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인도

최근 수정 시각:

<भारत गणराज्य>
India
인도
이름
인도 공화국
수도
뉴델리
클레이
3,287,263km²
관계
추가 바람
소속
언어
힌디어, 영어

1. 개요2. 역사
2.1. 고대사2.2. 중세사2.3. 근대사2.4. 현대사
3. 지리
3.1. 지도
4. 컨트리볼 만화에서5. 기타6. 색상

1. 개요 [편집]

남아시아에 위치한 2020년 국내총생산 순위 6위의 국가이다.
빈부격차가 심하며 인구수가 중국이랑 맞먹을 정도로 엄청많다.

2. 역사 [편집]

2.1. 고대사 [편집]

고대에는 인더스 문명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아리아인의 침공을 받고 드라비다인의 조상이 된다.

이후 인도에서는 본격적으로 국가가 발생하기 시작하여, 기원전 800년 ~ 600년경부터 '16국 시대'가 펼쳐졌다. 이 시기의 경전은 베다 계통의 문헌(이를 '스루티(shruti)'라고 한다)에서 우파니샤드 등의 '스무르티(smriti, 베다 이외의 후세의 모든 문헌)' 등에 대한 연구로 넘어가는데, 이 시대의 사상은 통일적 질서에 대한 탐구가 두드러진다.

16국 시대는 서서히 소국들이 병합되면서 주도적인 4개 국가의 시대로 넘어가는데, 이 중 갠지스 강 중류에 있는 마가다 왕국이 가장 번성하였다. 기원전 5세기경 마가다 왕국의 난다 왕조가 마침내 인도 통일을 (부분적으로) 완수했으나, 얼마 안 가 붕괴하였다.

한편 이 시기 분열 속에서 브라만교의 지나친 의식 중시에 반발하여 자비와 평등을 역설한 석가모니(고다마 싯다르타)의 불교와 살생 금지, 고행 금지 등의 계율을 강화한 바르다마나의 자이나교가 발생하였다. 이는 당시에 등장한 윤회 사상에 근거한 것으로, 불교와 자이나교, 힌두교는 모두 윤회 사상에 큰 기반을 두어 후의 인도 역사와 문화에 큰 영향을 주었다.

한편 기원전 4세기경 인도는 페르시아를 격파하고 진군해온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공격을 받았는데, 이때 알렉산드로스 군대 내부의 문제로 진군을 멈추고 회군함에 따라 기원전 322년에 세워지는 마우리아 왕조의 시조 찬드라굽타 마우리아가 득세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마우리아 왕조는 셀레우코스 왕조를 몰아내고 아프가니스탄의 상당 부분 및 이란의 일부에까지 진출하기도 했다. 역설적으로 헬레니즘 제국의 침략은 마우리아 왕조를 인도 최초의 (어쩌면 그리고 마지막) 통일 왕조로 만들었다.

마우리아 왕조는 먼치킨인 아소카 왕 때 전성기를 이루었으며, 영국이 인도 제국을 세우기 전까지 남북 인도 전체가 하나의 왕조의 지배하에 들어간 것은 이때가 유일하다. 브라만교 세력의 억제와 통일 제국의 안정을 위해 아소카 왕은 불교 진흥책을 폈으며, 이로 인해 불교의 해상 전파가 이루어졌다.

한편 해상 무역이 기원전 2세기경부터 흔적이 보이는데, 이들이 남긴 문화는 참파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국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고, 고대에는 이슬람교 상인들이 활약을 펼치기 전까지 바다(해상) 무역에서 큰 활약을 했다.

그러나 마우리아 왕조가 아소카 왕 이후 급속히 쇠퇴하면서 인도는 다시 분열 상태에 들어갔다. 이 시대부터 델리 술탄 왕조의 등장과 촐라 왕조의 멸망으로 이슬람 왕국이 본격 등장하는 시기까지를 고전 시대(인도 중왕국, BC 200년대 ~ 1279)라고 부른다.

