없을 것 같은데."


빌리가 불안하다는 듯이 말하자 엔비가 이었다. "그래도, 자칼을 잡을 수 있는 방법이라면 뭐든 써야하는 순간이니까. 만나서 가서 나쁠 건 없을거야."


"그럼 결정난 거네.", 엔비의 말에 대답한 것은 다름아닌 벨이었다. 그녀는 결연한 눈빛을 짓고 있었고, 제인에게 어디로 가면 되냐고 곧바로 물어보았다. 벨의 적극적인 모습에 니콜은 다소 걱정스런 표정을 지은 반면, 제인은 미소지었다.


"적극적이구나. 오빠를 많이 좋아하나봐."


"오빠를 향한 제 마음은 제인 씨나 주연 씨에게 전혀 뒤지지 않아요. 오빠가 스스로 파멸하게 내버려두진 않을거에요."


"...그래, 그렇게 내버려 둘 순 없지."


"좋아, 이동하자.", 제인은 앞장서서 일행들을 인도하기 시작했다. 교활한 토끼굴의 차량에 탑승한 그들은 도로를 가로질러 7단지를 벗어나 10단지로 향했다.


교활한 토끼굴은 10단지의 상황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3년 전, 자칼과 형사특수팀이 자주 엮었던 그곳. 니콜의 기억 상으로도 3년 전까지는 뉴 에리두 범죄의 온상 중 하나라고 불릴 만큼 치안이 안 좋았던 곳이었다.


마약의 유통과 제조, 다수의 갱단들과 허구한 날 일어나는 시가전은 뉴스에 끊임없이 올라왔었고, 수전노인 니콜도 교활한 토끼굴을 막 만들었을 당시에는 10단지 관련 의뢰에는 손도 대지 않았었다. 너무 리스크가 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제인이 과거의 기억들과 함께 다시 찾은 그곳은, 달라져 있었다.


"...10단지에 들어왔네."


차량 조수석에 앉아있던 제인은 복잡한 눈동자를 지으며 차창 바깥을 바라보았다.


거리에는 다른 단지들과 마찬가지로 거리에서 뛰어노는 아이들과, 그곳에서 평범하게 장사를 하는 가게와 일상을 영위하는 시민들, 창가에 올려둔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 소리로 평화롭기 그지없는 광경만을 연출하고 있었다.


어두운 골목길에서는 양아치 몇 명이 모여서 담배를 피거나 하기도 했지만, 순찰 중인 치안관들에게 들키자 곧바로 혼비백산하여 도망치기 바빴다. 3년 전이었다면 총격전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았을텐데.


이제 그곳은 그녀의 강렬한 기억 속에 남아있던 우범지대가 아니었다. 평화롭고 평범하기 그지 없는 뉴 에리두의 거리 중 하나가 되어 있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이 그녀에게 딱히 새로운 경험은 아니었다. 그녀도 계속해서 10단지에 대한 소식은 접하고 있었기에, 이곳의 변화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었다.


"여기가 3년 전까지만해도 느와르 영화에 나올 법한 거리였다곤 믿기 힘들어..."


운전대를 잡고 있던 빌리가 바깥 풍경을 곁눈질로 살피며 말했다. 그는 위화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제인에게 들었던 10단지는 마굴이나 다름없었는데, 지금은 이렇게나 평화로웠으니 말이다.


그런 빌리의 위화감에 제인이 답해주었다. "흑기사 씨 덕분이지."


"자칼? 자칼이 왜? 그 녀석은 3년전 사건 이후로 산사자파랑 관련된 갱단들 처리하느라 바쁜 거 아니었어?"


"바로 그거야. 산사자파랑 연관이 있는 갱단들 대부분은 10단지에 모여 있었지. 자칼이 그날 이후 하루에 하나씩 이 거리의 터줏대감이었던 갱단들을 씹어먹었고, 한달이 채 되기도 전에 10단지 갱단 대부분이 몰살당했어."


