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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데레 캐릭터 구축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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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공포3. 비극4. 로맨스5. 얀데레 캐릭터
5.1. 살상형 얀데레5.2. 조종하는 얀데레5.3. 초자연적인 얀데레5.4. 로맨틱 얀데레5.5. 영웅적인 얀데레5.6. 해를 가하지 않는 얀데레5.7. 숭배형 얀데레5.8. 꺼리는 얀데레5.9. 동정어린 얀데레
6. 여러 명의 얀데레 쓰기7. 전형 조합하기8. 상세/배경 설정9. 집착10. 경쟁자11. 풍자와 비유12. 부모로서의 얀데레13. 클리셰 및 흔한 오류14. 마지막으로

1. 개요 [편집]

“얀데레”란 누군가에게 광적으로 집착하고 푹 빠져있는 개인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이러한 집착은 매우 많은 방법으로 나타날 수 있는데, 사랑하는 사람이 가는 곳에 항상 따라가기도 하고 누군가와 대화하지 않았는지 수시로 휴대전화와 컴퓨터를 확인하거나 그 사람의 애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죽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얀데레 시나리오를 작성하기 위해선 어떠한 느낌을 만들어내고 싶은 지가 가장 중요하다. 카테고리는 매우 다양하게 나올 수 있겠지만 대다수는 공포, 비극 그리고 로맨스로 분류한다.

해당 문서에서는 다수의 얀데레가 해당 분류에 포함되는 만큼 각 분류에 대해서 가장 효과적이게 작성하는 방법에 대해 다룰 것이다.

2. 공포 [편집]

얀데레를 공포스러운 존재로 나타내고 싶을 때 가장 중요한 점 중 하나는 독자에게 해당 캐릭터에게 어떠한 점도 사랑스럽다는 감정을 느끼게 해서는 안되며, 공감이 갈만한 특성을 매우 적게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과하게 비인간적으로 만들어 놓으면 캐릭터의 광기가 비현실적으로 다가올 수 있으므로 캐릭터를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처럼 만들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어떠한 캐릭터든지 캐릭터가 가지는 목표와 설정은 그럴 듯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빌런이 사랑 때문에 동기부여를 지녔다면, 빌런의 마음 속에서는 자신의 행동이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내기 위한 필수적인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방향으로 치우쳐지는 것은 공포감을 약화시키고, 캐릭터가 훨씬 덜 위협적이게 느껴질 수 있다. 당신은 캐릭터의 동기부여에 대해 설명하면서도 독자들이 캐릭터를 측은히 여길 정도로 인간적인 존재가 되지 않는 쪽으로 만들어낼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러한 캐릭터들은 어느 정도는 인간다운 면모가 있어야 하지만 많이 가져서는 안되며, 여전히 괴물로 묘사되어야 한다.

캐릭터가 로맨틱하게 느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이 캐릭터를 따르게 될 때의 결과가 최대한 소름끼치게 느껴지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부류의 얀데레는 주로 통제와 소유를 중심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어렵지 않을 것이며, 이러한 방향을 소화해내는 방법등 또한 매우 다양하다.

주인공에게 있어서 얀데레와 함께한다는 것은 가능하면 도망칠 수 없게끔 수족이 잘려나간 채로 침대에 누워 남은 인생을 살게 되거나 육체라도 영원히 함께하기 위해 살해 당하는 것 말이다.

얀데레를 완전히 소름끼치는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또 다른 좋은 방법은 주인공이 얀데레를 설득 시키는 그 모든 방법을 통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독자들이 완전히 사악한 얀데레를 로맨틱하게 바라볼 때 보통 얀데레의 이러한 모습에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어 주거나 얀데레의 옆을 지키도록 하는 데에 감시가 필요 없다고 설득하는 걸로 “고쳐질” 수 있다는 착각하곤 한다. 만약 이런 상황을 피하고 싶다면 주인공이 이 모든 것들을 시도해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작중에서 확실하게 보여줘야 한다.

빌런을 설득할 수 있다는 것은 그 빌런이 주는 위협을 확연히 줄어들게 만든다. 따라서, 주인공의 얀데레를 설득 시키거나 얀데레의 신뢰를 얻고자 하기 위한 시도들은 전부 어떠한 방식으로든 빠르게 대가를 받아야 한다.

어느 호러물이나 이야기에서 중요한 부분은 희생자이며, 얀데레 이야기 또한 예외가 아니다. 당신은 절대로 얀데레가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 독자들로부터 악역 취급을 받을 것이라는 확신을 해서는 안 된다.

만약 얀데레가 별로 호감가지 않는 캐릭터와 이름 없는 누군가를 죽인다면, 아무도 신경쓰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만약 이 캐릭터가 정말로 독자들의 공포 및 혐오의 대상이 되기를 원한다면, 매우 흥미롭고 호감이 가는 캐릭터를 만들고 그 캐릭터들이 미치광이에 의해 살해 당하도록 해야 한다.

주인공에게 헌신적이고 로맨틱한 연인과 도움되는 가까운 친구 모두에게 흥미롭고 어딘가 나사는 빠져있지만 매우 사랑스러운 성격을 준 뒤 얀데레가 모든 것을 산산히 부셔버리도록 놔둘 필요가 있다.

3. 비극 [편집]

세 가지 유형 중에서 비극적인 얀데레는 가장 다양해서 무해하고 자기 혐오적인 스토커로부터 동정을 일으키는 얀데레 살인자,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모든 캐릭터를 허용한다. 비극적인 얀데레의 진정한 단 하나의 요건은 얀데레의 입체적이고 복잡하고 동정적인 성격과, 얀데레 자신한테는 암울하고 절망적인 결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유연성에도 불구하고, 더 구체적인 내용으로 들어가기 전에 비극적 얀데레에서 검토할 가치가 있는 몇 가지 특성이 있다.

비극적인 얀데레에 거의 항상 존재하는 한 가지 특성은 믿기 힘들 정도로 낮은 자존감이다. 이런 종류의 얀데레는 높은 확률로 자아를 혐오하는 개인이며, 결코 자기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충분히 걸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치가 있거나, 필요한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그들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미친 것처럼 행동하게 만든다.

당연히 이런 등장인물들은 거의 항상 사랑하는 이들의 필요와 이익을 자기 자신보다 한 차원 더 우선시할 것이며, 종종 자기 자신의 요구를 완전히 무시하는 수준까지 둘 것이다. 이 등장인물들이 사랑하는 사람한테 짐이 되는 것처럼 느끼거나, 고통을 주거나, 또는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면 그들은 실의에 빠질 것이고, 그리고 재빨리 그 상황에서 자신을 배제할 것이다. 아무리 그 얀데레가 괴물이라도, 자신이 애인에게 줄 지도 모르는 고통을 깨닫기만 한다면 그들의 행동을 멈출 것이다.

얀데레의 로맨틱한 집착의 동기는 성격마다 다를 수 있다. 집착의 도화선은 짝사랑하던 유년시절에서부터 누군가에 대한 감사에서 단순한 외로움과 또는 사랑 받고 싶은 절박함까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어찌됐든 이 캐릭터는 사랑을 찾기 위해 어떤 길이라도 필요하다면 기꺼이 걸으려고 하는 한 명의 슬프고 비참한 사람이며, 얀데레의 행동의 이유는 별로 중요하지 않고 그들 앞에 잘 드러나지도 않을 것이다.

이러한 등장인물들이 동정을 일으킬 수 있는 만큼, 비록 해피엔딩을 쓰고 싶더라도 그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이 얀데레의 이야기에 독자들이 무감각해 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그리고 이야기의 비극적 결말을 강화 시킬 행복한 순간들을 이야기에 넣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이런 이야기들은 독자들에게 용기를 주려는 것이 아니며, 다른 등장인물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얀데레는 결국 극복할 수 없다. 만약 얀데레에게 해피엔딩을 안겨주고 싶다면, 그 사실은 흥미로운 인물을 만들었다는 것과 그 이야기에서 얀데레의 목적을 달성했다는 것으로 생각해주길 바란다. 이후에는 어찌됐든 비극을 쓰는 작가로서의 숙명으로, 그들을 고통스럽게 만들어야 한다.

4. 로맨스 [편집]

로맨스 소설에서의 얀데레는 공포 소설에서의 얀데레만큼 자주 등장하지는 않았으나, 1800년대 중반까지는 더욱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 다수의 로맨틱 소설, 특히 17세기와 18세기에 나온 소설들은, 오직 미쳐버릴 정도로 푹 빠지게되는 것만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말한다. 간단하게, ‘이 사람을 보게 되었을 때에도 제정신인 상태라면, 그것은 정말로 사랑하는 게 아니다’ 라고 하면 된다.

캐릭터 간의 상호작용에 의해 온전히 정의되는 장르인 로맨스는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흥미롭고 호감이 가는 캐릭터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얀데레 캐릭터의 결점들은 그들의 사랑스러운 면보다 더 크게 느껴져서는 안 되며, 호러 전형의 캐릭터들과는 딴판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들은 여전히 결함이 있는 개인으로서 보여져야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독자들이 신경써줄 인물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결점들은 캐릭터가 스스로 이겨내고자 하려는 내적 갈등을 만들수도, 혹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가 망쳐질 수도 있다는 위협을 느껴 외적인 갈등을 만들게 될 수도 있다.

이런 유형의 이야기에 대한 등장인물을 만들 때, 그들의 얀데레 특성을 스스로 드러내는 방식이 그들을 비난받을 만한 괴물로 만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학대가 가해지는 관계를 낭만적으로 미화하는 것은 결코 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통제적인 행동이 얀데레의 결점으로 제시되는 한, 한두 번 조금 통제하게 되는 것은 용납되며, 그들의 캐릭터의 일부는 그들의 통제와 편집증적 본성을 극복하는 것을 중심으로 만들어진다.

이 캐릭터에 얽힌 이야기들은 얀데레가 왜 집착의 대상에 빠져들어가는지와 사랑하는 사람이 얀데레에게 넘어갈 이유를 항상 탐구해야 한다. 공포 장르에서 제시된 예와 달리, 얀데레가 불안정하거나 건강하지 않은 것으로 묘사되는 것을 의도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결국 이런 얀데레와 사랑하는 사람이 함께 있기를 바라는 좋은 이유가 필요하다. 주인공과 얀데레의 관계는 건강한 관계가 되어야 하며, 사람들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얀데레의 측면에 놀아나는 것이 큰 권고가 될 것이다.

이 이야기들은 죽는 사람들이 너무 많으면 안 된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만약 얀데레가 무고한 사람들의 피를 흘리기 시작한다면, 당신의 얀데레는 호감이 가는 것으로 여겨질 가능성이 훨씬 적어진다. 당연하게도, 얀데레는 여전히 폭력적인 충동과 성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만, 그것들은 거의 항상 당신의 얀데레의 마음에만 국한되어야 하며, 결코 행동하지 말아야 한다. 누구나 편히 읽을 수 있는 로맨스물을 살인마로 인해 더럽히는건 없어야 하니까.

5. 얀데레 캐릭터 [편집]

대부분의 얀데레 캐릭터들은 일종의 연기를 하거나 어떠한 “가면”을 쓰고 있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어찌되든 얀데레들은 그들의 본모습을 타인에게 대놓고 드러내며 보여주려고 하지 않는다.

