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8-3]



훼이지에에게:


할아버지, 내 믿음직스럽지 못한 기억에 따르면, 성함이 이반 이자슬라프였을 거야.

정말 흔한 이름이지, 어디서나 흔하게 보이는 농부이기도 하셨고.

하지만 할아버지께선 스스로를 희생하셨지...


난 가끔씩 생각해, 내가 정말로 다른 이들이 날 위해 희생해 줄 만큼 가치가 있는 녀석일까하고.

알리나는 나랑 같이 움직이고 있어. 일라나는 보통 내게 정말 상냥하지만 가끔씩은 의견이 맞아서 충돌할 때도 있어.

계획은 순조로워.


내 생각에 따르면 가까운 시일 내에, 이 일대의 감염자들은 분명 단결하게 될 거야.

이게 효과가 있기를.


또 할아버지께서도 편히 잠드시길. 할머니를 제외하면 할아버지보다 더 가족같은 사람은 없었으니까.




2월 7일



_





검은 뱀에게서 벗어나고 3년 후




탈룰라: 선생님, 저는......


감염자: 뭐하러 온 거지? 이 옷, 군장교인가? 

감염자: 돌아가! 여긴 이제 아무 것도 안 남았어, 전부 네 녀석들이 뺏어갔다고! 뺏어가지 못하는 건 또 죄다 태워버리고!

감염자: 빌어먹을! 날 죽이러 온 건가? 그럼 죽여! 빌어먹을 악마들 같으니!


탈룰라: 아뇨, 선생님. 전 감염자 조사대가 곧 온다는 사실을 전해드리려고 한 것 뿐입니다.


감염자: 그럼 오라고 하지, 우릴 다 죽이라고 해!

감염자: 이런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의 외딴 곳에서 마을을 지었는데도 오다니! 우리로선 오게 둘 수 밖에 없잖아!


탈룰라: 선생님, 일단은 숨으세요, 제가 얘기를 해볼테니까요. 아니면......


감염자: 네가 누군데? 말했잖아, 너희 귀족 장교들은 어떻게 연기를 하든 결국 우리 목숨을──

감염자: 하, 넌 어쩌면 다를지도 모르겠네, 적어도 넌 우리랑 얘기를 하려고 드니까! 그 녀석들은 보통 말대신 채찍질이라고!

감염자: 어라? 어디 갔지?

감염자: 사라졌어......?

감염자: 뭐야 이건? 하아......우리 목숨도......

감염자: 우리 목숨도 결국 여기까지인가.




감염자 조사대:  자신의 운명을 잘 아는 것도 나쁘지 않지.



감염자: 아......조사대 나리......


감염자 조사대:  ......가난하고 낡아빠졌군. 체격도 작아. 군 광산에 보내도 별로 얻어낼 게 없을 것 같군.

감염자 조사대:  어떻게 죽고 싶지? 화끈하게 아니면 천천히?



감염자: ......나리! 제 모습을 보십쇼, 이 목숨 하나 살린다고 나쁠 것 하나 없습니다!


감염자 조사대:  손에 무기를 들고 있으면서 그런 소리를 하는 건가?



감염자: ......죄송합니다, 나리! 이건 방금 그 녀석을 상대하느라 그런 겁니다! 지금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지만......


감염자 조사대:  감염자는 가축보다 못하다. 가축은 짐이라도 옮길 줄 알지, 너희들은 그저 폐하의 땅을 낭비하는 쓰레기들일 뿐이다!



탈룰라: 왜죠?


감염자 조사대:  ——

감염자 조사대:  넌 또 어디서 나온 거냐.


탈룰라: 머나먼 동쪽으로부터 왔습니다.


감염자 조사대:  그게 무슨......너도 감염자인가?


탈룰라: 네.

탈룰라: 저도 생각할 줄 알고, 말을 할 줄 압니다.

탈룰라: 우리 감염자들도 생사라는 게 있어요, 그런데 당신이 뭔데 우리의 생사를 결정하는 거죠?


감염자 조사대:  무슨!