"살해당한 갱단원 수만 천 여명, 19개 조직이 붕괴되고 마약 제조, 밀수, 인신매매 루트가 전부 끊겼지.", 제인의 말에 운전대를 잡고있던 빌리를 비롯한 차량에 타고있던 이들이 모두 전율했다. 한 달만에 천 여명, 3년만에 악명을 얻을 이유로는 충분했다.


"덕분에 10단지에서 뒷세계의 손길이 뚝 끊겼고, 자칼의 존재 때문에 아무도 새로운 범죄조직들은 10단지로 들어올 생각조차 하지 못했지. 그 틈을 타서 치안국과 정부가 나서서 빠르게 정상화를 시킬 수 있던거야."


"...마왕이 모든 짐승들을 먹어치우니, 그곳에는 희망이 싹텄다..."


"그 자가 신의 사도가 아니면 무엇이냐...", 엔비가 어디선가 들은 말을 내뱉었다. 자칼의 영향력은 양지와 음지를 가리지 않고 크게 뻗어있었고, 그의 존재는 억제력이 되어 악의 팽창을 막았다.


때문에, 자칼은 두려움의 대상임과 동시에 일부 취약계층에겐 일종의 메시아와 같은 존재로 받아들여졌다. 무리도 아니었다. 정부나 치안국이 하지 못했던 거리의 질서를 마왕이 바로잡을 수 있게 도운 것이 아닌가.


"마왕이 폭정으로 짐승들을 다스림으로서 평범한 사람들에겐 희망이 싹튼 거지. 아이러니하지?"


제인의 말에 누구도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특히, 벨은 굉장히 복잡한 표정을 지은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런 벨의 모습을 확인한 니콜은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벨. 그 녀석이 한 행동은... 네 탓이 아니야."


"알아...", 벨이 말했다. "하지만... 알았더라면. 무언가 말해줄 수 있었더라면... 뭔가 달라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과거를 다시 붙잡을 수 없어.", 벨의 말에 제인이 나름의 위로를 담아 말했다. "그렇지만 현재를 통해, 미래를 구원할 수 있을지 모르지. 그게 지금 우리가 해야될 일이고."


"강한 척하고 있으라는 말은 하지 않을게, 시누이 양. 하지만, 과거에 연연하고 있지는 마. 널 죽일 뿐이니까."


"...말씀은 고마운데요. 자연스럽게 시누이라고 부르진 말아줄래요?"


"아, 미안해. 시누이 될 아가씨."


"...너 말이야."


니콜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제인을 째려보았다. 엔비는 계속되는 니콜과 제인의 신경전에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고, 벨도 제인을 뚱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빌리는 옆에서 오가는 신경전의 불꽃이 신경쓰여서 괜시리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차 안에 자리가 안 남아서 다행이다냐."


그런 치열한 여자의 싸움에서 유일하게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은 차에 자리가 남지 않아 차 지붕 위에 올라가 있던 네코마타 한 명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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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운전길은 차가 11단지에 들어서서야 겨우 끝날 수 있었다. 차를 골목 안에 주차해두고 나온 일행은 제인이 말한 정보원과의 만남 장소로 향했다.


그곳은 다름아닌 연식이 꽤 되어보이는 아파트 하나. 창가 사이로는 담배연기인지 아니면 더 독한 무언가의 연기인지 모를 탁한 구름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제인은 눈을 한번 찡그렸고, 다른 이들도 다소 불안한 눈치였다.


"...빨리 들어가자. 시선 끌면 귀찮아질테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돌아갈 생각은 없었다.


제인이 휴대폰을 들어 정보원이 기다리고 있는 방의 위치를 확인하고, 앞장 서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벨이 그 뒤를 따르고 니콜이 그녀의 뒤를 봐주며 다른 이들과 함께 건물로 들어갔다.


