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RNING : 고립화 시퀀스 가동 실패

99 번째 시퀀스 가동 시도 실패

남은 시도 횟수 : 1

100 번째 시퀀스 가동 시도 준비 완료

100 번째 시퀀스 가동 시도

……………

WARNING : 고립화 시퀀스 가동 실패

100 번째 시퀀스 가동 시도 실패

남은 시도 횟수 : 0

모든 시도 횟수 소모로 인한 고립화 시퀀스 폐기

폐기 중…

……………

폐기 완료

최우선 순위에 있는 시퀀스의 폐기로 인해 차순위에 있는 시퀀스를 가동

가동 중…

……………

가동 완료

CAUTION : 극히 제한적인 부분에서만 시퀀스 가동이 완료됐습니다.

해금이 될 잠재적인 위험이 존재하니, 계속되는 관찰이 필요합니다.

■■■ 시스템 임의 설정 중…

……………

설정 완료

설정된 시퀀스 약자 : ■■■, ■■■, ■■■■





**





…물소리가 들린다.

비가 내릴 때 넘치도록 불어나 우뢰와 같은 소리를 내는 세찬 강물의 소리도 아니지만 좁은 틈새 사이로 졸졸 흘러내려가는 시냇물의 소리도 아니다.

그저 한 없이 떠내려가, 언젠가 바다에 도달해 끝내는 짠내를 머금을 한 강물의 여정이, 아직은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황혼기를 목전에 두고 있다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 정말 간단히 요약하자면, 난 어떤 강의 중류에 있다.


"죽을 뻔 했네…."


난 그저, 내일을 맞이하기 위해서 침대 위에 몸을 뉘여 잔 것 뿐인데.

비록 내일도 톱니바퀴처럼 반복되는 삶이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뻔히 들면서도, 그래도 내일의 삶을 맞이해볼려고 잔 것 뿐인데.


"씨발… 너무 추워…."


심지어 내가 깬 곳 마저 기후가 추운 장소여서 그런지 몰라도 물에 젖은 옷이 피부에 닿자 그대로 냉기가 나를 자비없이 두들겨 패고 있다.

정말이지, 이곳에 날 떨군 놈은 그야말로 악질 중의 악질일 것이다.


'일단, 따뜻한 거라도….'


그럴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일단 확인을 안 하는 것 보다는 낫겠지' 하는 심정으로, 나는 내 옷의 주머니란 주머니는 다 뒤졌다.

그런데 내 왼쪽 바지 주머니에서 뭔가가 잡혔고 그걸 꺼내 확인한 순간, 나는 기쁨과 동시에 의아함이 밀려들어왔다.


'지포 라이터? 불은 필수 있겠어. 왜 내 바지 주머니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당장 몸을 따뜻하게 할 수 있는 여러 방법들 중 가장 간단하고도 편안한 수단이 내 바지 안에 들어와 있음에 기묘한 안심을 경험한 나는, 이제 다음으로는 여기가 어딘지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주위의 풍경이 너무 이질적이라 그런지 내가 떨궈진 장소가 우리나라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내 마음을 물드기 시작했다.


아니 딱봐도 내가 떨궈진 장소에서 조금 떨어진 곳, 그러니까 눈으로도 관찰이 가능한 가시 거리 내에서 우리나라에 세워진 건물 양식과는 확연히 다른 건물이 내 눈에 띄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조금 뒤, 저 건물의 양식과 정체를 난 읽어냈다. …러시아에 있는 아파트인 꼬뮤날까와 흐류쇼프까가 섞인 양식의 건물이다.


'……미친.'


그러니까, 난 거의 자정 쯤에서야 잤는데 다음날 아침에 깨어보니 어느 강에 침수되어 있었고 간신히 강을 빠져나와 주위를 둘러봤는데 여기가 러시아라는 진짜 말도 안되는 상황에 처했다는 것이다.


"…이게 말이 돼?!"


난 허공에 소리를 질렀지만, 다행히 주위에는 아무도 없기 때문에 내 황당함을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순식간에 여러 궁금증이 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왜 난 강의 중류에서 허우적 거렸던 거지?

왜 난 지금 물에 젖은 생쥐 꼴로 있는 거지?


아니. 그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해.


그래. 이를테면, 누가 날 여기까지 끌고 온거지?

왜 끌고 온거지? 무슨 이유가 있을 것 아닌가.


아니야, 이것 보다도 더 근본적인 질문이… 그래, 찾아냈어.


…어떻게 여기까지 끌고 온거지? 시간 상으로는 분명 불가능할 정도의 거리일텐데.

거의 자정 쯤에 잔 것까지는 기억이 난다. 그리고 지금은 해가 중천 까지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는 떠있기 때문에 적어도 9~10시간 미만이 걸려 여기에 도착한 다음, 날 떨구고 간 것이다.

자다 깨니 다음 날에 일어났다는 웃기지도 않는 상황은 집어치우자, 사람은 정말 심하게 기절했거나 일주일 정도 잠도 자지 않고 야근을 했다가 이제야 잠자리에 들었다는 극한 상황이 아닌 한 그 정도의 시간을 자지는 않는다.


그럼 저절로 다음 궁금증에 이어질 터다.


'어떻게 그 시간 밖에 안 걸리고 여기에 도착 할 수 있던 거지? 그리고 어떻게 날 깨우지 않고 여기까지 옮긴거지?'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곤히 잤다는 말이 아니면, 도저히 현실에서 이뤄질 수 없는 일이 지금 여기에서 일어난 셈이다.

하지만 난 그 때 아무리 피곤해도 누가 날 자는 사이에 납치를 시도했다면 곧장 일어나 그 납치범의 면상을 두들겨 패 줄 수 있을 정도로 그렇게 심히 피곤하진 않았다.

결론은 도돌이표가 되어 다시 돌아왔다. 아무 결론도 내지 못한 채로 출발점에 다시 돌아왔단 소리다.


'…잠시 생각은 집어치우자. 지금은 살아 남는게 먼저니까.'


정말 아무런 단서나 여지 조차도 없이 여기에 떨어졌지만, 그래도 일단은 시간을 들여 주변에 무엇이 있나를 관찰하면서 옷에 젖은 물기를 조금이나마 대충 짜보려고 했는데…


'…이 옷은 또 뭐야?'


난 분명 그 때 정장을 입은 채로 잠이 들었다. 좀 전에 심히 피곤하진 않았다고 하지만, 귀차니즘이 문제였다. 그 귀차니즘 덕분에 내가 무슨 옷을 입고 잤는지 바로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무슨 PMC(민간군사기업)에서나 입을 법한 군복을 입고 있다.


'…나 어제 대체 뭐한거냐?'


이쯤되니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조금 전에 생각한 대로 일단은 살아 남는게 먼저다.

나는 옷의 물기를 할 수 있는 대로 다 짜낸 후, 눈 앞에 보이는 건물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 곳이 지옥으로 들어가는 길이자, 새로운 인연을 만나는 곳이라는 것 조차도 모른채.


연재 주기 극악이지만 암튼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