이 시기 북인도에는 이전부터 인도에 진입했던 스키타이의 일파인 샤카족, 그리스-박트리아 왕국, 인도-파르티아 왕국, 쿠샨 왕조 등이 들어서면서 격변을 맞는다. 한편 남부에는 사타바하나(안드라) 왕조(BC 200년대 ~ AD 200년대)가 세워져 무역으로 번성한다.

쿠샨 왕조(105년경 ~250년경)의 대승 불교는 위진남북조시대의 중국을 거쳐 동아시아 전반으로 확산되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영향을 끼쳤으며, 그리스와 인도의 양식이 결합된 간다라 불상이 유명하다. 한편 남부에서는 간다라 미술과는 다른 양식의 마투라 미술이 등장하였다. 이때의 명군으로는 카니슈카 1세가 유명하다.

이란사산 왕조에게 쿠샨 왕조가 망한 뒤 북인도에는 굽타 왕조(320–550)가 들어섰는데, 이때 브라만교를 기반으로 힌두교가 성립하는 등 인도 고전 문화의 기틀이 섰다. 그리스계 신앙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브라흐마 - 비슈누 - 시바의 3신 신앙이 이때 본격화되었으며, 왕은 힌두교의 화신('라자')으로서 권위를 누렸다.

굽타 왕조는 사무드라 굽타, 찬드라 굽타 2세, 쿠마라 굽타 등으로 이어지며 한 세기 넘는 기간 동안 전성기를 구가했다. 2대 사무드라 굽타는 북인도의 여러 왕국을 정복하여 그 영토를 합병했고 남인도의 여러 왕국을 굴복시켜 영향권에 두었으며, 3대 찬드라 굽타 2세는 사카 왕조를 무너뜨려 북인도의 서부 해안 지대를 확보하는 일련의 군사적 성공을 과시했다. (한편으로는 찬드라 굽타 2세가 지금의 아무 다리아 일대까지 원정했다는 일부의 견해도 있다.) 또한 중국인 여행자 법현이 저술한 불국기의 기록에 의하면 이 당시의 인도는 국민은 평화를 누렸으며 각종 복지 시설이 잘 구비되고 치안이 원활하게 유지되는 안정된 사회였다고 한다.

이전부터 전래되던 마하바라타, 라마야나 등의 전승이 문헌으로 정리되었으며, 칼리다사 등의 시인이 왕성하게 활동하였다. 힌두교의 등장으로 불교는 위축되었으나 학문적 연구와 미술적 발전은 계속되었고, 0의 개념과 십진법을 기반으로 한 아라비아 숫자를 처음으로 만든 것도 이 시기 이 동네의 업적이다. 물론 이것도 중동인들을 거쳐서 넘어가는 바람에 숫자 이름부터 저 모양이 됐지만... 이외에 지전설, 지구 구형설 등의 과학 발전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5세기경 굽타 왕조는 훈족 계통의 유목민족 에프탈과 지속적으로 충돌하면서 약화되었고 결국 이들에 의해 나라가 망하고 만다. 혼란 속에서 바르다나 왕조가 북인도를 한 차례 통일하였으나 순식간에 멸망하고, 인도는 다시 분열 시대에 들어간다. 흔히 굽타왕조의 몰락을 인도 고대사의 끝으로 본다.

2.2. 중세사 [편집]

남인도는 촐라 왕조가 호령한다. 북인도에서는 델리 술탄 왕조가 세워지고 다행히 몽골 제국의 침입을 막는다.

2.3. 근대사 [편집]

무굴지제국은 남안도도 대부분 통치하고, 국교는 이슬람교였다.

2.4. 현대사 [편집]

영국 식민지였다가 간디의 Be폭력 武저항 정책으로 독립했다.
이후 초대 총리는 네루가 되었고, 한동안 네루 일가가 인도를 통치한다.
인디라 간디 총리는 시크교 신자에게 암살되었다.

3. 지리 [편집]

동쪽으로 미얀마방글라데시를 감싸고, 북쪽으로 부탄, 네팔, 중국, 그리고 서쪽으로 파키스탄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3.1. 지도 [편집]

4. 컨트리볼 만화에서 [편집]

5. 기타 [편집]

6. 색상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