우선 그들의 본성을 감추기 위해 그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정확히 골라야 할 것이다. 이는` “정상적인 인간”에서 “다른 데레 유형”만큼 간단한 것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처음에는 츤데레 또는 단데레(부끄러워하는 데레 타입)로 시작해서, 그것을 넘어선 어떤 것에 대한 작은 힌트를 주다가, 결국 그 얀데레는 그 행위를 완전히 버리고 관객과 등장인물들에게 집착하는 스토커로서의 진정한 자신을 드러내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만약 당신의 캐릭터의 얀데레 본성이 주요한 반전이 될 것이라면 상대적으로 잘 될 것이다. 당신이 글을 잘 쓴다면 독자들이 실제로 저 캐릭터가 얀데레일 것이라고 더 이상 기대하지 않고 그들이 처음에 행동하는 어떤 속성으로 분류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또한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연기였다고 하면서 인간계의 악마가 될 것의 조짐을 보일 수도 있다.

물론, 얀데레가 흉내낼 수 있는 또 다른 “-데레” 타입을 선택해야만 한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그들이 평범한 사람처럼 행동하도록 하는 것도 가능한다. 얀데레라고 드러나기 전까지는 명백한 로맨틱한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전형적으로 이것들은 처음부터 훨씬 더 사소한 등장인물들이 될 것이고, 스토리에서 일어나는 어떤 이상한 사건들이 얀데레가 잘 숨겨놓은 집착의 결과라는 것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다소 무관해 보일 것이다.

제정신의 가면은 흔히 나중에 얀데레로서 등장인물의 각성을 연출하는 데 사용될 수 있지만, 결코 반전에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제정신의 가면은 대다수의 얀데레가 사용하는 속성으로, 이 중 상당량은 작중 등장인물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더라도 독자들에게는 처음부터 명백한다. 비록 우리가 그 캐릭터가 처음부터 얀데레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해도, 그들의 광기의 정도에 여전히 충격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유지되어야 한다. 우리가 그 존재에 충격받지 않더라도 말이다.

얀데레의 “가면”를 다루는 또 다른 방법은 그들이 이야기 내내 정상적인 낭만적인 파트너로 행동하도록 하면서, 독자들이 그 얀데레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게 하여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도록 하는 것이다. 등장인물들이 얼핏 보는 것 이상의 것을 얻지 못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독자들이 등장인물들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행동들의 방구석 1열을 갖게 되어, 겉으로 보기에 주인공들이 친구들과 어울려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우리는 얀데레가 그들을 모두 죽이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숨기는 방법을 이미 계획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얀데레는 가면 밑에 강박적이고 불안정한 병증을 숨겨 달콤하고 사랑스러운 파트너로 보이는 모습을 중심으로 주로 쓰여져 있으며, 강박적인 사랑의 결과로 정신의 타락과 부패를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 가면은 얀데레가 본심을 감추는 것에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가면이 벗겨져버리게 되는 피할 수 없는 순간까지 흥미롭게 빌드업을 해 주고, 우리는 그 모든 끔찍한 영광 속에서 그들의 광기를 보게 되는 것이다.

얀데레는 가면 밑에 강박적이고 불안정한 병증을 숨겨 달콤하고 사랑스러운 파트너로 보이는 모습을 중심으로 주로 쓰여져 있으며, 강박적인 사랑의 결과로 정신의 타락과 부패를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 가면은 얀데레가 본심을 감추는 것에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가면이 벗겨져버리게 되는 피할 수 없는 순간까지 흥미롭게 빌드업을 해 주고, 우리는 그 모든 끔찍한 영광 속에서 그들의 광기를 보게 되는 것이다.

5.1. 살상형 얀데레 [편집]

대다수의 사람들이 얀데레를 떠올릴 때 주로 이런 부류를 떠올린다. 이러한 부류는 호러 장르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부류의 얀데레이다. 결론은 당신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해당할 목표물이 되는 상황에 처해지는 것에 대한 공포는 모두가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이러한 부류의 얀데레를 만들어낼 때에는 그들의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어느정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얀데레를 주인공으로 만들어 얀데레의 모든 생각과 행동들을 보여주는 방법을 통해서 쉽게 만들어낼 수 있지만, 이는 여전히 누구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보게 되는지에 상관없이 이루어질 수 있다.

예시로, 이러한 캐릭터들의 본질적인 요소는 사랑하는 사람을 좇는 것을 매우 위대하고 오글거리는 사랑의 서막이라고 생각하므로 ‘가상의 연애로부터 무엇을 원하는가’, ‘왜 이 사람한테 푹 빠지게 되었는가’, ‘이 캐릭터가 어떻게 사랑하는 사람의 애인이나 친구를 살해하는 것을 정당화시킬 것인가’와 같은 질문들에 답할 수 있는 흥미로운 답변들이 무궁무진한다.

이러한 부류의 얀데레가 사랑의 경쟁자를 맞이하게 될 때에는 대개 둘 중 하나의 방식으로 반응한다. 얀데레들은 경쟁자들을 집착의 대상을 위해서 제거되어야 하는 교활하고 사악한 존재로 취급하거나, 아니면 굳이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더라도 제거해야 하는 단순한 장애물 정도로 취급한다. 경쟁자를 향한 이러한 반응들은 얀데레들이 경쟁자를 죽이는 것에 대해 어떠한 관점을 가지게 되는지 자연스럽게 영향을 주게 된다.

만약 얀데레가 경쟁자를 괴물 같고 폭력적인 사람으로 취급한다면, 때때로 자기 스스로를 구원자나 ‘사랑하는 사람의 수호천사’ 같은 것으로 취급하면서, 타인을 살해하는 것을 정당화할 것이다. 반면에, 만약 얀데레가 경쟁자들을 증오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행동이 여러 면에서 매우 비도덕적인 걸 인지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필요악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어떠한 경우에서나, 그들은 자신의 행동들에 대한 회한을 느끼지 않으며, 첫 번째의 경우에는 자신이 죽인 사람을 비난하고, 두 번째의 경우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를 사랑하게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생각하며 자신이 살해한 사람들이 아닌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의 잘못이라 생각할 것이다.

이러한 장르에서는 얀데레가 항상 ‘사랑하는 사람’과 그의 모든 주변 인물들을 향한 공포의 대상으로 보여야 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당신의 주인공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얀데레로부터 지켜내고자 했던 시도를 빈번히 실패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며, 그렇게 해야 당신의 독자들은 주인공을 측은하게 여기는 동시에 얀데레를 지금까지 저지른 행동 모두 비난받아야 마땅한 존재로 취급하게 될 것이다.

언제나 피해자들이 호감형 인물들로서 보여야 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만약 그러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야기의 주인공이 충분히 호감이 가는 사람이라면, 청중들은 얀데레가 주인공에게 가한 행동들을 경멸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캐릭터로 이야기를 끝내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게 있으며 이러한 방법 다수가 각자의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예시로, 얀데레에게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게 해주는 것은 독자들에게 통쾌한 마무리로 보일 수 있지만 잘못하면 예상하기 너무 뻔한 이야기로 느껴질 수 있다.

반대로, 얀데레 캐릭터가 몇 번의 살인에서 성공적으로 손을 떼고 집착 대상이 침대에 영원히 묶여있는 상태가 되는 것은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연출을 해내고 독자에게 인상깊게 남을 수 있지만, 이야기가 매우 불만족스럽고 이유없이 암울하게 끝났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5.2. 조종하는 얀데레 [편집]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 이는 절대로 누군가에게 직접 피해를 입히거나 누군가를 직접 살해하지 않는 대신 다른 등장인물을 조종하여 목표를 이루는 얀데레 캐릭터를 말한다. 이러한 캐릭터들의 이야기는 만들어내기가 더욱 어려우나, 잘 짜일 경우 직접적인 폭력이 없는 만큼 섬뜩해지는, 정말로 무서운 악역을 만들어낼 수 있다.

캐릭터에 따라 살인을 저지르지 않는 이유는 다를 수 있다. 본질적으로 나쁘다고 생각해서일 수도 있고, 살해 후 성공적으로 도주하기 힘들 것이라 판단해서일 수도 있고, 아니면 머릿속에 그려온 망상 속 러브 스토리를 망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일 수도 있다. 이유야 어찌되든, 결과는 같다. 이 캐릭터는 직접적인 살인을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타인을 통한 영향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사용할 잔인한 방법으로 인해 위협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

이런 얀데레의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만큼 중요한 것은 상대에 대한 감정적이고 정신적인 조작이다. 얀데레가 연적을 폭력으로 제거하지 않을 것이라면, 보통 이 방법을 쓸 것이다. 그들은 연적을 주인공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빠지게 할 수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나쁜 점을 보이게 하기 위해서 약점을 물어뜯을 수도 있다. 아마 얀데레는 연적을 제거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면 그 사람을 완벽하게 미치게 하려고 시도할 수도 있고, 잠재적 자살 위험군으로 만들 수도 있다. 이것이 이런 캐릭터를 만들기 어려운 이유들 중 하나이다. 누군가를 죽이려고 그냥 칼빵을 놓는 캐릭터는 만들기 쉽지만,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효과적이고 납득 가능하게 다른 사람을 조종하는 캐릭터를 만드는 건 어렵다.

이런 얀데레를 만들 때 정말로 재밌는 부분은 얀데레와 얀데레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직접 만났을 때이다. 얀데레는 천성이 질투가 매우 심한 캐릭터여서, 얀데레가 자신의 사랑을 손에 넣게 됐을 떄 계속해서 자기 외에는 세상과 고립된 상태로 유지하려고 시도하는 걸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사람에 대한 소문을 퍼뜨릴 것이고, 그러면 아무도 그 사람 가까이 가고 싶지 않을 것이거나, 또는 그 사람을 계속 붙잡아 두기 위한 거짓말을 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자기가 임신했다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그래도 얀데레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 얀데레와의 관계를 끊고 싶을 때가 더 좋을 것이다. 보통, 이런 캐릭터는 자신의 사랑이 ‘저 얀데레가 내가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이고, 그 밖엔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라고 믿도록 몰아넣을 것이고, 아니면 그 사람이 떠나려고 한다면 얀데레는 정신이 나가버린 척하면서 ‘네가 떠나버린다면 난 자살할 것이다’ 라며 상대방이 죄책감에 얀데레의 곁을 머물도록 협박할 것이다.

이 얀데레는 계획이 용의주도하고, 주인공이 자신의 곁을 떠나지 않게 만들 정도로 주인공의 정신 상태를 무너뜨릴 수 있는 것 이상의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장 높은 성공률을 보이는 얀데레이다.

5.3. 초자연적인 얀데레 [편집]

얀데레 소설을 쓸 때, 일반적인 사람이 얀데레를 구분할 수 있게 하는 유일한 요소는 집착과 그들이 감수하려고 할 정신이상적 거리이다. 어떻게든 얀데레를 분류하도록 허용하는 요소들은 여전히 있을 것이나, 대부분의 얀데레 캐릭터들은 여전히 어느 정도로는 인간이며, 엄밀히 말해서 현실 속 법칙들을 따라야 한다. 이는 그들이 취할 수 있는 위협적 자세들이 본질적으로 제한되어 있다는 뜻이다. 일반적인 경우에는 그러하나, 가끔은 다 똑같이 느껴지는 오래된 느낌의 정신나간 스토커에 대한 이야기들을 쓰는 것이 지루하다고 느껴 현실성을 창 밖으로 던져버리고 얀데레 캐릭터에게 인간은 가질 수 없는 힘을 부여하고는 한다.