건물을 들어선 직후, 입구 근처 의자에 앉아있던 민소매 차림의 떡대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의 앞을 막았다.


"어이, 뭐야 니들? 여긴 일반인들 올 곳이 아니야."


"난 여기 거래 진행자랑 너희들 보스랑 이야기 나누러 온 거야. 내 이름을 들었을텐데?"


"하? 어디서 야가리를 팔고 있어. 누가 온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다고."


"오 그래? 그럼 우린 돌아가 볼테니까 너희 보스한테 말해둘게. 그쪽 문지기가 막아서 아쉽게도 우리 거래는 끝내야 될 것 같다고 말이야."


"참 유감이네, 가자.", 문지기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청산유수처럼 말을 뱉어낸 제인은 일행을 데리고 건물을 나가려고 했다. 그 모습을 본 떡대의 문지기는 당황하면서 그녀의 앞길을 막으며 말했다.


"아, 알겠다고! 연락해서 알아보면 될 거 아니야...!"


그 자는 휴대폰을 꺼내 연락을 걸기 시작했고, 이윽고 약간 대화가 오고가더니 찜찜한 눈빛으로 제인을 향해 말했다. "들어가란다.", 제인은 날카로운 미소를 지으며 건물 안으로 향했다.


그렇게 건물로 들어서서 복도를 조금 걸었을 무렵 벨은 기침을 내뱉었다. 다름아닌 복도를 꽉 매운 담배 냄새 때문이었다. 그녀는 연신 기침을 하면서 손을 휘저었고, 그런 벨을 보며 제인이 말했다.


"담배피는 오빠를 곁에 두면서 별로 익숙하지 않은 모습이네?"


"콜록콜록...! 오빠는 집에 담배냄새 날까봐 환기도 자주 시키고, 창가나 밖에서 핀다고요!"


"근데 여긴- 콜록콜록-!", 짙은 담배 연기에 말하는 것도 힘들어보이는 벨. 눈가에서는 눈물마저 그렁거리고 있으니, 어지간히 담배 연기가 독하게 배여있던 것은 틀림 없었다.


비단 벨 뿐만 아니라, 니콜과 엔비도 복도를 가든 메운 연기에 인상을 찌푸렸고, 후각이 예민했던 네코마타는 제 손으로 코를 집어 틀어막았으며, 빌리는 아예 후각 센서를 꺼버렸다.


제인도 별로 이런 상태가 좋지는 않았기에,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좋아하는 담배 냄새라고 한다면 싸구려 언럭키 스트라이크 정도였고, 그마저도 한 사람이 폈을 때 그의 몸에 배인 냄새만을 좋아했다.


'그러니까, 이런 거지굴에서 나는 냄새는 질색이라고...'


"오래 있어서 좋을 거 없겠네. 빨리 이야기 나누고 가자.", 제인은 일행과 함께 복도를 걸으며 저번에 만난 정보원을 만나기 위해 돌아다녔다. 발걸음을 옮기는 중에 주변의 양아치들이 사나운 눈으로 그들을 노려봤지만 해코지를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벨은 그런 그들의 눈빛이 부담스럽긴 마찬가지였고, 니콜과 토끼굴의 직원들은 그런 벨의 곁에 꼭 붙어 그녀를 호위했다. 그렇게 복도를 걷던 그들은 이윽고, 제인이 말한 정보원이라는 사람을 복도 한편의 방에서 만날 수 있었다.


"오옷, 제인 누님!", 정보원은 방문 앞 벽에 기대어 있다가 그녀를 보자 살갑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제인이 일행과 함께 그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오랜만이야, 스케어크로우. 판매자는 안에 있어?"


"네. 보스랑 같이 이야기 나누시는 중입니다. 근데..."


"이 사람들은 누굽니까?", 스케어크로우라 불린 정보원이 일행을 바라보며 의아하게 묻자 제인은 그저, "내 조수들이라고 생각해두면 돼.", 라고 답할 뿐이었다.


