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에 익은 파도 소리도.

 

 그날 들었던 너의 노랫소리도.

 

 전부 똑같이 느껴졌다.

 

 다정하고.

 

 달콤하고.

 

 따듯하게.

 

 그것이 너무나도 무서웠다.

 

 

 01

 

 

 사각사각.

 

 “……빌어먹을.”

 

 난 욕설을 내뱉으며 정신을 각성시켰다.

 

 보이지 않는 어둠 속.

 

 저 절지동물이 기어 다니는 듯한 소리를 들으며 눈을 뜬 아침은 매번 같았기 때문이었다.

 

 코끝에 감도는 바다 비린내.

 

 귀에서 사라지지 않는 끔찍한 파도 소리.

 

 그리고 희미하게 들려오는 저 에기르어까지.

 

 “…….”

 

 당장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도 잠시, 이제는 물에 젖어 무거워진 마음이 빌어먹을 소금기 가득 찬 몸까지 무겁게 만들고 있었다.

 

 아니, 그렇지 않은가?

 

 이렇게 계속 도망쳐 봤자 뭐가 있는데?

 

 어차피 바닷속에 잠겨버린 미친 세상인데.

 

 끼이익─

 

 잠시 생각하는 사이 옆으로 눕혀진 갑판에 있던 녹슨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처벅. 처벅.

 

 그리고 마치 물에 흠뻑 젖은 헝겊 더미가 썩은 복도를 걸어오는 듯한 소리가 이어진다.

 

 “♬~.”

 

 가까워지는 콧노래에 지금껏 도망가지 않고 버려진 선박 안에 숨죽이고 있던 것이 미칠 듯 후회되기 시작한다.

 

 그래. 살기 위해 도망친 것이 아니라, 저 빌어먹을 것을 안 듣기 위해 도망치던 거였지.

 

 쿵쾅쿵쾅

 

 심장은 뛰고 호흡은 거칠어지지만,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과도 같은 사각거리는 소리와 파도 소리는 사라지지 않고 커지기만 하고 있다.

 

 쏴─

 

 처벅. 사각. 처벅. 사각.

 

 세상천지에 이보다 끔찍한 악몽이 있을까?

 

 때론 다섯 갈래로, 때론 수십 가지로 퍼져만 가는 온갖 생물들이 몸부림치는 소리.

 

 처벅─

 

 구역질 나는 그 소리는 딱 내가 숨은, 좌초된 배의 어느 방 앞에서 멈추었다.

 

 끼익.

 

 그리고 천천히 열리는 문.

 

 들어오는 새하얀 다리는…….

 

 저벅.

 

 틀림없이 사람의 발걸음과 흡사한 것이었다.

 

 

 02

 

 

 “박사?”

 

 박사, 살려줘 박사.

 두고 가지 말아줘 박사.

 왜 우리를 버렸어? 박사? 대답해줘.

 

 박사. 박사. 박사. 박사. 박사.

 

 “박사? 괜찮은 거야?”

 “……좀 닥쳐.”

 

 이 소금기 가득한 공기 때문일까?

 

 오래간만에 내뱉은 말은, 나도 내 것이라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거칠게 갈라진 목소리다.

 

 대체 왜 도망치지 않았지?

 

 저것이 그립기라도 했나?

 

 밀려오는 후회 속에 떨리기 시작하는 손.

 

 “박사…당신, 많이 약해졌구나. 그렇게 떨고.”

 

 그것이 마치 내 걱정이라도 된다는 듯, 그렇게 말하며 뻔뻔스럽게 걸어 내게 다가온다.

 

 “괜찮은 거야? ……박사?”

 

 ‘……님 저희를 왜 버렸어요?’

 

 “……그 이상 다가오지 마! 역겨우니까!”

 “…….”

 

 나오는 구역질을 억눌러가며 말하자 다행히도 그것은 발을 멈추고 그 자리에 서 주었다.

 

 아니. 정말 다행인 걸까?

 

 차라리 저것이 말을 무시하고 다가왔으면, 내 말을 거절하고 그대로 집어삼켜 줬다면, 수년간 이런 고통 속에 헤맬 일도 없었을 텐데.

 

 “시발, 꺼져! 제발 꺼지라고!”

 

 하지만 난 진실을 입에 담지 못하고.

 

 “……응.”

 

 역한 괴물은 그저 받아들이며 발을 멈춘다.

 

 이것이 놈과 나의 관계.

 

 내가 끝까지 저것을 피하는 진짜 이유다.

 

 저것은 오직 나를 질식시키기 위해서만 만들어진 괴물이니까.

 

 “미안……하지만 박사? 지금 너무 수척해.”

 “…….”

 “밥은 먹은 거야? 이대로면……죽을 거야.”

 “꺼지라고 했잖아.”

 “미안해……가기 전에 이것만 두고 갈게.”

 

 까득, 까드득─

 

 내가 쭈그려 앉아 바닥을 보는 사이 무언가 갈리고 쏟아지는 소리와 함께 나무로 된 바닥이 전부 젖을 정도의 바닷물이 살짝 차오른다.