일반적으로는 두 종류의 초자연적 얀데레가 존재한다. 첫 번째로는 약간의 초자연적 힘을 가지고 있는 인간 얀데레이다. 이러한 얀데레는 마녀나 마법사일 확률이 높다. 여기저기에 초자연적 부가 기능이 있는 얀데레 캐릭터인 셈이다. 두 번째로는 초자연적 생물인 얀데레가 있다. 이들은 광적으로 한 인간에게 사랑에 빠지고 방해요소가 되는 자들은 전부 없애버리겠다고 결심한 (주로 인간형을 하고 있는) 초자연적인 생물이다. 그들의 계획은 그들이 집착하는 대상을 그들과 같은 생물로 만들어버리는 것과 연관성이 있을 수는 있으나, 꼭 그래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두 종류의 캐릭터들은 매우 다른 방향으로 쓰여진다. 지금까지 알아낼 수 있었던 가장 큰 차이점은 “초자연적 생물”은 다양한 측면에서 더욱 허구적인 느낌을 가져다주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참담한 것들은 사랑이라는 이름 하에 더욱 정당화될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지는 반면, 초월적 힘을 가진 인간 얀데레의 경우에는 비교적 적은 동정심을 받으며 그들의 사랑이 ‘통제’에 더 가깝게 보이도록 하는 효과를 가져다준다는 것이다. 온전하게 초자연적인 얀데레들은 이야기 내에서 죽음으로 구원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반면, 그저 초월적인 힘만을 가지고 있는 얀데레의 경우는 그들의 집착 대상에게 일종의 주술같은 것을 걸어서 성공적으로 그들이 원하던 목표을 이뤄낼 가능성이 높다. 이는 그들의 인간성과의 관계에 따라 설명될 수 있다고 판단된다. 인간이 아닌 생물은 그들의 행동들이 비윤리적이고 불건전하더라도 그들이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낀다는 점에서 매우 인간적인 특성을 갖게 된다. 비인간 얀데레는, 어떤 면에서는, 단순히 자신의 욕구대로 그런 일을 저질렀다고 하는 것보다 더 인간적이게 보일 수 있다. 비슷하게, 반대로 일반적인 얀데레에게 초월적 힘을 주면, 그들은 덜 인간적으로 보일 것이다.

우선, 두 부류의 캐릭터들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에 대해 설명하기 이전에, 저는 이들의 본질적인 것들에 주목하고 싶다. 두 캐릭터 모두 초자연적인 방법을 동원해 원하던 사람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낼 것이라는 점이다. 만약 캐릭터가 완전히 초자연적인 생물이라면, 이 캐릭터는 자신을 “변형”시키거나 자신의 다양한 힘을 사용하여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푹 빠져들게 할 것이고, 반대로 초자연적 힘을 가진 인간 얀데레의 경우는 세뇌 등을 통해서 목표를 이뤄내고자 할 것이다.

이 두 부류의 캐릭터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차이점은, 비인간 얀데레는 이야기 초반에 인간이 아닌 다른 무언가로 알려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보통 그들의 본모급은 그들이 소개되자마자 보여진다. 따라서, 이러한 부류의 캐릭터가 나오는 이야기는 악역의 동기부여와 집착 대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제외하면 전형적인 호러물을 만들게 된다. 이것은 특히 경쟁자가 우리의 주인공인 영화에서 널리 퍼져 있는데, 이는 대부분의 이야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멀리하려는 그들의 시도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초능력을 가진 얀데레는 그들의 보다 더 부자연스러운 특성이 훨씬 더 느리게 표면으로 다가오는, 처음에는 평범한 인간처럼 보일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 처음에 주인공은 얀데레로부터 뭔가 이상한 점을 알아차릴 가능성이 있다. 잠시 조사한 후, 주인공은 대개 얀데레의 본성을 발견하고 얀데레에게서 벗어나려고 할 것이지만, 그들이 붙잡힐 때까지 쫓기기만 할 뿐이다. 이때 얀데레는 보통 어떤 의식을 행하여 이 사람을 그들에게 귀속하고, 어떤 종류의 마인드 컨트롤을 유도하여 얀데레에게 미친 듯이 빠져들게 할 것이다. 이 등장인물들은 어떤 종류의 구원도 받지 못할 것이며, 종종 질 수도 없을 것이다. 이런 성격의 이야기들은 일반적으로 얀데레가 집착물을 손바닥 안에 쥔 채 끝나는데, 대개 가까운 미래의 어느 지점에서든 자유롭게 풀려날 희망이 전혀 없다. 이러한 상호작용은 대개 현실에 아주 조금 근거하여 좀 더 전통적인 얀데레 공포 이야기처럼 전개될 것이다.

비인간인 얀데레의 경우, 엄청난 양의 신화나 민간설화에도 불구하고, 영감을 끌어내기 위해 거기에 나오는 것과 같은 생명체들이 종종 사용된다. 작가가 그냥 평범한 인간으로 글을 썼을 때 보다 더 싱겁고 재미없을 정도로 말이다. 가장 흔한 타입은 얀데레 뱀파이어이다. 확실히 말할 수는 없지만, 이것은 그 얀데레가 충분히 인간적으로 보이는 반면, 흥미로울 만큼 뚜렷하게 비인간적이기 때문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그들은 집착의 대상을 다른 뱀파이어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둘 다 피해자가 얀데레를 거부하려는 강박관념에 대한 충분한 이유를 제공해 줄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얀데레물의 전체적인 특징에 “영원히 함께” 라는 추가로 소름끼치는 부분을 더하는 것이다. 이 캐릭터들은 재미있을 수 있지만, 그들은 다소 영감을 받지 않고, 특히 더 흥미로운 신화적 생명체들이 많이 있을 때 더 게을러진다. 민담에서 나오는 많은 생물들은 자연적으로 포식자인데, 아마도 그들을 미행하고 어떤 모지리를 억제하는 데 뛰어나게 만들 것이다.

불행하게도, 더 많은 알려지지 않은 생명체들이 진지한 소설 작품에서는 그다지 자주 사용되지 않다. 이것은 대개 그들의 그다지 인간적이지 않은 외모 때문에 그들의 본성을 더욱 명백하게 만들며, 아마도 주인공이 얀데레를 역병처럼 생각하여 피하게 되리라고 경고하기 때문일 것이다. 글쓰기의 관점에서 보면, 더 불명확한 생물들의 대부분은 너무 알려져 있지 않아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주제를 다루는데 전혀 신경 쓰지 않다. 대부분의 난해한 이야기들의 설정을 다루지 않는 것에서부터, 위험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을 만큼 충분히 알려져 있지 않은 것까지, 이런 생물체로 글을 쓰는 걸 수많은 이유들로 묶어두는 것이 가능한다.

초자연적인 얀데레 소설은 일반적으로는 거의 변하지 않을 것 같은 허구의 주요 소재이다. 문학사상 최초의 얀데레는 이슈타르 여신이었다. 초자연적인 얀데레는 얀데레 그 자체만큼 오래되었고, 이미 허구처럼 오래된 속성이다. 그들은 흥미롭게 만들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몇 년 동안 훌륭한 소설 작품들을 만들어 냈고, 얀데레 속성의 재미있는 파생을 허용했다.

5.4. 로맨틱 얀데레 [편집]

글이 충분히 잘 쓰여지기만 한다면, 얀데레 캐릭터들은 사랑스러운 로맨틱한 리드로 만들어내기가 놀랍도록 쉽다. 로맨틱한 얀데레를 만들어내는 것에 있어 가장 어려운 것은, 얀데레로서의 특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독자들이 캐릭터가 성공적인 사랑을 이뤄낼 수 있도록 원하게 만들게 하기 위해서 이 캐릭터에게 어떠한 특성을 포함시킬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호러 장르에서는 폭력성을 통해서 얀데레의 특성을 쉽게 나타낼 수 있으나, 로맨틱 얀데레의 경우 캐릭터가 누군가를 납치하거나 살해하는 것으로 얀데레 특성을 보이는 것에 의존해서는 안되며 그들의 집착 방식 또한 다른 방식으로 전해져야 한다.

이러한 캐릭터들은 작중에서 상당히 기괴한 행동을 보여주나 주로 부끄러움을 많이 타고 오해를 자주 받는 방향으로 가는 캐릭터들로 잘 알려져 있다. 그들은 모든 종류의 로맨틱하거나 친근한 표현들을 하지만, 그들이 사랑하는 존재가 그들을 모를 수 있기에, 이러한 행동들이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오게 된다면 더욱 기괴하게 느껴지게 된다. 예를 들어,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의 책상의 격려의 말이 적힌 노트를 올려두거나 일종의 선물을 남겨둔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주로 아침밥을 차려주기 위함 등의 이유로 놀랍도록 악의 없는 이유에서, 집 안으로 잠입하기도 한다. 어떠한 경우에서든, 이러한 행동은 좋은 의미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처음에는 다소 섬뜩하게 느껴질 수 있다.

당연하게도, 이러한 부류의 캐릭터들은 독자에게 더욱 사랑스럽게 다가와야 하며 일반적인 얀데레와는 엄밀하게 다른 방식의 생각 패턴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는 이러한 캐릭터들이 ‘통제’하려고 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줄어들고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서 어떠한 관계를 강요하기보다는 상대방이 행복함을 느끼는 데에 더 중점을 두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캐릭터들은 완전히 무해할 필요는 없으나, 자신들의 사랑하는 사람들의 필요와 욕구를 자신으로부터 충족시켜주고자 할 것이다.

많은 다른 얀데레와 비교했을 때, 이 얀데레의 동기의 차이를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얀데레는 강박적인 사랑과 한 사람에 대한 헌신에 의해 동기부여되는 반면에, 로맨틱 얀데레는 다른 얀데레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러한 감정을 드러낸다. 예를 들어, 더 공포 지향적인 얀데레는 종종 소유와 지배를 중심으로 만들어지는데, 그들의 관계에서 그들의 목표는 대개 그들의 애인을 고립시키고 다른 누구와도 대화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로맨틱한 얀데레는 여전히 애인을 혼자로 만들기 위해 헌신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중요한 차이는 그들의 접근방식에 있다. 로맨틱한 얀데레는 대신 그들이 완전한 언약을 맺을 가치가 있는지, 그리고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완벽한 배우자가 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데 그들의 노력을 집중하기로 선택한다. 하나는 연인이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을 제한하기 위해 만들어지고, 다른 하나는 그들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만들어진다. 이런 이유로 인해 이 캐릭터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데 종종 성공한다.

이 캐릭터들은 가장 성공적으로 남으며, 대부분 항상 해피엔딩을 맺게 될 것이다. 친절과 사랑을 통해 평생의 헌신을 성취하고, 저속한 전술에 의지하지 않고 파트너의 변함없는 헌신을 얻는 그들의 방법은 이 캐릭터를 사람들이 얀데레에게 끌리는 이유의 살아있는 사례로 만든다. 이러한 등장인물들은 다른 얀데레처럼 상대방에게 강박적이고 집착하지만, 얀데레 자체의 개념에서 사람들을 겁주기 쉬운 부정적인 특성이 빠져 있다.

