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전 정신적 초월에 파묻혔던 적이 있습니다.


한창 랭보와 짐 모리슨의 사상에 빠져 그 '지각의 문'

이란것을 찾으려 명상을 하곤 했었죠.[비록 지각의 문은 올도스 헉슬리(멋진 신세계의 작가)에게서 비롯된 것이지만 전 짐 모리슨에게 더욱 심취했었습니다.]

정말 빠짐없이 했습니다.


대중교통에서, 자기 전, 샤워하며, 식물에 물을 주며, 지인을 만나며, 등등등


일상 속에 명상을 곁들였습니다.


저는 어떤 일을 할때에 확고한 목적이 있으면 그것에 순식간에 강한 몰입을 할 수 있습니다. 


목적이 확고하다면 일의 효율이 오른다는것은 절대다수에게 해당되는 명제이지만 

저는 그런 특성이 더욱 강했습니다.


그렇기에 명상을 시작했을때, 그 방향을 더욱 확고히 정하고 시작했습니다.

 그렇기에 위와 같은(식물에 물주는 시간 등)의 정말 짧은 자투리 시간에도 명상에 몰입 할 수 있었더랬죠.


그 목적은 다름아닌 육체의 온전한 지배였습니다.

이것 또한 어느 창작물에서 영향을 받은것인데, 꽤나 유명하며 이름을 말하면 다들 아실 것 이라 생각됩니다.


여하간 그곳에 나오는 캐릭터는 명상을 통해 자신의 육체에대한 완전한 지배를 꿈꾸고 있었고 저도 그것을 목적으로..


두근거리는 심장박동

꾸륵거리는 오장육부의 소리

살갖을 스치는 섬유의 느낌

고개를 들면 수축하는 승모근

팔을 엎으면 작용하는 원회내근

숨을 들이마시면 아래로 당겨지는 횡경막

부풀어오르는 폐

숨을 내쉬며 숨결이 콧털을 스치는 느낌


위와 같은 것들을 계속 느끼려고 노력하며 명상을 했습니다.

물론, 저것을 전부 '실제로'느꼈다곤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느낀 그 느낌에는 착각이나 상상의 산물이 일부 섞여있음이 명확하겠죠.

하지만, 그렇다 한들, 그것이 상상이든 착각이든

제 스스로가 그것을 '느끼고' '인지'하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기에 저는 저런 수행에 계속하여 빠져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어느덧 저는 충격적인 경험을 한 가지 하게 됩니다.


언제부턴가, 

위와 같은 명상을 계속하며 세상을 보는 시각, 혹은 평소 느끼는것이 달라졌음을 저는 느꼈습니다.

가장 체감이 강했던건, 아무래도 반사신경이 빨라졌고

육체노동을 버티는 시간이 늘어났던것 이었습니다.


운동을 평소 그닥 하지 않았음에도, 평소엔 받지 못하던 갑작스레 자신에게 던져진 물병을 잡아채는 일이 가능해졌고


노동 혹은 웅동을 할 때에도

몸이 힘들때 바로 포기하지 않고 그 지친 몸을 이끌고 더더욱 오랫동안, 그 일 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상상력 역시 더욱 구체적이게 되었습니다.

자동차 사고가 나서, 저 창 밖의 표지판이 내게 날라와

내 몸을 절반으로 양단한다면, 그 느낌을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좀 더 구체적으로 생생하게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이런것들 정도는 나름 예상했던 결과였습니다.

명상을 하면 할 수록 스스로의 몸에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더욱 예민해 질 것이라 처음부터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런 와중, 말했듯 한 가지 충격을 받게됩니다.


이는 위의 언급했던 지각의 문과 연결된 것입니다.


여느때와는 조금 다른 날 이었습니다.

짬짬히 하는 명상이 아닌

각을 잡고 하는 명상이었죠.


또한 명상의 내용 역시 조금 달랐습니다.



