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링크 삭제 이동 바트당 (r34 편집) [오류!] 편집 권한이 부족합니다. assistants이상의 권한이 필요합니다. 편집기 RAW 편집 미리보기 굵게 기울임 취소선 링크 파일 각주 틀 === [[이라크]] 지부 === ||<-2><tablewidth=450><tablebordercolor=#CE1126><tablebgcolor=#fff,#1f2023>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이라크 바트당.jpg|width=100%]]}}} || ||<-2><bgcolor=#ffffff><color=#CE1126>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55deg, #CE1126 10%,transparent 10%), linear-gradient(to bottom, #000 10%, #FFF 10%, #FFF 90%, #007A3D 90%)" '''{{{+2 حزب البعث العربي الاشتراكي}}}'''}}} ||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정권의 여당으로, 바트당의 분열 속에서 이라크파를 지지하며 분열한 세력이다. 정식 명칭은 아랍 사회주의 부흥당 이라크 지부(Arab Socialist Ba'ath Party – Iraq Region). 분열 이후 바트당의 창립자였던 [[미셸 아플라크]]가 1989년까지 중앙당 서기장(당대표)직을 맡다가 이후 [[사담 후세인]]이 중앙당 서기장 겸 이라크 지부 서기를 겸직했다. 이라크 바트당은 창당 이후 195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 초반까지 정권을 잡고 있던 [[압둘 카림 카심]]과 대립하며 [[사담 후세인]] 등이 여러 차례 압둘 카림 카심을 암살하고자 했지만 실패로 돌아가기도 했다.[* 본래 바트당과 카심은 그리 적대적인 관계가 아니었으며, 오히려 카심 내각 대다수가 바트주의자였을 정도로 가까운 관계였으나, 서로 국정 운영에 대해 마찰이 생기며 대립하기 시작했고 끝내 정적으로 돌아서게 되었다.] 그러다 1963년 2월 나세르주의자[* 이집트 전 대통령이었던 [[가말 압델 나세르]]를 따르는 세력]였던 [[압둘 살람 아리프]]와 바트주의자였던 [[알리 살리 알-사디]], [[아흐마드 하산 알-바크르]] 등이 손을 잡고 [[라마단 혁명]]을 일으켜 카심을 제거한 뒤 정권을 잡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바트주의와 나세르주의 간의 내분이 발발해 다시 11월에 다시 한번 쿠데타가 발발했고, 이 과정에서 나세르주의 세력이었던 [[압둘 살람 아리프]]가 정권을 잡으며 바트주의 세력은 9개월 만에 다시 몰락하게 된다. 그리고 이 형국은 5년 간 이어지다, 1968년 [[아흐마드 하산 알-바크르]]와 [[사담 후세인]], [[하르단 알-티크리티]] 등의 바트주의 세력이 다시 쿠데타를 일으켜 [[압둘 라만 아리프]]를 실각시킨 뒤 정권을 잡게 된다. 이후 [[아흐마드 하산 알-바크르]]가 대통령직을 맡다 [[사담 후세인]]에 의해 실각당하고, 사담 후세인이 대대적으로 바트당 내 반후세인 세력에 대한 숙청을 실시하며 이라크 바트당은 완전히 후세인의 1인 정당이 되고 말았다. 본래 2003년 전까지는 이라크의 여당으로 기능을 했지만, [[이라크 전쟁]] 직후 완전히 몰락하게 된다. [[사담 후세인]] 사후에는 후세인 정권의 2인자였던 [[이자트 이브라힘 알-두리]]가 중앙당 서기장 겸 이라크 지부 서기를 맡아 이라크 바트당을 이끌었지만, 미군 측에서 이라크 바트당을 불법 정당으로 규정하며 완전히 와해되고 만다. 한편 이자트의 바트당은 시아파를 중심으로 구성된 신(新) 이라크 정부와 교전을 이어나가며 반정부 활동을 벌이다 [[다에쉬]]와 손을 잡는 막장 행각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바트당 입장에서도 다에쉬의 원리주의는 감당하기 어려웠는지[* 앞서 서술한 것처럼 바트당은 세속주의 성향이다. 이슬람 극단주의를 추구하는 다에쉬와는 근본부터가 다른 세력.][* 이 이유 뿐만이 아닌 당시 바트당의 지도자였던 알-두리와 ISIL의 종교 관점에 대한 차이도 존재했다.] 이라크 정부군과 손을 잡고 다에쉬 소탕에 나서게 된다. 2018년에 들어서는 바트당이 이라크 정계에 전면적으로 복귀하게 허용해준다는 말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단순히 찌라시가 아니라 UN 피셜. 이는 [[누리 알-말리키]]를 필두로 한 이라크 시아파 정부의 수니파 탄압을 견제하기 위함인 듯. 이에 바트당 측도 호응해서 쿠웨이트 침공을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시아파 정부와의 내전에 대해 입도 뻥끗 안 하는 등 상당히 온건한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https://english.ahram.org.eg/NewsContent/2/8/288039/World/Region/The-return-of-Saddam-remnants.aspx|#]] 2020년 들어 [[IS]]가 몰락하면서 일부 이라크 바트당의 잔당들과 지지층 세력들이 시리아, 요르단 국경 사막지대에서 게릴라 반군 투쟁을 벌이며 이라크 정부에게 맞서고 있지만 숫적으로도 이라크 정부군보다 딸리는지라 현 이라크 정권을 전복시키고 정국 주도권을 재장악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바트당 측도 이를 인지해 여러 루트로 이라크를 비롯한 각국 정부에 접촉하고 있는데, 미국과 이란이 지켜보고 있는 이상 양지로 나올 가능성은 높다고 보기 어렵다. 2020년 이자트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다만 이쪽은 생존설도 간간히 나오고 있다.], 사담 후세인 정권의 대사였던 살라 알-무크타르가 중앙당 서기장 겸 이라크 지부 서기직을 이어받았다. 본국인 이라크에서는 사실상 멸망했지만 요르단 국회에 1석을 가지고 있다. 변경 사항 요약 약관 동의 문서 편집을 저장하면 당신은 기여한 내용을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4.0 국제으로 배포하고 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 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 문서를 하면 문서의 편집 역사에 (18.191.184.105)가 기록되며 이에 .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