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 향수 나오는 김에 순한 해병 문학 올리고 갑니노~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marinecorps&no=203913&exception_mode=recommend&page=2


작년 말, 해병대를 그만둔 이후로 나는 좌절의 늪에 빠져들고 있었다.


황룡은 그런 나에게 손을 뻗어주었다.


그를 만난 것은 해병을 자칭하는 아마추어 작가들이 모인 해병대 갤러리에서였다.


내가 그곳에 들어간 것은 좌절감이 켜켜이 쌓여 우울증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무렵이었다.


치료의 일환으로 글이라도 써보라는 정신과 의사의 조언을 듣고 나는 해병문학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글과는 거리가 먼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었다.


예술이든, 문학이든 돈이 되지 않는 신선놀음이라고 명문대 경영학도이던, 자랑스런 해병이던 시절의 나는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나는 점점 그것에 재미를 붙여갔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 문장이 생겨난다.


그리고 문장은 계속된다. 계속된 문장이 얽히고 섥혀 끈끈한 전우애를 만들어간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야기는 아무래도 좋았다. 대부분은 형편없는 것이었다.


어쨌든 무언가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텅 비어있던 나에게는 중요했다.


텅 빈 나의 삶에 마구잡이의 이야기들이 쌓여갔다.


소설이란 것은, 글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아이러니다.


해병의 기본조차 지키지 못한 땅깨같은 글을 나는 부끄러워하는 동시에 자랑스러워했다.


그렇기에 해병대 갤러리에서 그것을 보여줄 생각을 했던 것이다.


물론 나의 형편없는 뇌절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황룡은 유일한 한 사람이었다.


나의 형편없는 이야기, 나의 침울한 자의식이 술 취한 자동차처럼 이리저리 추돌하듯 써내려간 이야기. 황룡만이 그것을 ‘마음에 든다’고 이야기한 유일한 사람이었다.


나도 황룡의 글을 읽어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나의 것과는 다르게 황룡의 해병문학은 해병적으로 "모순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해병문학이라 하기엔 황룡의 글에는 전우애에 대한 끝없는 적개심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그것이 바로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문학성이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의 해병문학에 대한 이해도는 고작 그 정도였다.


따라서 황룡에게 들려줄 수 있는 비평도 고작 그 정도였다.


‘기열.’


황룡에게 받은 것을 그대로 돌려주는 것 이상의 표현을 나는 차마 하지 못했다.


어느 날, 황룡은 나에게 실제로 만나보지 않겠냐고 연락해왔다.


그것이 황룡과 나의 첫만남이었다.


마포구의 어느 전우회 컨테이너에서 나는 황룡과 만났다.


우선 나는 황룡이 너무 젊다는, 아니 어리다는 사실에 놀랐다.


사용하는 어휘에서 적어도 나와 비슷하거나 더 높은 기수일 줄로만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황룡은 와인색 공익 근무복을 입고 나타났다.


마포역을 드나들며 질리도록 보아 온, 공익근무요원의 그것이었다.


유난히도 피부가 하얀 남자였다.


나는 어른답지 못하게 당황한 티를 많이 내고 말았다.


30대 남성과 공익의 단 둘뿐인 만남이라니, 썩 건전하지 않게 보일 것이 분명하므로.


하지만 황룡은 조금도 개의치 않은 모습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공익이란 한없이 미개한 생물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공익 갤러리에서 봐 왔던 게시물들이었다.


철없는 시절. 내가 황룡만했을 무렵에는 정말로 단순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었다.


단지 학력, 또는 폭력, 또는 집안의 돈으로 타인을 무시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었다.


황룡은 침착한 모습으로 물을 마시더니 노트를 한권 꺼내서 나에게 건넸다.


그것은 그가 14세 때부터 줄곧 써오던 해병수필들이라고 했다.


단정하고 깔끔한 글씨체가 몹시 인상적이었다.


나는 그것을 어떤 자세로 읽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내용이 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여전히 황룡의 소설은 내게는 너무나 난해했다.


하지만 황룡이 내게 무언가 기대를 걸어오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나는 그것에 부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


황룡이 나에게 이것을 보여준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나에게 듣고 싶은 말이 있어서일 것이다.