The doors(이하 짐 모리슨이 리더였던 밴드의 이름)의 노래를 랜덤히 틀어놓고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기 시작하였으나

어느순간 그 내용이 완전한 '자유'로 변한것 이었습니다.

머릿 속으로 완전한 모순을 그려내었습니다.


만약 지각의 문이 있다면 그것의 형상은 어떠할까


과연 빛나고 있을까?

 불타고 있을까? 

어두울까?

수중에 잠겨있을지도

어디로든 문 처럼 생겼을까?


푸르른 창공, 구름 몇 점이 떠 있는 하늘 가운데

황금색의 공 모양 손잡이를 가진 순백의 직사각형 나무 문


문 틈새의 순백이 페인트가 벗겨진듯 약간씩 벗겨저 

나무가 드러나있고, 흔한 주택의 문 처럼 

직사각형의 문 안에

사각형 문양이 2×2 형태로 일정히 배치되어 있고


문을 열면 약간 녹슨 황금색 경첩이, 신기하게도 아무른 소리 없이 열리며 약간 금빛을 띄는 새하얀 빛이 내부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문


그것이 지각의 문


내가 최초로 떠올린 지각의 문


여기서부터 저는 공상과 상상으로, 내면적 깊이서부터 지각의 문의 모습을 대여섯개 구체적으로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문득, 바다 위에 떠 있는 불타는 직사각형의 문을 상상했을 때, 저는 한가지 모순을 맞닥들에게 됩니다.


바다위에 불타는 문? 이거 좀 흔한데

지각의 문이라면 그 어떤것과도 다른 형상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 불과 물이 함께 있는건 어떨까?


문의 세로 절반부터는 불타고 있고

그 아래는 바다를 담고있는 문 속에서

노란 말미잘과 해초, 물고기가 보이고


이것도 좀 흔한데


가로를 기점으로 불타고있고, 물로 이루어져 있을까?


이것도 흔한데


물과 불이 함께 있는거..


함께..


본질적으로, 물과 불이 같이 있는 모습.


이것을 떠올리고


상상은 무제한이란것을 깨달은 순간 저는 무언가 머릿 속으로 번쩍이는것이 들어왔다(혹은 빠져나갔다.)라는 무언가를 느끼게 됐습니다.


물과 불이 혼합되는것

증발시키거나 꺼뜨리는 현상이 일어나는것이 아니라,

앞서 문을 위 아래, 가로로 나눈것처럼 단순 파란색 빨간색이 섞여있거나 한 것이 아니라


정말 그 자체가 섞여서, 하나가 되어 

무언가 말로 이루고 형상을 그리거나 일상적으로 상상하는것도 불가능한 무언가가 되거나, 혹은 이루어지는것


존재하는게 불가능 하나 존재하는것


상상의 '무제한'속에서 '존재'하는것


 그것을 저는 봤습니다. 


아니, 봤다는것도 말이 안됩니다. 사실 그냥 느꼈다. 사실을 확인했다. 와 같은 개념에 가까울 따름입니다.


안타깝게도, 그렇게 무언가를 느끼고, 제 안으로 빛이 들어오는 느낌이 시작된지 몇 초 그 느낌을 조금만 더 받는다면

제 머리는 무언가 개념, 존재, 아무튼 양치를 할땐 손을 움직여야한다. 와 같은 상식적이고 당연한 무언가를 깨버리고

무언가 새로운것을 얻었을 것입니다.


다만 그 직전 정말 뜬금없이, 볼이 가렵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해 몸이 멋대로 움직여 볼을 긁음으로써 그 집중을 

깨버렸고


그 빛이 제 안에 머무르기 시작할 무렵 제 손아귀에 그 빛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 일이 일어난지 지금으로부터 대략 2~3년쯤 지났지만

제게 남아있는건 그 빛이 들어오는 찰나의 느낌, 그것도 세월이 지나 풍화되어 그 편린밖에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다시금 명상을 이루고

정신을 갈고닦아, 그 자유를 다시금 만나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