5.5. 영웅적인 얀데레 [편집]

얀데레 캐릭터를 로맨틱한 주제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들이 절대로 난폭한 캐릭터여서는 안 되며 자신들의 집착만을 이유로 타인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규칙이 있다. 하지만 영웅적인 얀데레는 이 규칙에서 제외되는 하나의 예외 대상이다. 이러한 캐릭터는 주로 호러물에 배치되나, 이야기의 주요 공포 소재는 얀데레가 아니며 캐릭터들의 행동은 크게 정당화될 수 있을 것처럼 보이거나 더 로맨틱하게 보여지게 된다.

영웅적인 얀데레 캐릭터를 만들어낼 때에는, 아무리 캐릭터의 심리적 상태가 불안정해지더라도 얀데레가 사랑하는 사람의 가장 큰 위협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명확하게 해야한다. 이야기에는 얀데레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협하는 더 큰 악역이 있어야 한다. 이 얀데레는 자신의 집착물을 해칠 사람들로부터 그 집착의 대상이 되는 캐릭터를 보호하는 것을 중심으로 만들어졌으며, 따라서 얀데레는 애인의 주적보다 애인에게 더 큰 위협이 될 수 없다. 그 애인의 주적은 더 위험한 얀데레, 이 사람이 죽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 또는 이야기의 장르에 따라, 사람으로 간주될 수 없는 것들의 집단이 될 수 있다.

보통 이런 종류의 이야기들에선 주인공은 얀데레가 그 이야기 내에서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동료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보호를 위해 얀데레만을 이용하는 것으로 시작할 것이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그들은 얀데레에 더 가까워질 것이고, 이해하게 될 것이고, 얀데레의 강박적이고 헌신적인 본성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종종, 얀데레의 보호적이고 영웅적인 본성은 이야기의 특정 지점까지 숨겨질 것이다. 그들은 어디에나 집착하는 대상을 따라다닐 것이고, 상당 기간 징그럽고 불안정한 모습으로 비춰질 것이다. 결국 앞에서 말한 ‘더 큰 악’은 모습을 드러내고, 주인공을 공격하게 되는데, 오직 얀데레만이 나타나 주인공의 목숨을 구하며, 얀데레의 자애롭고 보호적인 본성을 독자는 물론, 등장인물에게까지 드러내게 된다.

이런 캐릭터로, 얀데레는 사랑하는 사람의 위협이 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매우 폭력적일 수 있지만, 이 사람들만이 얀데레가 폭력적으로 대하는 유일한 사람들이어야 한다. 얀데레는 여전히 사랑하는 사람과 가까이 가는 다른 사람들을 질투할 수도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면, 너무 자주 이 사람들을 해쳐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게 얀데레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까이 들러붙는 사람들을 떼어놓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아닌데, 얀데레가 그런 사람들과 애인을 확실하게 떼어놓을 거라는 사실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다만, 얀데레는 아무도 다치지 않는 방법을 쓸 것이다.

이런 캐릭터의 결말은 종종 다소 달콤씁쓸한다. 얀데레는 대개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죽거나, 아니면 얀데레와 주인공이 어떤 위협도 물리치고, 그들이 계속 살 수 있도록 보장해 줄 것이다. 이것은 얀데레의 사심없는 목적을 보여주고, 그 사람에 대한 얀데레의 사랑의 깊이를 보여준다. 이는 또한 얀데레의 사랑하는 사람이 슬퍼하고 얀데레의 죽음을 애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부가적인 효과도 가지고 있어서, 비록 주인공 자신이 눈치채지 못했더라도, 자신의 애정 어린 스토커를 사랑하게 되었고, 이제 그 스토커가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기 때문에 그리워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밝혀준다.

5.6. 해를 가하지 않는 얀데레 [편집]

무해한 얀데레는 많은 사람들이 단번에 얀데레로 취급하기 어려운 유형이며, 어떠한 면에서는, 그게 맞다. 무해한 얀데레는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집착이 심하고 누군가가 그 사람에게 가까이 있을 때 강한 질투를 보이게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없는 사람이다. 이러한 부류는 현실에서 좀 더 흔하고, 소설에서는 찾기 힘들다.

이 등장인물들은 여전히 얀데레와 같은 본질적인 결점과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은 여전히 끈덕지고, 편집증적이며,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까이 가는 사람을 질투한다. 이런 얀데레를 다른 얀데레와 선을 긋는 유일한 점은, 이 유형의 얀데레는 이런 감정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두려움과 비합리적인 질투심을 속으로만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애인이 다른 여자와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그 여자를 죽이는 망상을 품기 시작할 수도 있고, 이러한 감정을 내면 깊숙이 간직할 수도 있다. 또 다른 경우에는, 애인이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을 볼 때마다 편집증에 걸리고 우울해 질 수도 있다. 얀데레는 그 사람을 보고 열등감을 느낄지도 모르고, 사랑하는 사람이 그 사람과 함께 있으면 더 행복해질지도 모른다고 느끼고, 그 위로 밀려오는 이 엄청난 슬픔의 파도를 느낄지도 모르겠다.

이런 등장인물들은 조연보다는 주인공으로 쓰기가 더 좋은데, 이는 이야기에서 이런 얀데레에 초점을 맞추면 작가가 그들의 정신을 들여다볼 수 있어서, 얀데레가 그렇게 숨기려고 애쓰는 모든 생각과 감정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캐릭터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생각을 읽을 수 있게 해주며, 그들이 밤을 뜬눈으로 지샐 때, 자기한테는 너무도 과분한 사랑에 대해 환상을 품게 한다. 얀데레가 앉아서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 함께인 행복한 애인’의 생각으로 자신을 고문하는 동안, “애인이랑 그 사람이 행복하기만 하면, 나는 그들을 위해 행복할 수 있어”라는 대사를 자신에게 되뇌일 수도 있다.

물론, 얀데레 조연을 만들 수는 있지만, 그건 얀데레의 더 강박적이고 불안정한 면을 쓰는 걸 조금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 많은 것들을 속으로만 간직하고 있고, 이런 행동이나 생각이 이 단계에 있을 때 이들은 실행에 옮기지 않다. 애인에게 어떤 식으로든 자기는 여전히 얌전하게 행동한다는 것을 보여줘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우연한” 만남을 만들고 있거나, 잠자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런 행동은 전형적인 얀데레 행동에 해당된다. 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최악의 행동은 아마도 사랑하는 사람과 너무 가까이 다가간 누군가에게 딱딱 소리를 지르고 사과하고 떠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가장 폭력적인 행동들은 대개 자해에서 자살에 이르기까지 최후의 날을 위해 남겨져 있다. 이런 행동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그들의 감정에 보답하더라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랑은 여전히 얀데레에게 부담스러운 짐처럼 느껴질 것이고, 자신이 애인과 멀어지는 게 애인에게는 더 나은 것처럼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무해한 얀데레는 종종 비극에 매우 잘 작용된다. 단지 이런 얀데레가 그들 자신을 천천히 고문하고 짝사랑하는 감정들 때문에 미쳐가는 것을 목격하고, 자기혐오와 불안감에 일으키는 몸부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매우, 매우 우울한 일이 될 수 있다. 이런 점은 이러한 캐릭터가 보여지는 빈도가 매우 낮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캐릭터의 이야기들을 만드는 것을 흥미롭게 하는 요소들 중 하나이다. 당신이 아끼는 누군가가 광기의 저편으로 끝없이 걸어가면서, 끊임없이 한 사람에게 집착하고, 그러면서도 자기는 애인에게 가치가 없다고 느끼고, 결국 완전히 정신을 잃는 것. 그것은 잘 하면 독자들에게 강렬하게 느껴질 수 있게 함으로서, 독자들이 얀데레를 눈부실만큼 비참하게 느끼게 하고 매 순간 얀데레를 사랑하게 할 것이다.

5.7. 숭배형 얀데레 [편집]

복종적인/숭배하는 얀데레는 자신의 마음대로 관계를 위협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제거하기보다는 일반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시켜서 타인을 살해하게 되는 부류이다. 기본적으로 그들은 “너만 행복하다면 나는 다 좋아” 라는 말은 저 가능한 문턱 너머까지 가져가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무엇이 요구되든 상관없이 그들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살면서 평생동안 최선을 다한다.

이러한 얀데레는 주목할만한 정도로 가장 자의식이 없다. 캐릭터가 사랑했던 사람이 그들을 두들겨패면 그들은 그런 취급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거나 더 심한 경우 “사랑하는 사람의 좌절감을 없애주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며 기뻐할 수도 있다. 사랑하던 사람이 바람을 피운다면 그저 자신이 상대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했다고 생각해 죄책감을 느낄 것이다. 이러한 캐릭터들은 지금까지 언급해온 캐릭터들과 달리 상대가 자신들의 마음에 화답해줄 것을 강요하지는 않으며, 그저 자신들이 상대방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보여주고 싶어할 뿐이다. 그들은 신경쓰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을 위해 어떠한 고문이나 학대라도 받아들일 것이다.

이러한 경우는 자존심이 매우 위험할 정도로 낮은 사람이 상대방을 마치 신을 섬기는 것에 가까은 집착 증세를 보일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그들은 이 ‘결함이 있는’ 사람을 모든 면에서 완벽한 존재로 여기고 어떠한 의심 없이 그들의 기분에 주의를 기울이며 항상 맹목적으로 따라다닐 것이다. 순종적 얀데레에게 있어 자신들은 목사이자 성가대, 그리고 ‘성인(saint) 선배를 위한 성당’의 신도 전체를 대표하며, 그저 사랑을 하는 하인 그 무엇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린다 하더라도, 스스로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도움되는 존재가 될 수 있도록 무엇이든 하려고 한다.

이러한 캐릭터의 위험한 점은, 인물 그 자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달려있다는 점이다. 특히 그들이 어떠한 부류의 사람인지가 말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어두운 욕망까지 채우는 것”은 집착 대상이 말할 때는 거의 위협적이게 느껴지지 않고 그저 격한 포옹을 해주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기에, 이는 그들이 주로 끔찍한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만약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 스스로의 모든 친구와 가족들을 살해하라고 말한다면, 그들은 재차 고민하지 않고 어떠한 의구심도 없이 바로 일을 저지를 것이다.

만약 이들이 매우 끔찍한 존재를 따라다니게 하고 싶다면, 당신은 이 얀데레 캐릭터가 사랑하는 존재가 얼마나 쓰레기같게 할 것인지를 먼저 정해야 한다. 얀데레 캐릭터들은 자신의 인생이 얼마나 망가지느냐에 상관 없이 사랑하는 존재를 계속 따라다닐 것이기에, 그 존재는 “가벼운 쓰레기” 정도에서 “반사회적 연쇄 살인마”까지, 심지어는 “매우 혐오스러운 초자연적 생물”까지도 될 수 있다. 얀데레 캐릭터들은 그게 뭐가 되든 항상 사랑해줄 것이다.

이런 캐릭터의 끝은 대개 애인이 얼마나 비난받을 만한가에 달려 있다. 만약 그 애인이 방심하고 무신경한 사람이라면, 얀데레는 아마도 살아남을 것이고, 얀데레는 대부분의 밤을 애인의 집에서 혼자 울면서 보낼 것이다. 아니면, 그들의 애인이 훨씬 더 적극적으로 악랄한 성격이라면, 얀데레는 결국 애인에 의해 치명상을 입게 될지도 모르지만, 이미 죽어버린 채로 파트너에 대한 사랑을 부르짖으면서 마지막 순간을 맞이할 수도 있다.