 

 “…….”

 

 고개를 올려보자 보이는 건, 마치 갓 바닷속에서 내팽개쳐진 듯한 살아 숨 쉬는 물고기.

 

 “…….”

 

 어느새 녀석이 없어진 걸 확인한 나는 아직 파닥거리는 그것에 뛰어들어 맨손으로 잡은 뒤, 그 자리에서 이빨로 뜯어 물었다.

 

 3일 만의 식사는.

 

 비린 피와 내장의 맛으로 가득한 것이었다.

 

 

 03

 

 

 그렇게 후회했음에도 나는 도망치지 않았다.

 

 살아 있는 생선 한 마리를 산채로 씹어 삼켜내어도, 뛰어 도망칠 힘이 나지 않아서였다.

 

 “…….”

 

 아니. 어쩌면 그저 그리웠던 걸지도.

 

 무거운 눈꺼풀이 감기자 깨진 배의 유리창 사이로 들려오는 파도 소리가 귀를 먹는다.

 

 바다가 없는 땅에 가고 싶어도, 소금물로 가득해진 대지에는 더 도망갈 곳이 없기에.

 

 매번 같은 소리를 들으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바다에서 떨어진다면 우리 같은 건 살아갈 수 없으리라 생각하고 있었어? 틀렸어….’

 

 아니. 어차피 설령 그런 곳이 있더라도…….

 

 “♬~”

 

 그래. 어차피 지옥이라면 익숙한 지옥보다는 차라리 더 괴롭고 끔찍한 지옥이 날지도 몰라.

 

 “…….”

 

 그날 난 그렇게 잠들었다.

 

 오래간만에 듣는, 에기르어를 들으면서.

 

 

 05

 

 

 “우웩─!”

 

 토했다.

 

 아무래도 전날 먹은 생선이 잘못됐나 보다.

 

 ‘그야 이런 끔찍한 바닷속에 살아남은 걸 산채로 내장까지 뜯어 먹었으니…….’

 

 이렇게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일지도.

 

 “…….”

 

 그것은 내가 이렇게 된 것이 미안한 듯, 갑판 아래쪽에서 계속 구역질하는 날 보고 있었고.

 

 덕분에 내 기분은 그 이상으로 끔찍해진다.

 

 “욱, 우웩…….”

 “박사 괜찮아?”

 “우욱……너…내가, 지금…괜찮아 보여?”

 “…….”

 “그러니까……꺼지라고 했지?”

 “…….”

 

 녀석은 이에 대답하지 않는다.

 

 언제나, 언제나 그랬다.

 

 나는 그것이 그냥 지겹고 짜증 난다.

 

 “하지만 박사 그대로면, 죽을 거야.”

 “욱……이, 이게 누구 때문인데? 네가 원하는 게 이거 아니었어? 계속 토하다 그냥 탈수로 확 뒈져버리는 거?”

 “아니……아니야. 나는……다시 올게.”

 

 그러니까 그냥 꺼지라니까.

 

 ……라는 말을 이어 하지는 못했다.

 

 계속해 나오는 토사물이 목구멍을 막았기 때문이었다.

 

 ‘아, 위험해.’

 

 머리가 돈다.

 

 이대로 있으면 정말 기도가 막혀 죽을지도.

 

 ‘애초에 왜 이렇게 살려고 하는 거였더라?’

 

 정신이 흐려진다.

 

 그리고…….

 

 

 06

 

 

 꿀꺽.

 

 다시 일어났을 때, 나의 목구멍으로 무언가가 넘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머릿밑에서 느껴지는 서늘하고 포근한 감각.

 

 귀를 간지럽히는 콧노래.

 

 어디서 들어봤더라? 어디서 느꼈었지?

 

 ‘박사는 내 머리를 정말 좋아하는구나. 물론 만져도 좋아. 말했듯 조금 자신 있으니까.’

 

 손을 뻗으면 지금도 느껴질 것 같은 감촉.

 

 어쩐지 그리움이 느껴지는 광경.

 

 나는 이것을 떠올림과 동시에 눈을 뜨고.

 

 쨍그랑-!

 

 곧바로 있는 힘껏 손을 휘둘러야 했다.

 

 

 07

 

 

 “아…….”

 

 아쉬움이 묻어나는 듯한 목소리와 함께, 그녀가 방금까지 들고 있던 그릇이 날아가 깨졌다.

 

 “그릇……이제 얼마 없는 건데.”

 “닥쳐!”

 

 붉게 부어오른 손을 만지며 말하는 그것.

 

 내 입에 묻은 것은 아마도 바다를 떠다니던 통조림으로 보이는 수프.

 

 그러나 이 씹히는 건더기는 아마도…….

 

 “그냥 좀 아가리 닫아. 또 구역질이 나니까.”

 “…….”

 

 바닥에 침을 뱉으며 거칠게 말하자 녀석은 묘한 눈빛으로 날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도 일어나서 다행이야.”

 “…….”

 

 라고.

 

 “하…….”

