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링크 삭제 이동 폴란드 (r161 편집) [오류!] 편집 권한이 부족합니다. login이상의 권한이 필요합니다. 편집기 RAW 편집 미리보기 굵게 기울임 취소선 링크 파일 각주 틀 ====#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시절 #==== 카지미에시 3세가 적자를 남기지 못했기에 폴란드 왕위는 카지미에시 3세의 조카였던 [[헝가리 왕국]] 국왕 러요시 1세가 계승하게 되었는데, 폴란드 귀족들은 헝가리에 주로 머무는 동군연합 상태를 싫어했다. 이 때문에 폴란드 왕위는 러요시 1세가 죽은 1383년 둘째 딸인 야드비가(Jadwiga)가 계승하게 되었다.[* 헝가리 왕위는 야드비가의 언니인 마리어가 계승했다.] 야드비가는 1373년생으로, 즉위 시 10살의 여왕님(...). 이후 1386년에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33살 노총각 요가일라가 --아직도-- 13살인 야드비가와 결혼을 하여 브와디스와프 2세 야기에우워(Władysław II Jagiełło)로 즉위하게 된다. 그리고 리투아니아도 발트 신화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이로써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는 군합국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다. 폴란드-리투아니아 동군연합은 1410년 [[그룬발트 전투]]를 통해 [[독일 기사단국]]을 철저히 박살내버렸다. 초반에 리투아니아 기병대가 독일 기사단을 유인하기 위해 일부러 패주하며 후퇴했고, 그 뒤를 독일 기사단이 따랐다. 여기까진 좋았는데... 숲에 매복했던 폴란드 군대가 리투아니아 군대를 돕기 위해 나타났고, 결국 독일 기사단은 산산조각나며 괴멸당했다. 39,000여 명에 이르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군에 맞서 27,000여 명에 이르는 독일 기사단은 8,000여 명의 전사자와 14,000여 명의 포로라는 엄청난 피해를 내며 묵사발이 났고, 전사자 중에는 독일 기사단장 울리히 폰 융잉엔(Ulrich von Jungingen 1360~1410)도 포함되어 있었다. 불과 1,400여 명만이 [[그단스크]](단치히)로 도망쳐 들어갔을 정도였다. 폴란드-리투아니아는 독일 기사단을 완전히 정복하지는 못했지만 이후 독일 기사단의 명예와 영향력은 땅에 떨어져버렸고 1460년에는 무역의 황금알인 그단스크까지 폴란드에 빼앗겼다. 그리고 1454 ~ 1466년의 13년 전쟁을 통해 완전히 폴란드-리투아니아 동군연합에 복속된다. 변경 사항 요약 약관 동의 문서 편집을 저장하면 당신은 기여한 내용을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4.0 국제으로 배포하고 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 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 문서를 하면 문서의 편집 역사에 (3.144.104.29)가 기록되며 이에 .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