지금까지 글을 써온 경험으로 그것만은 알 수 있었다.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황룡의 문학집을 읽어내려갔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황룡이 원하는 말을 찾아낼 수 있을지 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소설집의 마지막 이야기를 읽고 난 다음, 어째서인지 내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감정적인 동요는 없었다.


하지만 마치 열어놓은 수도꼭지처럼 내 눈에서는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나는 몹시 당황하며 냅킨으로 사태를 수습하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터지기 시작한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나는 황룡이 당황했으리라고 생각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우는 내 모습을 보며 황룡 역시 끝도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눈물을 흘리고 있는 사람을 보면 저절로 눈물이 나오고 마는 것이 정공다운 감성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틀림없이 이상한 광경이었을 것이다.


양복을 입은 아저씨와 공익이 마주 앉아 말 한 마디 없이 흐르는 눈물만을 냅킨으로 닦아내고 있는 광경이란.


황룡은 더 이상 나에게 감상을 묻지 않았다.


아마도 그것은 정답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정답을 알고서 정답을 맞혔던 것이 아니었다.


실수로 정답을 맞춰버린 탓에 결국 나는 황룡이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 영영 알 수 없게 된 것이다.


이후로도 황룡은 나에게 종종 연락을 해왔다.


나는 황룡의 연락에 응했다.


우리는 다양한 장소에서 만났다.


황룡의 태도는 언제나 변함없었다.


변화가 생긴 것은 내 쪽이었다.


나는 더 이상 해병문학을 쓰지 않았다.


황룡의 소설을 읽는 일도 더 이상 없었다.


나는 나의 내면을 황룡에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해병 시절, 나의 선임에게 서운했던 것부터, 최근에 해병을 그만둔 일에 대한 것까지.


그런 하나하나의 어두운 이야기들을 황룡 훌륭한 태도로 경청해주었다.


황룡의 의견은 독특했다.


해병대에 넘쳐나는 부조리에 대해 황룡은 긍정도 부정도 아닌 애매한 자세를 가지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황룡이 삶을 살아가기 위한 그 나름의 처세술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황룡에게 나의 어둠을 털어놓으면서 나는 조금씩 멘탈이 회복되어 갔다.


잠도 잘 자게 되었다. 끊었던 약도 다시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나 자신도 자신이 회복되고 있음을 자각하고 있었다. 


어떤 정신의학적 작용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단언할 수 있었다. 모두 황룡 덕분이었다.


내가 황룡에게 고마움을 느끼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는 점점 황룡에게 이런저런 선물들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곤궁하지도 않았다.


적어도 공익이 원하는 물건을 사줄 수 있을 만큼의 돈이라면 있었다.


핸드폰, 신발, 옷...


그 나이대의 정공의 취향을 나는 당연하지만 잘 알지 못했다.


내가 주로 정보를 수집한 곳은 인터넷이었다.


나는 스스로가 놀랄 만큼 열심히 공익들의 문화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그리고 그것을 토대로 황룡의 선물을 마련했다.


던파 레압, 메이플 무기 등.


하지만 황룡은 어떤 선물을 받아도 기뻐하지 않았다.


어떤 것을 주어도 열심히 구한 아이템들은 아이템매니아에 매물로 올라올 뿐이었다.


솔직하게 서운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점차 이해할 수 있었다.


해병의 부조리를 관조하는 사람이라면 호의에도 같은 태도를 보여야만 하는 것이다.


나의 선물이 황룡의 비극을 늦추었는지 앞당겼는지는 이제 와서는 알 길이 없다.


불행이 한꺼번에 찾아오듯 행운 역시 한꺼번에 찾아왔다.


구직 활동을 시작한 나는 취직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일을 시작하면서 황룡과 교류할 수 있는 시간도 점점 줄어들어갔다.


나는 점점 바빠져갔다. 황룡과는 가끔씩 카톡으로 안부를 주고받을 수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어느 날을 기점으로 황룡과의 연락은 완전히 끊겼다.


나는 걱정하지 않았다.


황룡은 나 같은 것보다 훨씬 훌륭한 인간이다.


내가 보지 못하는 것들을 황룡은 어린 나이에도 훌륭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나 전우애 이야기만 쓰던 해병 아저씨에게 저절로 흥미가 떨어진 것이겠거니 생각하고 말았을 뿐이다.