5.8. 꺼리는 얀데레 [편집]

꺼리는 얀데레는 보통 얀데레처럼 집착적이고, 질투심 많고, 편집증적이지만, 자신의 행동을 끔찍하고, 비도덕적이고, 건강하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없는 다른 일부 얀데레들과는 달리, 그들의 성향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으며, 그들이 보는 것들을 전혀 좋아하지 않다. 이러한 부류의 캐릭터들은 그들의 강한 소유욕 때문에 이전에 가졌던 교제를 완전히 망쳤거나 현재 가지고 있는 관계에 문제를 일으켰을 가능성이 높다. 이유야 어찌되든, 이 인물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안겨줄 수 있는 고통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며 자신이 정말 둘도 없이 아끼는 존재를 완전히 망가뜨리기 전에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 결심한다.

당연히, 어떠한 방법으로 접근하든 상관없이, 이러한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것은 격하게 우울해지는 일이다. 그들은 자신감이 없고 자기혐오적인 사람이고, 그들이 사랑하는 존재가 그들을 떠나버릴까봐 두려워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대화하는 모두를 질투하고, 그러고는 공포심과 질투심이 더 커져가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고, 자신이 없어져버리면 사랑하는 사람이 더 나은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들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간 누군가를 바로 떨쳐내버린 뒤 바로 사과할 가능성이 높고, 과하게 집착 증세를 보이거나 소유욕이 심한 상태는 아닌지 항상 걱정한다.

이러한 부류의 캐릭터들은 그들의 질투심을 억제하려 하겠지만, 무해한 얀데레와는 달리, 이들은 그 상태를 유지하는 데에 별로 좋지 않다. 그들의 본모습을 성공적으로 숨겨내는 모습은 나중에 후회할 말이나 행동을 하게 될 때까지 서서히 사라질 것이다. 처음에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다가간 사람한테 소리를 지르는 등 비교적 무해한 정도에서 시작하고, 후에 서서히 광기에 사로잡히게 되겠다.

내키지 않는 얀데레는 초기에는 무해한 얀데레와 비슷할지언정, 꽤 많은 수의 사람들을 죽일 수 있기 때문에, 저 둘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명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정도로 멀리 가지 않으려고 애쓸지 모르지만, 만약 얀데레가 경쟁자와 단둘이 있다면 어떻게 행동할지는 알 수 없다. 만약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특히 근처에 편리한 살인무기가 두어 개 있을 때, 그리고 목격자가 보이지 않을 때, 그들의 본성을 통제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만약 자신의 본성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막을 것이 없다면, 거의 항상 자신을 제어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물론 얀데레는 그 행동에 대해 죄책감을 느낄 것이다. 특히 애인이 얀데레의 ‘작업’의 결과를 볼 수 있게 걸어온다면, 보통 얀데레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내가 할 일이 애인의 이익/안전을 위한 것이라고 되뇌이면서 자수하거나, 자살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적어도 사랑하는 사람과 멀리 떨어질 것이다. 이런 일들이 반드시 살인 직후에 일어나는 것은 아닐 수도 있지만, 만약 얀데레가 애인이 자신을 두려워하고 있고, 자기 앞에서 영원히 초조해 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얀데레는 대개 그것이 그들의 최선의 이익이라고 믿으면서 애인의 행복 방정식에서 자신을 배제할 것이다. 대개 얀데레는 이러기 전에 애인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겠지만, 자기가 한 일을 설명하고, 애인에게서 사라졌으니 지금 상황에서 더 나아질 것이라고 믿는 모든 방법들을 적은 쪽지를 남길 것이다.

5.9. 동정어린 얀데레 [편집]

동정어린 얀데레는 의심할 여지 없이 악역이라고 부를 수 있는 유일한 비극적인 얀데레로, 종종 살상형 얀데레와 조종하는 얀데레의 많은 특징을 공유한다. 그러나 이런 종류와는 달리 이 얀데레는 훨씬 더 동정적이고 인간적인 성격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져다 준 고통을 깨닫기만 한다면 구원의 방주에 올라타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캐릭터를 쓸 때 명심해야 할 한 가지는, 독자가 이 캐릭터의 죽음을 외쳐서는 안 될 수도 있지만, 또한 이 얀데레가 이기기를 바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얀데레가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훨씬 더 인간적이긴 하지만, 여전히 이야기의 악역이고, 여전히 실패할 운명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동정심이 갈지라도,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은 여전히 잘못되었고, 여전히 성공하도록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동정어린 얀데레의 정말 중요한 한 가지 측면은 이 얀데레가 전형적으로 대부분의 다른 종류의 얀데레만큼 많은 사람들을 죽이지 않는다는 것이고, 중요하거나 호감 가는 인물을 성공적으로 죽이지 못할 것이 확실하다는 점이다. 독자들이 이 얀데레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어떤 동정심도 죽일 수 있는 한 가지 확실한 행동은 이 캐릭터가 순전히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다가가기 위해 더 호감 가는 인물을 살해하는 것이다. 결국, 누가 얼마나 큰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만약 얀데레가 당신이 아끼는 사람을 죽였다면, 얀데레가 살기를 원치 않을 것이다. 이 얀데레들은 가장 비극적인 얀데레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이지만, 공포스러운 얀데레보다는 훨씬 덜한다.

대부분의 경우, 애인에 대한 이러한 캐릭터들의 감정은 짝사랑이다. 애인은 얀데레와 친한 친구일 수도 있고, 함께 일했을 수도 있고, 또는 이야기가 시작될 무렵에는 강박관념이 있는 사람이 되기 전에 일종의 멘토-학생적 관계를 맺었을 수도 있지만, 많은 경우, 애인은 그 얀데레에 대해 낭만적인 감정을 갖지 않다. 결국, 얀데레의 감정이 어떤 식으로든 보답된다면, 얀데레가 이야기의 과정을 이어받는 어떤 극단적인 행동도 필요치 않을 것이다.

물론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얀데레와 애인이 관계를 맺고 있다면 그들의 얀데레 경향이 편집증과 거대한 자기 혐오의 결합에서 비롯될 것으로 기대하라. 그러면 얀데레는 애인이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할 수 없고, 지금까지의 행동이 전부 연기였거나, 아니면 아마도 연민으로 이루어진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이것은 얀데레가 다른 사람을 그들 자신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보게 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평생을 두고 쌓아온 사람이 이런 사람들 중 한 명과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그들이 편집증에 걸리지 않을 리가 없다. 따라서, 그들은 전형적으로 이 인물을 자신의 것으로 유지하기 위해 과감한 최후의 수단을 취하게 될 것이다.

종종, 이런 이야기들은 얀데레 캐릭터가 자신이 애인에게 준 고통을 깨닫고,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와 행복해지라고 애인을 떠나보내는 것을 선택하는 것으로 끝날 것이다. 후에, 이런 얀데레는 대개 부상, 영웅적인 희생, 또는 자살 때문에 죽게 된다. 어찌되든 이 캐릭터가 진정 참회할 수 있는 수단은 죽음뿐이며, 그 죽음은 얀데레가 기꺼이 그들의 사랑을 포기했던 것처럼, 그들의 삶을 기꺼이 포기했을때 찾아와, 행복해지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6. 여러 명의 얀데레 쓰기 [편집]

얀데레가 여럿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고자 할 경우, 보통 2가지 경우의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 바로 두 얀데레가 서로를 사랑하고 있는 경우나 한 사람의 마음에만 화답해줄 수 있는 사람을 두고 두 얀데레들끼리 싸우는 경우이다. 첫번째 방법은 매우 쉽다. 두 얀데레가 있고, 서로를 향한 집착 증세를 보이는 것이다. 척 보기에는 흥미롭게 들릴 수 있으나, 이런 방식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에는 큰 결점이 하나 있다: 정말 아무런 갈등이 없다는 것이다.

모든 잘 짜여진 이야기들은 계속 흥미로운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어떠한 갈등을 필요로 한다. 심지어 가장 지루하고 상투적인 로맨스 소설도 관계에서의 부딪힘이나 어느 캐릭터의 목숨을 위협하는 큰 부상을 입는 등 일종의 갈등을 가지고 있다. 얀데레가 또다른 얀데레에게 빠져들게 되면, 기분 좋은 소원 성취는 있지만, 너무나 이상적인만큼 오랫동안 강렬한 이야기로 남아있기 어려울 것이다. 제대로 된 줄거리가 자라날 공간이 그리 많지 않는다.

두 번째 방법은 여러 이유로 인해 상황이 더 흥미로워진다. 우선, 당신이 유쾌한 얀데레 로맨스를 가질 수 있도록 해주며, 또한 우리의 주인공에게 훨씬 덜 맞을 것 같은 또 다른 얀데레의 갈등을 보여준다. 이러한 관계에 대해서 또 다른 좋은 점은, 왜 어떤 사람들은 얀데레를 좋아하는지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왜 얀데레를 두려워하는지 둘 다 알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양쪽 반응의 이유를 추측할 수 있게 해준다.

또 하나 고려해야 할 것은 그것이 어떻게 우리가 이런 얀데레들의 유사점을 볼 수 있게 하는가에 관한 것이다. 이 얀데레 중 한 사람은 상대방에게 자기 자신의 일부분이 비쳐지는 걸 보기 시작할 수도 있고, 자신의 성향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당히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지도 모르겠다. 다시 말해, 더 악랄한 얀데레가 보다 호감가는 얀데레에서 그들의 본성과 소유주의적 성격, 그리고 질투가 억제되지 않은 것과 비슷하게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더욱 자애롭고 호감이 가는 얀데레의 과보호적인 본성을 좋은 용도에 두는 경향 또한 존재한다. 아니면 당신은 지나치게 편집증적으로 보이는 캐릭터를 취해서 이런 행동들을 훨씬 더 도움이 되는 어떤 것으로 바꿀 수도 있다. 이것은 그들의 연인을 훨씬 더 위험한 스토커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더 위험한 얀데레가 그들의 집착의 대상에 도달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두 사람이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서로 앞지르려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아주 흥미로운 상황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런 종류의 상황들은 아주 흥미로운 사고 실험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사람들이 “이 미친놈 둘이 서로 스토킹하기 시작하면 어떨까?”, 혹은 “한 사람이 자신의 전부를 원하는 두 명을 가지고 있다면 어떨까?”와 같은 새로운 생각들을 이리저리 파헤치기 시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같은 이야기에 두 얀데레를 넣는 것은 잘만 하면 여러 가지 다른 흥미있는 가능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

7. 전형 조합하기 [편집]

얀데레 캐릭터를 쓸 때, 얀데레 하나로만 밀고 나가면 매우 빨리 지루해질 것이기 때문에, “얀데레”만이 그들의 유일한 성격 특성이 아니라는 것은 중요하다. 나중에 얀데레의 캐릭터를 더 탄탄히 다질 수 있는 다양한 방법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지만, 그들에게 더 많은 개성을 주고 그들의 성격을 더 기억에 남도록 만드는 한 가지 쉬운 방법은 얀데레를 또 다른 “데레” 타입과 결합시키는 것이다.

