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4년 전이다. 내가 갓 게이머가 된지 얼마 안 돼서 춘천에 내려가 살 때다.
관악산 필드에 대외게임 하러 가는 길에, 비비탄 한봉지를 하나 사기 위해 일단 전차를 내려야 했다.
용산역 맞은편 길가에 앉아서 비비탄을 연마해서 파는 노인이 있었다.
0.2그램탄을 한봉지사 가지고 가려고 깎아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를 것 같았다.

"얼마 알아보고 왔소?"
"하나에 1만원 아닙니까?"
"하나에 1만5000원이오"
"좀 싸게 해줄 수 없습니까? 다른 곳은 1만원이던데..." 했더니,
"비비탄 한봉지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데 가 사우"
대단히 싸아가지 없는 노인이었다.

다른곳으로 가기엔 시간도 없어 더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연마해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비비탄사출물을 연마통에 붓고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깎는 것 같더니, 날이 저물도록 10바퀴돌리고 20바퀴돌리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만들어놓은 파팅라인만 지우면 다될 건데, 자꾸만 이리저리 돌려 보고 다듬고만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통 못들은 척 대꾸가 없다.
그러더니만 비비탄 한알을 꺼내서 일일이 중량을 재는것이 아닌가.
사실 관악산에서 원정으로 대외전 게임뛸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인제는 초조할 지경이었다.

"무게 대충 맞아도 괜찮으니 그냥 주십시오"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무게가 맞아야 홉업이 잘먹기 그냥 대충 파팅라인만 지운다고 ?업이 먹나!" 라고 버럭 화를낸다.
나도 기가 막혀서,
"그냥 비비탄 파팅라인 하나 지우는데 무어 시간이 그리 오래걸립니까?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다듬는다는는 말이오? 노인장, **** 시구먼, 대외전 한다니까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 사우. 난 안 깎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게임뛸 시간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연마해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형태가 이상해지고 바렐에서 잘걸리니까. 비비탄이란 제대로 연마아야지, 깎다가 놓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아예 비비탄을 코팅시키고 있지 않은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한참을 지난 후에야 비비탄 한알을 들고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다 됐다고 내준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비비탄다.
대외전 시간을 놓치고 뒷풀이에나 가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 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상도덕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전쟁기념관을 바라보고 섰다. 그 때, 그 바라보고 섰는 옆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호지명다워 보이는 것이 부드러운 눈매와 흰 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된 셈이다.
팀에 와서 비비탄를 내놨더니, 팀원들이 잘 연마?다고 야단이다.
마루이탄이나 마루젠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고참 콜렉터의 설명을 들어 보니, 요즘 마루이탄은 금형이 노후화한것도 그렇고 마팅라인이 많이 생겨서 잘못 쓰면 바렐안에서 막혀서 재수없으면 기어가 갈리기 일쑤란다.
본디 비비탄이라는 것이 바렐내경보다 굵으면 총신안에서 걸리고, 조금만 작으면 바렐과 비비탄사이에 틈이 벌어져서 파워로스가 생기고 명중률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비비탄은 질 좋은 프라스틱을 다듬어 바렐에 걸리지가 않는다.
그러나 요새 마루이 비비탄은 금형의 노후화와 품질관리의 미흡으로 파팅라인과 짱구가 많이생겨서 가끔걸린다.
예전에는 비비탄을 연마할 때 반드시 무게 중심은 균일한지 좌우 편차는 없는지, 짱구탄이나 차팅라인 그리고 꼭지가 달렸는지 않달렸는지 일일이 한알한알 직접 보고 봉다리에 담았다.
물론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요새는 금형에서 찍어서 그냥 기계에다집어너 버린다. 금방 연마한다. 그러나 사람이 일일이 손으로 다듬은것 만큼 염마도가 좋치가 못하다.

그렇지만 요새 남이 보지도 않는 것을 몇 시간씩 걸려 가며 계측하고 손으로 연마하는는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중고 전동건만 해도 그렇다. 옛날에는 마루이 전동건을 사면 소장용은 얼마, 게임용은 얼마, 값으로 구별했고, 장롱버전이나 풀옵션은 게임용보다 세 배 이상 비싸다.
장롱버전이란 다른 게임용 전동건서 떼어낸 수명이 다 된 부품이 아닌 신품 부품인 것이다.
눈으로 봐서는 내부 기어가 신품인지 시스테마 옵션인지 게임용 중고품인지 알 수가 없다.
단지 말을 믿고 사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어느 ***가 남이 보지도 않는데 신품 부속을 달 이도 없고, 또 그것을 믿고 세 배씩 값을 줄 사람도 없다. 옛날 사람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생계는 생계지만, 메탈 옵션을 깎는 그 순간만은 오직 원활히 작동하고 성능향상되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국산 비비탄을 만들어 냈다.
이 비비탄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게이머에게 ***, **** 소리를 듣는 세상에서, 어떻게 바렐에서 않걸리고 잘맞는 국산 비비탄이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MRE 3개에 사과맛 맛스타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상경하는 길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검.경에서 모의총포법 단속이 떠서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노인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용산역을 바라다보았다. 푸른 창공에 무너질 듯한 용산역 밑으로 용산견이 잠을 자고 있었다. 아, 그때 그 노인이 저 용산견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비비탄을 연마하다가 우연히 용산역의 마스코트인 용산견을 바라보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무심히 "그랫쿠나 무서운 쿠믈 쿠엇쿠나!" 초난강의 시구가 새어 나왔다. 오늘, 집에 들어갔더니 며느리가 피구공 탄창에 마루이 비비탄을 채우고 있었다. 전에 락카로 칼라파트 칠하던 생각이 난다.
칼라핸드가드 구경한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사이드레일 색깔만 바꿔서 레일만바구면 끝이다. "가스탱크"니, "개구리알 탄창"이니 애수를 자아내던 그 소리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4년 전 비비탄 연마하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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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오영의 방망이 깎던 노인 단편 읽다가 생각나서 들고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