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링크 삭제 이동 김영삼 (r41 편집) [오류!] 편집 권한이 부족합니다. assistants이상의 권한이 필요합니다. 편집기 RAW 편집 미리보기 굵게 기울임 취소선 링크 파일 각주 틀 == 일생 == 6.25 이후 [[장택상]]의 비서로 활동하다 1954년 3대 국회의원에 당선됨으로서 정치 커리어를 시작했는데, 당선 당시 나이가 만 25세라서 최연소 국회의원 타이틀을 거머쥐었고 이 타이틀은 아직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 이후 5~10대, 13,14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국회의원 9선을 달성한다. 이 기록은 김영삼 말곤 [[박준규]]와 [[김종필]]만이 가지고 있다. 박정희 때 험한 꼴 많이 봤다. [[김영삼 질산 테러 사건|차 타고 집에 가는데 차가 질산 맞았다.]] 질산 맞은 차는 그날부로 폐차 처분됐다. 기껏 당 총재로 뽑혔는데 탈락한 이철승 새끼가 김태준 깡패 패거리에게 시켜 습격하는 바람에 구두도 못 신고 양말 바람으로 3층에서 뛰어내려 도망쳤다. 이때 김영삼은 당하고 있을수만 없다며 깡패를 사다가 김태준 깡패 패거리와 맞붙게 했다. 박정희가 발터ㅂ 맞은 후 전두환이 집권하고 이번엔 가택연금도 당해본다. 이후 전두환이 물러나고 대통령 선거에 다시 출마하는데 [[김대중]]이랑 단일화 안 하고 나와서 [[노태우]]한테 발렸다. 하지만 김영삼에게는 천만 다행으로 노태우는 박정희나 전두환과는 달리 사람이 존나 물렁했다. 그래서 박정희 같으면 또 질산 맞을 판이었지만 노태우가 물러터져서 김영삼에게 먼저 합당하자고 손내밀었다. 그래서 박정희의 잔당 김종필과 같이 말랑말랑한 노태우와 [[3당 합당]]했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김영삼의 계략이었고 합당 생각했을 때부터 하나회 조지려고 칼 갈고있었다. 군정종식이 인생의 유일한 목표였던 김영삼은 군정을 끝장내기 위해 노태우의 밑으로 들어가서 노태우의 열렬한 후계자를 자처했다. 이는 함정으로 김영삼은 노태우의 후계자로 확정되어 제14대 대통령 선거에 나와서 당선되자마자 싹 안면몰수하고 전두환과 노태우를 체포해버렸다. 이렇게 김영삼은 스스로의 정치성향까지 바꿔가며 기어이 군사정권을 끝장내버렸다. 대통령이 되고 난 후 지방자치제, 금융실명제 등의 정책을 폈으나 임기 말인 1997년 한보 사태로 촉발된 IMF 사태가 터지면서 개같이 멸망하고 직계 정치세력인 [[상도동계]]도 공중분해된다. 이때 김영삼 대통령의 지지율은 거의 5퍼센트밖에 안됬는데 이는 ㄹ혜 탄핵 되었을때와 비슷한 수준이고 당시 국민들에게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천벌받을 인물로 전땅크를 제치고 당당하게 1위에 올랐다. 퇴임 후 가끔씩 언론에 근황을 보이다가 2015년, 본인이 IMF구제금융을 요청한 날로 부터 정확히 18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변경 사항 요약 약관 동의 문서 편집을 저장하면 당신은 기여한 내용을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4.0 국제으로 배포하고 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 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 문서를 하면 문서의 편집 역사에 (18.222.115.120)가 기록되며 이에 .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