우선, 가장 쓰기 쉬운 것은 단데레(부끄러워하는 데레) 얀데레이다. 단데레+얀데레는 이것들 중에서 가장 쓰기 쉬울 뿐만 아니라, 내성적이고 수줍음이 많은 사람들이 대개 집착하고 집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가장 현실적인 것들 중 하나이다. 이와 같은 등장인물들은 대개 이야기가 매우 조용하고 초조하게 시작되며, 책에 얼굴을 숨기고 전염병 같은 사람들을 피할 것이다. 이런 등장인물들은 종종 이러한 생활 방식 때문에 매우 외로울 것이고, 아마도 매우 낮은 자존감을 가질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충족하고 나면, 필요해지는 것은 그 얀데레가 진정한 관심을 보이는 한 사람이면 되고, 강박관념은 매우 빠르게 촉발될 것이다. 결국, 만약 당신이 그닥 긍정적인 소통을 하지 않았다면, 다른 사람이 처음 다가왔을 때, 당신이 그것에 집착하게 될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가장 만들어내기 어려운 츤데레 얀데레가 있다. 이 두 아이디어는 서로 거의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러한 개념은 보통 코미디에 가끔 사용된다. 이런 종류의 캐릭터는 보통 츤데레와 같은 역할을 한다. 이 얀데레는 연애에 돌입하기 전에 그들의 사랑을 부인할 것이고, 여전히 그 관계 동안에 애인을 약간 조롱하고 때로는 차갑게 대할 것이지만, 그 캐릭터는 여전히 그들의 애인과 이야기하는 다른 사람들을 질투하게 될 것이고, 여전히 애인을 스토킹할 가능성이 있다. 츤데레+얀데레 조합의 경우 보통 그들의 집착을 숨기기 위해서 이렇게 행동하는데,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본성을 알게 되면 소름끼치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마지막으로 쿨데레 얀데레. 이 등장인물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감정이 없어 보이고, 사랑하는 사람과 가까이 있지 않을 때는 종종 그 속이 완전히 비어 있다. 이런 등장인물들은 대개 애인 앞에 있지 않을 때 동기부여가 되지 않고 무관심하며, 종종 애인을 그들이 하는 모든 일에 대한 동기부여로 이용한다. 이 얀데레의 강박관념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겉으로 보기엔 별로 감정적이지 않고, 때때로 닿을 수 없을 것처럼 보일 수 있다.

8. 상세/배경 설정 [편집]

얀데레 캐릭터를 만들어낼 때에는 그들을 얀데레로 취급하기 이전에 캐릭터로서 취급해줘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라. 물론, 얀데레가 당신의 주인공/작가의 대역한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게 유혹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얀데레가 여전히 한 명의 사람이라는 것을 명심하라.

최근에 읽은 많은 얀데레 이야기들은 이것을 완전히 얼버무리면서, 또 다른 아야노 아이시(얀데레 시뮬레이터 여주인공) 짝퉁을 만들었고, “널 만나기 전까지 난 감정을 느낄 수 없었어”를 왜 이 캐릭터가 그러는지에 대한 약한 핑계로 사용되어 왔다. 이런 변명은 때때로 통할 수는 있지만, 자주 사용하는 것은 그저 게으른 글쓰기에 지나지 않는다.

아시다시피, 현실에서의 강박 관념은 단지 하룻밤 사이에만 발전하는 것이 아니며, 분명히 아무 이유 없이 발전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얀데레”라고 생각하는 사람 모두는 자신이 얀데레라는 걸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들이 자신의 외로운 삶에 처음으로 들어온 사람이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인지도 모르고, 아마도 그들이 자기의 인생에서 어두운 시기에 다가와주었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집착이 자신을 움직일 무언가가 없이 그냥 전개된 것은 아니다.

얀데레 캐릭터를 만들 때, 그들이 이 사람에게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가 그들의 성격에 맞는 것인지 확인하라. 정신병이 있다며 어느 정도 변명할 수 있지만, 그들은 여전히 초기에 그 강박관념을 불붙일 무언가가 필요하다. 물론, “넌 나를 괴롭히는 사람들로부터 보호했어, 그래서 널 사랑해”보다 더 현실적인 것을 골라야 할 것이다. 그건 다른 창작물들에서 질리도록 우려먹었으니까.

자기 자신을 얀데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무엇이 과거에 당신의 강박관념을 야기시켰는지 생각해 보는것이 좋다. 당신이 어떤 사람에 대해 그렇게 느끼도록 만든 것은 무엇이고, 그 사람들이 당신으로 하여금 그들 주위에 당신의 전 생애를 만들어가고 싶게 만들기 위해 무엇을 했나? 만약 당신한테 얀데레적인 행동에 대한 실제 이야기가 없다면, 당신은 좀 더 창의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뒷이야기는 시작에 불과한다. 물론 끔찍한 가정생활, 외로움, 불안감, 어떤 종류의 정신질환, 또는 어떤 친절한 행동들은 모두 누군가에 대한 집착을 발전시키는 데 한몫을 할 수 있지만, 이 사람이 나타나기 이전에도 얀데레가 살아있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얀데레의 사랑은 지금의 삶과 모든 목표를 규정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사랑이 나타나기 전에 그 얀데레는 어떤 사람이었나? 그리고 그 사랑이 지금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당신의 얀데레가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상호작용 하느냐는 것이다. 물론, 그들의 집착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들을 아웃사이더로 만드는 것은 쉽고, 집중해야 하는 다른 등장인물의 양을 최소화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비현실적이기도 한다. 물론 친구가 많고 엄청나게 인기 있는 캐릭터를 만들 필요는 없지만, 사랑하는 사람 말고 적어도 한 명의 가까운 친구를 당신의 캐릭터에게 주는 것은 정말 재미있는 일을 만들 수 있다.

얀데레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한 한 가지 좋은 연습으로는 얀데레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반응하는지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써보는 것이 있다. 굳이 이야기 속으로 들어갈 필요는 없지만, 가상의 상황들이 어떻게 반응할지를 아는 것은 당신이 얀데레 이야기에서 설득력 있는 상호작용을 만드는데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가상의 상황들이 여러분의 머리 속에서 진행되게 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9. 집착 [편집]

얀데레의 집착 대상은 무엇이 그들을 얀데레로 만드는지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집착이 어떠한 방향으로 보여지는지에 관계없이, 그것은 얀데레가 과하게 집착 증세를 보여 작중에서 모든 행동을 하게 만드는 요소이다. 따라서, 얀데레가 사랑하는 것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아는 것은 얀데레 자체를 만드는 방법을 아는 것 만큼이나 중요하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당신은 얀데레를 어떠한 비유 이전에 사람으로서 생각해야 한다. 그들은 얀데레를 만나기 전에도 삶을 살아가고 있었고, 결국에는, 삶이 얀데레가 만드는 영향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시로, 공포스러운 이야기에서는, 얀데레에게서 사랑받는 사람은 이미 진행중인 관계 등으로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이는 얀데레가 “경쟁자”를 제거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신경쓰는 모든 것을 앗아가버리게 하여 독자들이 이 캐릭터가 살아 있으면 안 된다고 느끼며 죽음을 원하게 만들 기회를 준다. 비슷한 예로, 얀데레가 조금 더 영웅적이거나 사랑스럽게 보여지는 이야기의 경우에는, 이 캐릭터가 외롭고 침울하다는 설정을 붙여주는 것은 얀데레가 주인공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줌으로서 독자들에게 사랑스럽게 다가오도록 하는 것을 도울 수 있다.

물론, 이미 했던 말을 반복하는 것이긴 하지만, 집착은 이유 없이 갑작스럽게 나타나서는 안 되며, 얀데레의 집착 대상을 만들어낼 때에는, 그들이 이 대상을 왜 좋아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얀데레는 그 대상을 어떻게 보고 있으며 무엇이 얀데레를 미치도록 할까? 제가 배경/상세 문단에서 말한 것처럼 대화할 대상이 필요할 때 그 사람과 대화하게 되는 것이나 어떠한 외부적인 위협을 극복하도록 도와주는 것과 같이 다양한 답변이 있을 수 있다. 때로는 이는 그 사람이 얀데레에게 약간의 관심을 보여 외로움과 절박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달라붙게 되었다는 것만큼이나 간단한 것이 될 수도 있다. 이들의 얀데레가 자신에게 다가오게 하는 행동이나 태도가 뭐가 되든, 그것은 잘 정의되어야만 한다는 점이다.

이야기의 분위기와 당신이 만들기로 결정한 얀데레 부류에 따라 집착 대상자의 얀데레의 집착적인 태도에 응답하는 방식은 달라질 것이다. 만약 얀데레 캐릭터가 조금 더 긍정적이게 보여져야 한다면, 집착 대상자는 처음에는 두려움으로 답하겠지만, 이후에는 얀데레 캐릭터에게 조금 더 따뜻하게 다가오며, 굳이 사귄다고 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친구 정도는 되어줄 수 있겠다. 반면에, 만약 얀데레 캐릭터가 공포심의 근원이 되어야 한다면, 집착 대상자는 두려움과 분노로 반응해줄 것이며, 얀데레 캐릭터가 얼마나 끔찍한 악역이냐에 따라서 아주 조금의 동정심까지도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10. 경쟁자 [편집]

많은 작가들이 얀데레의 ‘경쟁자’를 매우 비호감적으로 만들거나 아무런 개성도 부여하지 않는다. 잘 만들어진 경쟁자는 지루하고 클리셰 가득한 지루한 얀데레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않고 이야기가 더 복잡하고 흥미진진하게 되도록 할 수 있는 만큼, 이는 상당히 답답한 일이다.

공포물을 만들어낼 때, 얀데레의 경쟁자는 독자들이 얀데레에게 반감을 가져야 할 이유를 가장 잘 보여줄 존재가 된다. 정신적으로 안정적이고, 일반적으로 말해서, 잘 만들어진 경쟁자는 얀데레의 조종하려는 태도와 상반되는 사랑스럽고 친절한 태도를 보여준다. 그들은 건강하고 사랑스러운 관계와 폭력적이고 달갑지 않은 관계를 대조하기 위해 사용된다. 이상적으로, 경쟁자들은 얀데레보다 더욱 호감적이여야 하며, 독자들이 경쟁자가 얀데레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기를 바라게끔 해야한다.

경쟁자는 보통 이야기의 대부분에 있어서 자신이 경쟁자인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그들은 아마 미묘한 신호들이 그들을 위협한다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이러한 위협들을 누군가가 자신을 죽이고 사랑하는 사람을 앗아가려는 것을 눈치챌 때인, 이야기의 절정에 가까워질 때까지 발견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 봐왔던 경쟁자가 자신이 한 명의 정신질환자의 사랑의 경쟁자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경우는 작중에서 경쟁자가 주인공이거나 또다른 얀데레인 경우 뿐이었다.

만약 이야기를 더욱 가망없고 불안하게 만들고 싶다면, 경쟁자를 주인공으로 만들어라. 이는 그들의 생존이 더욱 불확실해지고, 그들이 더욱 많은 고문을 겪도록 만든다. 결국에는, 그들이 단순히 관계와 생존에 동의할 수 있는 만큼, 이는 얀데레의 집착성 측면에 있어서 매우 쉬워진다. 생존이 보장되어 있지는 않지만, 절대로 경쟁자이기 때문에 어렵다는 것은 아니다. 경쟁자들은 일들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대한 여부와 관계없이 실질적으로 ㅈ되도록 되어있으며 (실제로 원문에서 이렇게 서술한다), 얀데레에게 순종적인 태도를 보여줌으로서 얻을 수 있는것은 더 빠른 죽음 뿐이다. 따라서, 그들은 살해당하지 않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해야한다. 그들의 상황은 훨씬 더 절망적이고, 그리고 이 경우에는, 더욱 흥미진진해진다.

