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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3臨時築城団長 猪島、加徳島、外洋浦調査の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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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내용 -외양포를 중심으로-

1. 개요 [편집]

제3임시축성장 저도, 가덕도, 외양포조사의 건
제3임시축성단장 松井庫之助가 1904년 8월 27일 러일전쟁 당시 작성한 문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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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내용 -외양포를 중심으로- [편집]

築三発第四五号 大本営陸謀臨第二一三九号第一 九月四日 明治三十七年八月二十七日 鎮海湾口猪島ニ於テ 第三臨時築城団長 松井庫之助 大本営参謀次長 長岡外史殿 目下防御工事ヲ実施シツツアル猪島ニハ韓人家約五十戸又加治島外洋浦ニハ約七十戸アリテ(人家ハ矮陋不潔固ヨリ宿営ニ適サザルモ)人民多ク農作ヲ業トシ平地及山腹ハ概ネ耕転セル田地及畑地ヨリ成ル故ニ大口径砲台ノ任置及庁舎倉庫等ノ敷地ハ勢ヒ殆ト耕作地ニ選定セサルヲ得ス然ルニ陸軍仮根拠地予備隊司令官餅原少将ノ直話ニ拠レハ此クノ如キ耕作地ニ工事ヲ施スニ当リ予メ相当ノ代価ヲ以テ土地ヲ収容シ置カサルトキハ人民ハ敢テテイコウヲ試ムルノ勇気ハナキモ或ハ鍬ニ縋リ或ハ鋤ニ纏ヒ嘆願愁訴其煩言フヘカラザルモノアリ其レ一タビ其畑地ヲ失ヘハ忽チ生活ノ途ヲ失フト思惟スルヲ

내용은 4페이지며 공문서라 가타카나로 써져있다.
해석은 파파고로 해석한거라 정확하지 않음
현재 방어공사 실시하고 있는 저도에서는 한인 약 50호가 있고 가지섬(加治島) 외양포에는 한인 약 70호가 있다.(인가는 일본의 원래작고더러운(矮陋不潔)보다 숙영에 적합하지 않더라도)인민은 대부분 농사를 업으로 하며 평지와 산허리는 대체로 경작할 수 있는 전지와 밭으로 이루어지므로 대구경 포대의 임치 및 청사 창고 등의 부지는 아주 경작지로 선정될 수밖에 없거니와 육군 임시 근거지 예비대 사령관 모치하라 소장의 직화에 의하면 이와 같은 경작지에 공사를 실시함에 있어 미리 상당한 대가를 치르고 토지를 수용해 둘 때에는 인민은 감히 저항을 시도해볼 용기가 없거나 괭이에 매달리거나 쟁기에 매달리는 탄원 수소 그 번언이 없다.

먼저 방어공사를 실시하고 있다 하며 가지섬 외양포에 한인 약 70호가 있다는 데에서 가덕도가 가지섬으로 쓰여있다. 가덕도가 가지섬으로도 불렸거나 잘못쓰여진 것이다. 외양포에 약 70호의 인구가 있는데 집들이 矮陋不潔보다 숙영에 적합하지 않다는 내용이 있다. 矮陋不潔가 먼지는 몰라도 그당시 외양포의 민가가 좋지는 않았던 것 같다. 외양포 사람들은 대부분 농사를 하며 평지와 산허리가 경작할 수 있게 되어 있다 한다. 어업에 대한 내용은 없는데 농지가 산허리까지 있었거나 농지를 만들 수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또한 이러한 경작지를 대구경포대와 임시창고 등의 부지로 선정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경작지에 공사를 실시함에 있어 미리 상당한 대가를 치르고 토지를 수용해 둘 때에는 인민은 감히 저항을 시도해볼 용기가 없거나 괭이에 매달리거나 쟁기에 매달리는 탄원 수소 그 번언이 없다고 되어있다. 이것은 아마 원래 살던 외양포민이 내쫓기는 것에 괭이나 쟁기로 뭔가 저항을 한다는 표현으로 보이고 그러니 미리 상당한 대가를 치루라는 말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