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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토 무솔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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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토 무솔리니
Benito Mussolini
헬리콥터를 돌리는 무솔리니
프로필

1. 개요2. 일생3. 여담

1. 개요 [편집]



이탈리아의 군인, 정치인, 독재자. 일명 두체.

약 21년동안 이탈리아의 총리를 지냈던 독재자이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추축국 지도자 중 한 명이며 유럽을 지배했던 파시즘의 창시자 격인 인물이다. 나치 독궈의 총통 히틀러가 무솔리니의 열렬한 팬이었다고 한다.

2. 일생 [편집]

1883년 7월 29일 대장장이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를 따라 열렬한 빨갱이가 되었고, 독실한 천주교인이었던 어머니는 이것을 중화하기 위해서 무솔리니를 수도회 계열 고등학교에 보냈는데, 종교를 극히 싫어했던 것 때문인지 동급생들을 때리고 깽판을 놓다가 퇴학당해 일반 학교로 전학을 가서 우등생으로 졸업한다. 대학을 중퇴하고 초등교사 자격증을 얻어 교사로 일하다가 군대영장이 나오자 스위스로 쨌다. 이후 오스트리아-헝가리의 트리엔트에서 사회주의 활동을 하다가 극우 물이 들어 민족주의, 전체주의적 사회주의 운동을 추구하며 이탈리아 사회당의 스타가 된다.

이후 이탈리아로 돌아와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는데, 전쟁이 끝나고 사회주의를 완전히 버린 뒤 진정한 파시스트의 길을 걷게 된다. 1919년 상이군인들을 모아 '국가 파시스트당을 창설', 친위대로 '검은 셔츠단'을 조직했고, 이들을 이끌고 1922년 로마 진군을 단행,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의 눈에 들어 39세의 나이로 총리직을 땄다.

비슷한 처지의 독일 총통 히틀러와는 처음에는 사이가 그닥 좋지 않았고, 히틀러의 강경 대외정책에 "전쟁도 불사하겠다"라며 강한 반대의 뜻을 보였지만 나중에는 자기가 더 튀는 행동을 하는 바람에 처지가 역전됐다. 2차 세계대전에 호기롭게 참전했지만 이탈리아군은 그 약골 프랑스한테도 한 번 못 이기는 개허접이었기에 졸전을 반복했고, 국민들이 등을 돌리는 가운데 왕까지 뒤통수를 치자 어떻게든 살려고 도망을 쳤지만 결국 빨치산에게 잡혀 총살당하고 주유소에 거꾸로 매달리는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이틀 뒤에는 히틀러도 지하벙커에서 목숨을 끊는다.

총살 직전 남긴 유언은 "이탈리아 땅에서 이탈리아인한테 죽으니 차라리 낫다." 혹은 "내 가슴팍을 쏴라!"였다고 하기도 하고, 묵주를 쥔 채로 벌벌 떨다 총 맞아 죽었다는 주장도 있다.

3. 여담 [편집]

  • 박정희와 경력이 비슷하다. 둘 다 사회주의자였고, 집권 전에는 교사, 그것도 초등학교 교사로 일했던 것까지 같다. 박정희는 교사로 일하다가 만주군 장교로 자진입대했지만 무솔리니는 군대 빼려고 스위스로 도망갔다는 점은 다르다. 어쨌든 둘 다 장기집권하려다 총 맞아 죽었다.
  • 생전에 옷을 잘 입기로 유명했다고 한다. 하지만 목욕은 싫어해서 항상 향수를 떡칠하고 다녔다.
  • 손녀도 이탈리아에서 정치인을 하고 있는데, 젊었을 때는 플레이보이 모델로 일한 적이 있다.
  • 파스타에 들어가는 밀 수입 비용이 어마어마해서 파스타를 금지하고 쌀을 주식으로 삼으려고 한 적이 있다.
  • 사후 평가도 박정희와 비슷한데, 다른 추축국 지도자들은 언급이 아예 터부시되거나 자칫하면 처벌까지 받을 수 있는 반면 무솔리니는 이탈리아 내에서 호불호가 갈리지만 옹호 여론이 상당하다. 이 점은 박정희와 비슷하다. 심지어 고속도로를 뚫었다는 점도 같다.
    무솔리니의 영어 연설. 미국과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내용이다.
  • 보통 연설 하면 히틀러를 떠올리는데, 사실 히틀러는 내용보단 퍼포먼스에 강했고, 내용까지 감안하면 무솔리니가 한 수 위다. 당대 기준으로 인텔리라 이탈리아어는 물론 독일어, 영어로도 연설을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