얀데레의 경쟁자를 또다른 얀데레로 만들어버리는 것 또한 가능하며, 이런 경우 당신은 다른 더욱 사악한 얀데레가 경쟁자의 약점들을 들춰내려고 하는 모습을 만들어낼 수 있다. 얀데레 경쟁자마저도 건전하지만 약간 집착적인 관계를 그려내지만, 다른 얀데레에 의해 그들의 약점들이 훨씬 나쁜 방향으로 비춰지게 되면서, 둘의 비슷한 점들이 경쟁자를 끝없이 고문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이는 캐릭터 개발의 방법으로 작용하면서, 그들이 새롭고 끔찍한 그들의 질투와 강한 소유욕을 보여주게 한다. 하지만 끝으로는, 여전히 경쟁자가 더 안정적이고, 적대자의 더 폭력적이고 지배적인 모습과 대조될 건전한 얀데레적 관계를 보여준다.

경쟁자 캐릭터를 만들어낼 때 피해야 하는 것은 정당한 이유 없이 경쟁자를 비호감적인 인물로 만드는 것이다. 만약 얀데레 캐릭터가 악역이여야 한다면, 경쟁자가 비호감적이게 될 경우 독자들은 그들이 천하다고 생각해 그들이 누구고 무슨 일을 겪게 되는지를 전혀 신경쓰지 않게 될 위험이 있으므로, 경쟁자를 비호감적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물론 모든 인물에게 약간의 결함을 주어 인물들을 인간적이게 만드는 것은 거의 항상 좋은 일이지만, 이러한 결점들은 인물들에게 살을 덧붙여주는 것일 뿐, 이 요소들이 인물들을 매우 혐오스럽게 만들어 독자들이 어느 살의적 정신질환자가 죽이는 것을 옹호하게 되어서는 안 된다.

11. 풍자와 비유 [편집]

의도적이건 아니건, 대부분의 이야기는 작가의 무언가에 대한 관점과 소통을 하게 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들이 아마도 단순한 약간의 여흥 그 이상의 의도로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수 있을지 몰라도, 당신의 세상에 대한 인식 일부에 대한 관점이 당신의 작품 속에 녹아드는 것은 불가피하다. 얀데레의 경우도, 이야기가 단순히 공포스러운 이야기가 되도록 설계되었다 할 지라도, 그들은 ‘사랑’의 관점에 관한 소통을 종종 하고는 한다. 작품의 분위기나 얀데레가 연출해내는 모습과 같은 단순한 것들도, 어떠한 것을 주제로 하는 어느 소설 작품이나 그에 대한 관점을 보여주듯이, 작가의 사랑에 대한 관점을 보여주는 것은 불가피하다.

1850년대 즈음에, 작가들은 당시 로맨스 소설들이 얼마나 포식적인지를 깨닫고 이상적인 스토킹 태도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런 책들이 사랑에 대해서 어떠한 관점을 보여주는지, 그리고 특히 이것이 일반적이고 이상적인 로맨틱한 영역이라 여겨졌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이러한 관계가 얼마나 불건전한지 분석하기 시작했다. 이는 사람들이 이러한 생각을 더욱 정밀한 조사에 놓여지게 하고, 이전에 이상화된 얀데레가 사랑에 대한 해로운 생각을 해체하는 도구로 사용되었을 때처럼, 로맨스화 된 스토킹은 점차 덜 일반적이게 되도록 했다.

얀데레가 종류에 상관없이 집요한 문제점의 상징으로서 사용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주로 사랑에 대한 관점을 만들 때 쓰였다. 그것은 그들이 다른 주제에 대한 의논을 할 때 사용되어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예시로, 얀데레가 남자친구에게 그가 그 얀데레보다 더 나은 사람과 만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상태가 될 때까지 정신적인 분열을 안겨준 내용을 담은, Patrick Roche가 2014년에 공개한 “Couples Therapy”라는 시를 볼 수 있다. 그는 침대에 묶이고, 업신여겨지고, 심지어는 먹는 것까지 제약을 받는, 우울증과의 생활에 관한 명백한 학대 관계와 비교하는데 사용된 것들 모두를 언급했다. 나레이터는 또한 그가 얀데레보다도 그를 더 챙겨줬던 인물인 Zoloft를 보는 걸 제한하기 전까지 얀데레는 Zoloft를 질투했다는 것을 언급했다. 특별히 미묘한 은유가 아니기에, 첫번째 줄에서 그 의미를 바로 드러내지만, 이는 달성하고자 했던 것에 매우 효과적이다.

물론 얀데레를 통해 의논하기 가장 좋은 주제는 사랑이며, 이들은 일반적으로 저자가 취한 관점, 인물이 처해힜는 상세한 상황에 따라 흥미로운 점들을 만들 수 있게 해준다. 예를 들어서, 두 저자가 모두 얀데레를 활용하여 주인공을 향한 헌신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해낼 수 있지만, 이 둘은 완전히 다른 방향을 만들 수 있다. 한 쪽은 등장인물이 그들의 결점에 맞서고 마침내 관계에 전념 할 수있는 방향으로 갈 수 수 있고, 다른 한 쪽은 얀데레를 전체적으로 통제하는 모습으로 묘사하며 일반적인 관계와 결혼생활에 반대되는 부정적인 주장으로서 사용할 수 있다. 당신이 어느 쪽의 의견과 동의하는지에 대한 여부와는 관계 없이, 당신이 둘 중 하나라도 동의한다면, 두 작품 모두 저자의 사랑에 대한 관점에 대해 논할 것이다.

12. 부모로서의 얀데레 [편집]

소설을 작성하는 데에 있어서, 많은 수의 얀데레는 결혼을 하고 남은 인생을 사랑하는 존재와 같이 살겠다는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하지 못했다고 하는 것이 안전한다. 그들은 종종 악해지고, 따라서, 그들은 거의 항상 그들이 등장하는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에, 그들의 집착 대상과 성공적인 사랑을 만들어내는 데에 실패한 채로, 겁만 주다가 추격전 중에 죽게 된다. 이는 얀데레에게 있어 가장 흔한 경우이지만, 항상 그래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더 사악하고 끔찍한 얀데레는 그들과 사귀는 것이 유일한 선택지가 될 때까지 파트너를 온전한 두려움 속에 집어넣어 정신줄을 놓게 만들고 타인으로부터 성공적으로 분리시키기도 한다. 아니면, 얀데레의 집착이 끝까지 무해하다면, 상대방은 자연스럽게 그들을 사랑해줄 수도 있다.

방법이야 어찌되든 결과는 항상 똑같다. 결혼을 하고, 동거를 시작하고, 어느정도 지나서 아이를 갖게 된다. 소설에서 흔히 묘사되진 않지만, 이는 주로 작가가 이를 묘사하는 데에 있어서 어려움을 겪게 되기 때문이다. 아무도 얀데레가 부모로서 어떠한 존재가 될지, 혹은 아이가 어떻게 자라게 될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확고한 답변을 가지고 있지 않는다. 저에게도 확실한 답변은 없다만, 당신이 이야기 속에서 만들어낼 효과들에 따라 달라지는 몇 가지 아이디어라면 있다. 얀데레 캐릭터가 아이를 어떻게 키울지에 대한 질문에 답할 방법은 많이 있다. 이는 당신이 이야기를 어떤 느낌으로 만들고 싶은지, 그리고 얀데레 캐릭터 그 자체에 대해서 어떤 말을 하고싶은지에 따라 결정된다.

당신이 답해야 할 특정 질문 하나는 얀데레 캐릭터가 아이를 어떠한 관점에서 바라보느냐는 것이다. 가능한 답변 중 하나는 그들이 아이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사랑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는 이유로 매우 귀여워해줄 거라는 것이다. 자신의 자녀로 보이지는 않을지라도, 자신과 집착 대상 사이 사랑의 상징으로서 말이다. 이는 자신의 파트너가 자신을 사랑해주고 편집증과 불안감으로부터 벗어나게끔 도와주려고 한다는 명확한 증거로 보여질 것이다. 그러니까, 상대가 자기를 사랑해주지 않았다면 아이를 가지려 했었을까?

또 다른 가능성은, 더 사악하고 불안정한 얀데레한테 사용되는 방법으로, 그들의 아이를 자신의 집착 대상의 애착에 대한 또다른 경쟁자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얀데레 캐릭터의 집착 대상이 얀데레를 공포의 대상으로만 여기고 있을 때 쓰기 좋은 방법이다. 이 얀데레 캐릭터는 자신의 집착 대상자가 아이는 진심으로 신경써주는 반면 자신에게는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얀데레는 아이를 죽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아동학대를 일삼는 존재가 될 수 있다. 이러한 반응은 자연스럽게 독자들이 얀데레 캐릭터를 경멸하도록 하기 위해 사용되며, 정말 잘 먹힌다. 살인과 정신적인 조작은 사람들이 용납해줄 수 있을지 몰라도, 아동학대는 소설에서라도 매우 용납될 수 없는 행동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더 차갑고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얀데레 캐릭터는 아이를 그저 사랑하는 사람 주변에 떠도는 무언가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다. 질투를 하지도, 조금이라도 신경써주지도 않을 것이다. 이러한 부류의 얀데레는 아이한테 매우 태만한 태도를 보이며, 이 불쌍한 아이를 뒷전으로 생각할 것이다.

당연하게도, 이는 얀데레가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이에게 본질적으로 유해하다는 것도, 사랑스럽게 강박적인 개인이 어찌저찌 폭력적인 부모가 될 숙명이 있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얀데레의 강박적인 특성을 유지하는 상태에서 건강한 부모-자녀 관계를 만드는 것은 전적으로 가능한다. 이를 해내는 한 가지 방법은 그들이 아이에게는 ‘과보호적인 부모’로 보여지고, 파트너에게는 계속 열정적이고 로맨틱하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주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원한다면, 얀데레를 좋은 부모로 만들어내는 것은 쉽다. 그들의 아이를 애인의 헌신으로 보고자 하는 성향과 아이가 애인을 자신의 곁에 있도록 해주는 요소라는 믿음은, 굳이 항상 올바른 이유가 아니더라도, 다른 부모가 해야하는 것처럼 아이를 사랑하도록 동기부여가 되어주는 요소가 될 수 있다. 그저 얀데레의 자신의 자식을 향한 사랑이 부모와 자식 사이의 관계에만 정착해있다고 보여주시기만 하면 된다. 그러지 않으면 이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이야기가 될 테니까.

또다른 중요한 질문 하나는 얀데레의 아이가 커서 무엇이 될 거냐는 것이다.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얀데레가 되는 것이 유전적인 요소라고 주장하며 간단하게 그들까지 얀데레로 만들어버리는데, 이는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상당히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이는 완전히 터무니없을 뿐만 아니라 자녀가 그들의 부모만큼이나 집착적이게 변해버리가 되는 것을 더 잘 설명할 이유는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특히나 엿같은 설명이라 할 수 있다.

