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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드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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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드
Akkad
𒆳𒌵𒆠
아카드 제국의 진격 경로[1]
기원전 2334년 ~ 기원전 2154년

1. 아카드 제국
1.1. 아카드 제국의 시작1.2. 제국의 발전1.3. 제국의 멸망
2. 참고문헌


1. 아카드 제국 [편집]

1.1. 아카드 제국의 시작 [편집]


아카드 제국은 아카드 지역에 수립되었던 고대 제국의 하나이다. 남부 메소포타미아의 충적평원은 남쪽으로는 수메르인의 땅, 넓게 북쪽 아카드(Akkad)에는 아카드인의 땅이 분리되어 있었다. 즉 바빌로니아의 북부를 아카드, 남부를 수메르라고 부르게 된 것이 그 통일국가의 시작이다.

그 전까지 한 도시 또는 왕조가 그들의 성지 니푸르(Nippur)를 거의 모든 기간 장악한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 도시마다 자체적인 지배자를 둠으로써 독립적인 정치적 단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원전 2334년 아카드인 관리였던 새로운 통치자가 자신의 출신 도시에서 권력을 잡고 우루크로 진격하여, 당시 최고의 왕이었던 루갈자기시(Lugalzaggisi)를 끌어내렸으니, 그가 바로 ‘합법적인 통치자’를 뜻하는 이름의 사르곤(Sargon) 대제이다. 그는 놀랍게도, 정원사의 손에서 자란 미천한 신분이었다.

언어학적인 관점에서 그의 이름 첫머리는 ‘왕’을 뜻하는 아카드어 ‘šarru’에서 유래한 것이지만, 후자 것은 의견이 몇 나뉜다. 예컨대 페이건(2015)은 접사 -ken이 붙어 ‘합법적인 통치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았다. Peter(2008) 또한 비슷하게 ‘세우다’ 정도를 뜻하는 -kīnum이 붙은 형태로 보았다. 제임스(2016)에서는 -kinu가 붙어 ‘참된 임금’ 정도의 뜻을 가졌던 것이라고 역주한다.

이외 사르곤과 관련된 유물으로는 그의 모습을 새긴 것으로 추정되는 아카드 통치자의 두상 유물이 존재한다.

고고학자 페이건(2015)에 따르면, 아카드 제국은 2334부터 기원전 2230년까지 존재하였으나 마니쉬투슈(Manishtushu), 사르곤(Sargon) 등 역대 왕의 생몰년을 총합하여 보면 일반적으로 기원전 2154년에 멸망한 것으로 추산된다. 즉, 아카드 제국은 그 역사적 위엄과 비교하면 짧은 역사를 지니고 있던 국가였다.

1.2. 제국의 발전 [편집]

이후 움마의 왕 루갈자기시에게 승리하여 그를 끌어내린 사르곤은 수메르와 아카드 전부를 다스리는 군주가 되었다. 그는 단순히 메소포타미아를 다스리는 것만이 아닌, 북쪽, 동쪽 그리고 서쪽으로 세력을 넓혀 인류 최초의 제국으로 평가받는 아카드 제국을 일으킨 것이다.

사르곤은 수도를 바그다드에서 멀지 않은 아가데(Agade)로 삼았으나, 현재 이 지역의 정확한 위치는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아카드라는 땅이 이름과 그 언어는 바로 이 아가데(Agade; 때로는 아카드로도 기록된다)에서 따온 것임이 분명하다. 사르곤은 아가데의 항구에 멜루하(Meluhha), 마간(Magan), 딜문(Dilmun)에서 온 배를 정박시키게 하였고, 아가데는 먼 국가에서 온 배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의 역사는 수많은 전설로 윤색되어 제대로 된 업적을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반세기로 추정되는 긴 통치기간 동안 일련의 지속적인 군사 행동을 수행함으로써 이웃한 남부 메소포타미아 도시를 지배하였다는 것이다. 예컨대 그는 북서부 지역의 서아시리아 지배자들 또한 곧 자신을 주군으로 받아들였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치세가 점차 끝나갈 무렵, 사르곤은 각지에서 일어나는 반란을 제압해야만 했다. 그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리무쉬(Rimush, 2278~2270 B.C.) 또한 수메르와 아카드, 심지어는 각지의 속주에서 발발하는 수많은 반란들을 진압해야만 했다. 후기 바빌로니아의 문헌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발견된다.
"그의 노년에 모든 땅이 일어나 반기를 들었고, 아카드에서 그를 포위하였다. 그러나 그는 싸우러 나가서 그들을 물리쳤다. 그는 그들을 무너뜨리고 그들의 거대한 군대를 파괴했다."

