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발!"


질척이는 소리와 함께 쿠리어 페피의 흰 스타킹에 븕은 점이 찍혔다. 진리의 결사가 모인 신전 앞에서 페피는 또 한 번 불경스러운 말을 내뱉었다. 페피가 쿠리어로서 진리의 결사를 드나든 지도 벌써 1년 6개월이 지났지만 스타킹에 튀는 핏방울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익숙해진 것이라곤 신전을 오다니며 쌓여 가는 외마디 진리 모독 뿐이었다.


"씨발..."


오늘치 우편을 우편함에 다 꽂고 난 뒤에 페피의 시선이 다시 스타킹에 떨어진다. 쿠리어 부부의 아이로 태어난 페피에게 쿠리어란 직업은 천직이자 소명이었다. 부모님의 강요나 권유 하나 없이, 페피는 쿠리어가 되기 전부터 스스로를 쿠리어라고 생각했다. 새의 아인족인 아버지의 날개손은 무엇보다 든든해보였고, 자신도 쿠리어로서 그 날개손을 갖게 되리라 믿고 있었다. 그러나 제법 성장이 더뎌지기 시작한 지금까지도 페피의 손에는 깃털이 돋지 않았다. 이제는 더이상 날개손이 자라지 않으리라 생각한 페피는 자신이 '되다 만 쿠리어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 페피에게 머리에 난 깃털과 작은 술이 달린 흰 스타킹은 참새 쿠리어로서의 자존심과도 같은 것이었다. 붉게 상처입은 참새 쿠리어의 자존심을 보며 페피는 한숨을 내쉬었다.


'씨발.'


우편함을 나와 핏물 젖은 복도를 걷던 페피의 눈에 진리의 결사 휴게실이 들어왔다. 휴게실에선 빅토리아와 몇몇 진리 추종자들이 테이블에 둘러 앉아 선지해장국을 먹고 있었다. 빅토리아 앞의 뚝배기에서 한 술 가득 담겨 올라가는 검은 핏덩이를 보자, 페피는 순간 속이 울컥한다. 갈색 머리 참새의 눈에 신전은 뚝배기요, 자신은 선지덩이처럼 느껴졌다. 페피는 문득 전에 있던 지부의 쿠리어 장로와의 일이 떠올랐다. 페피가 진리의 결사 담당으로 배정됐다는 소식이 들리자 전 소속 지부의 쿠리어 장로는 페피에게 붉은 머플러를 선물해줬다. 그때는 그저 잘 어울리는 색이라 골랐다고 했지만, 페피는 어딘가 얼버무리는 듯한 장로의 표정을 이제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동시에 페피는 장로의 사려깊음에 마음 속으로 감사를 올렸다. 피에 미친 자들을 상대하더라도 그 티가 묻어 나지 않는 색... 페피는 장로 직의 의미를 곱씹으며 쿠리어 장로의 현명함을 따라가리라 마음 먹었다.


"오 씨발!"


페피가 지부를 옮기고 나서 얻은 자취방 우편함에 얇고 길쭉한 소포가 하나 꽂혀 있었다. 갈색 우편봉투에 고이 싸인 직육면체를 우편함에서 꺼내자 전 지부의 장로 이름이 쓰여 있다. 페피는 부랴부랴 소포를 들고 자취방에 뛰어 들어갔다. 스타킹을 벗는 것도 잊은 채, 페피는 방 바닥에 앉아 소포의 포장을 벗겨냈다. 페피의 손에 쌉싸름한 향과 함께 거무튀튀한 덩어리가 떨어졌다. 선지와 같이 거무튀튀했지만 이 네모진 덩어리를 보고 페피의 기분이 달큰해졌다. 검은 덩어리에는 페피의 머리깃을 닮은 문양과 함께 문장 한 줄이 쓰여 있었다.


'해피 발렌타인, 페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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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극 느낌으로 쓰려니까 힘드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