당연히 니콜은 반발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제인은 그들에게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으라는 말을 남긴 채 방 안으로 정보원과 함께 들어갔다.


"보스, 여기 이 분이 저번에 말씀하신 제인 도입니다."


스케어크로우는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 소파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조직의 보스에게 다가가 제인을 소개시켰다. 그러자 보스는 꽤나 반가워하는 기색으로 제인을 맞이했다


"제인 양! 만나서 반갑소. 우리 부하가 그러길, 당신의 수완이 아주 좋아 큰 일을 도모하는데는 당신만한 사람이 없다고 하더군. 둘이서는 누나 동생하며 지낸다지?"


"저희 동생을 꽤나 신뢰하시는 것 같네요.", 제인의 말에 보스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


"말할 필요가 뭐 있겠나. 저번 거래도 이 친구 덕분에 성공했는데. 거둬준 은혜로 이렇게나 돈을 끌어다주면 나도 믿어줘야지 않겠나?"


제인은 속으로 그를 비웃었다. 이토록 강한 신뢰를 보이는 걸 보면 스케어크로우가 제대로 그의 곁에서 일을 처리한 것 같았다. 이 상황에선 본인과 스케어크로우가 본인들 뒷통수를 치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하겠지.


"그럼 긴 말이 필요 없을 것 같네요. 제가 갑작스레 이 자리를 마련하게 된 이유를 아시나요?"


"부하한테서 들었네. EMP 장비 때문이라지? 마침 여기 이 선생께서 아주 쓸만한 물건을 가지고 계시네."


보스는 그리 말하며 맞은 편에 앉아있던 안경을 쓴 말끔한 차림의 판매자를 가르켰다. 그는 보스의 손짓에 고개를 꾸벅 숙이며 "감사합니다.", 라며 정중히 대답했다.


하지만 그런 깔끔하고 정중한 모습 너머, 그 눈빛에 더러운 욕망이 이글거리고 있다는 것을 제인은 알고 있었다. EMP 장비를 최대한 비싸게 팔아먹을 생각만이 가득하겠지.


"그럼 이야기가 빠르겠네요. 마침 저도 새로운 지하 유통망을 개척하는 중인지라, 고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새로운 제품이 필요해서요. 그런데 마침 요즘에 잘 나가는 EMP 장비가 있다고 들어, 그걸 구하러 온 겁니다."


"오호, 제대로 찾아오셨군요.", 판매자는 쓰고있던 안경을 새로 고치며 미소지었다. 새로운 호구를 찾아내어 기쁘다는 것이 훤히 보이는 미소였다


"소문으로 어디까지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희 제품은 주머니에 넣을 정도로 소형화를 성공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준수한 성능을 냅니다. 다소 사정거리가 짧긴 하지만, 거리 내에선 확실한 성능을 보장하죠."


"말로는 뭘 못하겠어요.", 우쭐하는 판매자를 향해 제인이 떠보듯 말했다. "그런 장비는 직접 보지 않고서는 쉽사리 성능을 믿을 수 없는 법이죠."


EMP 장비가 제인이 생각하는, 그리고 자칼이 쫓고있는 그 제품과 일치하는지 먼저 확인이 필요했다. 운 나쁘게 이 거래가 사기극이라든지, 아니면 아예 다른 제품이라면 맥이 빠질테니까.


판매자는 그런 제인의 대답또한 예상했는지, 별 반응 없이 소파 옆에 두고있던 케이스 하나를 들어 테이블에 올려두었다.


"걱정 마시죠. 저도 장사 한 두번 해본 건 아니니까."


"여기, 이겁니다.", 판매자가 내민 물건은 작은 직사각형 모양의 리모컨 같은 것이었다. 확실히 주머니에 넣어서 숨길 수 있을 만큼 작은 크기. 하지만 그것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몰랐다.