탈룰라: 우리에게 편안하게 죽을 장소를 줬었다면야 우리도 이렇게까지 분노하지 않았겠죠......


탈룰라: 하지만 고개를 들어 보세요, 감염자 형제들이여! 그의 눈빛, 입, 그리고 웃음을 보세요!

탈룰라: 그들은 우리의 죽음을 결정하며, 우릴 조종하려고 들죠. 어쩌면 우리의 목숨이 정말로 푼돈의 가치일지도 모르죠, 하지만 당신의 목숨은 금화 하나의 가치라도 될까요?


감염자 조사대:  너어!


탈룰라: 당신들이 두려워하는 건 감염자들이 끼칠 피해가 아니에요.

탈룰라: 아니, 전 살면서 단 한 번도 위협적인 감염자라는 걸 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탈룰라: 당신들은 그저 우리의 목숨을 이용하고, 우리의 목숨을 갖고 놀고 싶은 것 뿐이에요!


감염자: 아......!


탈룰라: 형제여, 저들은 과거에 태도가 좋다고 누군가를 놓아준 적이 있었습니까? 누군가가 옳다고 해서 목숨을 살려준 적이 있었습니까?


탈룰라: 아뇨! 저들이 당신들을 살려준 건 단지 당신들을 이용해먹기 위한 거였어요!

탈룰라: 감염자들의 돈이 떨어지고, 땅도 없어지면 저들은 무정하게 감염자들을 쳐냈어요.

탈룰라: 왜냐하면 도시에서 감염자는 살아가지도 못 하니까요!

탈룰라: 우리 감염자들은 어떻게 살지, 어떻게 죽을지 우리 스스로 결정해야 합니다!


감염자: ......!

감염자: 다......당신 대체 누구야?


감염자 조사대:  망할 녀석! 이름이 뭐냐......

감염자 조사대:  황제 폐하의 이름으로! 감히 그런 그릇된 이론으로 백성들을 꾀어 내려 하다니! 지금 이 자리에서 즉시 처결하겠다! 


탈룰라: 형제들이여, 저는 이름이 없습니다. 어떻게 부르시든 상관 없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이름이 필요하시다면, 절 탈룰라라고 불러주시길 바랍니다.

탈룰라: 적들은 제 이름을 알 필요가 없겠죠.

탈룰라: 제 화염이 적들을 태워버릴 거니까요.




___





[R8-3 END]




알리나: 그래서, 그 녀석들 도망치게 둔 거야?


탈룰라: 그래.


알리나: 너랑 같이 안 가길 잘했어, 불로 사람을 태운다니......이 냄새, 또 한 번 맡으면 정말 토할 거 같아.


탈룰라:  알리나, 무리하지 마.


알리나:  난 내 자신의 의지로 널 따라갔던 거야.


탈룰라:  그러니 나도 이 감염자들을 지켜내겠어.


알리나:  아니, 난 지금 부탁하고 있는 게 아니라——


탈룰라:  그건 당연 아니지. 알리나, 네가 없었다면 난 자원과 정보를 모을 시간도 없었을 거야.


알리나:  너랑 통신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야? 괜찮다면 알려줄 수 있을까?


탈룰라:  ——


알리나:  내가 우르수스의 첩자일까 의심하는 거야?


탈룰라:  내가 널 이 일에 휘말리게 만들어도 괜찮을까 생각하고 있어.


알리나:  감염자가 된 순간부터 우리의 삶은 이보다 더 나쁠 수 없을 정도였지.


탈룰라:  연락하고 있는 건 다른 도시의 감염자들이야.

탈룰라:  그들에게서 다른 도시의 이동 루트에 대해 알아보고 있었어, 동토에서 살아남은 감염자들을 도울 수도 있겠어.


알리나:  넌 지금......정말 대단한 일을 하고 있구나.

알리나:  네 그 강렬한 정의감은 대체 어디서 온 거야? 누가 예전에 너한테 가르쳐 준 거야?


탈룰라: 아니.

탈룰라: 내가 받은 교육은 사악하고 정신 나간 거였어. 또 통치의 오만과 권력의 공포로 가득했지.


