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링크 삭제 이동 폴란드 (r161 편집) [오류!] 편집 권한이 부족합니다. login이상의 권한이 필요합니다. 편집기 RAW 편집 미리보기 굵게 기울임 취소선 링크 파일 각주 틀 ====# [[2차 세계대전]] #==== 폴란드는 1939년에 [[나치 독일|독일]]과 [[소련]]에게 거의 동시에 침공을 받아 분할 점령되었다. 독일 점령 지역에는 총독부가 들어섰으며, 소련 점령 지역은 [[우크라이나 SSR]]과 [[벨라루스 SSR]]에 분할 합병되었다. 전후에도 폴란드에 돌려주지 않고 바르샤바가 국토의 중앙에서 동쪽으로 간 듯한 이유이다. 이후 폴란드는 독일과 소련 양측에 저항했고, 이로 인해 심한 탄압을 받았다. 소련은 폴란드 민족을 말살하기 위해 지식인들과 장교들을 학살하였고, 독일도 폴란드를 무자비하게 탄압하였다. 뒤이어 아우슈비츠로 대표되는 유대인 학살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수도인 바르샤바는 1944년 8월 봉기 때 독일군이 도시 전체를 다 쓸어버려 아무것도 안 남을 정도로 파괴되었다.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폴란드 정부는 파리로 거처를 옮겼다가 독일의 [[프랑스 침공]] 때는 [[프랑스]] 서부의 앙제 시, 그 다음에는 런던으로 옮겨가서 망명정부를 구성하고 소련에 억류된 폴란드인과 망명 폴란드인들을 모아서 자유 폴란드군을 조직해서 연합군과 함께 [[영국]] 상공에서부터 시작해서 [[이탈리아]], [[노르망디]], [[네덜란드]] 등지에서 피터지게 싸웠다. 연합군 내에서 폴란드군이 네다섯번째로 큰 군대였다. 하지만 망명정부는 소련군이 바르샤바를 점령하기 전에 자력으로 탈환코자 무리한 봉기를 시도하여 대패했고, 폴란드 국내군도 큰 피해를 입고 뒤따라온 소련군에게 박해받아야 했다. 폴란드는 2차대전 중 동유럽 전체에서 가장 크고 조직적인 반나치 저항 운동을 펼쳤다. 폴란드의 저항조직 중 하나인 국내군(Armia Krajowa)이 보유한 병력만 40만에 달했고, 1944년 바르샤바 봉기도 일으켰다. 또 폴란드 국내에서 [[폴란드 지하국]](Polskie Państwo Podziemne, 약칭 PPP)이라는 임시 정부를 세워 이들도 적극적으로 나치 독일에 대항했다. 또한 폴란드는 2차대전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국가 중 하나로, 연합국 기준으로 소련과 중국에 이어 사망자가 3번째로 많은 나라다. 여기서 사망자는 민간인과 군인의 사망을 모두 포함한 수치로 전 인구의 20%가 사망했다. 특히 유대계는 열 명 중에서 아홉 명이 학살당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기 전에 연합국에게 토사구팽당해 폴란드 침공 당시 소련이 점령한 동쪽 땅을 바쳐야 했다. 또한 이걸 논의하는데 폴란드 망명정부한테는 초대는커녕 귀띔도 안해줬고 이에 항의하는 망명정부에게 처칠은 '불만이면 언제든지 연합군을 나가도 좋다'고 무시했다. 그래도 소련이 독일의 오데르 강 동부를 폴란드 영토로 주었는데 웬만한 폴란드 도시보다 산업화가 잘 되어 있는게 그나마 위안거리였다. 그러나 이것도 억지로 찾아보면이지, 해당지역을 넘겨받으면서 경제발전이 되지도 않았고 구 독일령 지역은 현재까지도 가난한 지역인데다 동부지역을 빼앗기면서 전후 폴란드는 주기적인 식량난에 시달려야 했다. 게다가 전쟁 초기부터 후반까지 용감하게 싸운 폴란드 입장에서는 독일의 배상이라면 모를까, 본인들 땅 빼앗기는 대신 던져준 거나 다름없다. 변경 사항 요약 약관 동의 문서 편집을 저장하면 당신은 기여한 내용을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4.0 국제으로 배포하고 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 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 문서를 하면 문서의 편집 역사에 (3.129.45.92)가 기록되며 이에 .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