"그냥 보여주기만 할 생각은 아니겠죠?"


"훗."


남자가 장비를 들어 버튼을 누르자, 방안의 전등이 심하게 깜빡거리기 시작하더니, 창문 바깥에서 벽에 무언가 묵직한 것이 들이박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인이 바깥을 살피자, 건물 근처에 주차되어 있던 갱단의 차량에 벽을 향해 힘껏 들이박은 모습이 보였다. 이후 그녀가 자신의 휴대폰을 확인하자, 벨의 휴대폰이 그랬던 것처럼 오작동을 일으키며 화면이 깜빡거리고 있었다.


이 물건은, 확실히 그녀가 찾던 그것이 맞았다.


그리고 이걸 그냥 주머니 속에 손이랑 같이 넣어두고 있다가 버튼만 누르기만 하면 작동되어, 주변의 전자기기를 망가트릴 것이다. 비싼 화물을 운송하는 트럭의 문부터, 어쩌면 은행의 굵은 금고문까지.


자칼과 형사특수팀의 과거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제쳐두더라도, 이것은 위험한 무기였다.


"보시다싶이 작지만, 위력은 확실하죠. 만족하십니까?"


"브라보!", 보스는 감탄하며 손박수를 쳤다. 제인도 속내를 드러내지 않게 무덤덤하게 웃는 표정을 지으며, 가볍게 박수했다. 그 모습에 판매자의 얼굴이 기고만장해지고, 마침내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했던 주제를 꺼낸다.


"자, 시연을 보여드렸으니 이제 가격에 대해서 말씀을-"


판매자가 말을 끝내기 전에 한번 더 벽에 무언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판매자는 소리가 들리자 곧바로 "조금 과했던 것 같군요, 실례합니다.", 라고 말하지만 제인은 무언가 위화감을 느꼈다. 방금 그 소리는 EMP 장비 때문이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연이어 들리는 총성.


그제서야, 방안의 이들은 사태를 파악한다.


"뭐야 씨발-"


그때 보스의 전화로 다급하게 전화가 걸려왔다. 보스가 이름을 확인하고 곧바로 받으며 외쳤다.


"어이, 무슨 일이야!?"


"습격입니다! 리자드맨 갱단이 습격했어요-!!!"


'라이벌 갱단의 습격? 정말 타이밍도 안좋네...'


제인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하필이면 지금 타이밍에 갱단이 습격한다니. 다른 때 같았다면 이들을 손절하고 곧바로 떠난 뒤에 서로 자멸하는 꼴을 지켜봤을테지만, 제인과 일행에겐 지금 눈 앞의 판매자가 필요했다.


썩 상쾌한 기분은 아니지만, 눈 앞의 쓰레기들을 도와줄 수 밖에.


"제인 누님, 위험해지기 전에 어서-"


"아니. 일은 끝내고 가야지."


"거래를 끝내기 전까진 못 가,", 제인은 소매 아래서 나이프를 꺼내 손잡이 고리에 손가락을 걸어 회전시켰다. 그러면서 바깥으로 나가 교활한 토끼굴을 다시 바라보았는데, 그들은 이미 사태를 파악하고 싸울 준비를 끝낸 상태였다.


"다들 이런 상황이 익숙해 보여서 다행이네. 발목 잡힐 일은 없겠어."


"시끄러워.", 니콜이 까칠하게 제인의 말에 대꾸했다. "그것도 벨을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 해."


"스케어크로우, 이 아가씨를 안전한 곳에 모셔둬. 귀하신 손님이니까 정중하게 모셔."


"네. 자, 아가씨는 이쪽으로."


벨은 스케어크로우를 따라 이동하고, 니콜과 일행을 향해 "다들 조심해!", 라며 외쳤다. 이윽고 그들은 계단을 내려가서 1층 복도로 향하니, 그곳은 이미 전투가 한창이었다.