내가 다음으로 황룡의 소식을 들은 것은 부고 소식이었다.


투신이라고 했다.


황룡은 5월의 어느 날 밤 17층이 넘는 호텔에서 아래로 뛰어내렸다.


떨어지며 기둥에 머리를 부딪힌 것이 직접적인 사인이라고 했다.


나는 장례식에 참여했다. 100만원의 두둑한 부조금 봉투를 받으며 황룡의 부친은 연신 고개를 숙였다.


황룡의 장례식은 놀라울 정도로 한산했다.


공익 동료조차 황룡의 마지막을 기리는 이가 없었다.


나는 아무도 먹어주지 않아 식어가는 음식들에 차마 손을 대지 못했다.


동행한 해병대 갤러리의 사람들만이 어색하게 모여 있다가 도망치듯 흩어졌다.


나는 담배 한 갑을 다 태우고 장례식장을 떠났다.


그리고 머지않아 나는 갤러리 사람으로부터 황룡의 유서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컴퓨터로 작성한 그것은 황룡이 죽은 지 3일 뒤에 경찰서로 도착하도록 되어 있었다는 것이었다.


유서에는 황룡이 부친으로부터 받은 끔찍한 성폭행의 역사가 적나라하게 폭로되어 있었다.


황룡이 세 번이나 부친의 포신을 삼켜야 했다는 사실도 적혀 있었다.


나는 황룡의 노트에 적혀있던 그의 전우애에 대한 적개심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업무 중의 일이었다.


갑자기 펑펑 울기 시작한 나에게 동료들이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지만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처음 황룡을 만났던 날처럼 눈물은 멈추지 않고 흘렀다.


나의 직속 상사는 사정을 모르면서도 하루 쉴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하지만 회사를 나온 나는 어디로 가야할지 알 수 없었다.


나는 황룡의 집 주소도 모른다.


사실상 황룡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장례식장에서 부조금을 받던 황룡의 부친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리고 유난히도 하얗던 황룡의 얼굴을 그 다음으로 떠올렸다.


속이 뒤집힐 것처럼 구토감이 치밀어 올랐다.


나는 소주 두 병을 사들고 집에 와서 술은 입에 대지도 않고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다음날 나는 출근시간에 맞춰 6시 정각에 일어났다.


나는 내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사실에 조금의 자기혐오를 느꼈다.


출근할 수 있을 정도로 나는 평상시 그대로였다.


출근길에 상사에게 전화를 걸어 어제 일을 사죄했다.


잘 아는 지인의 부고 소식에 감정이 격해졌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전부 거짓말이었지만 그렇게라도 말해야 납득할 것 같았다.


나는 황룡을 잘 알지 못한다.


어쩌면 황룡은 나를 잘 알았을지도 모르지만.


이 나이를 먹도록 철없는 생물이었던 것은 내 쪽이었다.


어쩌면 철없이 태어난 생물은 몇 살을 먹도록 철이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문학이랍시고 동성애가 남발하는 수준 낮은 글을 쓰는 동안에 황룡은 얼마만큼의 지옥과 싸우고 있었던 것인가.


나는 한층 자기혐오가 물씬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내가 황룡에게 했던 모든 말, 보여주었던 해병문학들, 주었던 모든 것들이 전부 참을 수 없이 역겹게 느껴졌다.


황룡은 이렇게 말했었다.


절망이란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른 주관적인 것이라고.


그 말은 한때 나에게 위안이 되었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자가용은 어느새 회사에 도착했다.


나는 상사에게 고개를 숙이고, 평소처럼 업무를 시작했다.


그렇게 평소와 같은 하루가 흘러갔다.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았지만 하루가 흘러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나는 내가 황룡의 죽음과 비극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있었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나는 철없이 구해지고 말았다.


한 치의 절망의 늪에서 나를 구해주었던 너무 일찍 철이 든 아이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무저갱 저 아래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 사실이 나를 괴롭히면서도 살아가도록 하고 있었다.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직장을 그만두었다.


상사와 팀원들은 붙잡았지만 나는 단호했다.


직장을 그만둔 나는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여전히 형편없는 이야기였지만 쓸수록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이전의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던 것들. 보이지 않았던 것들.


그것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황룡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전우애를 극도로 부정하던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