 

 뺨 옆에는 방금까지 베고 있었던 그리운 감촉이 남아있다.

 

 “닥치라니까…….”

 

 손가락 끝에는 조금 전까지 그리던 향기가 그대로 감돌았다.

 

 “……진짜 더럽게 말 안 듣네.”

 “아, 박사!”

 

 나는 즉시 얼마 없는 소지품을 챙겨 들었고.

 

 “박사! ……박사!”

 

 뒤에서 계속해 들려오는 그 소리는 무시했다.

 

 

 08

 

 

 물론. 그 행동이 마치 삐진 어린애와도 같았다는 건 나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내가 단순히 유치한 마음으로 그랬다는 것이 아니고, 어차피 도망치지 못할 걸 알아서였다.

 

 하는 의미도 없고.

 

 결국, 나의 체력 손해로 다가올 행동.

 

 이것이 어린애가 떼쓰는 것과 무슨 차이랴?

 

 하지만 나는 해야 했다.

 

 꿈속이라도 비록 꿈속이라도.

 

 ‘박사……언젠가 네게도 나의 바다를 알게 해주고 싶어.’

 

 절대 헷갈려서는 안 될 걸 착각했다면.

 

 

 09

 

 

 “박사, 이러다 진짜 죽을 거야.”

 

 예상대로 도주극은 멀리 가지 못했다.

 

 내가 어딜 가든 어디에 있던 그녀는 쫓아왔으니까. 처음 뺨을 때리고 그 얼굴을 짓이기고 팔다리를 끊어놨을 때조차 똑같았다.

 

 아마 온몸이 으깨져도 같은 결말이겠지.

 

 한 번 무너지고 재조립한다. 그러면 끝.

 

 “대체 왜 나한테 왜 그러는 거야?”

 “박사가 나의 혈족이 되어줬으면 하니까.”

 

 난 포기했어. 진작 너희들한테 졌어.

 

 그냥 하고 싶은 마음대로 하면 되잖아?

 

 “박사가 그렇게 선택해주길 원하니까.”

 “…….”

 

 세상에 이것보다 잔인하고 끔찍한 괴물이 또 있을까?

 

 “너……그렇게 남의 말을 듣는 주제 아미아……그 아이를 산채로 씹어 삼켰어?”

 “…….”

 “다른 어비스의 사냥꾼들은……말을 듣지 않는다면서 아예 사지를 갈가리 찢어 죽이고?”

 

 나는 봤다.

 

 그 자리에서 모든 걸 보고, 들었다.

 

 “켈시의 모든 걸 범하며, 그녀를 다른 존재로 바꿀 때도……그녀가 그렇게 선택한 거라 그 비명과 절규를 무시했나? 스즈란 같은 아이가 살려달라고 외칠 때는? 그건 대체 뭐였냐고!”

 “박사, 내 동포가 저지른 일은 정말 미안해.”

 “…….”

 “하지만 알잖아? 우린 그렇게 해야 했었어. 그런 일이 있었던 덕분에 이제 모두가 바다로 함께 돌아가게 되었으니까.”

 “…….”

 “우리도 함께 갈 수 있어. 모두가 함께야.”

 

 아, 다행이다.

 

 정말, 녀석과 다시 대화해서 다행이었다.

 

 이럴 때마다 놈이 인간이 아닌걸, 내가 아는 그녀가 아닌 걸 다시 상기시킬 수 있으니까.

 

 ‘이런 내가 곁에 있으면 방해가 될까? 참혹한 과거가 되살아날까? 당신의 곁에 있는 걸 허락해주었으면 해. 때가 오면 이런 곳에서 함께 도망치자. 어때?’

 

 날 속인 그 괴물임을 확실히 할 수 있으니까.

 

 

 10

 

 

 그렇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괴물은 아무리 거절해도 날 따라올 테고.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언젠가 가다가 쓰러지면 그대로 죽게 되면.

 

 그때는 정말 나를 그 몸에 품으려 들겠지.

 

 “…….”

 

 입술이 바싹 마른다.

 

 생존 333의 법칙.

 음식 없이 3주. 공기 없이 3분.

 또 물 없이는 3일이니까.

 

 ‘바로 어제 수프를 마셨지만…….’

 

 그전에 토한 걸 생각하면 현재 탈수 증상이 계속되는 것이리라.

 

 “…….”

 

 그렇게 앉아 있는데 어느 순간 또 근처까지 다가온 녀석이 다시 웬 깡통 캔을 내밀었다.

 

 무려 생수라고 쓰여 있는 녀석을.

 

 맨날 내가 필요하다 싶은 건 대체 어디서 이렇게 기가 막히게 구해오는지.

 

 어제 대화가 없었다면 생수 캔을 내밀고 쭈뼛한 저 모습이 맘이 느슨해졌을 테지만.

 

 “……꿀꺽.”

 

 일단 물은 받아 마셨다.

 

 내가 놈을 허락하는 것은.

 

 언젠가 길을 가다가 쓰러져, 그대로 일어나지 못하게 되면……바로 그때면 충분하니까.