"씨발?! 저 새끼들 어디서 저런 화력을 얻은거야!?"


"머리 내밀지 마, 총 맞아!"


"아아아아악-!!?!? 씨발, 내, 내 손가락이...!?!!?"


일행은 자연스럽게 산개해 벽 뒤에 몸을 숨겨 습격한 라이벌 갱단의 무장을 살폈다. 돌격 소총과 방탄복 등으로 무장한 모습, 그것도 한 놈도 아니고 습격대 전원이 그렇게 무장한 상태였다.


마치 3년 전, 바이런 국장이 탄 수송행렬을 노리던 습격대와 비슷한 상황. 제인은 자연스레 그런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었다.


"저 녀석들 머릿수는 얼마나 되지?", 빌리가 벽 뒤에 몸을 숨긴 채 자신의 '아가씨들' 을 꺼내 쥔 상태로 말했다. 그러자 엔비가 "스무 명 정도 되는 것 같아.", 라고 답해준다.


"그렇게 많은 수는 아니네. 문제는 이 위치인데..."


니콜의 말의 요지를 제인은 곧바로 알아차렸다. 지금 이 복도에 있는 이들은 명백히 수세에 선 상황. 퍼묻는 납탄 세례에 감히 공격을 시도할 수가 없어, 머리 하나 내미는 것도 힘들 지경이었다.


그들이 공세로 나가기 위해선 강행돌파를 하든, 우회를 하든 위치를 바꿔야만 했다. 제인은 곧바로 주변을 살폈다. 그러자 복도 한 구석진 곳에 사람이 들어갈 만한 환풍구 하나가 엿보였다.


"이쪽이야. 저 환풍구로 나갈 수 있을 것 같네.", 제인의 말에 니콜이 제인의 뒤를 따라가며 말했다. "네코마타, 이리 와!"


"빌리, 엔비, 너희 둘은 여기서 대기하고 있다가 적들의 화망에 구멍이 생기면 바로 돌파해서 정문에서 합류해! 나랑 네코마타는 우회해서 저 녀석들 측면을 노릴게!"


"조심해, 니콜!"


"네코마타, 니콜 대장 뒤를 잘 봐줘!"


"걱정하지 말라냥! 너희들도 다치면 안돼!"


제인이 환풍구 뚜껑을 따서 안으로 들어가자, 니콜과 네코마타가 그 뒤를 따랐다. 갱단들은 그 사실을 모른채 정문으로 하나 둘 기어들어와 복도를 향해 끝 없이 화망을 형성하는 중이었다.


"총열이 녹아버릴 정도로 쏟아부어! 여길, 여길 반드시 쓸어버려야 해!"


습격대의 대장으로 보이는 이가 초조한 모습으로 외쳤다. 그들은 건물에 인원들을 섬멸하는 것을 목표로 둔 듯, 끝없이 몰아붙이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력 대부분이 정문에 집중된 탓에, 필연적으로 측면에 틈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


제인과 두 명이 환풍구를 통해 건물 옆으로 빠져나오자, 그들은 곧바로 벽에 붙어 이동했다. 제인이 앞장서서 모퉁이 너머를 확인하자 정문으로 들이닥치는 중인 습격대의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제인이 말했다.


"산개하자. 토끼굴 사장님이랑 거기 고양이 소녀는 정문 반대쪽으로 빠져서 위치를 잡고 있어. 내가 신호하면 일제히 공격해서 포위하는 거야."


"멋대로 명령하지 마! 여기 사장은 나고, 이 애들은 내 직원들이야!"


니콜의 말에 제인은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니콜은 제인의 말을 순순히 따르는 것이 싫었던 모양이다. 제인도 별로 니콜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은 매한가지였기에, 그녀는 곧바로 신랄하게 받아쳐냈다.