이후 리무쉬를 이어 그의 형인 마니쉬투슈(Manishtushu)가 그의 자리를 이어받았을 즈음의 기록은 비교적 남아있지 않다.

허나 마니쉬투슈의 아들이자 가장 위대한 사르곤의 후계자로 평가받는 나람-신(Naram-Sin)이 아카드 제국을 통치하였던 37년의 기간은 아카드를 가장 진정한 제국으로 발전하도록 만들었다. 예컨대 그의 이름은 ‘4개 영토의 왕, 우주의 왕’과 같은 광대하고 장엄한 호칭이었다.

그는 주요 도시들을 지배하고 반란의 방지를 위해 아카드인 총독들을 임명하였다. 그리고 그 효과는 성공적이었으며, 나람-신의 치세를 이루는 가장 큰 주축이 되었다. 예컨대 텔 브라크에 있는 여러 기념비적 건물들 중 하나는 대략 10미터 두께의 벽돌 벽으로 보호되어 있는데, 요새 내지 요새화된 행정 중심지일 가능성이 있다.

이를 통하여 정리하건대, 텔 브라크와 북부 메소포타미아의 카부르, 니네베 및 아슈르(Assur)까지 전성기 아카드 제국의 통치 범위였다는 것은 명확하다. 다만 그러한 통치가 과연 타방의 다른 집단체까지 미치게 되었는지는 확인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예컨대 시리아의 에블라에서 발견된 폐허 층위, 터키의 디야르바키르(Diyarbakir) 근처 피르 후세인(Pir Hussein)에 있는 나람-신의 바위 명문은 아카드 군대의 먼 원정을 증명하기는 하지만, 정치적으로도 지배하였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1.3. 제국의 멸망 [편집]

나람-신의 사후 그의 아들 샤르-칼리-샤리(Shar-kali-sharri)는 외부의 공격을 막아냄과 동시에 내부의 반란에 또한 대처해야 했다. 이로 인하여 그의 사망과 함께 아카드는 사실상 무정부 상태에 빠지게 되었고, 제국에 복속되어 있던 수많은 속주 및 도시국가들은 다시 제각기의 모습으로 독립하였다.

결국 아카드 제국은 내분 등으로 제각기 분열하다가, 이란 고원에서 침입하여 온 구티족의 공격으로 그 찬란한 역사를 마감하였다.7 사실상 아카드 제국은 단 1세기 동안만 유지되었던 것이다. 허나 이후 수메르인들은 아카드인과 함께 살아가며, 이후 우르-남무(Ur-Nammu)의 시기에 이르기까지 한동안 구티족의 지배를 받아야 했다.

코링스(Corings)는 오만의 해저 조사 연구를 통해 기원전 2100년경 초기에 시작되어 총 3세기에 걸친 가뭄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였고, 이러한 가뭄이 아카드 제국의 처참한 붕괴 요인 중 하나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기타 고고학적 사료에 의하면, 카부르 지역의 텔 브라크와 텔 모잔(Tell Mozan)과 같은 곳은 아카드 이후에 독자적인 왕국의 중심지로서 계속 번영하였다.

2. 참고문헌 [편집]

브라이언 페이건/크리스토퍼 스카레(2015). “고대 문명의 이해”, 이청규 옮김, 사회평론아카데미.

정수일(2013). “실크로드 사전”, 창비.

제임스 B. 프리처드(2016). “고대 근동 문학 선집”, 주원준 외 옮김, 기독교문서선교회.

초등역사교사모임(2014). “처음 세계사 1 – 인류의 등장과 고대 국가의 성립”, 주니어랜덤.

Peter de Menocal(2001). “Cultural Responses to Climate Change during the Late Holocene”, Science 292.

Peter Panitschek(2008). “Lugal – šarru – βασιλεύς”.

Stiebing, H. William Jr.(2009). “Ancient Near Eastern History and Culture”, University of New Orleans.

W. Heimpel(1987). “Das Untere Meer”, ZA 77.
[1] 지중해 연안까지 정복했고 속국화한 도시국가들도 많았으니 최대 판도는 지도에서 표시된 것보다 넓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