한 가지 잠재적인 설명으로는, 부모가 서로에게 심하게 집착하게 되어 아이를 완전히 방치해버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으로는 아이는 외롭게 자라며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사랑을 갈망하게 된다. 추가적으로 말하자면, 이런 아이는 당연하게 자신의 부모가 서로를 어떻게 사랑하는지를 보면서 자라게 된다. 그들은 어쩌면 사랑이 삶을 가치있게 만들어줄 수 있는 유일한 요소라고 생각하며 자랄 수도 있고, 이는 그들이 처음 사랑에 빠질 때 위험할 정도로 집착적이게 되도록 만들 수 있다. 물론, 이는 아이가 자라서 얀데레가 되는 이유를 설명할 때 사용될 수 있는 다양한 설명 방식들 중 하나에 불과하지만, 마음에 가장 빠르게 와닿을 수 있는 방법이다.

얀데레가 아이를 가지게 된다는 이야기는, 심지어 잘 짜여지고 매우 현실성 있는 이야기 속에서도, 거의 다뤄지지 않는 주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잘 만들어내기만 한다면, 이는 당신이 매우 무시무시한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해준다. 이를 다루는 것은 이미 비난받을 만한 얀데레가 더 악해지게 하거나, 이미 호의적이고 호감이 가는 얀데레 캐릭터를 더욱 인간적으로 만들 수도 있다.

13. 클리셰 및 흔한 오류 [편집]

당신이 얼마나 오랜 시간동안 얀데레 소설에 전념하고 있었는지에 관계없이, 당신이 몇가지 요소들을 과하게 사용하여 글이 예측 가능하고 게을러보이게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잘 정의되고 알려지는 대부분의 타 서브장르와 같이, 이는 특히 얀데레 소설에서 더 일반적으로 나오는 현상이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주로 같은 캐릭터를 성격만 조금 바꿔서 그대로 따라간다.

예시로, “얀데레 시뮬레이터” 게임의 등장 이후로 탄생한 대부분의 얀데레 캐릭터들은 그들을 ‘인간답게’ 만들어줄 수 있을 감정이 항상 결여된 상태이다. 왜 이 사람이 그들을 인간답게 만드는가, 어떻게 그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전형적 정신질환자의 감정을 제동시켰는가, 또는 이 “인간적으로 느껴진다”라는 애매한 설명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등의 좋은 질문들은 저자에 의해 모두 무시당할 것이고, 설명은 최선을 다해봐야 손짓, 심하면 아예 없을 수도 있다.

오해하지 말라, 당신의 얀데레 캐릭터를 정신질환적으로 만들어버리는 게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일부 공포물에서의 ‘최고의 얀데레’는 그들의 비인간적이고 전반적으로 매우 냉정한 모습 때문에 작품과 잘 어우러진다. 그렇긴 해도, 순수하게 악한 악역도 이야기 속에서 사용될때는 몇 가지의 약점이 있다. 얀데레는 종종 더 복잡한 인간 캐릭터만큼이나 많은 캐릭터 개발을 허용하지 않는 매우 제한적인 캐릭터이다. 더 동정어린 얀데레라면, 그들의 더 인간다운 모습 덕에 다수의 흥미로운 성격 표현과 내부 갈등을 만들어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러한 얀데레 캐릭터들이 살인을 저질렀을 경우, 그들이 저지른 끔찍한 일들에 대해 타협을 보려는 모습이 보여지면서, 그 행동에 대한 그들의 반응은 더 다양해질 수 있다.

제가 특히나 짜증난다고 여기는 얀데레 클리셰 하나는 경쟁자가 항상 끔찍한 사람이게 하는 추세이다. 한편으로는, 얀데레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경쟁자는 죽어야 마땅한 만화같은 악역 괴물로 보이겠지만, 당신이 이야기를 전부 “미치광이의 눈으로 바라보는”식으로 만들 것이 아니라면, 경쟁자가 단순히 사악해서 얀데레의 파트너와 바람을 피우는 1차원적 자기도취자로서 묘사되어서는 안 된다. 만약 갼데레 캐릭터가 악역으로서 활약해야 한다면, 희생자들을 온전한 인간쓰레기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다. 독자가 처음부터 그 캐릭터를 좋아했던 게 아니라면, 그 죽음이 얀데레를 독자로부터 미움받게 하지 않을 것이다.

얀데레 소설에서 알아낸 또다른 점, 특히나 눈에 띄도록 대부분의 로맨틱 얀데레 소설에서 알게된 점은, 집착 대상이 갑작스럽게 스톡홀름 증후군에 의해 조금의 설명이나 믿을만한 과정 없이 바로 사랑에 빠져버리는 추세가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얀데레를 무슨 전염병 피하듯이 피해다니다가, 얀데레 캐릭터의 모든 점을 사랑스럽게 여기고 얀데레의 스토커같은 태도를 그저 귀여운 특성으로 보게 된다. 이렇게 쓰여진 다수의 이야기들이 엉망으로 쓰여진 현실도피적 이야기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만, 그래도 여전히 충격을 금치 못할 정도로 많이 쓰이는 형식이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형식의 요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다. 이미 그 얀데레 캐릭터에게 푹 빠져있는 독자들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하는 것 그 이상도 아니다. 그렇긴 해도 몇 달간의 공포 속에서 살아온 삶, 더 나아가서는 실패했던 한두번의 탈출 시도가 주인공이 갑자기 얀데레에게 푹 빠지게 만들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일부 이야기는 이러한 문제들을 캐릭터의 발달에 관한 문제 걱정 필요없이 시간을 건너뛰는 것으로 때우거나, 주인공이 어떻게 얀데레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보여주고는 한다. 어느 쪽이 되었든, 변화의 이유를 보여줄 충분한 진행이 없다면, 주인공이 갑작스런 스톡홀름 증후군에 걸리는 것은 그저 게으른 글쓰기에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제가 몇몇의 얀데레 소설을 통해서 눈치챌 수 있었던 흔한 오류 하나는 순전히 사악한 얀데레 캐릭터가 로맨틱하게 묘사되는 경우이다. 예시로 당신이 얀데레 캐릭터와 자기반영적이지 않은(이야기 작가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주인공 사이에서 벌어지는 로맨스 이야기를 쓰고싶다고 말해보자. 당신은 얀데레가 주인공을 납치하지 않기를 원하면서도, 직접적인 설명 없이 캐릭터의 얀데레적 모습을 빠르게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찾기를 원할 것이다. 명백하게도, 이를 위한 유일한 해결책은 얀데레가 진행자의 애인을 살해하고도 여전히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보여지는 것이다.

상당수의 얀데레 소설 속 주인공들이 자신이 전혀 본 적 없는 낯선 사람이 자신의 오랜 친구들과 애인을 살해하는 것을 보고도 괜찮아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정말 형편없다는 생각만 든다. 때로는 작가들이 주로 피해자를 어떻게 생각해봐도 죽어야 할 정도는 아니지만 약간 끔찍한 사람으로 만들면서 이를 정당화하려고 한다. 때로는 작가가 주인공의 중요한 다른 한 사람을 바람피우는 자아도취자로 만들고 친구들이 그것들을 애매한, 정의되지 않은 이유로 이용하려 하게 만들 수도 있겠다. 살인에 대한 구실이 주어지지는 않겠지만, 등장인물은 여전히 얀데레를 사랑하고, 모든 “살인”은 그냥 변덕스러운 성격 정도로만 보이는 것이다.

많은 얀데레 소설의 또 다른 중요한 문제는 이야기를 쓸 때 등장인물 모두가 비호감인 이야기를 쓰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보통 얀데레를 이야기의 악역으로 만드는 건 우리가 좋아하는 등장인물을 다치게 하고, 고문하고, 또 죽여서 청중의 시선에서는 얀데레를 더욱 비난할 만 하게 만들기 위함이다. 불행하게도 제가 읽었던 몇몇 이야기들은 이런 요소를 이해하는것 같지 않았고, 대신에 저 중 그 누구의 행동도 폭력적인 죽음을 보장하지는 않는 자기애적 소시오패스로 만드는데, 이러면 이들 중에서 누가 죽었을 때에 그 사람에게 애도를 표하거나 신경 쓰는 청중이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물론 이건 얀데레물에 국한된 건 아니지만, 얀데레물 중에서는 매우 흔한 문제처럼 보인다.

이런 이야기에서, 주연은 종종 끔찍한 사람과 서로에게 속고 속이는 관계를 맺을 것이고, 그 둘이 얼마나 얄팍한 사람인지 보여주는 대화를 서로 내뱉을 것이다. 그리고 나서, 주인공은 집착의 행적이 거의 드러나지 않은, 그리고 곧 그들의 라이벌을 즉시 죽여버릴 얀데레가 주는 관심에 이끌리고, 얀데레가 한 짓을 신경 쓰지 않으면서 얀데레와의 관계가 시작된다. 그러고 매우 짧은 시간 내에, 아무 이유 없이, 주연은 자기 자신이랑 동급으로 쓰레기인 사람과 바람이 날 것이고, 얀데레가 그 사람을 죽이려고 시도하며, 얀데레의 저런 행동은 그 둘이 서로 동급으로 경솔하고 비난받을만하지 않았더라면 저 둘을 좀 더 호감가는 캐릭터로 만들었을 것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당신이 줄거리 내의 아무에게도, 아무 것에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그 중에선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제가 알아챈 최근의 얀데레 소설에 만연한 문제는 등장인물들의 독창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런 얀데레는 기본적인 얀데레 특징 외에는 다른 진짜 개성이 없다. 집착적이고, 끈덕지고, 지나가는 아무나한테나 질투를 하지만, 캐릭터의 기반을 탄탄하게 할 다른 특징이 부족한다. 이 얀데레의 취미가 무엇인지 알아낼 도리가 없으며, 이 얀데레의 세계관, 또는 집착증을 보이기 이전의 삶은 어땠는지 알 수 없다. 이런 캐릭터는 만들어질 때 일순위로 얀데레 라는 특성을 잡아놓고, 캐릭터는 그 다음의 우선순위로 정해진 것이라, 골판지만큼의 개성조차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등장인물은 진짜 인간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라, 프랑켄슈타인에 얀데레를 합쳐놓은 것과 더 닮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전까진 감정이 없는데, 이것에 어떤 말이 되는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아야노 아이시(얀데레 시뮬레이터 여주인공)가 그랬기 때문에 감정이 없었던 것이다. 칼을 수집하고 자기 몸에 상처를 내지만, 이건 작가가 이런 행동이 캐릭터에 적합하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냥 유리(두근두근 문예부)가 그랬었기 때문이다. 이런 캐릭터가 시작부터 나타나는 이야기는 그다지 독창적인 이야기라고 느껴지지 않고, 작가가 그냥 원래 있는 이야기를 이어가려고 하는 못 쓴 팬픽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14. 마지막으로 [편집]

이 포인트를 충분히 강조할 수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지만, 강조해야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등장인물이 아무런 정당한 이유 없이 무작위로 행동하도록 만드는 건 정신병적 증세가 있거나 미쳐버린 캐릭터를 묘사하는 데에 사실적이거나 흥미로운 방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당신의 등장인물이 비이성적이거나 명백하게 불안정한 행동을 보이면 안 된다는 뜻이 아니라, 이런 행동에 납득 가능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정말로 미친 사람은 자기 자신을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얀데레가 행동하는 모든 것들은 자기 자신 속에서 이성적으로 합리화가 가능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