"뭘 그렇게 흥분하는 거야? 누가보면 내가 흑기사 씨랑 먼저 섹스라도 해서 열폭하는 걸로 보이겠어. 아니면 뭐야? 자기가 흑기사 씨의 애인이라고 생각하기라도 하는 거야?"


"흥! 설령 너랑 그 녀석이 섹스같은 걸 했다고 해도 그 녀석은 분명 만족하지 못했을 걸? 내가 마음에 안 드는 건 갑자게 나타난 네가 대장이라도 된 냥 우리 애들한테 명령질하는 거야!"


그러나 이번엔 니콜도 호락호락하게 당하지 않았고, 그녀는 자신의 케이스 가방을 펼쳐 캐논포로 변환시키면서 말했다.


"그런 건 사양이니까, 난 내 방식대로 가겠어-!"


"잠깐-"


"네코마타, 가자-!", 제인이 말리기도 전에 니콜이 네코마타와 함께 뛰쳐나간다. 네코마타가 단검을 들자, 니콜의 캐논포가 거대한 에테르 에너지를 정문에 집중된 습격대를 노리며 발사되었다.


그들이 포성을 들었을 때 이미 에너지는 그들 사이에 착탄하여 폭발했고, 자욱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연기 안으로 콜록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네코마타가 단검을 빼낸 채 연기 안으로 달려나가, 날렵한 몸놀림으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갱단원들을 베어넘겨 제압했다.


이윽고 복도 너머에서 빌리와 엔비가 뛰쳐나와 합류했다. 빌리의 두 리볼버가 불꽃을 뿜고, 엔비의 칼날이 은빛 섬광을 그리며 재빠르게 휘둘러졌다. 방탄복과 돌격소총으로 무장했음에도, 갱단원들은 교활한 토끼굴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시야를 가리는 자욱한 연기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서로의 등을 바주며, 자연스럽고 유동적으로 움직였다. 연기가 거의 걷히고 나자 습격대 대부분은 쓰러져 있었고, 아직 멀쩡하게 서 있던 이들도 떨면서 전의를 상실한 상태였다.


제인이 나설 차례는 없었다. 손 놓고 구경하고 있어도 그들은 알아서 호흡을 척척 맞춰 상황을 통제했다. 그 모습을 본 제인은 속으로 나름 감탄했다. 비록 뒷골목 흥신소긴 했지만, 소문대로 나름 잔뼈굵은 이들이라는 게 사실인 것 같았다.


니콜은 가방을 접어 다시 평상시의 케이스 모드로 전환하고, 전의를 상실한 채 주저앉아 있는 습격대 중 하나에게 향했다. 혹여라도 반항할까, 빌리와 엔비가 양쪽에서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대낮부터 열심히 일했지만, 이걸 어쩌나? 우리가 있는 탓에 헛수고 한 셈이됐네?"


"으으... 으으윽...!"


니콜은 습격대원을 조롱하며 미소지었지만, 이윽고 뭔가 이상한 점을 느꼈다. 습격대원의 눈은 불안정하게 떨리고 있었고, 그 얼굴엔 공포가 한가득 스며들어 있었다. 단순하게 전투의 공포라던가, 살아남은 것에 대한 안도감 따위가 아니었다.


그저, 순수한 공포만이 가득했다. 마치 이 앞에 일어날 일을 안다는 듯이.


"시, 실패했어...", 떨림 가득한 목소리가 공기 중에 퍼졌다. 그 모습에 양옆에서 그를 주시하던 빌리와 엔비도 이상함을 느낀다. 니콜이 당황하며 그에게 되물었다.


"도대체 무슨 말을-"


"시, 실패했어!"


"실패했어, 실패했어, 실패했어...!", 그 남자는 머리를 부여잡은 채로 패닉에 빠졌다. 떨리는 눈동자는 이제 희미안 초점조차 사라지고, 이마에선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며, 표정에는 절망이 걸린다.