탈룰라: 난 그것과는 반대의 길을 걷기로 했어.

탈룰라: 내가 그 겉만 번지르르한 껍질을 하나하나씩 벗겨서, 그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귀족 도시를 하나하나씩 부수고, 진실을 모두에게 알릴 거야......

탈룰라: 그 다음 내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할 거야.

탈룰라: 우린 이 대지를 개간할 거야. 우리의 집을 만드는 거지, 우릴 막는 녀석들은 전부 없애버리겠어.

탈룰라: 이 대지에도 분명 감염자들이 속할 수 있는 곳이 있을 거야......마치 이 대지의 많은 곳들이 원래부터 모두의 것이었던 것처럼.


알리나: ......현실적으로 봐, 탈룰라. 이건 너무 머나먼 일이잖아.

알리나: 탈룰라, 네가 이렇게 하면 이 마을은 완전히 부숴지고, 사람들은 갈 곳없이 계속 조사대에게 쫓길 거야.


탈룰라: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았어도 그 마을은 완전히 파괴됐었을 거야.


알리나: 모든 이들이 전사가 될 수 있는 건 아니야. 노인, 아이, 그리고 병든 이들처럼.

알리나: 이런 사람들은 아무리 척박한 땅이라도 의지할 곳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어.


탈룰라: 나도 알아, 알리나. 그래서 우리가 새로운 곳을 찾으려는 거잖아.

탈룰라: 자, 날 따라와, 알리나. 오늘 밤은 머물 곳이 있어.


알리나: 하아......



_



탈룰라: 환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염자: 아뇨, 당신들이 없었다면 저흰 이미 다 죽은 목숨이었을 겁니다. 물론 지금도 죽은 거랑 별 다를 것 없긴 하지만요.

감염자: 처음에 당신을 그렇게 대해서 정말 죄송했습니다, 전 당신을 때리려고도 했었습니다. 모두 제 탓입니다.

감염자: 뭐 마땅히 대접해드릴 것도 남아있지 않네요, 아쉬운 대로 보리죽이라도 드리겠습니다.


알리나: 감사합니다, 사실 대접해주실 필요도 없었는데요.


감염자: 아뇨, 어차피 이것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 정도면 있든 없든 똑같이 얼마 못 버틸 겁니다.

감염자: 마을을 짓고 싶지만 그리 멀어서야......소용 없겠죠. 

감염자: 저흰 달아날 수 없어요. 우르수스는 크지만, 어딜 가든 소용없을 겁니다, 사방에 조사대가 있으니......다른 사람들도 우릴 받아들이지 않을 거예요.


탈룰라: 그렇다면, 저랑 갑시다.


감염자: ......어딜 말이죠? 지금 말입니까?


탈룰라: 지금일 필요는 없습니다.

탈룰라: 생각 잘 해보시고, 만약 정말로 어쩔 도리가 없다면, 계속 살아나가도 싶다면, 저 아니면 제 형제들을 찾아오세요.

탈룰라: 동토 황야의 삶은......정말 힘드니까요.

탈룰라: 하지만 우린 갈 곳이 있습니다, 아직 개발되지 않은 땅을 가지고 있어요, 우린 수확이 가능한 땅으로 떠날 겁니다.

탈룰라: 우리 쪽에는 사람들이 많으니, 그들이 여러 마을에서의 상업 활동을 도울 것이고, 그렇게 되면 수입도 생길 겁니다.

탈룰라: 우린 계속 살아나갈 수 있어요.


감염자: 근데 조사대가 또 오면 어쩌죠?


탈룰라: ——그들과 싸워 이길 겁니다.


감염자: 네?

감염자: ......방금 뭐라고 하셨죠?


탈룰라: 저도 할 수 있고, 당신도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방금 제게 무기를 겨눈 건 옳은 선택이었습니다.

탈룰라: 어떤 이들이 우릴 약탈하려 한다면, 우린 단결하여 그들을 해치울 겁니다. 감염자에게는 그럴 힘이 있어요.

탈룰라: 우리 감염자들은 천천히 삶을 되찾을 겁니다.


탈룰라: 빵, 그리고 불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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