"그, 그 자가 우릴 내버려두지 않을거야...! 우리, 우리에게 상상도 못할 고통을 안긴 채 죽게 내버려둘거야...!"


"그, 그렇게 될 순 없어!", 남자가 품 속에서 나이프를 꺼낸다. 니콜이 당황하고, 곧바로 빌리와 엔비가 니콜을 지키려 나서려던 순간, 그의 손에 쥔 칼날이 흥건한 피를 머금었다.


그 스스로 쥔 칼날로 자신의 목을 찔렀기 때문이다.


"무슨...!?"


니콜이 경악하고, 습격대원은 그대로 쓰러져 기괴한 소리를 낸 채 경련한다. 그 기괴한 풍경에 니콜 뿐만 아니라 주변의 다른 일행들도 굳어있으면, 이윽고 목숨이 붙어있던 다른 습격대원들도 앞다투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칼날로 배를 가르고, 머리에 총구를 겨눠 방아쇠를 당긴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살아있는 자는 더 이상 없이, 오직 시체만이 가득 쌓여 더 넓고 붉은 웅덩이를 만든다.


"대체, 대체 무슨...!?"


니콜이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제인을 바라보았다. 제인도 당혹스럽긴 매한가지였다. 여러 사건들과 범죄현장을 봐왔지만, 이런 기괴한 풍경은 그녀로서도 처음이었다. 대체 무슨 일인지 감조차 잡을 수 없었다.


그리고-


투타타타타탕-, 하며. 연이은 총성이 울렸다. 건물 안쪽에서 울린 소리였다.


그 소리를 새어보낸 창문을 향해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벨이 있는, 바로 그 층이었다.


"벨-!!!"


니콜은 무슨 생각이 들기도 전에 먼저 몸이 움직였다. 다른 일행들도 마찬가지로 니콜을 곧바로 뒤따라 복도를 지나 상층으로 올라갔다. 제인도 그 상황 속에선 다른 무엇보다도 벨의 안전을 우선시했다.


니콜이 가장 먼저 총성이 들린 층에 도착하자, 돌격소총을 든 다른 습격대원이 보였다. 그가 총구를 겨눈 채 방아쇠를 당기려 하지만, 곧바로 니콜이 케이스 가방을 휘둘러 그의 측두부를 강타했다.


케이스의 모서리 모양 그대로 자국이 찍혀 쓰러지는 습격대원, 다른 습격대원들이 서둘러 복도로 나왔지만 니콜은 그보다도 빨리 움직였다.


자신의 케이스를 캐논포로 변환할 생각따윈 하지 않았다. 거기까지 이성을 유지할 수 없는 것이 분명 그 이유였다. 그녀는 그저 1초라도 빨리 앞을 막는 이 쓰레기들을 치우고 벨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그녀가 휘두르는 매서운 케이스 가방에 습격대원들은 별다른 공격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하나 둘 쓰러진다. 그렇게 쓰러진 습격대원들을 뒤로하고 그녀가 벨을 찾아 여러 방문을 열어 살핀다.


"벨! 벨, 대답해!"


벨이 없다는 그곳에 누구의 시체가 있던 신경쓰지 않고 곧바로 다른 방으로 달려간다. 그녀는 그저 절박하게 방문을 열어젖히고, 벨을 찾는다. 그러나 들어간 방안에 벨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계속 초조해지기만 한다.


그리고, 그녀가 마지막 방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벨-"


그녀는 보았다.


피투성이가 된 벨의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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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청어 = 논점일탈의 오류의 관용 표현이자, 문학에서 독자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뿌리는 가짜 복선이나 상황. 훈제 청어라고도 부른다.


작가가 돌아왔습니다. 일하고 집에 돌아와서 조금씩 쓰느라고 시간이 오래 걸렸네요 ㅎㅎ;; 부디 이번 화가 독자님들의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다는 생각 뿐입니다.


일행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앞으로 어떻게 이야기가 진행될지 기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